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지구에 살 자격

경덕
2024-04-02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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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비질 모임으로 돼지를 만나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재개발 구역 고양이 돌봄으로, 동물과 함께하는 설 명절 의례를 기획했다. 
 
현장에서 예동동님을 만났다. 예동동님은 6년 째 이곳에서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틈을 내서 고양이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봉봉오리님은 『지구에 살 자격』에서 재개발구역과 거주민을 이렇게 소개한다.
 
재개발구역 - 군포의 한 재개발구역. 확인된 고양이 수는 총 60명이지만, 꾸준히 얼굴을 비추는 고양이는 30명 정도다.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밥과 물을 주고, 때로는 치료를 제공하는 이를 '돌보미'라 한다. 식비와 병원비 등의 비용은 돌보미가 부담하고 있다.
 
거주민 - 가장 부지런히 나타나는 고양이로는 동동, 댕댕, 콩콩, 초코, 카레, 짜장, 얼룩, 까미, 모짜, 뽀또, 오잉, 예감, 감자 등이 있다. 대부분 영구적 불임 수술을 한 상태다. 평균 나이 8세의 중년 고양이들이 주로 살고 있었으나, 작년 겨울 한 공장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현재는 1살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지구에 살 자격』, 12쪽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여덟 살의 까미였다. 까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다가왔다. 햇볕이 있는 땅바닥에 벌러덩 누워 배를 보였다. 예동동님이 능숙하게 까미 식사를 준비했다. 가까이서 보니 검은 털에 크고 작은 이물질들이 많이 보였다. 인근에 있는 공장과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날아오는 오염 물질들이 고양이 털에 많이 묻는다고 했다.
 
재개발구역에는 8살의 까미라는 고양이가 있다. 만나면 살갑게 인사함과 동시에 기분 좋음을 표현하기 위해 곧바로 땅바닥에 누워 뒹굴뒹굴한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면 옷에 뭔가 잔뜩 묻는다. (...) 고양이는 자신의 몸을 혀로 핥는 그루밍을 한다. 그들의 몸에 묻은 공해는 그렇게 고양이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바닥의 담뱃재도, 미세 플라스틱도, 도시의 분진도,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오염물질도. 재개발구역을 다녀온 날에는 유독 더 깨끗하게 손을 씻고 샤워를 한다. 『지구에 살 자격』, 53쪽   
 
까미 옆에 길고양이 급식소라고 적힌 시설물이 보였다. 급식소 위에는 "길고양이 번식으로 인한 개체수 증가 및 소음을 해결하고자 군포시에서 추진하는 TNR(중성화)을 위해 설치한 시설입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지 않아 쾌적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군포시의 자산이며 파손시 재물손괴죄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 군포시 지역경제과" 라고 적혀 있었다.
 
지역경제과에서 설치한 급식소는 길고양이 개체수를 '관리'하고, 길고양이의 '소음 공해'를 해결하며, 길고양이로부터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물이었다. 까미가 그 옆에 누워 그루밍을 하고 있다. 까미의 입으로 들어가는 담뱃재, 미세 플라스틱, 도시의 분진, 아스팔트 조각들... 오염 물질은 충분한데 주위에 흙은 너무 없었다. 고양이는 배변 후에 흙이나 모래를 덮는 습성이 있다. 부모님 집에 가면 다미(남자 고양이, 13살)가 똥을 누는 모습을 종종 본다. 다미는 모래가 깔린 화장실에 들어가 앞발로 구덩이를 판다. 엉덩이를 깔고 구덩이 속에 똥을 배설한다. 쓰윽 쓰윽 모래를 덮어 똥을 감춘다. 13년 째 실수 없이 이어져온 그의 배변 루틴이다.
 
