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강정의 세가지 장면들

조은
2023-08-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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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나오지 않았고, 복숭아는 내 옆에서 기타를 쳤다.

 

얼마전, 새방밧에는 힘든 일이 있었다. 새방밧에는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인 가을이가 있었는데, 가을이의 거처를 문제로 큰 갈등이 있었고, 그 일로 한 친구가 새방밧에서 나가게 되었다. 복숭아는 기타를 새방밧에 와서 처음 배웠는데, 이번에 새방밧을 나가게 된 친구가 기타를 알려줬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복숭아는 아직 서툰 기타를 하루종일 연습하고 영상을 찍었다. 나는 정말 할일없이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다가 깨기를 반복했고, 내내 복숭아는 노래를 연습했다. 보통 할일없이 누워있으면 우울해지기 마련인데, 그날은 유난히 편안했다.

 

그 어느 날 내가 초라해 보이고

무모하고 이기적이고 못생겨 보일 때

이런 나라면 여기서 뭘 하든

한 발자국의 아름다움도 없다고 느낄 때

 

너흰 지그시 나를 보며 말 했지

그런 너이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자 보라고, 네가 이룬 기적을

너가 보여준 삶의 진심을

 

사라지지 않는 나의 미운 모습에

부끄러하며 혼자만의 자책이 늘 때

구겨 숨겨버린 나의 초라한 마음에

먼지를 털고 너는 내게 말 했지

 

잘 봐, 어둠이 아냐, 그건 너의 날개야

너가 자유로이 이 세상을 날게 해주는

잘 봐, 어둠이 아냐, 그건 너의 빛이야

너를 너 답게 살게 해주는

 

미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너가 멋지다고 생각해

주저하지 말아 친구야

그런 너를 우린 좋아한거야

 

바뀌어도 좋아 그대로여도 좋아

그저 너의 당찬 웃음이 좋아

느려도 좋아 멈춰도 괜찮아

밝은 숨을 쉬는 생으로 가자

 

직선도 좋아 구부러져도 좋아

그저 너의 당찬 웃음이 좋아

대학도 좋아 아니어도 괜찮아(강정도 좋아 아니어도 괜찮아로 바꾸어서 불렀다)

밝은 숨을 쉬는 생으로 가자

 

그런 너를 우린 좋아하니까

그런 너여도 돼 친구야

 

그런 너를 우린 좋아하니까

그런 너를 잃지 말아

친구야

 

 

 

 

2.  2022.4.23 pm 7:35

 

매일 12시에 인간띠잇기를 한다. 깃발을 들고 해군기지 정문까지 가서, 앞에 있는 방해막들에 깃발을 꽂는다. 어느 날부턴가 해군들이 우리의 깃발을 뽑아서 바닥에 던졌다. 쏭은 상급자와 대화하기 위해서 한치의 고민 없이 해군기지 앞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어떨 때는 소리를 치기도, 어떨 때는 눈물을 머금은 말들을 하기도 했다.

 

4월은 밤에 텐트를 치고 밖에서 자기에 아직 추웠기에, 걱정되는 마음에 친구들 몇몇과 함께 해군기지 앞으로 갔다. 쏭은 여전히 마이크를 쥐고 있었고, 과학실에서나 보던 램프에 불이 켜져 있었다. 쏭은 매일같이 인간띠잇기에서 발언하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쏭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울먹였다. 그 순간에 나의 눈에도 힘이 들어가고 눈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쏭이 하는 말들은 매일같이 해군기지를 향해서 인간띠잇기에서 외치던 말이었지만 어느새 진심이, 속에서 차오르는 말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니, 쏭은 매일같이 진심이었지만 이제서야 나한테 그 진심이 와닿았다.

 

이 구럼비 바위는 하늘을 향해서 열려진 거대한 재단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 바위를 쪼개고 부수어서 그 위에 전쟁의 기지를 짓는다니. 세상에 아무리 소중하고 고귀한 시설도 이 바위위에 지어서는 안될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바위위에 해군기지를 짓는다는것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처럼 들리지 않아요?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고, 주민들의 반대를 어떻게 해서든지 무마하기 위해서 마을에 알량한 권력을 갖고 있는 마을 회장과 동네 사람들을 매수하고, 그리고 이미 나이가 연로하신 해녀들을 돈으로 유혹해서 그 분들을 앞세워 이 마을에 모든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해서 마치 이 마을 주민들이 이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것처럼 그렇게 꾸며서 이 바다와 땅을 여러분이 성탈을 한 것이죠.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국민들의 재산을 빼앗고, 마을 공동체를 산산히 부셔트렸어요. 여러분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세워질 기지의 마을 하나 조차도, 그 작은 마을조차도 지키지 못하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입니까. 해녀들을 매수하고, 농부들을 겁박해서 이 바다와 땅을 강탈했어요. 이 바다가 해녀들의 바다입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받은 모습 그대로 돌려주어야될 바다 아닌가요. 예전에는 이곳에 수많은 돌고래 떼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 성스러운 모습을 여러분은 본 적이 없으시죠. 지금은 돌고래 떼들은 더이상 이 강정 앞바다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바다는 죽어가고, 산호들은 물 속에서 흔적이 없어지고, 해산물들을 채취해야 되는 해녀들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여러분이 지켜야할 바다가 죽어가고 있어요. 이곳은 세계 평화의 섬입니다. 군인들에 의해서 3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뼈아픈 상처를 안고있는 섬입니다. 그 곳에서 왜 총을 들고 계시나요. 누가 이 기지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여 총을 들고 계시나요. 그 총이 이 제주도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었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해군장병 여러분, 생각을 하십시오. 단지 위에서 명령하니까 행동하는 기계나 도구가 되지 마시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하는거 아닐까요. 군인은 인간이 아닌가요. 군인은 단지 도구일 뿐인가요. 단지 살인병기 그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가요. 여러분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그리고 내려야만하는 그런 고결한 인간입니다. 부끄러운줄 알고 스스로의 명예를 지켜야된다는 그런 책임감도 함께 느껴야 되는 것이죠. 왜 오늘 있었던 그리 크지 않은 사건을, 책임져야할 책임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까. 무엇이 두려운 건가요. 아니면 시민들의 이런 요구는 하찮게 보여서 그럴 가치조차 없다고 상그리 무시를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왜 응답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 오후 12시에서 1시까지 이 위병소를 책임 지었을 경비과장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구럼비 사진을 찾다가 발견한 브런치의 글이다. 구럼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겨있다.

