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침시간 활용법 (20211026)

관리쟈
2022-12-28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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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인문약방 활동의 확장으로 일리치 약국을 열었다. 상담을 주로 하는 약국에서 한약처방전일 경우 계량하고 달이고 포장하는 일 등을 내가 맡기로 했다. 약국 영업시간인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근무시간도 정해졌다. 이십 대 초반에 정규직으로 일했던 이십 개월 이후 삼십 여년 만에 다시 사대보험이 되는 정규직에 취업을 한 셈이다. 약국을 개업하기 이전에도 대부분 열시 전에 공동체 안에 있는 공부방으로 출근했다. 밥벌이는 물론 공동체에서 벌이는 다종다양한 일에 연루되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모자라고 세미나 준비는 미흡해서 전전긍긍하기 일쑤였다.

 

 

약국으로 출근하게 되면서 아홉 시간의 근무시간이 정해졌다. 약국의 일상과 인문약방의 활동, 세미나 공부 등으로 활용해야 했다. 출근해서 닥치는 일부터 해내다보면 책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퇴근시간을 맞았다. 게다가 약국이 있는 파지사유는 에코와 관련 활동이 펼쳐지고 용기내 가게가 열려 있고 약국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공부방에서처럼 책을 읽는 일은 그야말로 미션임파서블이었다. 공간을 함께 쓰는 친구들과 공부 좀 하자,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등등 언쟁까지 붙으니 피곤이 점점 가중되었다.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몸은 여전히 예전 공부방의 환경을 원했다. 더구나 그 시절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왜 이러고 사는지 나 자신한테 불쑥불쑥 짜증이 치솟기도 했다. 그렇게 정념에 휩싸이면 일상에서의 집중력은 더 떨어졌다.

 

 

예전이라면 해야 할 일을 끝내면 공부방에 자리 잡고 세미나 책을 읽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공간이 하루 종일 북적대는 것은 아니어서 제법 한가한 시간도 있었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약국 일 사이 한가한 시간, 소란했던 분위기에서 벗어난 시간이면 몸도 거기에 맞춰 좀 나른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좀 늘어져 쉬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하면 책은 세미나 전날 벼락치기로 허겁지겁 읽을 수밖에 없다. 한숨 돌리는 몸과 책을 읽을 몸 사이의 조절이 문제였다. 저녁에 퇴근하고 혹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집중해서 책을 읽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 오면 대체로 더 산만해졌다. 동시에 집에는 유혹이 더 많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프로그램이 궁금하고 때로는 피곤하니 일찍 자고 싶기도 한 것이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다르게 쓰는 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선 아침 시간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면 책상 앞에 앉았다. 오랫동안 공부 해온 동양 경전을 펼쳤다. 요즘 읽고 있는 경전은 <논어>다. 저절로 읽히는 문장으로 뇌를 워밍업 시킨다. 이 워밍업은 대부분 10분 이상을 넘기지 않았다. 그 대신 소리 내어 읽으면서 문장에 집중한다. 그렇게 한 편이 술술 암송될 때까지 계속 읽었다. 그 다음은 팟캐스트를 위해 선정된 책이나, 읽고 싶었던 신간 등을 읽는다. 이 책들을 읽는 시간도 20분 이상을 넘기지 않는다. 쉽게 읽히는 문장이라도 꼼꼼하게 읽으면서 집중한다. 10분정도 암송하고, 20분정도 다른 책 읽으면서 이 집중에서 저 집중으로 옮겨가 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로 세미나 책을 읽었다. 그건 출근 준비 전까지 계속 읽는다. 여섯시 무렵에 일어나면 한 시간 정도 읽을 수 있고, 늦잠을 자면 30분 정도밖에 못 읽는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 세 번에 걸쳐 각각 다른 책을 나누어 읽었다. 그러고 나서 여덟시 사십 분이 지나면 출근을 준비 한다.

 

 출근 후에 약국 일을 하는 사이 시간이 비면 될 수 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화요일부터 세미나가 있는 토요일 전까지 주로 세미나 책만 읽었다. 예전에 공부방에서는 일을 하고나서 공부를 하려면 예열하는 시간이 길었다. 이제는 환경이 바뀌어 그렇게 예열하는데 시간을 쓰다가는 할 일에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세미나 준비에만 집중하면 그 예열시간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퇴근을 해서 저녁까지 먹고 나면 여덟시가 훌쩍 넘어 있다. 그러면 별다른 예열 없이 세미나 책이나 글쓰기 등에 진입하기가 좀 더 수월했다. 열한시를 넘기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

 

그러나 나의 일과를 온통 약국 일과 세미나 준비만으로 채울 수 없다. 부모님 간병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친 친구가 마음을 가누기 위해 파지사유에 들렀다. 그 친구와 마주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시간도 필요하다. 손 작업장에 작업하러 오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일상의 수다를 푸는 시간도 있다. 파지사유에 장이라도 서는 날에는 그 왁자함에서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공동체 밥상에서 벌어지는 갖은 일에 참견하고 살피고 빈틈을 메우는 일도 해야 한다. 더구나 공간에서는 예정에 없던 일들도 수시로 벌어진다. 반가운 손님이 오기도 하고, 육아에 지친 친구가 아기를 안고 나타나기도 한다. 그 때 아기와 눈 맞추고 놀다보면 시간은 잘도 간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아침의 시간을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나누어 써보는 실행을 한 지가 석 달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아침의 루틴을 만드는 방법으로 암송을 해보기도 했고, 매일 아침 글쓰기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보내본 시간도 있었다. 그런 시도들이 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흔적이 되어 내 몸 어디엔가 장착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의 이런 실행들도 시간이 쌓여가다 보면, 어느 샌가 일의 한가운데서 그 순간에 집중하는 몸이 되어있기를 상상해본다. 그런 일상이 곧 자연스럽게 사는 양생의 순간일 것이라는 상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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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우여곡절 무릎소동     무릎이 부어도    언제부턴가 한약 포장 기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쌍화탕을 한 팩씩 정렬하는 일을 즐겼다. 푸짐한 뱃살 때문에 쪼그리고 앉는 자세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을 지나, 어쨌든 앉아지는 가능성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뱃살들이 다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고 아주 약간 얇아졌을 뿐이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오른쪽 무릎이 좀 더 삐걱댄 달까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 아침, 샤워를 하다가 왼쪽 무릎과 비교해서 현저히 부어있는 오른쪽 무릎을 발견했다. 당장 검색부터 했다. 무릎에 물이 찼다는 신호란다. 무릎의 염증이라는 진단과 물이 찼다는 표현 차이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몇 번을 읽었다. 병원을 가야했다.      출근해서 오전 일과를 마무리 짓고 나니 12시쯤 되었다.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슬그머니 약국을 나섰다. 침을 잘 놓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는 동네 한의원에 갔다. 정형외과를 가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 같고 침이 더 빨리 붓기를 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의사는 무릎 상태를 진단한 후 검색으로 읽었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퇴행성이냐고 물었더니 진단으로 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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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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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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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8 | 조회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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