아스팔트 길 위에서는 고양이들이 쾌적한 배변 장소를 찾기 어렵다. 땅 속에 묻지 못한 똥은 사람들 눈에 쉽게 띈다. 길고양이 돌봄을 하다 보면 '고양이 똥'에 대한 민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흙이 없는 세상에서 고양이들의 기본적인 습성은 민원이 되었다."『지구에 살 자격』, 59쪽
 
 
 
 
바닥에 누워 있는 까미를 쓰다듬으며 털에 묻은 이물질을 털어냈다. 급식소 뒤로 또 다른 시설물이 보였다. 고양이들이 사는 겨울집이었다. 보온 소재로 된 겨울집 안에는 지푸라기가 깔려 있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돌보미들이 직접 겨울집을 준비한다고 했다.
 
작년 겨울엔 알맞은 크기의 스티로폼 박스를 찾지 못해 어떤 고양이는 몸에 꽉 끼는, 어떤 고양이는 혼자 대궐같은 집에 살기도 했다. 집 안에는 습기를 먹어 줄 신문지, 보온을 위한 지푸라기를 넣어주면 된다. 기온이 떨어지는 날에는 핫팩을 신문지에 한 번 감싸고, 늘어난 수면 양말에 쏙 넣어 집 안에 둔다. 고양이는 핫팩의 온기에 기대 밤을 보낸다. 『지구에 살 자격』, 48쪽
 
까미의 거주지에는 지역경제과의 급식소와 돌보미들의 겨울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길고양이 돌봄은 돌보미 뿐만 아니라 행정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동물보호법 법령에서는 길고양이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中性化)하여 포획장소에 방사(放飼)하는 등의 조치 대상이거나 조치가 된 고양이"(「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4조 구조·보호조치 제외 동물, 2023.4.27)라고 정의한다. 길고양이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지만, 동시에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가 필요한 동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은 중성화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고양이(이하 "길고양이"라 한다) 개체 수 조절을 위해 거세·불임 등을 통해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조치”라고 정의한다.
 
중성화 수술로 남성 고양이는 고환을, 여성 고양이는 자궁, 나팔관, 난소를 제거한다. 수술 후에는 중성화 인증 표식으로 귀의 일부를 잘라낸다. 귀에 남겨진 표식에 따라 중성화를 받은 고양이와 받지 않은 고양이로 분류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 돌보기 시작한 고양이도 이미 왼쪽 귀가 잘려 있었다. 길고양이 급식소에는 불임수술을 당한 고양이가 얼마나 도시에서 '공존 가능'한지 호소하는 문구가 적힌다. 개체 수 조절이 되며, 발정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말. 인류학자 전의령은 '중성화'에 대해 길고양이를 '공존 가능한 대상으로 재창출'하는 기술적 장치라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중성화를 당하지 않아 여전히 '문제적인' 고양이는 잠재적인 민원의 대상, 공존 불가능한 대상에 머무르게 된다. 공존 가능한 신체와 그렇지 못한 신체로. 『지구에 살 자격』, 78쪽
 
다른 고양이가 나타났다. 얼룩이라고 했다. 얼룩이는 까미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얼룩이는 구내염에 걸렸다고 했다. 길고양이는 면역력이 약해 염증에 취약하다. 구내염 증상이 있으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그루밍을 못해 털이 많이 더러워진다. 무리에서 배척 당해 생존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얼룩이의 상태는 멀리서 봐도 안 좋아 보였다. 그릇에 음식을 담아 줘도 계속 경계했다. 돌보미들은 구내염 약을 밥에 섞어 주었다. 얼룩이는 여전히 멀리서 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우리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골목에 들어섰다. 왼쪽 펜스 너머에는 구겨진 슬레이트 지붕들이 쌓여 있었다. 오른쪽 주택 벽에는 크게 '철거'라고 적힌 빨간 글씨가 보였다. 문짝이 다 뜯어지고 창문도 없어 실내가 다 들여다 보이는 집들이 이어졌다.
 