 

 

나는 구럼비를 본 적이 없다. 구럼비의 이야기를 들으면 궁금해서 네이버에 쳐서 나오는 구럼비의 사진을 봤다. 많은 지킴이들의 마음에는 다양한 구럼비가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매일 외친다. “구럼비야 일어나라” 구럼비는 더이상 지명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각자 다른 구럼비를 가지고 살아간다. 생각했다. 구럼비를 본 사람의 마음은 이런 것일까. 구럼비를 보지 못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있는 걸까.

 

그날, 내 마음속에 구럼비가 생겼다. 나의 구럼비는 이날의 바람, 온도, 불빛, 쏭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다. 구럼비를 보지 못했지만 내 속에는 구럼비가 정말로 있었다. 램프에 붙은 불은 바람에 쉴 새 없이 날리고 있었고, 쏭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속에 쉴 새 없이 들어왔다. 쏭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쏭과 나는 너무 많은 곳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쏭이 가지고 있는 그 진심 하나하나가 나에게 너무 와닿는다. 그래서 페미니즘 때문에, 동물권 때문에 우리가 부딪힐때 나도 가능한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들이 쏭에게도 와닿아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게. 쏭이 하는 짓이 너무 미울 때도 있는데, 차마 끝까지 미워할 수가 없다.

 

 

그날 찍은 사진이 없어서 영상을 캡쳐하느라 화질이 좋지 않지만, 그게 더욱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만들어준다.

 

 

3.  2022.6.28 pm 8:04

 

피스파인더의 3개월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졸업파티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고, 장소를 준비했다. 그렇게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졸업파티에서의 많은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선녀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은 잊히지가 않는다.

 

친구들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강정의 기나긴 역사에는 노래가 빠질 수 없었고, 강정을 이야기하는 많은 노래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강정의 노래’를 그때 처음 들었던 것 같다. 노래를 듣다가 한순간, 선녀님과 눈이 마주쳤다. 노래가 입에서 나오지 않고, 눈으로 나왔다. 나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은 참 소중하다. 너무 슬프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고, 우리의 시간들이 더 좋은 시간으로 마무리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랬다. 우리는 늘 여기에 있으니, 강정이 그리워질 때면, 우리가 보고파 질때면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기억해줘요 이곳의 슬픔

강정의 슬픔이 당신의 슬픔

기억해줘요 이곳의 평화

강정의 평화가 당신의 평화란걸

강정아 이 땅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강정아 너에게서 이 땅의 평화가 시작되리

 

사랑의 나눔속에 마음을 열어봐요

정다운 사람들이 친구가 될게요

아쉬워 돌아설땐 이것만 기억해요

함께한 시간속에 서로 이어져 있다고

 

 

4. 2023.2.11 am 10:08

 

강정에 가서 바다를 잘 즐기고 싶은 마음에 라섹을 했다. 3일 동안 집에서 커튼을 다 치고, 눈을 못 뜨고 살았다. 하루 종일 심심해서 기분이 처지기도 했다. 그때 어쩌다가 복숭아가 불러준 친구와, 졸업파티 때 들은 강정의 노래를 듣게 됐다. 온몸에서 바다 내음이 차오르는 듯 강정의 모든 순간들이 한 번에 몰려왔다. 라섹하고 눈이 아파서 안 그래도 많이 울었는데, 노래를 들으면서는 펑펑 울었다. 그냥 너무 그리웠다. 강정에서 있었던 그 모든 일상들과 친구들이.

 

 

 

 

이 글을 쓰기 전에는 내가 강정에 온 거창한 이유를 찾아 헤매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그저 그리움이었다. 좋은 순간들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 강정에 있는 동안 나는 자유로웠고, 행복했고, 충분했다. 모든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좋은 곳, 좋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다. 그렇게 나는 당연하게 강정에 왔다. 앞으로도 나는 그리웠던, 그리울 순간들을 이곳에 남길 것이다.

