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따로 또 같이

가마솥
2024-04-15 11:29
222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옮겨 드려도 욕창이 줄어들지 않는다. 전문적인 처치가 가능한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규칙적인 재활운동도 시켜드린다니 더 나빠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부부의 시간 사용에 좀 숨통이 트였다.

이어서 아들 녀석이 분가(分家)를 선언한다. 말하지 않았어도, 할머니와 아이의 돌봄에 매어 있는 엄마 아빠의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녀석도 함께 느꼈으리라. 일하는 젊은 부부를 위하여 아내가 매끼 식사를 준비하고, 내가 아이를 유아원에 등/하원시키는 일은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여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공간문제와는 별개로 시간의 문제였다. 분가하면 이 일들을 오롯이 녀석들이 해결해야 하니, 힘들게 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독립해야 할 일이다. 나도 용기를 내어 손주놈과 ‘빠이빠이’를 했다. 두 살림이 빠지니, 온 집안이 휑하다. 언제든지 팔 벌리며 다가 와서 이제 막 “합빠”와 의사소통을 시작한 손주 놈이 없어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집을, 아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던히도 끼고 살았던 옷이며 책이며 많은 살림살이들을 정리했다. 덕분에 그 동안 그렇게 찾아도 안보이던 물건을 찾는 행운도 있었다. 대청소하면서 이제야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은 공간에서부터 왔다. 여기 저기 빈공간이 많이 보인다. 이렇게 넓었나? 장모님이 오시기 전에도 우리 부부 둘만 살았는데, 그 때에도 이렇게 넓었는지 새삼스럽다. 아니지, 지난달만 해도 아무리 정리해도 짐을 쌓아 놓아야 했던 깔끔하지 않았던 공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짐들을 정리하니 새로 지은 집에 이사 온 것 같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신혼집(!) 꾸리듯 새로운 공간 사용을 구상해본다. 건물 전체 5개 덩어리를 따라서 손님방, 음악방, 악기방, 명상방, 내 공부방, 아내 서재(!).....등등.

 

신혼과 황혼사이

 

   갑자기 “각방 함 써보는 게 어때요?” 아내가 제안한다. 윽? 각방? 이 양반은 신혼 기분이 아닌가 보네? 이것이 세간에서 회자되는 황혼00? 순간 당황했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면, 잠귀가 아주 밝아서 옆에서 부스럭 소리만 내도 잠이 깨는 나도 싫지는 않다. 젊을 때에는 잠이 깨도 곧 바로 다시 잘 수 있지만, 요즘은 한번 깨면 날을 새야 한다. 해서, 굳이 한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얼마 전, 텃밭에서 만난 앞집 70대 노인장이 내게 물었다. “신 사장은 각방 쓰는 겨?” “아뇨. 저는 아직......” “그려, 함께 자는 게 좋아.” “왜요?” 얼마 전에 당신이 잠을 자다가 뇌졸중이 왔는데, 다행히 부인이 깨워서 응급수술을 받고 부작용 없이 치료하였단다. 그런데, 각방을 쓰는 당신 친구 분은 그만 유명을 달리했다는 얘기를 하신다. 나이 들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서로를 챙겨야하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공간을 함께 쓰는 것은 시간을 같이 쓰는 것과 같다. 4대가 함께 살았던 지난 삼년동안, 크게는 1층, 2층으로, 세부적인 공간들도 가능한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힘들었던 부분은 동일 공간으로 인하여 각자의 시간이 제약되는 순간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는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야 좋은 부부인 것으로 인식하여, 깨어 있으나 자고 있으나 항상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였다. 이제 나이 먹었으니 서로의 시공간으로 독립해서 살아 보자는 것이다. 한국 남성중에 은퇴하여 부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하나, 그 동안 독립심을 키운 부인은 황혼이혼은 아니더라도 내 시간을 가지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다. 이해할 수 있다. 은퇴 전, 사회생활을 하던 남성의 시간과 공간 사용에 부부생활이 맞춰졌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젊은이들도 꼭 한 침대를 쓰는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블 침대를 싱글 침대 두 개로 교체하는 부부가 늘었다는 것이다. 부부라고 해서 늘 같은 공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듦에 따른 서로의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항상 독립적으로 따로 따로 지내는 것만도 좋은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따로 또 같이’의 지혜는 신혼에도 황혼에도, 또 공간에도 시간에도 필요하다.