이 구역에 거주하는 고양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동동이와 댕댕이를 만났다. 두 고양이는 엄마와 아들 관계라고 했다. 재개발구역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9살 동동이는 아들,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3년에 불과하지만 재개발지역엔 나이든 고양이가 많았다. 그들을 지속적으로 돌봐온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 표지에서 새벽이와 잔디 위로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명의 고양이가 동동이와 댕댕이다. 아들 댕댕이는 식탐이 많아 엄마 동동이의 간식을 종종 뺏어 먹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쿵 하고 부딪히며 반가워한다. 장난치고, 기대고, 돌보고, 싸우고, 사랑하며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간다."『지구에 살 자격』, 146쪽.
 
멀리서 초코가 나타났다. 초코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다리를 절었다. 한쪽 다리를 아예 못 쓰는 것 같았다. 초코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다리를 다친 채로 나타났다고 했다.
 
골절 같았다. 철심을 박거나, 절단해야 할 것 같았다. 둘 다 수백만 원이 넘게 든다. 9살의 살찌고 아픈 고양이를 입양할 인간은 없다. 나조차 동거 가족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초코를 병원에 데려가려면 '포획'을 해야 하는데 그는 잡히지 않았다. 부러진 다리를 달고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동료들과 식사하면서 톡으로 안락사에 대한 가능성을 들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0쪽
 
예동동님은 가까이 오면 치료를 위해 포획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초코는 지붕 위에 있었다. 다친 다리로도 절룩이며 사람을 피해 달아났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은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봉봉오리, 『지구에 살 자격』 구매 링크 
 
예동동님의 재개발지역 고양이 돌봄 계정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활동가.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댓글 11
  • 2024-04-02 09:52

    돼지에 이어 고양이를.... 경덕의 글을 읽으며 사람문제에 몰두해 있는 나를 문득 보게 되네요. 다른 존재와 공통의 지반 없이 어찌 같이 살아갈까? 중얼거려 봅니다.

  • 2024-04-02 15:20

    글을 읽다보니 지구에 살 자격, 공존, 생존, 문제적 고양이, 안락사... 하나 같이 쉽지 않은 질문들이 툭툭 날아오네요. 오늘도 역시나 비껴갈 수 없는 질문들 앞에 오래 서성거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4-04-03 08:43

    저는 재개발에 따라 버려진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정지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경덕님 다음 글도 몹시 기대됩니다

  • 2024-04-03 11:40

    근데 저는 읽다보니까 용어(?)가 궁금한 점이 생겨서요.
    글 속에서 고양이를 ‘마리’가 아니고 ‘명’이라 표기하고
    수컷을 남성 고양이, 암컷을 여성 고양이라고 표기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사이 바뀌었나요?
    함께 헤러웨이를 읽을때 동물을 의인화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봤었던거 같은데..
    저얼대 딴지 아니고~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 2024-04-03 15:17

      하하 저도 이것이 모종의 정치적 올바름은 아닐까, 한 때 의심한 적이 있었는데..
      제 나름대로는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비베이두스 지 까스트루가 말한 '관점주의'에서 그 이유를 찾았답니다.^^
      근데 그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ㅎ 모로님의 궁금함은 제게도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아요.

    • 2024-04-03 15:32

      목숨이라는 의미의 '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 2024-04-03 17:24

      모로샘!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져주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물어봐주셔서 감사해요!!! 딴지도, 의문도 환영합니다ㅎㅎㅎ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언젠가 기회 될 때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단 지금 답할 수 있는 정도로만 적어보겠습니다.

      일단 제가 개인적으로 용어를 바꿔 사용하게 된 계기는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교육을 받을 때였어요.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지칭할 때 '종평등한 용어'를 사용하자는 내용이었어요. '새벽이생추어리에 사는 남성 돼지 한 명'.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동물을 지칭하거나 수를 셀 때 그때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재글을 쓸 때에도 '종평등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저 나름의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종평등한 용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용어를 바꾸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다만, 어떤 맥락에서는 대안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고, 사용하면서 만들어지는 낯선 감각들, 질문들, 배움들이 충분히 쌓이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질문을 먼저 해주셔으니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 만이라도 간략히 공유해볼게요.