 

 

 

 

 

 

 

 

 

 

 

 

 

 


<강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

 

강정에서 일어나고 있고, 육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는 일들을 공유해보려고 해요.

 

삼거리식당 후원

제가 첫번째 글을 올리고, 문탁과 동천동에서 정말 많은 후원이 들어왔어요. 강정은 후원 받을 일이 너무 많아서 지킴이들도 지쳐있는 상태인데, 너무 큰 힘이 되었어요.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려요.

 

생명평화대행진

: 강정투쟁이 시작되고, 매년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생명평화대행진이 몇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었어요. 올해 드디어 다시 시작되었고, 올해는 강정과 제2공항으로 한참 투쟁을 하고 있는 성산을 기점으로 제주도를 걷습니다.

 

 

 

제2회 구럼비평화축제

: 구럼비평화축제를 친구들과 함께 준비하게 되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인스타 @gureombi_festival 을 통해서 확인해주세요!!

 

댓글 5
  • 2023-08-27 07:36

    조은의 그리움 잘 읽고 갑니다~

  • 2023-08-27 11:00

    조은의 글이 내 마음의 구럼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 2023-08-28 14:49

    글읽고 구럼비 바위 찾아봤네요. ㅠ
    조은이 어떤 맘으로 제주에 갔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ㄹ고 제주 소식 알려주니 저희도 좋아요! ^^

  • 2023-08-29 19:08

    소식도 고맙고 조은이 잘 지내는 것도 고맙네요^^

  • 2023-08-30 09:11

    10년 전엔 운동이 끝난것만 같았는데... 운동은 우리 삶은 이어지네요. 그곳에서의 삶과 소식 .. 뭉클합니다.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조은
2023.08.26 | 조회 366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엄마의 방문에 고단하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작년 6월 인간띠잇기에 불현듯 나타난 친구가 있었다. 키가 컸고, 복슬머리였고, 인상이 좀 험악하게 생긴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던 친구였다. 그는 뜸이라고 불렸고, 해군기지가 지어질 때와 제주 제2공항 등 다양한 현장에 함께 했던 친구라고 한다. 첫인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강정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가기에 그중 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왔고, 어느새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고, 강정천에 가서 함께 수영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든 그 친구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 강정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의 3개월 강정살이가 끝이 났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을 떠나며 마지막 배웅을 해주던 강정 친구들    3개월 강정살이가 끝나고, 피스파인더 친구들과 졸업여행을 갔다. 약 10일 정도의 여행으로 종점은 퀴퍼에서 화려한 막을 내리기로 했다. 시골에서 서울을 가는 건 쉽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에서 동쪽 서쪽 지역을 오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사드 문제로 대치 중인 소성리, 밀양 송전탑, 군산 해군기지와 새만금 등 다양한...
조은
2023.07.26 | 조회 404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2023년 2월20일에 강정으로 이사를 왔다. 이우중학교를 가기 위해서 동천동으로 이사를 했으니, 약 10년만에 동천(고기)동을 떠났다. 10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지겹겠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하겠지만, 나는 지겹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 기간 마을에 머무는 일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오래된 친구들과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한다는건 때때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떠나가는 이들을 많이 봐왔고, 그들을 보내주는 건 나에게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피스파인더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22년4월부터 3개월짜리 강정살이(피스파인더)를 시작했다. 그게 강정을 처음 만나게된 시작이었다.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반대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평화운동을 하는 지킴이들이 살고 있다. 해군기지는 이미 지어졌지만,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며, 해군기지를 만들때 폭파시킨 구럼비바위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전쟁을 멈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살고있다. 매일 아침에는 백배, 11시에 미사, 12시에는 인간띠잇기를 하고, 매일 점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삼거리식당이 있다. 그렇게 지킴이들은 11년째 강정을 지키고있다. (강정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얼마전에 나온 <돌들의 춤>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6월18일, 강정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제주시에서 열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2023년 2월20일에 강정으로 이사를 왔다. 이우중학교를 가기 위해서 동천동으로 이사를 했으니, 약 10년만에 동천(고기)동을 떠났다. 10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지겹겠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하겠지만, 나는 지겹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 기간 마을에 머무는 일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오래된 친구들과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한다는건 때때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떠나가는 이들을 많이 봐왔고, 그들을 보내주는 건 나에게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피스파인더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22년4월부터 3개월짜리 강정살이(피스파인더)를 시작했다. 그게 강정을 처음 만나게된 시작이었다.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반대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평화운동을 하는 지킴이들이 살고 있다. 해군기지는 이미 지어졌지만,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며, 해군기지를 만들때 폭파시킨 구럼비바위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전쟁을 멈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살고있다. 매일 아침에는 백배, 11시에 미사, 12시에는 인간띠잇기를 하고, 매일 점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삼거리식당이 있다. 그렇게 지킴이들은 11년째 강정을 지키고있다. (강정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얼마전에 나온 <돌들의 춤>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6월18일, 강정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제주시에서 열린...
조은
2023.06.25 | 조회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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