 

따로 또 같이

 

<공부방이냐 서재냐>

    4년간 비워 놓았던 어머니 집을 비우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보관해야 될 물건과 쓸만한 물건을 정리했다. 장인이 쓰시던 큰 원목 책상이 보인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2층, 작은 방을 개조한 나의 공부방에 놓아 보니, 진한 밤색 책상이 아주 멋지다. 책상 옆쪽에 책장을 들이면 좀 좁긴 하겠지만, 그럴 듯한 서재가 될 수 있겠다.

1층, 2층 가릴 것 없이 빈 공간에 채워져 있는 문제의 책들을 정리한다. 장인이 쓰시던 책장과 우리 책장을 나란히 진열하여 주제별로 책들을 옮겼다. 최근에 인문학 공동체 ‘문탁’을 들락거리기 시작했으니 내 책은 책장 한 두 칸 정도이고, 대부분 10년 내공의 아내 책들로 채워진다. 열심히 책들을 정리하고 의기양양하게 "어때?"하며 아내의 폭풍칭찬을 기대한다. 그런데, 뜻밖의 제안을 한다. 책장과 어울리는 그 밤색 커다란 책상을 거실 공간으로 빼내고, 그 책상을 당신이 쓰면 좋겠다는 것이다.

좋을 수 없는 기분을 달래면서 재배치하였다. 전보다 훨씬 무겁다. 그런데, 그곳을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고는, 배치가 훨씬 좋다. 마치, 아내 사무실과(아들놈 표현으로 ‘OOO원장님’) 그녀의 비서 공간에 내가 들어 간 기분이 든다. 흠...... 그래.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은퇴 후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세상은 온통 디지털로 바뀌었고, 나는 디지털 치매 노인에 다가서고 있었다. 모든 일정, 예약 등을 비서가 해주는 생활을 하였으니, 내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면 무슨 단계가 그렇게 많은 지, ID 생성 단계에서 때려 친 적도 있다. 어쩌다 외식을 하려면, 꼭 햄버거 집이 아니어도 이제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는 비서의 마음으로, 바뀐 세상에서 내 스스로 부딪혀 보는 즐거움을 찾기로 했다.

 

 

 

<명상방이냐 악기방이냐>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서 띵똥거렸던 클래식 기타를 다시 연습해보고 싶었다. 한 번도 누구에게 배워보지 않았으니, 연주(?)할 수 있는 곡은 정해져 있고 틀리는 부분은 항상 똑같다. 운 좋게도 동네 근처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첫 시간, 중간에 틀리기는 하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로망스’를 연주했다. 한 곡을 쳤을 뿐인데, 나의 연주자세, 탄현법 등 앞으로 연습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세고비아 시대에 기타를 접한 나는 그의 연주법을 따라 연습하였는데, 그 방법으로는 안 되고 다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오래된 습관을 바꾸는 것은 처음 배우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내가 막혀있던 수준을 넘을 수 있으니, 기꺼이 바꾸기로 하였다. 사는 방법도 바꾸어 갈 텐데, 연주법 정도야 리셋 수준으로 바꿀 수 있다. 맘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하겠지?

2층에서 끝 쪽에 있는 방이어서 제일 조용하고 창밖으로는 숲속만 보이는 아들 부부의 침실을 악기 연습하는 방으로 만들었다. 나의 기타들과 보면대 등을 옮겨 놓았다. 그런데, 아내는 요즘 매일 새벽마다 침대에 앉아서 하는 명상을 그 곳에서 하겠다고 한다. 하여, 그 공간을 텅 비우기를 원한다. 하필이면 왜? 꼭 그곳이어야 하냐고..... 악기방이냐 명상방이냐, ‘악명대전’이 벌어졌다. 아내가 연습하다가 지금은 그만 둔 아코디언을 슬쩍 들여 놓았다. 명상할 때는 어차피 눈감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장인 칠순 기념으로 받은 ‘고불심(古佛心)’의 글씨를 편액해서 걸어 놓아 명상방의 분위기를 내는 것으로 평화협정을 맺었다. 내 마음으로는 악기방이고 아내의 마음으로는 명상방일 것이다. 고집한 이유는 있다. 은퇴 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리라 하였지만, 그동안 가장(家長)의 무게로 무디어진 나의 욕망을 살려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 낸 것 중에 하나가 기타 연주이니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운동 좀 하시죠?>