      (이 댓글은 모로샘 질문에 대한 잠정적 답변이자, 선생님들과 같이 읽고 배우고 논의하고 싶은 주제 모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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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잡지 '물결' 일러두기

      "물결 편집부는 『물결』에서부터 종평등한 언어 생활이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편집 원칙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종차별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대안 표현을 제안한다. 익숙한 표현들은 아니기에 『물결』은 매호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일러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1) 비인간 동물의 수를 셀 때도 '마리' 대신 '명'을, 성별을 표기할 때도 '수컷' 대신 '남성', '암컷' 대신 '여성'으로 표기했습니다.
      2) 비인간 동물을 착취한 사실을 은폐하고 상품화하는 단어인 달걀, 계란 대신 '닭알', 우유 대신 '소젖', 물고기 대신 '물살이'로 표현했습니다.

      (...) 『물결』은 인간 동물에게 적용할 수 없는 표현은 비인간 동물에게도 인간 동물과 마찬가지로 '명' '여성/남성'을 쓴다. 동물해방물결 윤나리 사무국장은 "수를 세는 단위 '명'은 현재 '名(이름 명)' 자를 쓰지만, 종평등한 언어에서는 이를 '命(목숨 명)'으로 치환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단위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음과 모음> 2022년 겨울 55호 '동물-권',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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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사

      ‘몇마리가 아니라 몇명(命)’ 종차별적 언어 바꾸자 (‘종평등한 언어생활을 위한 워크숍’ 관련 기사)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5291054001

      ‘한 명’의 동물을 생각한다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 경향신문)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830030009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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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도나 해러웨이, 『종과 종이 만날 때』, 257-259쪽
      >> 해러웨이가 비판한 의인화는 "인간과 유사한 섹슈얼리티와 친족관계에 가장 잘 편입되어 있는 동물들에게만 파생적인 인격을 부여하는 문법 참고서의 기술"(258쪽)로서의 의인화를 말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어요. 어떤 인간, 또는 비인간 동물을 가리키며 누구who 냐고 물을 때, 목숨命(명)을 가진 반려종으로서 '명' 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 문제는 주요 참고 도서나 신문 등의 편집 방침에서, 문법적으로 드러난다. 동물에게는 who와 같은 인칭대명사는 허용되지 않고, which, that, 혹은 it으로 지시되어야 한다. (257쪽)

      - 데프레가 탐구하는 종류의 "가축화"는 새로운 정체성들을 추가한다. 파트너들은 서로 "촉발되기"를 배운다. 그들은 "사건에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곤혹을 감추지 않는" 관계성에 관여한다. 이런 상황에 필요한 인칭대명사 who는, 그 대상이 사람이건 동물이건 간에 파생적, 서구적, 민족 중심적, 인간 중심적인 개성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중요한 타자들 또는 내가 다른 곳에서 반려종, 즉 함께 테이블에 앉아 빵을 나누는 식사 동료, '쿰 파니스'라고 부른 것들 사이의 진지한 관계성에 특유한 물음과 관계가 있다. 여기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교환되는 물음은 이런 것이다. 당신은 누구who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who입니까?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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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발 플럼우드, 『악어의 눈』, 「5장 베이브, 말하는 고기의 이야기 2부, 소통과 의인주의」
      >> 의인화, 의인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 생태학자 발 플럼우드의 주장입니다. 의인화를 강한 의인화와 약한 의인화로 나눌 수 있다고 해요. 의인화의 '효과'에 주목하는 방식이 인상깊었어요.

      - 의인주의가 비인간에게 인간이 가진 특성을 부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직' 인간만이 가진 특성을 부여하는 것인지는 실로 모호합니다. 동물에게 주체성 같은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의인주의가 틀림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때, 이 둘은 서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지각 방식, 즉 동물에게 인간이 가진 특성을 부여하면 그것이 의인주의라고 보는 관점은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 중첩되는 특성이란 없다고 암시합니다. 인간과 동물 본성의 이중성을 가정하고, 인간과의 근본적 불연속성을 표현해야만 비인간을 적절하게 재현하는 것이라고 강요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의인주의에 대한 일반적 지각은 근본적 불연속성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납득하는 비인간 주체성에 대한 어떤 묘사도 사실상 부적합한 것으로 만드는 데 활용되기 때문에 분명 거부되어야 합니다. (174쪽)

