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삶은 처분될 수 없다

경덕
2023-11-23 01:00
531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삶은 처분될 수 없다
 
 
 
9월 26일 저녁, 활동가 S는 어느 동물권 단톡방에 이런 메세지를 남겼다. 
 
"살처분 관련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요."
 
강원 화천군 양돈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다음 날이었다. 그날 언론에는 100건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졌다.
 
'강원 화천서 야생맷돼지 ASF 발생…농장 주변 차단방역 총력'(데일리안)
'강원 화천 양돈장서 ASF 발생…긴급 살처분 실시'(농민신문)
'강원 화천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1500여마리 살처분'(news1).
 
 
언론에서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해당 정밀검사에선 하남면 원천리에 소재한 A 발생농장(사육규모 1569마리) 21마리의 검사 시료 중 4마리에서 양성 개체가 발견됐다...(농민신문). 중수본은 “ASF가 확산하지 않도록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신속한 살처분, 정밀검사, 집중소독 등 방역 조치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양돈농가는 농장 내·외부 소독, 방역복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했다.(데일리안)"
 
방역 당국이 가장 먼저 언급한 지시사항은 '신속한 살처분'이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지침이 신속한 '죽임'와 '처분'인 것이다. S는 이어서 말했다.
 
"(살처분 관련) 여러 소식으로 조급한 마음이 드는데 집회든 아웃리치든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계획하고 싶으신 분 있으신가요?"
 
그리고 활동가 H가 응답했다.
 
"저요!! 뭔가 할 수 있으면 참여할 마음 있어요!"
 
 
 
삶은 처분될 수 없다
 
활동가들은 살처분을 공론화하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다. 살처분에 대해 공부하고, 그 시스템 자체를 문제시하며 반대 운동을 기획하는 모임이었다. 
 
"9월 26일, 강원도 화천 지역에 발생한 돼지열병으로 1500명의 돼지가 살처분 당해 땅에 묻혔습니다. ‘축산동물’로 분류되는 동물들은 전염병에 걸릴 시, 인간에게 직접적인 전염 가능성이 없더라도 살처분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발생지 근거리에 있으면 예비 숙주로 판단되어 죽임당하는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합니다. '예방적 살처분'의 거리범위가 축소되면서 살처분되는 동물의 명수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이는 여전히 철저한 경제논리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동물권의 시각으로, 살처분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문제시하고 공론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먼저 공부 모임이 시작되었다. 관련 다큐와 논문, 책,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작성한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 시행령, 방역노동자 실태조사 등의 자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노션에 기록해서 참여하지 못한 사람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공부가 진행되면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도 이어졌다. 인간은 병에 걸렸다고 죽이지 않는데, 왜 동물은 죽여야 될까? 왜 어떤 존재는 죽이고 어떤 존재는 죽임을 당할까? 감염 여부로 살처분의 타당성을 결정해도 괜찮을까? 동물에게 백신을 맞혀서 철저하게 관리하면 괜찮을까? 동물보호의 기준이 쾌고감수능력으로 충분할까? 그것과 상관없이 존엄을 이야기할 수 없나? '가축화'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지 않나? 공급 과잉으로 가축 동물을 죽이는 경우는? 병 걸렸다고 도태시키는 문제는? 농장동물, 실험동물, 반려동물, 야생동물의 안락사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동물착취 산업 전반의 문제라면? 살처분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고통은 어떻게 다뤄져야 할까? 동물권과 노동자 인권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목소리가 잘 전해지려면 어떤 정치가 필요할까? 선거방식을 바꾸야 할까? 단계적 변화를 위해 중간 목표를 정하는 게 좋을까? 중간 목표로 배제되는 동물들은 어떡하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어떤 액션이 필요할까?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충분할까? 예술적 퍼포먼스는 어떨까?
 
그리고 10월 20일. 또 다른 전염병과 살처분 소식이 들려왔다. 
 