    생일이다. 우리 가족은 생일에 위시 리스트(Wish List)를 단톡방에 올린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지 허벅지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기구를 올렸다. 페북만 열면 광고에 뜨는 몇 만 원 짜리 그 물건이다. 당뇨가 조금 있어서 약을 먹는데, 당뇨약 끊는 데에는 이 허벅지 운동이 최고라는 광고에 솔깃했다. 그 것을 본 아내가 ‘이 때다’ 싶은지, 1년 짜리 피트니스를 끊어 왔다. 나는 축구, 골프 등 놀이가 수반되지 않는 (근력)운동은 질색이다. 하지만, 어쩌랴. 아내가 함께 운동하자고 내미는 회원등록을 뿌리칠 수 없다. 하루에 서너 시간을 붙어 있을 것이니, 반은 싫고 반은 좋을 것이다. 은퇴 후에 부인이 자기 생활하느라고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불평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난 행운아인 것이지?

처음 보는 기구들이니, 간단하게 그 사용법을 배우고 힘을 써 보았다. 어? 꿈쩍도 안한다. 가만히 보니, 가장 무거운 무게에 걸쇠가 걸려 있다. 슬쩍 바꿔서 25kg에 걸고 들어 보았다. 15회를 한 세트로 3세트를 하라는데, 이 무게에서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무거운 것을 드는 지 궁금하다. 둘러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와 여성들이 운동하고 있다. 여성들은 아닐 것이고, 설마 이 노인들이......? 슬슬 기구들을 돌면서 흘끗 흘끗 그들의 무게를 본다. 대부분 나보다 두 배 정도는 더 드는 것 같다. 흐미...... 저 분들이 저런 무게를 들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그 나이에, 혼자 나와서,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근육을 키워야 하는 곳은 허벅지 뿐 만이 아니었다. 몸도 정신도 운동 좀 해야겠다.

 

 

 

 

반지 원정대를 떠나는 나이든프로도 배긴스처럼.

 

    누구든지 기정 사실화 되어 있는 은퇴를 감안하여 이런 저런 준비를 한다. 하지만 막상 그 때가 오면 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한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은퇴 후에 바로 장모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서 사위노릇을 했고, 아이를 가진 며느리를 불러서 출산하고 아이 키우는 것을 도우며 가장노릇을 이어 갔다. 사회에서 주어진 나의 입체적 자리매김을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가정에서 되새김하였던 것이다.

장모님도, 아이들도 떠나고 남은 새로운 공간을 정리하면서 이제 진정으로 은퇴하였다는 것이 느낌으로 다가 온다. ‘나이든’ 2인 가구 삶의 리듬을 재정립해야 할 때이다. 그 동안 익숙하게 ‘함께’했던 공간과 시간에서 ‘따로’를 찾아내고, ‘따로’했던 시간 속에서 ‘함께’를 찾아내야 한다. 시작은 이제 나는 다른 사람임을,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즐거움을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겠지. 알을 깬 새가 이소(移巢)한 것처럼 텅 빈 아이들 방을 정리하면서, 그 동안 내가 안주하였던 공간-생각-일상에서 이소하는 나를 그려 본다. 한쪽으로 비켜 놓았던 서양 철학공부와 동양 사상 공부, 악기연습, 운동에서 나의 ‘따로’가 시작되었다.