      - 여기서 우리가 부딪치는 문제는 인간의 문화적 차이를 나타내는 사례에서 익숙한 문제, 즉 번역과 불확정성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화적 차이를 재현하는 데에는, 그리고 서로 다른 삶의 형태 사이에 동등성을 확립하거나 가정하는 데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많은 함정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함정과 어려움은 사실상 모든 번역 과제, 다시 말해 한 문화의 방식을 다른 문화로 '가져오기' 하려는 시도에 약한 의인주의가 수반되게 합니다. 우리는 번역의 모든 시도가 무효화되지 않도록 의인주의의 더 약한 형태와 더 강한 형태를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약하고 대체로 무해한 형태의 인간중심주의와 더 강력하고 해로운 형태의 인간중심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177쪽)

      - 다른 종의 언어와 주체성을 인간적 관점에서 재현하는 문제는 실재하지만, 비인간 존재가 그러한 재현을 통상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인간 존재는 그러한 재현이 그들을 전혀 재현하지 않는다는 역경 앞에서, 다시 말해 소통적 존재이자 의사를 지닌 그들을 소통 능력과 정신 능력이 결여된 존재로 재현하는 극악무도함 앞에서 창백해집니다. 이는 그 어떤 의인주의보다 훨씬 부당하고 부정확한 것이지요. / 이러한 관점은 비인간 존재가 소통적 주체로서 재현되는 것을 부적절하게 만들기 위해서 의인주의 혐의가 통상 적용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강력한 의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상황을 설정하고 확립하는 데 지금 통상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의인주의의 경우, 동물의 소통과 특성을 보여주는 재현에 어느 정도의 인간화humanisation가 나타나는지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해로운지,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178-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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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에두르아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에 대한 후기
      >> 지 카스트루는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타자'의 형식은 곧 인격이다"라고 씁니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류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지구상의 유일한 '이성적 자연물', 즉 우리 자신만을 인격으로 고려한다. 나머지는 자원, 즉 사물로 본다. 크레나키는 수단과 목적에 대한 칸트의 정언명령을 우리[인간]에 관한 것으로만 제한하기를 거부한다. 바로 여기에 그가 제안한 생각들의 핵심 중 하나가 있으며, 그에 따르면 이것은 전 세계 원주민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칸트적 구별은 인격들의 세계보다는 사물들의 세계, 순수한 수단으로서의 사물들을 구성하는 거대한 배제의 몸짓이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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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요요, <아마존의 목소리를 들어라>, 1234 에세이 초안
      >> 댓글 달아주신 요요샘께서 지난 1234 에세이 초안에서 쓰신 부분을 인용해봅니다. 지 카스트루의 관점주의로 '명'을 존재론적 평등을 선언하는 셈의 방식이라고 써주셨어요.

      - 관점주의에 따르면 강도 사람이고, 산도 사람이고, 돼지도 사람이다. 관점주의는 잠재성의 측면에서 인간 비인간이 동일하다고 본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나는 동물권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돼지를 한 마리,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명, 두 명이라고 세는 것을 통해 관점주의를 설명해 보고 싶다. 처음 그렇게 세는 방식을 접했을 때 참으로 어색했다. “동물해방이 동물을 인간처럼 세는 것이란 말인가? 과하군! 뭘 이렇게까지?”라고 속으로 냉소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점주의에 따르면 돼지만이 아니라 나무도 강도 한 명, 두 명이라고 세는 게 당연하다. 돼지가 주체적 행위자라면, 자신들을 인간보다 하위라고 분류하고 자신을 한 마리, 두 마리라고 세겠는가?

