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요요
2023-11-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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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한에서의 자료들을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다윈이 말한 중간단계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일 중간단계가 있다면 무수한 중간단계들 모두 자연에 잘 적응해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라는 비판이었다. 굴드는 이것을 ‘2퍼센트 날개의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다윈은 마이바트의 비판을 의식하며 『종의 기원』의 최종판이라 할 수 있는 6판(1872)에서 중간단계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변화’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능의 변화라는 다윈의 답변은 중간단계를 구조와 형태로만 파악하는 관점을 바꾸는 새로운 시각의 시작이었다. 이후 여러 화석 증거들을 통해 최초의 깃털이 날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폐가 육지에서의 호흡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다윈의 혜안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진화생물학의 역사는 새로운 물음과 그에 대한 탐구와 응답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물음에 답을 찾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해가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역사이자 진화론의 역사를 써왔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질문들 중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굴드의 질문에 대한 닐 슈빈의 답변이다. 나는 이 글에서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니다’라는 닐 슈빈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한다.

 

 

굴드의 질문: 생명의 테이프를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닐 슈빈은 1980년대에 유명인사로 떠오른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1942~2002)의 조교였던 적이 있다. 당시 굴드는 교양과정 수업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공룡과 그 밖의 생물들이 살아남았다면, 지금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굴드는 이 강의를 바탕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 『원더풀 라이프』를 썼다. 그 책에서 굴드는 우리 존재를 포함해 자연계는 지난 수십 억 년 동안 일어난 우발적 사건들의 산물이고, 그 사건들 중 어느 하나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세계는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248쪽)

 

굴드의 이런 생각의 반대편에 리처드 도킨스(1941~)를 비롯한 일군의 생명과학자들이 있다. 굴드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5억3천만년전 캄브리아기 생명의 대폭발이 다시 되풀이된다면 생태계는 지금과 같은 결과가 아닐 것이라고 본 것과 달리 이들은 거의 모든 생명체가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다발적 진화)다. 수렴진화란, 생명의 나무에서 근연관계가 아닌, 서로 멀리 떨어진 종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결과를 말한다.

 

모든 동물의 배아는 발생과정에서 모두 똑같이 삼배엽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외배엽에서는 피부와 신경계가 발생하고, 중배엽에서는 근육과 뼈가 발생하고, 내배엽에서는 소화기관 등이 발생한다. 물고기든, 초파리든, 도롱뇽이든, 닭이든, 인간이든 예외가 없다. 또 거의 모든 동물이 비록 구조는 다르지만 눈을 갖는다. <아더 마인즈>에서 보았듯이 3억년 전에 생명의 나무에서 분기한 문어와 인간이 뇌라는 기관을 갖게 된 것 역시 수렴진화의 예다. 생명과학자들은 만약 진화가 우연히 일어난다면 계통이 멀리 떨어진 생명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비슷한 구조나 기능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닐 슈빈의 답: 진화는 불확실한 도박이 아니다

 

닐 슈빈도 도킨스와 같은 입장에 선다. 그는 단적으로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 역시 반례로 다발적 진화를 제시한다. 닐 슈빈은 다발적 진화가 일어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 이유는 문제의 해법이 무한하지 않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개의 경우를 보자.

 

나는 생물은 모두 날개를 지닌다. 새, 익룡, 박쥐, 파리의 날개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내부구조와 진화해온 역사가 저마다 다르고 그것은 추적이 가능하다. 새의 날개를 구성하고 있는 각 뼈의 배열은 박쥐나 익룡의 그것과 다르다. 박쥐는 길게 늘어난 다섯 개 손가락 사이에 쳐진 막이 날개인 반면, 익룡에서는 길게 늘어난 네 번째 손가락이 날개를 지지한다. 곤충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조직으로 날개를 지지한다. 각 구조는 모두 날개임에 틀림이 없지만 저마다 배열이 다르며 그 배열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의 각기 다른 진화사를 반영한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265쪽)

 

아무리 구조와 배열이 달라도 날기 위한 구조로 자연이 ‘날개’를 선택했다는 점은 같다. 그것은 자연의 해법이 무한정일 수 없고 생명체의 신체가 갖는 물리적 조건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렴진화의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선택이 개체 간의 차이에서 생겨난다는 것에 있다. 개체 간의 차이가 없다면 진화는 없다. 그런데 어떤 종에서 어떤 변이가 지배적이고 다른 변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즉 어떤 편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발생과정에서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관이 발생과정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낸다면 다른 종의 특정 개체군 내에서 그 기관에 어떤 변이가 나타날지, 어떤 쪽으로 진화할지 예측가능하다.