 

 

 

 

반지 원정대에 참가하려는 ‘프로도 배긴스’가 친구 ‘샘’과 함께 평화로운 호비트 마을을 떠나는 경계에 서서,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모험의 세계로 한 발을 내밀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반지의 제왕’같은 모험은 아닐지라도, ‘프로도 배긴스’의 설렘을 등에 지고 ‘나이든’ 새로운 능력들을 찾아 떠나는 기분이다.

가 보 자.

 

댓글 5
  • 2024-04-17 21:11

    신혼과 황혼 사이에서 새로운 능력을 함양해 갈 가마솥샘의 앞날이 흥미진진하게 기대됩니다~~~

  • 2024-04-18 10:16

    은퇴후 글쓰기 13회만에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선 설렘이 느껴져요.^^

  • 2024-04-20 07:11

    근력운동의 세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저는 헬스장에 가는 것이 일상 중 가장 중요한 일과예요.
    하루 1시간이상씩 하는 운동은 저의 생활의 기본기를 단력해주는 아주 중요한 활동이거든요.
    근손실의 최소화가 저의 목표라....들어 올릴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까지 가보려 노력합니다.
    처음 한동안은 몸살이 날 정도로 하셔야 근력이 늡니다. ^^
    가마솥님 파팅~~~

  • 2024-04-20 15:25

    새로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

  • 2024-05-02 16:05

    와 가마솥샘의 고기리 집 이야기를 읽으니까 (1234 글쓰기 걱정과는 별도로..^^) 이번 달 처음으로 방문할 날이 더더 기대됩니다^^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222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쌤!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가마솥
2024.02.17 | 조회 465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 하신다.        파킨슨과 치매를 앓고 있는 장모님이 지난 여름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섬망(譫妄)이 생기고, 혼자 걸음이 힘들어져 화장실 변기 앞에서 실수하기 일쑤이다. 간단한 샤워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야 한다. 혼자 움직이시다가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큰일이 나게 생겼다. 보행 보조기와 이동식 변기를 들였다. 그것도 불안하여, 2층까지 울리는 강력한 무선 차임벨을 설치했다. 이 번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누르신다. 방금 소변을 보셨는데, 또 요의(尿意)를 느끼시나 보다.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돌봄자는 매우 힘들다. ‘그냥 기저귀에 누시면 좀 좋으련만, 굳이 화장실을 가신다고......’ 가끔은 누구에게인지 모를 원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올 봄만 해도 환자 등급을 판정 받기 위하여 용인시 치매센터의 검사를 받으러 가면서, “꼭 맞출 필요가 없다”고 자세히 설명을 하였건만, 우수한 점수로 치매 TEST도 거뜬히 통과(!)하신 장모님이었다. 그 때만 해도 당신 걸음으로 걸어 가셨는데 몇 달 사이에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가을 초입에 등급 판정을 재신청하였다. 집으로 방문한 판정관의 TEST 질문에 이제는 거의 대답을 못하신다. 나와의 문진으로 3등급을 받았다. 겨울이 들어가는 시월에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신 방에 전동침대를 들여 놓았다. 이제는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신다.                                         주치의를 바꿔 보았지만......       대학병원으로 담당 의사를 바꿨다. 노환에서 오는 치매와 파킨슨인데, 이렇게...
가마솥
2024.01.18 | 조회 394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삼살제왕이 이 땅에 내려 오실 제, ...(중략)..... 계백장군 백살신, 관우장군 백살신.....”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 시루떡 앞에서 아래 아(·)자가 나오는 옛 한글로 쓰여 있는 백살기를 읽으신다. 대략 삼십여 분이 걸린다. 어릴 적에는 그 것이 마냥 싫었다. 어서 저 따뜻한 떡을 먹어야 하는데, 할머니 고사(?) 때문에 군침만 삼키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다. 나에게 백설기 떡은 그저 그런 떡이 되었는데, 내 생일날 할머니가 그 백살기를 읽으신다.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며 읽으시는 뒷모습에서 보며, ‘나는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귀신이 있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할머니의 정성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온 것이다.    형제들만의 제사.       우리 집은 이제 방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큰 형님 댁에서 기제사(忌祭祀)로 일 년에 네 번,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어느 해인가 두 분이 성당에 나가신 뒤로는 연미사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또 죄스럽기도 하였다. 특히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신부님의 말씀에 앉았다가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정해진 댓구를 따라해야 하는 미사는 매우 껄끄러웠다. 큰 형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큰 형수님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제사 날에, 우리는(우리집과 작은 형님네) 큰 형님네 아파트 문 앞에서 저녁이 다 될...
