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담담하게 통과하기 / 혜근

문탁
2023-12-1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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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않았다. 남은 삶을 재정립하고 아이를 갖고 의학과 문학에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 답을 찾았다.

 

삶에서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는 폴 부부의 생각은 감동적이다. 아기와 헤어질 고통, 숨 쉬고 치료받는 데서 오는 고통, 시시각각 자기 죽음을 대면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고통을 기꺼이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죽음 후 혼자 남을 루시에게 아기는 힘이 될 것인가, 짐이 될 것인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할 용기와 책임을 갖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배우고 연구했던 신경 외과의로서의 일을 직업이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였고 ‘생사가 걸린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가 다시 수술실로 끌어당(182쪽)’긴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생사 앞에서 타인의 생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소명 의식은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또한,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무력감은 문학을 통해 극복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을 써 나갔다.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일상으로 채워나갔다.

 

죽음의 전날, 폴 칼라니티는 마스크와 모니터를 다 치우게 하고 모르핀 정맥 주사를 맞았다. 아내는 자작시를 읊고, 병실에 모인 친지 가족들은 사랑스러운 일화들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다가, 또 모두 돌아가며 눈물을 흘리면서 폴과 서로를 걱정했다. 9시간 동안 폴 곁에서 가족들은 서로를 지켰고, 폴의 마지막 깊은 숨을 함께 했다.

 

 

 

 

 

2. 아버지: 단정한 죽음

 

폴 칼라니티는 폐암 진단을 받고 상대적으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반면, 나의 아버지는 황망한 죽음 뒤에 돌아보니 평생을 준비한 것 같은 단정한 삶이 있었다.

 

작년 4월, 아버지는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려다가 종양을 발견했다. 5월 말 최종적으로 담도암 진단을 받고 아직은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수술만 하면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추가 검사에서 신장도 한 쪽이 좋지 않아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암 판정에서부터 수술까지, 아니 수술 후까지 전 과정을 함께 이야기해 줄 컨설턴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술 전 갖가지 서명들 앞에 서기까지 결정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아버지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6월 말, 아버지는 담도암 수술과 신장 제거 수술을 순차적으로 받았다. 9시간의 대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보름쯤 후부터 겨우 유동식이 시작되자마자 출혈과 혈변, 황달 등으로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져 급기야 중환자실로 다시 들어가셨다. 중환자실에는 보호자조차 출입이 제한되었다. 마지막 11일간을 아버지는 혼자 중환자실에 있다가 끝내 눈을 뜨지 못하셨다.

 

운명하시기 직전, 병원에서 직계 가족들만 다 들어오라고 했다. 호흡기에 의존해 누워 계신 아버지. 손과 얼굴은 차가웠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 감고 계신 아버지의 눈가에는 마치 마지막 인사를 하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제나처럼 “왔나, 괜찮다.” 하고 계셨을까.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두 발로 걸어 들어가셨는데 암 진단 두 달 만에 아버지는,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생각하면 좀 더 미루고 말렸어야 했나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참으로 아버지다운 결정이었다.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미루지 않고 바로 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집에 못을 박을 일이 있거나, 정리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마음 맞으면 언제든 다녀오셨는데, 돌아오시자마자 사진 정리를 하고 아버지의 온라인 사진 카페에 올려놓으셨다. 1년에 두어 번, 자식들, 손주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면 꼭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공유해 주셨다. 심지어 딸네 와서 고쳐야 할 소형 가전제품이 있으면 그날로 바로 들고 가, 자주 가시는 전파상 같은 곳에서 고쳐 오셨다. 퇴직 이후 집 안의 청소와 정리 등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몫이었다. 그런 분이시라 몸속에 암 종양이 있는데 그대로 두고 본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얼른 몸을 회복한 후 촌에 심어 놓은 농작물도 보러 가고 팔순 여행 계획도 짜야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일상에 충실한 분이셨다. 가신 후 이것저것 정리하는 과정에서, 뭐 하나 복잡한 것이 없었다. 금전 문제는 물론이고, 입원하기 일주일 전 동생과 나들이 갔을 때의 사진까지 노트북에, 당신의 사진 카페에 잘 정리해서 올려놓으셨다. 각종 비밀번호 및 필요한 정보는 수첩에 꼼꼼히 정리되어 있었고, 마지막까지 당신의 병에 대한 정보들을 혼자 찾고 준비하고 계셨음이 노트북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왔음에도 일상의 흔적들은 너무나 단정했다. 매일 할 일이 있었고, 다음의 계획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다.

 

 

 

3. 나: 지성을 나누는 죽음

 

폴 칼라니티와 아버지의 죽음은 남은 내 삶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라는 당연한 가르침.

