[읽고쓰기 1234]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우현
2023-11-21 16:57
223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

– 『세대 감각』 리뷰

 

 

 작년부터 ‘MZ’, ‘MZ하다’라는 표현이 유행 중이다. ‘MZ’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Z세대’의 합성어다. 대략 40대부터 10대까지 꽤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이 표현은 각 세대를 구분하는 시기조차 명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반면 그 기원이나 의미에 반해 이 표현의 사용처는 명확한 편이다. ‘항공 샷’(광각카메라로 높은 위치에서 수직 각도로 ‘셀카’를 찍는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던가, ‘탕후루’를 사 먹는 등, 소위 ‘어른’들(여기서의 어른은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를 포함할 수 있으며, 특정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일삼는 요즘 젊은이들을 타자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탕후루’나 ‘항공샷’ 자체를 비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을 여과 없이 따라 하는 젊은 세대들을 비꼬기 위해, 혹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만의 문화’로 치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그 세대를 지칭하는 표현은 사실 낯설지 않다. 사회성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초등학생들을 비하하는 ‘잼민이’,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 세대를 비하하는 ‘틀딱’ 등. 밈(MEME)이나 유행이 빠르게 생산되고 없어지는 인터넷 세상에선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MZ하다’는 말은 다른 표현들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지 않은 표현에 속한다.

 특정 세대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한탄은 19세기에도, 16세기에도, 심지어는 기원전 고대 문명에서부터 존재해 왔다.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었던 키케로는 갈수록 젊은 세대들의 명철함이 떨어진다며 한탄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태어난 세대를 기반으로 사회를 분석하려는 ‘세대적 사고’는 주로 특정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만들고, 지나친 일반화와 각종 오해들을 낳는다.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세대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오늘날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대적 사고를 폐기하고 나이에 따른 구분을 멈추어야 할까? 그럼에도 세대적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세대 갈등은 언제나 있어왔다

 인구학자 노먼 라이더는 세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인구학적 신진대사’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회는 변화가 불가피한 유기체라는 것이다. 그는 사회에 새로운 참가자가 등장하고 전임자가 지속적으로 철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끝없는 야만인의 침략’의 의해 두 진영 사이의 문화적 긴장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연구들과 발굴되는 기록들을 토대로 사회에서의 세대 갈등은 필연적이고, 비슷한 구도로 반복되어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야만인의 침략’과 함께 발생하는 도덕적 공황 상태는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기 거의 한 세기 전인 1906년에는 “싸구려 소설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또한 지금의 MZ세대들에 대한 비판처럼, 20년 전에는 밀레니얼 세대들도 나약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비판을 똑같이 받았었다. 그런 걸 보면 역사적으로 ‘새로운 젊은이’들과 ‘보수적인 어른들’의 갈등은 항상 있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각 세대들의 특수성을 지운 채 오늘날의 세대 갈등을 그저 역사의 반복으로만 치부하게 된다. 이에 『세대 감각』의 저자 바비 더피는 보다 유연한 세대적 사고를 위해 세 가지 영향을 구분하여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시대적 영향’으로,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큰 사건들을 통해 영향을 받은 세대의 분위기를 말한다. 두 번째는 ‘코호트(cohort)적 영향’이다. 이는 각 세대들의 조건에서부터 형성된 태도, 신념, 행동의 영향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하는 환경과 신체조건 등을 설명하는 ‘생애 주기적 영향’이 있다. 더피는 이 세 가지 영향을 토대로 자산, 주거, 건강, 문화, 정치, 사생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오늘날의 세대 갈등이 왜 심화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짚는다.

 

‘절망’의 세대

 그렇다면 MZ세대만의 특성은 무엇일까? 책에서 다양한 자료와 통계를 거친 분석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점은 더 이상 세대의 진보가 생활 수준의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자산은 갈수록 줄고, 주거 환경 또한 안 좋아지고 있다. 유럽의 한 기관에서는 1945년 이전에 출생한 ‘전쟁 전 세대’와 1945~65년에 출생한 ‘베이비 부머’, 1966년~79년에 출생한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 총 네 개의 코호트를 대상으로 평균 실질 가처분 소득(인플레이션을 감안하고 주거비를 공제한 소득)을 비교했다. 그들이 30대였을 때, 40대였을 때, 60세였을 때 각각의 소득을 비교한 결과 세대가 내려갈수록 소득은 계속 감소했다. 이 밖에도 더피는 주거나 행복지수에 대한 통계, 교육 수준과 의료 수준은 높아지는 반면에 노동 환경과 수익은 줄어들었다는 통계 등 다양한 자료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계급의 편차는 커지고,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하게 되었다는 해석을 이끌어 냈다.

