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3일차 _ 고양이랑 뚜비뚜바

모로
2021-11-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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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키워봤다고 해도.. 금붕어 정도??

삼남매에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장사를 하셨던 우리 엄마는, 반려동물을 키울만한 시간도,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커서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삶이다!!!)

신혼 시절, 너무 적적해서 햄스터를 키워본 적이 있었는데.. 아이는 장수했지만 (2년 정도 살았던 거 같다) 햄스터와의 교감은 하지 못했다. 철장 안에서 갉갉갉 거리면서 문을 긁어댈 뿐, 나를 알아본다는 낌새를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지나자 갑자기 마음 속에 고양이라는 존재가 들어왔다. 

고양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동물!

하지만.. 키우는 것은 너무나도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와버린 고양이는.. 몇날 며칠을 나를 괴롭혔고.. 나는 집안 사람들 (신랑, 아이)의 반강제적인 허락을 얻어내고 난 후에야, 3살 난 성묘를 입양했다. 

 

우리 마리!!! 

이렇게 이쁜데, 내가 4번째 주인이다.. 비싼...품종묘로 태어났는데... 첫 주인이 교배 시켜서 아깽이를 낳아 팔려고 했는데, 소심한 아이가 교배가 되지 않자 다른데 보내버리고, 그 두 번째 주인은 갑자기 아파서 다른데 보내버리고, 그 세 번째 주인은 알러지가 생겨서 보내버린... 기구한 인생의 아이.. 어찌되었든 나는 나에게 오기 위해서 돌고 돌아온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게 운명이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경계심이 너무 심해,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침대 밑에 숨어 있었더랬다. 저얼대 쳐다보지 말고, 알은채를 하지 말라고 해서, 마음을 낼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힘들었다. 3일 정도 지나자 혼자 슬슬 나와서 탐색을 시작했고, 나는 저얼대 쳐다보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가재미 눈으로 마리를 훔쳐보았다. 그러길 한 달여.. 천천히 천천히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난관은 손님들이 찾아 왔을 때였는데, 겁이 많은 고양이는 다른 사람이 집에 찾아오면 꼭꼭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 우리 고양이 좀 보세요!" 하고 동네 방네 자랑하고 싶었던 나는, 마음이 좀 쓰라렸지만 여전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우리집에 완전히 적응했다. 그렇게 같이 살길 4년 째...  마리는 이제 7살이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진짜로 서로에게 완전히 마음을 내준 느낌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반겨주고(반겨주는 걸 넘어서, 누군가 우리집에서 자고 갈 때면 홀랑 다른 사람 품에서 잔다. 쳇!), 잠을 자고 있으면 호시탐탐 내 옆구리를 노리며 파고 들며, 자기가 필요할 때만 야옹야옹 울면서 내 팔을 잡아끈다. 

처음에 내 옆구리에서 잠들었을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화들짝 놀라며 도망갔는데, 지금은 이렇게 저렇게 조금 디척거려도.. 이해해하는 모양이다.(물론 많이 움직이면 약간 짜증을 내면서 자리를 옮긴다) 가끔 여행갈 때면 혼자 1박 2일 정도 집에 두는데, 큰 캐리어를 끌고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면 삐져서 침대 밑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집에 다시 돌아오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우리를 맞아주는데, 배까지 까면서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강아지 같다. 줌으로 수업할 때는 무조건 달려와서 컴퓨터 앞에 자리잡고 앉는다. 아마도 나보다 더 똑똑할 듯. 수업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졸기도 존다. ㅎㅎㅎ

 

나는 고양이를 이해하고, 고양이는 나를 이해해준다. 처음에는 서로 조심스러운 사이었는데, 이제는 마음에 안 들면 살짝 깨물기도 하고, 나도 뭐라하기도 하면서 좀 더 편한(?) 사이가 되었다. 물도 꼭~ 자기 물은 안 마시고, 테이블 위에 남겨놓은 물컵의 물을 찍어서 마시는 마리!! 우리는 이미 많은 유전자를 서로 공유하고 있다! 

 

 

마리와 함께 살면서, 인간 이외의 생물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나가는 길 고양이가 보이고.. 조금 더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마리를 변화시키고, 마리도 나를 변화시킨다. 나는 마리를 위해 집안 방문을 모조리 조금씩 열어두고, 마리는 나를 위해 따뜻한 옆구리를 내어준다. 평생 함께 할 사이! 또 어떻게 나를, 그리고 마리를 변화시켜 갈지 궁금해진다. 

댓글 11
  • 2021-11-10 18:09

    앗 저 책은 뭐죠? 마리가 엉덩이로 부비적 대고 누운 저 책.
    불교와 양자역학? 눈이 딱 거기로 가네요. 저는. ㅎㅎㅎ

    어쩌면 마리는 쌤보다 더 똑똑하며, 저보다 더 부처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아요. _()_

    • 2021-11-10 19:41

      어머나! 궁둥짝에 슬쩍 깔려있는 책까지 발견하시다니!! ㅎㅎㅎ

      요새(?) 불교랑 양자역학을 엮는 책들이 나와 흥미로워서 빌려봤는데, 예상했듯이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ㅎㅎㅎ 

  • 2021-11-10 20:54

    마리,, 고마리샘과 동명 ㅋㅋ

    최근 이사 하고 한 달동안 길고양이들이 새집에 드나들어 밥을 챙겨줬더니 한 포대를 거덜냈네요
    고양이들은 귀엽지만 빠지는 털 감당 못할 거 같아 키울 엄두는 안나네요 ㅠ

  • 2021-11-11 10:50

    줌 화면에 항상 꼬리를 살랑대며 출연했던 고양이시구만!!! 
    마리는 말년운이 좋나보네~~~~ ㅋㅋㅋ

  • 2021-11-11 11:57

    글이 참~~ 좋네요.

    냥이와 사람이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단막극 보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마리. 귀엽게 생겼어요!

    • 2021-11-14 09:11

      모로 글이, 우껴. ㅋㅋㅋㅋ

  • 2021-11-11 13:24

    집사가 아니라 친구시군요!

    마리와의 우정이 느껴집니다.

  • 2021-11-11 16:20

    확실히~~~ 모로가 글에 삘을 받았쓰~~ 몸의 일기에 이어 에코일기에도 ㅋㅋ

  • 2021-11-12 01:05

    마리... 대모산에 두고 온 산고양이.. 동글이가 생각나서 울컥합니다. 고양이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모로님 축복이네요. 부러워요.  

  • 2021-11-12 11:52

    쌤 ㅜㅜ 넘 다정해요 고양이도 모로쌤도 

    서로가 있어 다행이에요

  • 2021-11-12 13:54

    모로는 '숲은 생각한다' 가 좀 더 와닿겠구먼....

    난 인간(???)말곤 다른 동물을 못만져 ㅜㅜ

    중학교때 개구리 해부한다고 잡아오라고 해서, 개구리 잡으러 냇가에 제일 많이 갔는데도

    한 마리도 못잡고,... 샘은 개구리 잡아온 아이들한텐 추가 점수도 주고 그랬는데...😭😭

    내가 인간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다른 생물체를 근접하지 못하는 걸까...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