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4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편

겸목
2020-07-09 12:45
461

루틴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아! 나도 빨리 결혼해야 되는데…….’

 

어릴 때 아토피로 앓았다는 루틴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이 심해졌다. 학위를 따기 위해 이십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도,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생활의 막막함을 느낄 때도, 그리고 루게릭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은 특히 삼십대 초반의 루틴에게 혹독하게 기승을 부렸다. 피부과 약은 독해서 먹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다고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 발진은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흔적으로 루틴의 손가락 사이사이 껍질이 벗겨지고 다시 돋아난 우툴두툴한 자욱이 꺼끌꺼끌하게 만져졌다.

 

요즘 루틴은 예전만큼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으로 고생하지는 않는다. 심해질 기미가 보이면 미리 스테로이드제를 발라 초기에 진화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려 노력한다. 직접 밥을 해먹게 되면서, 잡곡 위주로 밥을 하고 반찬도 맵고 짜지 않게 간을 맞추니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걸어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다. 2년 전부터 시작한 인문학 공부로 틈틈이 책도 읽어야 해서 요즘은 결혼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결혼상대자에 대한 ‘이상형’도 없이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멋쩍어했다. 마치 ‘수능’을 치르듯, 결혼도 해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루틴과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 결혼하지 않은 친구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왜 하필 ‘시험’일까? 우리의 무의식이 혹은 고정관념이 결혼을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최근에는 원하지 않는 시험은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루틴도 그러한 입장이다.

 

나는 루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왜 루틴이라는 닉네임을 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삼십대 비혼 여성이 주류의 라이프스타일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행적으로 요구되는 스케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결혼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출산과 육아의 루틴을 살아가게 된다.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집장만과 노후대비의 루틴이 플랜b로 준비되어 있다. 적어도 이십대에 결혼을 해서 자식 둘을 낳고 기른 나는 그런 관행적인 루틴에 따라 살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기 위해 시간표를 새로 짜는 그가 부러웠다. 이런저런 계획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설렘을 숨길 수가 없었다(아! 나도 진작 생각을 좀 했어야 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해서도 루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절한 처방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루틴을 위한 ‘응원’ 정도. 그래서 나는 열심히 루틴을 위한 응원과 지지의 말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작품들을 뒤적였다. 헉! 그런데 이럴 수가! 문학작품에는 고통과 우울의 말들은 넘쳤고, 응원과 지지의 말들은 드물었다. 어떡하지? 난감했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아, 구르기 클럽

 

언덕에서 구르다가 가로등에 부딪혀 다리에 금이 간 현경씨는 구급차에서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슬기씨…… 제가 살게요. 맛있는 거.

(중략)

칠백집이라고 삼겹살집이 있는데, 맵게 무친 콩나물이랑 단호박 양파 버섯을 삼겹살이랑 같이 구워줘요. 알바생이 테이블 옆에 서서 정성껏 고기를 뒤집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면 우리는 그냥 먹기만 하면 돼요. 삼겹살을 다 먹으면 오징어볶음이랑 볶음밥도 주는데……

슬기씨……

네.

나 고기 안 먹어요. (「구르기 클럽」, 『문학3』 2020년 2호, 190~191쪽)

 

 

「구르기 클럽」은 최근 내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가슴이 아리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리고 생각 없이 웃다보면 어느 샌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히 ‘시트콤’스러운 작품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등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시트콤들은 단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나, 그런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꼬이고 꼬이는’ 에피소드 속에는 인생의 ‘희비극’이 반짝 빛난다. 유쾌함과 짠함과 뭉클함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시청자들은 똥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과 인물과 자신을 같은 입장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 어떻게 이 사람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이런 고통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만약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사유와 공감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같이 울고 웃게 된다. 더 나아가 저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노의 감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감정과 윤리의 문제를 연결하고 있는 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를 ‘시적(詩的) 정의’라고 부른다. 공감과 상상력 없이 정의를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언덕에서 구르다 가로등에 부딪쳐 다리에 금이 간 사람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구급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라탕과 삼겹살과 칼국수 가운데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내용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본다면, 다리를 다친 사람은 자신 때문에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본다면, 이 사람은 왜 언덕에서 구르게 되었을까 궁금하게 된다. ‘구르기 클럽’이라니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구르면……좋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경씨는 입고 있던 남색 플리스를 벗었다.