 
[살처분 반대 모임 인스타그램]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럼피스킨병은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소나 물소 피부에 혹 덩어리가 생기는 악성 피부병이지만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에 걸린 소는 고열과 눈, 코에서 분비물이 많아지고 피부 등에 많은 작은 혹 덩어리가 생겨 생산성 저하, 유량 감소, 불임, 가죽 손실 등을 유발한다. (...) 주변 방역대(10㎞)에는 180여 농가, 7800여 마리의 소가 사육되고 있어 지역 축산 농가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시는 곧바로 해당 농장 출입을 통제하고 해당 농가 전체 소에 대해 살처분 전문 업체를 불러 살처분에 들어갈 예정이다." - '[단독] 국내 최초 럼피스킨병 발생... 축산 농가 비상'(충청투데이)
 
활동가들은 공부모임과 더불어 <살처분 반대 액션 - "삶은 처분될 수 없다">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현재 소 농가에서는 ‘럼피스킨’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국가는 이번에도 살처분이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도태의 대상이 되고 죽음이 묵인되는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소들이 땅에 묻힐 때 ‘한우와 원유 수급 영향’을 염려하는 구조가 폭력적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처분반대모임에서는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액션을 계획하였습니다.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는 살처분되는 모습을 재현하며 살처분이 틀렸음을 알리고자 합니다. 다양한 역할로 참여하실 수 있으니 함께 해요!"
 
액션을 함께할 참여자도 모집했다. 살처분 당하는 동물, 방역복 입은 인간, 기록 활동가, 피켓 드는 사람, 사운드 담당 등의 역할이 필요했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는 중에도 나는 선뜻 참여하지 못 한 채 망설였다. 여러 사안들과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살처분 문제가 너무 거대해 보였고, 공부 모임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분명하게 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축산업을 '근절'하는 게 가능할까? '반대'를 외친다고 나아질까? 그러다 스스로에게 이런 의문이 들었다. 확실한 답이 있을 때만 행동할 수 있을까?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함께할 수 있나? 뭐라도 하는 중에 대안이 만들어지는 거 아닐까?
 
그렇게 머뭇거리는데 단톡방에 퍼포머가 부족하다는 메세지가 올라왔다. 그때서야 나는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피살처분 역할로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퍼포머로 신청한 사람들은 리허설을 위해 미리 연습실에 모였다. 우리는 퍼포먼스를 기획한 활동가들과 세부적인 연출을 함께 고민하며 리허설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2023년 11월 11일. 우리는 서울역 앞에서 다시 모였다.
 
 
[살처분 반대 모임 인스타그램]
 
 
 
살처분 반대 액션
 
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역 앞.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전염병 발병으로 인해 반경 500m이내 즉각 살처분, 3km이내 예방적 살처분을 시행합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Due to the epidemic, immediate culling is carried out within a 500m. Preventive culling is carried out within a 3km. Please cooperate for everyone's safety."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동물들을 강제로 끌고 온다. 비닐이 덮여진 구덩이에 동물들을 묻는다. 동물들이 쓰러지고 널부러진다. 고통스러운 몸부림, 비명소리가 이어진다. 방역복 입은 사람들이 비닐로 동물들을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쏟는다.
 
"정부는 현재 전염병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경제적 손실이 없도록 살처분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The government is now effectively controlling the epidemic. We will do our best, such as paying compensation for the culling so that there is no economic loss to our people."
 
 
 
 
사회자 : 9월 20일, 이탈리아 경찰이 생추어리에 침입해, 그 곳의 거주민은 돼지들을 살해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여 ‘살처분’을 시행한 것입니다. 현재 소 농가에서는 ‘럼피스킨병’이라는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번에도 살처분이라는 방법을 택했으며, ‘한우와 원유 수급 영향’을 염려합니다. 몇 일 전, AI, 즉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고, 국가는 수많은 조류들을 살처분했습니다. 살처분은 육상동물부터 수생동물까지, 축산동물부터 수산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동물원에 감금당한 동물들까지, 모든 비인간동물을 대상으로 시행됩니다. 생매장(매몰), 가스 살해, 독살, 폭행으로 인한 살해, 전기 도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됩니다.
 
 

[다 같이 구호]

 
인간이 아니라서 / 죽였다
약하다고 / 죽였다
아프다고 / 죽였다
병에 걸렸다고 / 죽였다
장애가 있다고 / 죽였다
자본을 아끼려고 / 죽였다
생명을 도구화하는 시스템이 / 죽였다
죽음이 이윤이 되는 구조가 / 죽였다
살해를 외주화하며 / 죽였다
비국민과 용역에게 떠넘기며 / 죽였다
우리가 살아갈 땅도 / 죽였다
 
 
 

 

 

 

[성명서 낭독]

 

국가의 살처분에 대한 살처분 반대 모임의 입장입니다.