 

도롱뇽은 서로 다른 종들이 똑같이 혀를 화살처럼 쏘아 먹이를 잡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 진화는 새로운 뼈와 근육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뼈와 근육을 새로운 기능으로 전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발사체 혀가 고도로 진화한 도롱뇽의 DNA 계통수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이 종들은 전혀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멀리 떨어진 중국종, 멕시코종, 캘리포니아 종이 도롱뇽들은 모두 새끼 손발가락이 퇴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이유는 발생과정에서 손발가락이 생겨난 순서와 반대로 손발가락의 퇴화의 순서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닐 슈빈은 굴드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다른 우발적 상황을 넣어 생명의 테이프를 재생해도 중요한 부분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274쪽)

 

닐 슈빈은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발생의 레시피가 진화의 방향에 결정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도롱뇽의 사지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발생의 경로를 알면 그것의 진화의 경로도 예측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어떤 우발적 상황이 끼어들더라도 발생의 설계도인 유전자의 제약이 결정적이라는 의미이다. 결정론에 가까운 이 주장은 현대의 분자생물학의 성과에 근거한 과학적 답변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굴드가 말한 진화란 ‘우발적 사건들의 산물’이라는 비결정론적 주장은 유전자 결정론에 완전히 패배한 것일까? 굴드의 주장은 일고의 여지도 없는 것일까? 나는 닐 슈빈의 주장의 반례를 그의 책 안에서 다수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조립과 병합, 그리고 감염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바바라 매클린톡(1902~1992)은 옥수수 유전자 돌연변이 연구를 통해 게놈이 정적인 것이 아니고, 어떤 유전자는 게놈 안에서 이곳저곳으로 점프하며 자신의 사본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십년의 연구 끝에 신중에 신중을 거쳐 점핑 유전자 가설을 발표했을 때 모두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 인간 게놈의 70퍼센트가 점핑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매클린톡은 1983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매클린톡 이후의 연구를 통해 점핑 유전자가 식물만이 아니라 동물에서도 돌연변이를 게놈 전체로 퍼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앞서 닐 슈빈이 말한 유전자의 설계도에 따른 제약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한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린 마굴리스(1938~2011)는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를 공생 진화의 예로 제시했다. 오랫동안 마굴리스의 주장은 주류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세포 속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내 소기관이다. 이것들은 염색체가 들어있는 세포핵과는 별도의 자체 게놈을 갖는다. 마굴리스는 그것들의 기원이 세포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박테리아에 연원한다고 생각했다. DNA 염기서열 분석기법이 개발되면서 린 마굴리스의 주장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공생 진화는 유전자 결정론과는 다른 조립에 의한 진화의 예다.

 

생명사에는 이런 합병의 사례들이 흔하게 발견된다. 오늘날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동식물은 몸 안에 복잡한 위계로 조직된 부품들인 기관, 세포, 세포소기관, 유전자라는 부품을 갖추고 있다. 이런 조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것은 모든 동물의 배아가 발생과정에서 삼배엽의 구조를 갖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단세포의 미생물들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몸을 만들게 되는 과정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세포의 구조나 유전자의 배열에 따른 필연적 결과가 아니었다. 40억년전 단세포 생물이 태어난 이후 수십억년 동안 이들은 몸을 형성하지 못했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합쳐진 몸을 가진 개체의 탄생은 전적으로 지구 대기의 변화라는 외적 조건에 따른 것이었다. 6억년 전 풍부해진 산소가 없었다면 세포들은 고비용의 에너지를 요구하는 몸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도 그렇다. 바이러스들은 게놈을 감염시키면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숙주세포에 가져다 주었다. 임신의 경우를 보자. 태반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인 신사이틴은 모체와 태아의 영양과 노폐물 교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신사이틴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일부가 되어 숙주를 위해 신사이틴을 만드는 일을 하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영장류, 설치류, 그밖의 포유류가 각기 다른 침입자로부터 유래한 서로 다른 신사이틴을 갖고 있다. 어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육지 동물은 가지고 있는 아크 유전자 역시 외부 감염의 결과다. 이 유전자는 숙주의 뇌에서 기억과 인지기능을 강화시키는 변화를 일으켰다. 이로부터 우리는 유전자와 게놈이 결코 닫힌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백질을 생성하고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게놈이 외부에 열려 있고, 병합과 조립, 감염을 통해 진화되어 온 것은 유전자 결정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조건이 진화에 개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생명이란 정보, 설계, 코드와 같은 프로그램?

굴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닐 슈빈의 답변, 그리고 닐 슈빈의 답에 대한 나름의 반례들을 찾아보려 시도한 끝에 내게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유전자에 내장된 설계도 혹은 레시피의 제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유전자 레시피라는 전제는 생명을 분자-기계로 보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현대의 분자 생물학 혹은 유전공학이 도달한 결론인 것일까? 그런데 애당초 이 설계도라는 것이 유전자 바깥에서 벌어진 조건의 산물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바바라 매클린 톡이 발견한 것처러 게놈 역시 고정불변의 정적인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닐 슈빈 역시 우리 게놈이 조립과 병합, 감염과 공생의 결과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우리 게놈의 10퍼센트는 태고의 바이러스가 차지하고, 60퍼센트 이상을 점핑 유전자가 만들어낸 반복서열이 차지한다. 우리 자신의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양한 종의 세포와 유전물질이 합병하고 유전자가 끊임없이 중복되고 전용된다는 점에서, 생명사의 흐름은 곧은 수로라기 보다는 꼬이고 구부러진 강에 가깝다. 어머니 자연은 옛 레시피와 원료를 전용하고 복제하고 수정하고 재배치함으로써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낸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311쪽)

 

결국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데이터들을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나는 진화생물학의 역사가 물음의 역사라고 말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진화생물학은 물음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생명과 진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둘러싼 담론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날 분자생물학의 전제가 되는 유전자 중심 생명관은 우리의 세계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다시 묻게 된다.