 

부모님은 내게 아직도 그렇게 책이 좋냐고 하셨다. 이제야 책이 진짜 좋습니다. 감이당을 시작으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고, 반야심경을 공부하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이제 공부는 내 일상이 되었다. 그간 읽었던 책들이 꼬물꼬물 연결되기 시작했다. 철학과 불교, 과학의 교차점이 흥미로웠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가족은 잠시 뒷전에 두고 책을 들고 종종 바깥으로 나간다. 내 아이들에게는 나의 정보가 들어 있을 테니, 어떻게든 알아서 잘하리라 믿으면서. 그리고 문탁에 문을 두드렸는데, 강도가 세다. 첫 에세이가 죽음을 다루는 것이 되다니, 감정적으로도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숨결이 이까지 이어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바람이 배롱나무 아래로, 반야심경 글귀 사이로 불어 나를 여기까지 안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셨으나 당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장례식에 그냥 인사치레로 오시는 분들은 없어 보였다. 많은 분이 최근 몇 달 이내 함께 즐겁게 만났던 분들이라 충격이 컸다. 아버지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젠체하지 않았고, 먼저 연락하는 분이었다고 말씀들 해주셨다. 나는 아버지처럼 친구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 지성을 매개로 하는 우정이 가능함을 배운다.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공부에는 사람이 있다. 공부에의 열정이 남다른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고 그들에게서 배운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헛헛할 때, 옆 사람과 미친 듯이 이야기했는데, 나 혼자 떠들고 나서 오는 공허함에 공감하는가. 공부 공동체는 지적 소통을 바탕으로 해서 좋다. 듣기만 해도 좋다. 지루한 일상을 견인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무쌍한 관계다.

 

오늘 할 일이 있으면 된다. 내일 할 공부가 있으면 된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산책길에 지인과 잠시 걷고, 공동체에 접속해서 지성을 나누는 하루. 내게는 이런 휴일이 소중하다. 책이 달라지고, 지인과 나누는 대화가 달라지고, 공부하는 내용이 다르지 않나. 주중에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재밌게 지내고 있다. 폴 칼라니티처럼 소명으로 가득하진 않지만,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나의 일이 좋다. 이런 역동적인 충만함이면 됐다. 때때로 광풍이 불어 나를 흔들지라도 그로 인해 다시 일상을 재정립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것이 명료하게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폴처럼, 아버지처럼, 내 뒷자리를 정리하는 게 어렵지 않도록 그리 살고 싶다. 매일매일 단정하게 주변과 나를 정리하고, 내 역할에 충실하며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연암 박지원처럼 말년에 병이 극도로 심해지면, 약을 끊고, 곡기를 끊을지언정, 내 가까운 벗들과 전날 읽은 책 이야기를 하다가 그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리고 훗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하루하루를 참 재밌게 살다 간 사람.”

 

 

댓글 1
  • 2023-12-13 00:06

    그 해 여름, 뜨겁고도 차가웠던 여름, 떠나가는 당신을 잡아도 보고 보내기도 했던 여름..
    아빠에 대한 누나의 회고와 죽음을 지혜롭게 인용(認容)했던 폴의 이야기로부터 그 해 여름 아빠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마지막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바로 이 순간, 우리 남매의 나이테가 한 줄 한 줄 더해져 아름드리 한 그루가 되어가는 바로 이 순간이 가장 빛나고 소중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다 가거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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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31 | 조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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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12.18 | 조회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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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 조회 213
인문약방 에세이
    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1.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   『짐을 끄는 짐승들』의 저자는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는 예술가 수나우라 테일러이다. 수나우라와 형제들은 어린 시절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빠르게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을 바라보며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독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으며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후 이 문제가 그를 사로잡은 것은 미술학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다.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은 공장식 축산으로 동물들이 불구가 되고, 그 산업에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동물들과 같이 갇혀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축산과 도축 노동자들은 과로, 스트레스, 트라우마로 심신의 장애를 입거나 장애를 입은 채 해고된다. 그 자리는 또 다른 저임금노동자들에 의해 쉽게 대체된다. 수나우라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전자레인지, 패스트푸드점, 조리 식품의 효율성이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산업화된 음식 시스템이 남용되는 현실과 그 부적절성에 대해 문제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의식하고 있다. 식사때마다 반복되는 수나우라의 딜레마는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된다. 공장식 축산과 불안정한 노동과 건강불평등과 신자유주의는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수나우라는 이 책에서 장애와 동물을 교차시킨다. 종종 장애와 동물은 서로의 알리바이로 악용되어 왔다. 장애에 대한 폄하의 표현으로 ‘동물 같다’, ‘동물만 못하다’는 수사가 관용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일부 동물권 활동가들은 ‘언어/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보다 ‘쾌고감수능력’을 갖는 동물을 돌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위계를 세우기도 한다. 수나우라는 우선, 우리가 장애와 동물에 대해...
문탁
2023.12.18 | 조회 105
인문약방 에세이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그 어떤 죽음이 안타깝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죽은 자에게도 산 자에게도 가장 담담할 죽음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그 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냥 스르르 가는 것이겠다. 서재에서 책을 보다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노병이 겹쳤다면 딸,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그렇게 가면 좋겠다. 마치 잠을 자듯, 꿈을 꾸듯.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 소란 없이 가는 길. 그렇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1. 폴: 용기 있는 죽음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폴 칼라니티는 자신이 암인 걸 알고도 삶의 방향을 급선회하거나 멈추지 않고, 암이 아니었으면 계속했을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흐름출판, 145쪽) 않고 신경 외과의로서, 작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내었다.   폴이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아내 루시와 함께 울었다. 아내에게 재혼을 권하고, 담보대출을 이자가 적은 곳으로 바꾸라고 하고, 레지던트 근무 복귀 계획을 언급하는 동료의 말을 막았다. 의사로 일하는 동안 그에게 익숙했던 죽음은 막상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은 정해져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주변 사람의 죽음조차 받아들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죽음 앞에서는 자신이 가장 비극적인 사람이 된다. 하지만 폴은 남은 시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살지...
문탁
2023.12.11 | 조회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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