 

하나, 우리는 병의 특징, 질병의 인간종에게의 전염 여부, 질병의 치사율, 비인간동물 당사자의 질병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살처분에 반대합니다. ‘예방적’ 살처분이어서, ‘과도한’ 대처이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병에 걸린 존재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존재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쾌고감수능력과 무관하게, 비인간동물과 인간동물, 모든 동물에 대한 착취에 반대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지 여부도 인간중심적인 시각으로 임의적으로 판단한 것이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죽이거나 착취해도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존재는 ‘보호’하고, 부합하지 않는 존재는 배제하는 권력을 경계합니다. 타자의 고통도 자의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기에, 죽는게 낫다고 판단하는 권력을 경계합니다.

 

하나, 살처분이 폐지되기 위해서는 동물산업이 철폐돼야 합니다. 축산업, 어업, 동물실험을 시행하는 산업, 야생동물 납치 살해 및 거래 산업, 비인간동물 전시 및 감금 산업 등을 비롯한 동물산업의 철폐 없는 살처분 폐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속 가능한 축산업, 어업, 동물실험, 동물원 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동물복지 농장, 동물산업의 존속을 위한 백신 등은, 인간의 자본 축적을 위해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전제 아래에서의 ‘대안’입니다. 인간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하는 이상, 동물복지는 없습니다. 살처분의 폐지는, 비인간동물을 착취하는 구조를 유지하는 "동물복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처분을 "동물복지"의 문제로 바라보는 프레임을 전환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 우리는 살처분이 일어나도록 하는 착취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살처분을 시행하는 주체는 공무원에서 비국민 노동자와 용역으로 바뀌었습니다. 내몰려있는 비인간동물을 살해하는 것에 반대하듯, 내몰려 있는 이들에게 살해를 외주 주는 구조에 반대합니다. 살처분은, 축산업 등 동물산업의 피해를 줄이려고 개인의 재산을 국가가 처분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구분이, 가축과 가축이 아닌 동물에 대한 구분이 위계를 만듭니다. 현재의 ‘가축’은 인간에 의해 강제로 개변된, 취약하고 장애화된 신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축'을, 건강하지 못하다는 근거로, 질병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죽입니다. 농장동물의 재생산 능력이나 장애가 있는 동물들이나 생산력이 떨어지는 동물에 대한,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에 대한 ‘선제적 도태’도 살처분입니다. 출생부터 질병의 감염, 살처분까지,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대로 굴러갑니다. 감염된 사체와 폐기물을 값싸게 처리하기 위해, 사료로 만들거나 땅으로, 수로로 버립니다. 그 경로로 또 다른 동물들이 감염되게 되고, 그들은 다시 살처분됩니다.

 

하나, 우리는 누군가의 몸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구조에 반대합니다. 사유재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 살처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취지 자체가 불평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특정 비인간동물을 '가축'으로, '가축'을 '식량'으로, ‘식량’을 사유재산으로 여기며, 공급가격을 조정합니다. 비인간동물, 그리고 식량은 사유재산이어서는 안 됩니다.어떤 존재가 어떤 존재를 죽여도 되는 대상으로 정하는 사회에 저항하고자 합니다. 동물착취가 자본주의내에서 산업으로 번역되는 한 살처분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살처분이 존재하는 이유는, 생명을 도구화하고 피해자의 피해가 가해자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도태의 대상이 되고, 죽음이 묵인되는 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불가피하다'는 말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살처분반대모임은 인간을 위해, 경제성을 위해 비인간 동물을 죽여도 된다는, 비인간동물을 '처분'할 자격이 인간동물에게 있다는 전제 자체를 재고하기를 촉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1월 11일
살처분반대모임.

 

 

 
 
그리고 연대발언이 이어졌다. 나도 준비한 발언문을 낭독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살처분 반대 액션에서 살처분 당하는 동물로 참여한 인간 동물입니다. 저는 조금 전에 방역복 입은 인간에게 끌려가서 비닐이 덮여진 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제 몸 위로 흙이 마구 쏟아졌고 저는 숨이 막혀 고통 속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저는 오늘 액션을 통해 땅 속에 묻힌 동물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 곳은 실제 살처분 현장이 아니라 집회 신고를 마친 서울역 광장이고, 저는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보호 받고 있는 인간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치면 치료를 받을 것이고, 죽으면 애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저는 그들의 죽음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럼피스킨 병으로 이미 살처분되었거나 살처분 예정인 동물이 총 5766명이라고 합니다. 왜 누군가의 죽음은 애도되지 못하고 처분되어야 할까요? 왜 누군가의 죽음은 부고란에 이름이 실리지 못하고 5766이라는 익명의 숫자로 처리되어야 할까요? 왜 누군가의 질병은 끝까지 치료하려 하지 않을까요. 왜 누군가는 '예방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살해되어야 할까요. 왜 그들의 죽음은 기억되지 않고 땅 속에 파묻힐까요. 
 