바닥을 온몸으로 구른다는 게 좋아요. 굴러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저는 바닥을 무서워했거든요. (194쪽)

 

슬기야. 너도 학교 언덕 말고……

엄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안전하고 완만한 언덕에서 한 번 굴러봐. 앞구르기든 옆구르기든 다 좋아. 오로지 구르는 것에 집중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갔을 뿐이야. (197쪽)

 

 

「구르기 클럽」은 명랑만화 같은 감성을 보여주는 콩트 같지만, 사실 ‘시적(詩的)’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의 주제는 ‘바닥’과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생의 바닥에 대한 이야기이고, 바닥을 친 사람들이 온몸으로 느낀 바닥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구르기 클럽’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이것을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의 좁은 길을 맨발로 걷다가 문득 굴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정말 일정하게 직선을 그리면서 좁은 길을 앞구르기로 계속해서 굴렀어. 구를 때마다 꼭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았어. 나의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 손들이 내 몸을 지그시 앞으로 밀어주는 기분이 들었어. (199쪽)

 

 

그런데 바닥은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게 아니란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고” “바닥으로부터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이라는 문장은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든다. 이런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급차를 타고 가며 삼겹살타령을 하든, 언덕에서 굴러 가로등에 부딪치든, 뭐든 괜찮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가의 ‘시적 정의’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 위로는 세상에 대한 긍정과 신뢰를 가져온다. 그렇게 울고 웃으면 못생긴 얼굴은 더 못생겨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런 게 세상에 대한 낙관이다. 소설은 ‘안산’과 ‘5년 전’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2014년의 사회적 재난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안간힘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체’ 할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울고 웃을 수는 있다. 상상력과 공감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부엌의 좁은 복도를 구르다가 벽에 부딪혔을 엄마의 표정을 상상했었다. 엄마에게 다시 찾아온 ‘힘’의 근원이 그 순간에 있을 것 같아서. 내 상상 속에서 엄마는 대부분이 무표정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입을 달싹거리는 엄마 특유의 곤란한 표정. 하지만 이제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 (200~201쪽)

 

 

내가 루틴을 위해 찾아낸 응원의 말도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이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그 현재를 살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일. 이것이 재난 이후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루틴에게도 나에게도 이것이 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루틴의 힘, 달려라 푸드 트럭

 

에타에 올라온 영상은 다행히 GIF 파일이라 현경씨의 비명 같은 건 들을 수 없었다. 영상의 제목은 ‘뀡은 제 머리로 종을 쳐서 은혜를 갚고’였고, 본문은 ‘사람은 가로등을 몸으로 쳐서 가로등을 켠다’였다. 조회수는 삼천, 댓글은 오백을 넘어 ‘이 주의 화제영상’에도 올라 있었다. 영상은 감악관으로 가는 언덕을 빠른 속도로 굴러내려오던 검은 덩어리가 가로등에 부딪히자 꺼져 있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지면서 끝났다. (187~188쪽)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의 가로등에 불을 켜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면서 정중한 에스코트를 받는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착각이다. 「구르기 클럽」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도 가로등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다소 황당하게 언덕을 굴러온 사람에 의해 고장 난 가로등에 불이 켜지자, 학생들은 학교커뮤니티에 영상을 올리고 재치 있는 댓글놀이를 이어간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인 듯 덕분에 밤에도 어둡지 않네요.”

 

루틴과의 대화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은 푸드 트럭이 등장했을 때다.

“친구들과 푸드 트럭을 해볼까 해요. 한 곳에 계속 있는 건 지겨울 것 같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푸드 트럭 괜찮지 않아요? 저 1종 면허예요.”

 

루틴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인생을 설계하다보니 함께 살 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할 일에 대해서도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간 학위를 따고 취직을 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이제 루틴은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정년까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수정해보고 있단다. 돈 버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써버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친구, 여행, 공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생활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푸드 트럭에서 게릴라콘서트 같은 것도 하는 거예요. ‘오늘은 한강에서 ‘푸코쇼’를 합니다‘ 홍보하고 인문학콘서트를 여는 거죠.”

“공부 많이 해야겠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할 것 아냐?”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예전에는 구경도 못해봤던 것들인데 재미있어요.”

