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꾼꾼13일차> 고백

띠우
2022-04-1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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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꾼꾼13일차> 고백합니다

 

지난 토요일 오전 10시, 이우텃밭 공동작업이 있었습니다.

아낫, 블랙커피, 노라님과 함께 참여했는데요.

제가 아무생각이 없구나, 깨달은 것은 밭에 도착하자마자였습니다.

텃밭에 일하러 가면서 장갑도 장화도 호미도 안 챙겼더라구요.

그냥 산책길 가듯 쭐레쭐레 집을 나선 것이었습니다.

 

텃밭지기에게 들어보니 원래 이우텃밭농사는 개인에게 분양하지 않고

공유지처럼 함께 밭농사지어서 좋은 일들을 해보자는 의도였다고 해요.

그래도 자기밭이 있으면 사기진작도 되고 즐거움도 생길 수 있겠다 싶어

물값 만원 정도 받고 분양을 하고 있는 것이죠.

1년에 15번의 공동작업이 있는데 분양받은 사람들은 3번 참여가 필수라고 합니다.

 

이날은 첫 번째 공동작업이었습니다. 전체밭을 뒤집고 거름을 주는 날이었죠.

지난번 우리들이 했던 일은 남자들이 맡았고 여자들은 김매기에 나섰습니다.

일 시작합니다~~

 

  • 김매는 사람들, 이 옆으로 그늘막이 세워지고 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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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매기 자세... 

저는 쪼그려 앉아서 잡초뽑는 일이 이렇게 고될 줄, 머리로만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말도 섞고 했는데요.

우리가 김매기를 해야 하는 공간이 얼마만큼인지를 알고 나서는

오로지 그 공간을 서둘러 해치워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왜냐구요? 그래야 집에 가니까요^^:; 

 

  • 다 뽑아버릴테다~~

마스크 안으로 땀은 차지, 배가 나와서 다리는 저리지...

쪼그려서 계속 일하니까 말수가 점점 줄어들더라구요ㅋ

중간에 그런 생각했어요.

인간아, 너는 농사 못 짓는다...라고.

 

  • 깨끗하게 다듬어진 양파밭 

아낫님이 그러셨어요.

이 정도 고통은 신체에 새겨져 그런가보다 한다고...

이날 아낫님의 놀라운 일머리 능력을 보았지요. 박수를~~

몸일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정보며 이야기도 해주셔서 일하는데 도움이 되었답니다.

블랙커피님과 노라님도 애쓰셨지요. 함께여서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밭일 마치고 바로 서울로 일하러 가시는 아낫님을 뒤로 하고

저는 집에 와서 샤워하고 젖은 머리로 바로 뻗어버렸답니다.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 저를 보며 남편이 혀를 여러 번 찼다고 하더군요.

 

  • 드디어 집에 갈 시간~~

제가 무슨 생각을 하든 김매기를 마친 밭은 예뻤어요.

문탁 텃밭도 예쁘게 고랑이 만들어져 있구요.

그럼에도 저는 살짝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신체에 새겨지는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

공부가 어렵더라도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만 생각하고 싶어진 하루였습니다.

 

그냥 그런 하루를 보냈다는 말을 털어놓아야할 것 같아요.

밭이랑 조금씩 친해지고 있지만, 아직은 정말 서툴다는 것을 발견하는 중입니다.

여러 친구들 덕분에 그 시간을 그럭저럭 보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11
  • 2022-04-18 19:51

    ㅋㅋㅋ  고해일기네요.

    ㅋㅋㅋ 몇 번째지?

    하하하 띠우님, 도시녀자 맞으신 듯..

    근데, 넘 재밌게 하시는 거 같아요.

    수확기가 되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됨요

  • 2022-04-18 20:04

    나하고 비슷하군^^

  • 2022-04-18 20:23

    하하하  그냥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ㅋㅋ

    띠우가 너무 진지하게 고백해서 제가 입벌리고 크게 웃지도 못하겠어요.

    경청하며 공감의 뉘앙스로 "몸도 힘들고.. 생각이 많구나"! 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보다 앞서 웃음이 계속 새어나와요.ㅋㅋㅋㅋ

  • 2022-04-18 20:58

    ㅋㅋㅋㅋㅋ 올해 띠우양^^ 제대로 '꾼' 되는 첫 해? ㅋㅋㅋㅋㅋ 잘 하고 있음~~~

  • 2022-04-18 21:16

    말은 저렇게 하지만

    띠우는 밭에서도 손이 아주 빨라요.

    월든에서 작업할때처럼 손이 아주 빨라요 ㅋㅋ

    근데 아낫이 더 빨라요!

    옆에서 구경만 하다 왔는데도 피곤하더라구요 ㅠ

  • 2022-04-18 21:35

    띠우 화이팅!!!

  • 2022-04-19 08:07

    모두들 고생하셨어요.

    아낫님 바로 일하러 가셨다니 대단^^
    노라님도 엄청 힘들었을듯

    블랙 띠우 고마워요!!

    덕분에 한 해 농사 쬐끔 더 당당히 지을 수 있겠네요 

  • 2022-04-19 09:29

    전날 영화인문학을 자정까지하시고,

    담날 아침에 나와 김매기까지 하시고...

    너무 힘드셨겠어요.

    그런데도 샘의 손이 빠르셔서 샘이 하신 이랑들이 빨리 빨리 김매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샘덕에 일 빨리 끝내고 맛난 점심까지 먹었습니다.^^

    늘 감사하고 싸랑해용~♡

  • 2022-04-19 20:12

    ㅋㅋㅋ 띠우님의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지네요.

    그래도 이 힘든 일을 즐거이 하신다면 땅은 잊지 않고

    선물을 준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

     

     

  • 2022-04-21 17:30

    아~ 저랑 반대시네요 ㅎㅎ

    저는 몸으로 하는일이 적성에 맞나봐요.

    책상앞에 앉아서 어려운 책을 읽는것이 너무너무 힘들고 자꾸만 베란다에 나가서 잡초 뽑고 응애죽이고 분갈이하고 그러네요;; 

    제 머리에 기름칠 좀 하고 싶어요

  • 2022-04-21 18:27

    띠우님의 고백에 왜 제가 감정이입되는 걸까요?
    전 일하지 않았는 데도 왠지 힘듦이 팍팍 느껴져요. 
    다음 공동 작업 때는 일머리 없는 저도 함께 해볼꼐요.
    다들 고생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