저는 그들의 죽음이 나의 생존과 분리될 수 없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동물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세상에 죽여도 되는 동물은 없기에, 땅 속에 처분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며, 저는 가축 동물들의 살처분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조건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여러분의 관심과 행동을 촉구합니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살처분 반대 액션>을 마치고 우리들은 소품으로 활용한 흙을 조금씩 나누어 가져갔다. 누구는 화분에 뭘 심어보겠다고 했고, 누구는 퍼포먼스를 다시 한다면 그때 가져올 거라고 했다. 나도 포대 하나에 흙을 가득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누굴 죽이는 흙이 아니라, 살리는 흙으로 다시 쓰고 싶어서. 쓰러진 몸 위로 쏟아진 흙을 기억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을 스스로에게 촉구하고 싶어서.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같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머뭇거리고, 망설일지라도.
 
 
 
 
 
 
** 퍼포먼스 사진은 살처분 반대 모임 참여자가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살처분 반대 액션> 퍼포먼스 영상 
댓글 6
  • 2023-11-23 10:08

    머뭇거리고, 망설일지라도
    경덕님이 걷는 그 길을 응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3-11-23 11:50

    경덕님 몸 위에 쏟아졌던 그 흙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검은 포클레인이 들이닥치고/ 죽여! 죽여! 할 새도 없이/ 알전구에 똥칠한 벽에 피 튀길 새도 없이/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가죽이 벗겨져 알록달록 싸구려 구두가 될 새도 없이/새파란 얼굴에 검은 안경을 쓴 취조관이 불어! 불어! 할 새도 없이/이 고문에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절박한 공포의 줄넘기를 할 새도 없이/옆방에서 들려오는 친구의 뺨에 내리치는 손바닥을 깨무는 듯/내 입안의 살을 물어뜯을 새도 없이/손발을 묶고 고개를 젖혀 물을 먹일 새도 없이/엄마 용서하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할 새도 없이/얼굴에 수건을 놓고 주전자 물을 부을 새도 없이/포승줄도 수갑도 없이(김혜순, '피어라 돼지' 일부 인용)

  • 2023-11-23 17:06

    뭘 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엄두가 나지 않는데, 그래도 뭘 하는 사람들이 있네.

  • 2023-11-23 17:29

    쌤이 던진 많은 질문들에 머뭇머뭇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3-11-23 21:13

    망설이며 머뭇거리면서도 경덕님이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걷는 그 길, 저두 응원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2023-11-24 14:13