      관점주의에 따르면 돼지도 사람이다. 이때 말하는 ‘사람person’이란 특권적 종인 그 인류가 아니다. 내가 돼지를 한 명 두명으로 세는 것을 과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한 그 인류(the humanity we think we are)’와 돼지 사이에 어떤 수직적이고 넘을 수 없는 위계를 가정하고 있었다. 돼지를 한 명, 두 명으로 세는 것은 그 위계를 걷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인간과 돼지의 존재론적 평등을 선언하는 셈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과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과하게 인간 예외주의에 물들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다. (요요, 1234 <아마존의 목소리를 들어라> 중)

  • 2024-04-03 15:13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을 검색해보고나서야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 2024-04-03 18:02

      샘! 저 펀딩으로 세 권 구매했는데, 한 권 들고 가겠습니다^^

  • 2024-04-04 16:24

    경덕쌤~ 답변이 글만큼 긴 거 아닙니꽈??? ㅎㅎㅎ
    적절한 질문이었나요? 준비된 답변! 감사합니다.
    이 문제는 저 역시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아직은 딱 들어오지는 않지만 저도 한 ‘명’의 (???) 다른 종과 살기 때문에 생각해보겠습니다! ㅋㅋ

  • 2024-04-04 20:29

    경덕님께 얼핏 들었던 내용을 자세히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번 요요샘글에서 살짝 맛보았던건데 命이었군요^^
    동동이와 댕댕이 그리고 초코에 대해서도 계속 궁금해질것 같네요
    다음글도 기다리고 있을께요~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13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경덕
2024.04.02 | 조회 391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5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2024.01.30 | 조회 416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2022. 7~2023.12).     ** <2023 양생프로젝트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 파이널 에세이 데이(12.9)> 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난잡함 선언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과 글쓰기     돌봄care에 연루되고 있다. 매주 돼지를 돌보면서, 돌봄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매월 돌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돌봄은 반복된 행위이자, 확장된 실천이었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하는 세계 만들기, 읽기와 쓰기였다. 돌봄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돌봄'과 '글쓰기'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일 때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까?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세계에 참여할 때 존재는 어떻게 변형될까? ‘난잡함promiscuousness과 함께하기’라는 다종multispecies간 돌봄 정치학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돌봄 현장에서 난잡하게promiscuous 뒤얽히는 종들species의 자취를 더듬는다.     1. 돼지와 마주침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모집 공고를 읽고 있다.   “돌봄으로 새벽이와 잔디의 삶에 연대하는 보듬이를 모집합니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안식처를 말한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돌봄 활동가)로 지원해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 그리고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만났다. 나는 매주 그들을 돌보았다. 밥과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줍고, 땅을 정비하고, 약을 바르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그들과 밀접 접촉했다. 그러다 연말에 도착한 문탁 선생님의 메세지.   "내년에 생추어리 돌봄일지를 인문약방에 기록해보면...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2022. 7~2023.12).     ** <2023 양생프로젝트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 파이널 에세이 데이(12.9)> 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난잡함 선언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과 글쓰기     돌봄care에 연루되고 있다. 매주 돼지를 돌보면서, 돌봄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매월 돌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돌봄은 반복된 행위이자, 확장된 실천이었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하는 세계 만들기, 읽기와 쓰기였다. 돌봄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돌봄'과 '글쓰기'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일 때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까?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세계에 참여할 때 존재는 어떻게 변형될까? ‘난잡함promiscuousness과 함께하기’라는 다종multispecies간 돌봄 정치학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돌봄 현장에서 난잡하게promiscuous 뒤얽히는 종들species의 자취를 더듬는다.     1. 돼지와 마주침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모집 공고를 읽고 있다.   “돌봄으로 새벽이와 잔디의 삶에 연대하는 보듬이를 모집합니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안식처를 말한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돌봄 활동가)로 지원해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 그리고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만났다. 나는 매주 그들을 돌보았다. 밥과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줍고, 땅을 정비하고, 약을 바르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그들과 밀접 접촉했다. 그러다 연말에 도착한 문탁 선생님의 메세지.   "내년에 생추어리 돌봄일지를 인문약방에 기록해보면...
경덕
2023.12.21 | 조회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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