 

댓글 1
  • 2023-11-23 09:47

    대부분의 다종공동체, 신유물론적, 포스트휴머니즘적,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센트롤 도그마를 비판하지요.
    버뜨...다윈은 좀 더 복잡한 것 같아요.

    근데 재밌는 것은 린 마굴리스는 열나 나오는데....굴드 이야기 하는 경우는 잘 못 봤다는...ㅋㅋㅋ... 왜 그럴까유?

한문이예술
  한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   동은       1. 한자의 느낌적인 느낌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말 단어의 상당수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서서히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게 되면서 이른바 우리나라 고유어와 한자어의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어떤 한자가 사용되었는지 알아차리기가 어려워졌다. 예를 들면 ‘유람’과 ‘유랑’은 ‘여유롭게 돌아다닌다’는 어감이 비슷해보이지만 각각 놀 유遊와 흐를 류流로 다른 한자가 사용되어 ‘놀면서 돌아다니다’와 ‘목적없이 물 흐르듯 다닌다’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사전’은 ‘단어들을 모아 그 의미를 밝혀놓은 책’으로 말씀 사辭와 책 전典을 쓰는데, ‘백과사전’은 ‘여러 분야의 지식을 압축해 분류하고 모아 현상과 상태 자체를 모아 설명해 놓은 것’이라 이 때는 일 사事자를 사용한다. 이 事는 원래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였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사건이나 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해서 ‘일事’이 포괄하는 용례를 살펴보면 한자 하나로 얼마나 다층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중국 철학은 서구에서 성립된 근대 학문 체계로 편입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철학을 중국 자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던 마르셀 그라네는 『중국 사유』에서 한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의 단어는 하나의 개념에 부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순한 기호도 아니며, 문법이나 통사의 기교를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은 추상적 기호도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단음절 형식과 중성적 양상 속에 작용을 미치는 데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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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1.11 | 조회 255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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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조회 342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기린
2023.12.11 | 조회 386
논어 카메오 열전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제경공이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고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다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제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公曰 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안연,11」   공자가 만난 제 경공   제나라 26대 군주인 경공(景公/재위 기원전 548~기원전490)은 대부인 최저에게 시해된 장공(莊公)의 이복동생으로 장공이 시해된 후 최저에 의해 옹립되었다. 최저의 권력은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얼마 뒤 그는 그의 측근인 경봉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경봉 역시 얼마 못가 그의 수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 뒤에 제나라의 권력은 네 집안, 국(國)씨, 고(高)씨, 포(鮑)씨, 전(田)씨가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안정되게 되었다. 공자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제 경공은 공자와 세 번 정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공자가 30대 초반일 때 노나라에 온 제 경공과 안자를 만났다고 한다. 다음에는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로 가 경공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50대에 이르러 대사구의 직책을 맡게 된 공자가 제 경공과 노 정공의 회담을 주관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논어』에도 제 경공에 대한 기록이 세 차례 보인다. 그 중 두 개가 30대 중반의 공자가 제나라에 갔을 때, 경공을 만나는 장면이다. 공자를 만난 제 경공은 그에게 ‘정치’에 대해 물어본다. 이 때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진달래
2023.12.05 | 조회 291
한문이예술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예술적(?) 동양고전 동은       1. 예술, 정체를 밝혀라!     아이들이 가끔 수업에 들어오며 질문을 한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한문이 예술> 수업은 한문을 가르치지만 어떤 작품이나 발표 형식으로 결과물을 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만드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끔 내가 미술 선생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어딘가 콕콕 찔리는 느낌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한자와 예술수업의 경계에 있다고는 해도 예술은 나에게 너무나 고원하고 아득하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알수 없는 것….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술’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한문이 예술>의 ‘예술’은 정체가 무엇일까?       2. 藝, 심고 기르고 생산해내는 능력     예술의 예藝는 재주 예埶에서 만들어진 문자로 埶의 초기 갑골문 형태를 보면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藝에 풀艹이 있고 갑골문에는 나무의 형상이 있는 걸로 보아 이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보자마자 나는 중국에서 유래된 분재가 떠올랐다. 분재는 작은 크기로 키워낸 나무를 의미하는데 뿌리의 영양을 제한시켜 일반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게 해서 만들어 낸다. 원래는 절벽처럼 흙이 얼마 없는 곳에서 영양분이 없어 조그맣게 자란 나무를 화분으로 옮겨와...
동은
2023.11.30 | 조회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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