 

식물학 박사인 루틴은 얼마 전에 <논어>를 공부하고 생애 처음 두 쪽짜리 에세이를 썼다. 그걸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논어>가 그렇게 감동적인 책인지 나는 루틴을 통해 배웠다. 나는 상상해본다. 루틴이 어두운 계단을 올라갈 때 센서등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책상에 앉으면 스탠드의 불이 탁 켜진다. 책상에는 푸코, 스피노자, 니체 등등 책들이 산처럼 쌓여간다. 내 상상의 가장 멋진 장면은 푸드 트럭을 운전하는 루틴의 모습이다. 루틴은 트럭이 고장 나도 당황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한 번 발로 찬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이다. 달려라 루틴, 달려라 푸드 트럭!

 

 

 

 

댓글 7
  • 2020-07-09 12:50

    나수경의 <구르기 클럽>은 창비의 새로운 잡지 <문학3>>(2020년, 2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수경 작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 2020-07-09 17:24

    이웃집 토토로가 아니라..
    이웃집 루틴이 우리에게 와서 얼마나 기쁜지!
    루틴을 위한 처방, <구르기클럽>!
    알레르기성 피부발전은 없지만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2020-07-09 19:09

    루틴에게서는 언제나 에너지가 뿜뿜 !!
    좋은 기운이 넘쳐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삶을 계획할수 있다는게 넘나 부럽네요.
    저도 생각좀 하고살걸 하는 후회가 막 밀려오지만
    나중에 후회안하려면 지금시점에서 생각좀하고 사는 건 어떤걸까싶은 생각이 동시에 밀려오네요.
    어려워요. 생각좀 하고 사는거!

  • 2020-07-09 23:38

    ‘직업으로 자아실현’해야하는 줄 알았어요~ 아하~! 뒤통수맞은 느낌?? ‘친구, 여행, 공부!’좋다~~~ ㅎㅎㅎ 달려라, 루틴! 응원합니다^^

  • 2020-07-10 15:44

    루틴의 상상을 응원합니다~~~~~

  • 2020-07-11 03:24

    루틴은 복도 많지~~
    바로 옆집에서 공부하고 친구도 만들고 ~
    구르기 클럽처럼 뭔 클럽이든 루틴하고 만들고 싶네요~~^^

  • 2020-07-16 10:11

    저도 저 느낌 아는데... 어둑어둑해질 쯤 가로등이 켜지면 에스코트 받는 느낌^^
    예전에 한강에서 맥주를 먹다가 가로등 켜지는 시간 맞추려고 계속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루틴에게 저도 '띵' 하고 가로등을 켜드리고 싶네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1종면허 나중에 채소장사라도 한다고 그것을 땄는데...
    뭔가 통해쓰~~