 그에 따라 미국 젊은 세대들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1990년대부터 2017년까지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들의 자살률은 약 3배가 증가해 왔다. 반면 대학을 졸업한 백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게다가 각 코호트들의 상황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50년대에 출생한 코호트보다 60년대에 출생한 코호트가 자살, 약물 중독,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이 50퍼센트 높았고, 70년대에 출생한 코호트는 60년대 출생한 코호트보다 다시 두 배가 높았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 짓기는 힘들지만,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은 이 현상을 ‘절망의 죽음’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20세기에 일어난 건강과 생활수준에서의 진보는 세기말까지 계속됐다. 사람들은 진보가 계속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갖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의 삶에도 진보라는 축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그뿐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래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꾸준하게 오래 지속된 나머지 미래 세대가 현 세대보다 더 잘 살 것이라는 전망이 거의 확실시 되었다.”

『세대 감각』, 바비 더피, 어크로스, 153쪽

 

그러니까 세대 진보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금융위기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겹치면서 MZ세대를 ‘절망의 세대’라고 보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세대 전쟁’

 하지만 유독 이런 절망의 분위기가 오늘날 MZ세대 전반의 분위기로 확산되고, 세대 격차에 따른 갈등이 가속화되는 원인은 다른 시대적 영향에 있다. 스마트 기기들의 등장과 소셜 미디어의 환경이 그것이다. 스마트폰은 전 세대에 걸쳐 빠르게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과거 산업혁명기의 발명들이 광범위하게 채택되는 데에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스마트폰이 세계적으로 채택되는 데에는 1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한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4명은 한 달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반려견이나 파트너를 만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자료들은 스마트폰에 대한 현대인들의 애착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미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놓여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스마트폰 보유 여부와는 다르게 스마트폰 사용에 있어서는 세대별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영국의 통신 규제 기관인 오프컴에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밀레니얼 세대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매주 평균 약 1500분(약 25시간)에 달했다. 그러나 X세대의 사용 시간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55세 이상의 집단은 다시 그 절반인 300분정도의 주간 사용시간을 보여주었다. 이는 스마트폰 자체는 대중화 되었지만, 스마트폰이 삶에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코호트마다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소셜 미디어는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Z세대 10명 중 9명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반면 전쟁 전 세대는 7퍼센트, 베이비부머들은 19퍼센트 정도가 소셜 미디어를 사용했다. 젊은 세대와 나이든 사람들이 기술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실제 생활에서의 단절을 유발하는 핵심 원인이라고 더피는 보고 있다. 게다가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의 종류도 각각 다르다. 소셜 미디어는 각자가 개인과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고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정체성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와 같은 네트워크를 공유하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세대 별로 각각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게 된다.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페이스북은 전쟁 전 세대와 베이비부머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앱이었고, 다른 앱에 비해 세대 간 사용 편차가 가장 적은 앱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스타그램은 Z세대의 70퍼센트, 밀레니얼 세대의 50퍼센트가 사용하고 있었고, 전쟁 전 세대는 1퍼센트, 베이비부머는 8퍼센트 정도만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세대 간 사용률의 편차가 두 번째로 큰 앱이었다.(참고로 제일 격차가 큰 앱은 미국의 인기 메신저 ‘스냅챗’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셜 미디어가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은 소셜 미디어가 세대 간의 차이를 ‘깨어 있음의 전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성평등, 동성애 등에 관한 인식의 차이를 ‘깨어 있음’과 ‘뒤처짐’으로 구분 짓고, 미디어는 조회수를 위해 그게 곧 세대들의 특징인 것처럼 범주화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세대 갈등을 단순한 ‘인구학적 신진대사’로만 바라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카카오스토리와 네이버 밴드의 사용률이 높아 주로 이 다섯 플랫폼의 통계를 비교한다.(출처 : 노컷뉴스)

 

 