“삼살제왕이 이 땅에 내려 오실 제, ...(중략)..... 계백장군 백살신, 관우장군 백살신.....”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생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 시루떡 앞에서 아래 아(·)자가 나오는 옛 한글로 쓰여 있는 백살기를 읽으신다. 대략 삼십여 분이 걸린다. 어릴 적에는 그 것이 마냥 싫었다. 어서 저 따뜻한 떡을 먹어야 하는데, 할머니 고사(?) 때문에 군침만 삼키고 있으니...... 그러다가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다. 나에게 백설기 떡은 그저 그런 떡이 되었는데, 내 생일날 할머니가 그 백살기를 읽으신다. 연신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며 읽으시는 뒷모습에서 보며, ‘나는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귀신이 있어서 나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할머니의 정성이 나의 마음에 들어 온 것이다.    형제들만의 제사.       우리 집은 이제 방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하였다. 제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큰 형님 댁에서 기제사(忌祭祀)로 일 년에 네 번, 조부모와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어느 해인가 두 분이 성당에 나가신 뒤로는 연미사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무언가 섭섭하기도 또 죄스럽기도 하였다. 특히 성당에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신부님의 말씀에 앉았다가 일어 섰다를 반복하며 정해진 댓구를 따라해야 하는 미사는 매우 껄끄러웠다. 큰 형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큰 형수님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제사 날에, 우리는(우리집과 작은 형님네) 큰 형님네 아파트 문 앞에서 저녁이 다 될...
가마솥
2023.12.15 | 조회 331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탄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다. 살랑 살랑 잉어들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도 있지만,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사람, 속도를 내어 걷는 사람, 경보하는 듯이 걷는 사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집중하며 걷는다. 그 들은 걷는 것이 운동인 듯 하다. 연전에 나도 한 동안 탄천을 걸었다. 마눌님이 허리가 나빠졌는데, 걷는 운동을 해야 한단다. 나의 당뇨수치를 걸고 넘어져서 하는 수 없이 ‘함께’ 걸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걸어 드렸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난 그냥 이유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다. 아니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는 것이 싫다. 목적지를 위하여,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운동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같은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자고로 운동이란 축구, 야구, 탁구, 스키, 마라톤 등등 뭔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몸과 마음사이   한 동안 주말 축구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숨이 차고 헐떡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힘들 때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보면 된다. 몇 년을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점점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소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자기 분수를 넘는 움직임을 하려다가 다치는 것이다. 나도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탄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다. 살랑 살랑 잉어들을 감상하며 걷는 사람도 있지만, 팔을 크게 휘두르며 걷는 사람, 속도를 내어 걷는 사람, 경보하는 듯이 걷는 사람,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걷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집중하며 걷는다. 그 들은 걷는 것이 운동인 듯 하다. 연전에 나도 한 동안 탄천을 걸었다. 마눌님이 허리가 나빠졌는데, 걷는 운동을 해야 한단다. 나의 당뇨수치를 걸고 넘어져서 하는 수 없이 ‘함께’ 걸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걸어 드렸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난 그냥 이유없이 걷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다. 아니지,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는 것이 싫다. 목적지를 위하여, 예를 들면 지하철을 타기 위하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운동하기 위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같은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자고로 운동이란 축구, 야구, 탁구, 스키, 마라톤 등등 뭔가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몸과 마음사이   한 동안 주말 축구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숨이 차고 헐떡거리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들끼리 함께 땀 흘리며 호흡을 맞춰 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힘들 때에는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보면 된다. 몇 년을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점점 다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소위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자기 분수를 넘는 움직임을 하려다가 다치는 것이다. 나도 팔이 부러진 적이 있다....
가마솥
2023.10.22 | 조회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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