겸목의 문학처방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정군에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07년)을 처방합니다        “굳이 써야 할까요?”   지난 가을, 나는 정군(닉네임)을 만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정군이 가자고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슴슴한 맛 특유의 감칠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다. 그와 다음 약속을 잡고, 나는 걸어서 덕수궁으로 갔다. 하늘은 파랗고, 은행잎은 노랗고, 바람은 선선하고, 걷기에 좋은 가을날이었다. 덕수궁의 석조전과 돌담을 거닐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라는 정군의 말을. 내가 정군을 만나러 오며 듣고 싶은 말은 “글이 잘 안써져요. 어떻게 할까요?”였다. 사십대 초반의 애아빠인 정군이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나는 사십대에도 소설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학전공자인 내 주변에 이제 소설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십대 때, 내 주변에는 시와 소설이 안 써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이들은 대부분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사, 공무원, 출판사 편집자 등 제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설쓰기를 포기한 인간의 부류에. 그래서 나는 정군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정군은 가뿐하게 말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정군에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07년)을 처방합니다        “굳이 써야 할까요?”   지난 가을, 나는 정군(닉네임)을 만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정군이 가자고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슴슴한 맛 특유의 감칠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다. 그와 다음 약속을 잡고, 나는 걸어서 덕수궁으로 갔다. 하늘은 파랗고, 은행잎은 노랗고, 바람은 선선하고, 걷기에 좋은 가을날이었다. 덕수궁의 석조전과 돌담을 거닐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라는 정군의 말을. 내가 정군을 만나러 오며 듣고 싶은 말은 “글이 잘 안써져요. 어떻게 할까요?”였다. 사십대 초반의 애아빠인 정군이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나는 사십대에도 소설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학전공자인 내 주변에 이제 소설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십대 때, 내 주변에는 시와 소설이 안 써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이들은 대부분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사, 공무원, 출판사 편집자 등 제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설쓰기를 포기한 인간의 부류에. 그래서 나는 정군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정군은 가뿐하게 말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
겸목
2020.12.30 | 조회 594
겸목의 문학처방전
‘뻔하지’ 않은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을 처방합니다       효숙씨는 ‘일복’도 많지   효숙씨와 나는 여섯 살 차이가 난다. 여섯 살의 차이는 묘하다. 내가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땅꼬마였을 때 그녀는 초등학생이었고,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서로의 관심사가 겹칠 수 없는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방광염을 하소연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아들었다. “아! 그거 되게 아프고 짜증나잖아요!” 나도 한때 비뇨기과를 들락거리며 방광염을 치료했던 적이 있었다. 비뇨기과 대기실은 내가 갔던 어떤 병원보다도 적막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도 말이 없고, 간호사들에게서도 무심함을 가장한 친절과 어색함을 감추려는 침묵이 느껴졌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도 고역이라 빈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비뇨기과 인테리어의 포인트는 발기부전의 원인과 전립선의 건강비법을 알려주는 게시물들이었다. 그래서 입 다물고 눈 감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명상시간처럼 고요했다. 내가 비뇨기과에 갔던 것은 사십대 초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때였다. 의사선생님은 급성 방광염은 항생제로 금방 치료되는데, 이게 반복되면 치료하기 힘든 만성 방광염이 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셨다. 만성 방광염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의사선생님의 ‘주의’가 늘 귓가에 맴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신장과 방광의 기능도 노화될 것이고, 요실금도 걱정된다. 가끔 재채기를 하거나 뜀박질을 하다 깜짝깜짝 놀란다.     효숙씨는 나보다 긴 방광염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대학생때 알바로 학비도 벌고 용돈도 벌어야 했는데,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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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목
2020.10.16 | 조회 536
겸목의 문학처방전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겸목
2020.09.13 | 조회 433
겸목의 문학처방전
장르를 바꿔보자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년)을 처방합니다       워킹맘의 만성피로, SF 판타지 아니면 답이 없다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에 대한 처방전을 의뢰한 곰도리(닉네임)는 대안학교 과학교사이고,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거나, 육아도우미 AI가 개발되어 상용화되거나, 슈퍼 히어로급 초능력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가 아니면 현실에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곰도리와의 만남은 주객이 전도되어 그의 고충에 대한 의논보다 내 흑역사에 대한 하소연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곰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라는 소문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던 삼십대의 날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석사과정생은 ‘과정’에 있는 사람이니,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고는 자료검토든 글쓰기든 잘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가르쳐주는 것 없이 야단만 쳤고, 강의시간은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시간 같았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해도, 공부에 대한 안목과 요령이 없기 때문에 ‘뻘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무수한 헛발질을 거쳐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나는 자책과 자학 없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엄마가 바쁜 때를 귀신 같이 알고 다치거나 아팠다. 그 시절 나는 조금만 삐끗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가...
장르를 바꿔보자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년)을 처방합니다       워킹맘의 만성피로, SF 판타지 아니면 답이 없다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에 대한 처방전을 의뢰한 곰도리(닉네임)는 대안학교 과학교사이고,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거나, 육아도우미 AI가 개발되어 상용화되거나, 슈퍼 히어로급 초능력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가 아니면 현실에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곰도리와의 만남은 주객이 전도되어 그의 고충에 대한 의논보다 내 흑역사에 대한 하소연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곰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라는 소문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던 삼십대의 날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석사과정생은 ‘과정’에 있는 사람이니,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고는 자료검토든 글쓰기든 잘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가르쳐주는 것 없이 야단만 쳤고, 강의시간은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시간 같았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해도, 공부에 대한 안목과 요령이 없기 때문에 ‘뻘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무수한 헛발질을 거쳐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나는 자책과 자학 없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엄마가 바쁜 때를 귀신 같이 알고 다치거나 아팠다. 그 시절 나는 조금만 삐끗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가...
겸목
2020.08.17 | 조회 538
겸목의 문학처방전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겸목
2020.07.09 | 조회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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