타자화 :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대 갈등을 MZ세대의 ‘절망’과 소셜 미디어가 엮이면서 벌어지는 ‘세대 전쟁’의 징조라고까지 봐야할까? 더피는 기본적으로 세대 갈등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세대 갈등에 관해 다방면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피에겐 세대 갈등이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화될 수 없다고 낙관하는 지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 늙어가며, 언젠간 Z세대들도 ‘노인 세대’의 위치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을 줄이고 젊은이들에게 집중하자는 식의 의견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노인 세대가 됐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며, 극단적인 갈등의 상황을 억누른다. 가족과 유대를 떠올리며 다른 세대와도 유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더피는 ‘인터넷 세계’와 각종 통계자료를 비교하면서, 인터넷에서 비춰지는 것만큼 세대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1984년에 진행한 설문에서 ‘정부가 노인들에게 적절한 기준의 생활을 보장해 줄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90퍼센트 이상이 동의했다. 이는 2016년에 진행한 동일한 질문에도 결과가 같았으며, 세대별 격차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몇 년 전 팬데믹 시기에도 온라인상에서는 세대 갈등이 심화된 것처럼 보였지만, <더 타임스>에 실린 한 젊은이의 편지처럼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며 노인 세대를 보호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며 낙관한다.

 

도와주십시오! 저는 오늘 신문을 펴다가 81세가 되신 우리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 코로나19로 심각한 상황이 되면 호흡기를 떼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양식이 있는 결정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아직 수학 개인 지도를 하시고, 주민 협회를 운영하시고, 개들과 손주들에게 응급 치료를 해주시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크리스마스 케익을 만드신다는 것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80세 이상 노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사회에 대한 그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애정 때문에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그들이 필요합니다.

『세대 감각』, 바비 더피, 어크로스, 331쪽

 

 더피에 따르면 오늘날의 문제는 꼭 세대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내가 조금 더 두드러지게 느끼는 문제는 문화의 파편화와 타자화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갈수록 빨라지는 기술 발전과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은 각 세대뿐 아니라 각 세대 안에서도 수많은 집단을 만들었다. 더 이상 대부분의 가족이 TV의 같은 채널을 보지 않으며, 50세를 넘긴 유재석은 마지막 ‘국민 MC’가 되었다. 이제는 각자의 핸드폰에서, 각자의 알고리즘으로 나타나는 그들만의 ‘국민 MC’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와 다른 집단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타자화를 통한 혐오와 개인주의는 세대 갈등뿐 아니라 젠더 갈등, 계급 갈등, 동물권 갈등 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파편화되고 있기에, 우리는 세대 간 유대의 사례를 보며 낙관할 게 아니라 더피의 말대로 ‘다방면으로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세대적 사고’에서 가능성을 찾고 싶다. 이렇게 파편화되는 과정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더피가 짚었듯이 죽지 않은 한 우리는 모두 늙는다. 젠더 갈등, 동물권 갈등 등에서 요청하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상상력은 꼭 필요하지만, 신체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이 다르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세대적 사고를 통한 필연적인 나이 듦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 좋은 수단이 아닐까? 누구나 생애 주기적 공통 감각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절망이 아닌 상상력이 넘치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댓글 1
  • 2023-11-23 09:37

    뭔가, 늙어가는 나와 더 사이좋게 지내보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문이예술
  한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   동은       1. 한자의 느낌적인 느낌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말 단어의 상당수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서서히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게 되면서 이른바 우리나라 고유어와 한자어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어떤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유람’과 ‘유랑’은 ‘여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어감이 비슷해보이지만 각각 놀 유遊와 흐를 류流로 다른 한자가 사용되어 ‘놀면서 돌아다니다’와 ‘목적없이 물 흐르듯 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사전’은 ‘단어들을 모아 그 의미를 밝혀놓은 책’으로 말씀 사辭와 책 전典을 쓰는데, ‘백과사전’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압축해 분류하고 모아 현상과 상태 자체를 모아 설명해 놓은 것’이라 이 때는 일 사事자를 사용한다. 이 事는 원래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였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사건이나 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해서 ‘일事’이 포괄하는 용례를 살펴보면 한자 하나로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중국 철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 학문 체계로 편입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철학을 중국 자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던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 사유』에서 한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의 단어는 하나의 개념에 부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순한 기호도 아니며, 문법이나 통사의 기교를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추상적 기호도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단음절 형식과 중성적 양상 속에 작용을 미치는 데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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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1.11 | 조회 255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봄날
2024.01.08 | 조회 34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기린
2023.12.11 | 조회 386
논어 카메오 열전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진달래
2023.12.05 | 조회 290
한문이예술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동은
2023.11.30 | 조회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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