    불가피함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 모든 발언문들이 언제나 우리의 전제를 재고하고 촉구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 깊이 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조치나 정답이나 반성이 아니라 머뭇거림과 고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2편           동물의 의례   초코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고 햇볕을 쬐다 일어나더니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걸었다. 왼쪽 뒷다리는 굽어 있었고 굽은 다리로 바닥을 간신히 딛고 걸었다. 몇 걸음 걷다가는 다친 다리를 허공에 들고 걸었다.   초코는 골절된 다리로도 높은 곳을 오르내리고 다른 고양이들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돌보미들은 초코를 치료하기 위해 포획틀을 설치했지만, 초코 대신 엉뚱한 고양이가 들어왔다. 봉봉오리님은 포획틀에 갖힌 초코의 단짝 고양이 카레의 사진을 보여주며 '정말 속 터지는 희극'이라고 했다. 『지구에 살 자격』에는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들은 재개발구역에서 돌봄하는 것이 무조건 슬플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마냥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재개발구역이 조금 이상한 곳이라 그럴지도 모르다. 나는 그곳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웃는다. 그들이 서로를 돌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내염을 오래 앓아 밥을 먹을 때 힘들어하는 카레의 곁에는 늘 먼저 음식을 양보하는 초코가 있다. 둘은 추운 날 하나의 겨울 집에 들어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몸이 관통 당하는 큰 부상을 입었던 8개월의 오잉이는, 피를 흘리며 몸을 숨겼던 일주일 간의 시간 동안, 혀가 닿지 않는 그의 상처를 핥아준 형제들이 있었다. 『지구에 살 자격』, 145쪽   밥그릇...
경덕
2024.05.01 | 조회 218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재개발 구역의 고양이들 | 1편       코에 흙을 잔뜩 묻힌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큰 귀를 곧게 세우고 어딘가를 응시한다.   뒤쪽엔 보다 작은 돼지가 보인다.   돼지는 코를 땅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루팅을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돼지들 위로 두 명의 고양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한 명은 그릇에 얼굴을 묻고 무언가를 먹는다.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허리를 세우고 정면을 본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으로.     -         봉봉오리님의 『지구에 살 자격』의 표지에는 돼지와 고양이 그림이 있다. 동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의 어느 한 순간을 표현한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고 저마다 생기를 분출한다. 책 표지를 넘기면 봉봉오리님의 친필 문구가 보인다.     종차별 없는 연대를.     한 페이지를 더 넘기면 저자의 한 줄 소개가 있다.     동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물해방을 그린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를 하며 봉봉오리님을 만났다. 봉봉오리님은 생추어리와 재개발구역을 오가며 돼지를 돌보고, 또 고양이를 돌본다. 돌봄 일지를 블로그에 공유하고, 동물들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한다. 나는 어느날 봉봉오리님에게 재개발 구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돼지를 만나온 나는 또 다른 동물 돌봄 현장이 궁금했다. 설 연휴로 날짜가 정해졌다. 같이 갈 사람들이 모였다. 봉봉오리, 그린, 이슬, 세원, 그리고 나. 이들은 새벽이생추어리 돌봄 혹은...
경덕
2024.04.02 | 조회 391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355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2024.01.30 | 조회 418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2022. 7~2023.12).     ** <2023 양생프로젝트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 파이널 에세이 데이(12.9)> 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난잡함 선언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과 글쓰기     돌봄care에 연루되고 있다. 매주 돼지를 돌보면서, 돌봄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매월 돌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돌봄은 반복된 행위이자, 확장된 실천이었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하는 세계 만들기, 읽기와 쓰기였다. 돌봄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돌봄'과 '글쓰기'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일 때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까?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세계에 참여할 때 존재는 어떻게 변형될까? ‘난잡함promiscuousness과 함께하기’라는 다종multispecies간 돌봄 정치학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돌봄 현장에서 난잡하게promiscuous 뒤얽히는 종들species의 자취를 더듬는다.     1. 돼지와 마주침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모집 공고를 읽고 있다.   “돌봄으로 새벽이와 잔디의 삶에 연대하는 보듬이를 모집합니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안식처를 말한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돌봄 활동가)로 지원해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 그리고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만났다. 나는 매주 그들을 돌보았다. 밥과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줍고, 땅을 정비하고, 약을 바르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그들과 밀접 접촉했다. 그러다 연말에 도착한 문탁 선생님의 메세지.   "내년에 생추어리 돌봄일지를 인문약방에 기록해보면...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2022. 7~2023.12).     ** <2023 양생프로젝트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 - 파이널 에세이 데이(12.9)> 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난잡함 선언 - 새벽이생추어리 돌봄과 글쓰기     돌봄care에 연루되고 있다. 매주 돼지를 돌보면서, 돌봄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매월 돌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돌봄은 반복된 행위이자, 확장된 실천이었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하는 세계 만들기, 읽기와 쓰기였다. 돌봄을 중심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돌봄'과 '글쓰기'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적일 때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까?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드는 세계에 참여할 때 존재는 어떻게 변형될까? ‘난잡함promiscuousness과 함께하기’라는 다종multispecies간 돌봄 정치학을 구상해볼 수 있을까?   이 글은 돌봄 현장에서 난잡하게promiscuous 뒤얽히는 종들species의 자취를 더듬는다.     1. 돼지와 마주침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 모집 공고를 읽고 있다.   “돌봄으로 새벽이와 잔디의 삶에 연대하는 보듬이를 모집합니다."   생추어리sanctuary란 동물이 가능한 평생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성된 안식처를 말한다. 나는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돌봄 활동가)로 지원해서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된 돼지 새벽, 그리고 실험동물로 태어나 안락사 직전에 구조된 돼지 잔디를 만났다. 나는 매주 그들을 돌보았다. 밥과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똥을 줍고, 땅을 정비하고, 약을 바르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그들과 밀접 접촉했다. 그러다 연말에 도착한 문탁 선생님의 메세지.   "내년에 생추어리 돌봄일지를 인문약방에 기록해보면...
경덕
2023.12.21 | 조회 33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