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현민
2023-07-17 09:06
433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사진에서 누굴까요.

 

 

 

 

 

 

내가 나여도 되는 공간

 

 

종종 외국에 나와 사는 여자애들을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느낀다. 정처 없는 느낌.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떠도는 사람들의 정처 없음을 그들과 나로부터 느낀다.

 가족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나와 친구들의 화두였다. 우리는 만나면 처음엔 웃긴 얘기나 좀 하다가 결국 가족사로 가서 울고 싶지만 울지 못할 것 같은 얼굴들로 끝냈다. 자신의 상처를 바탕삼아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원가족은 집이었는데,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아니었다. 가족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같이 기괴해서 웃겼지만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처량할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에는 자기 탓을 하기가 가장 쉬웠다. 이제는 그때처럼 가족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지겹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핸드폰 녹음기에서 한 시간짜리 녹음 기록을 발견했다. 작년 베를린에서 모였던, 아무도 한국에서 살지 않는 친구들과의 대화였다. 우리는 대안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그 대화는 조금 현실적인 느낌으로 끝났다. 원가족에 대한 결핍을 대안가족으로부터 메꿀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안정과 현재의 혼란과 과거의 결핍은 그대로, 서로 뒤섞이지 않고 영원히 너와 함께 살 거야. 어쩌면 살아가면서 그것을 잘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처 없는 아이들은 필연처럼 비슷한 장소에서 모인다. 예를 들면 퀴어 페스티벌이라던가. 다르게 말하자면, 정상세계에서 이상함을 감지하는 아이들은 이상한 것이 주류가 되는 날에 모인다. 6월은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였다. 내가 사는 뮌헨에서는 6월 24일에 CSD 행사를 했다. CSD는 Christopher Street Day의 약자로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지역의 퀴어 페스티벌 명칭이다.

우연히 이 날짜에 맞춰 튀빙엔에 사는 지해, 쾰른에 사는 성은이 뮌헨에 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서울 퀴어 페스티벌이 가장 크지만, 독일에서는 6월과 7월에 걸쳐 거의 모든 도시에서 CSD 행사를 한다. 당일 아침 우리는 룸메이트들에게 CSD에 가는지 물으며 간다고 하면 가서 만나자고, 안 간다고 하면 왜 안가냐고(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독일에는 16개 주가 있다.

그 중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 주의 지역별 CSD 행사 날짜표

예를 들면 경기도에서만 25개의 지역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있는 것이다. 와웅

 

점심을 넉넉히 먹고, 선크림도 두 번씩 바르고, 서로의 머리를 땋아준 뒤 집을 나섰다. 퍼레이드가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지는 알았지만, 그 시간에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타고 가던 트램이 고장 나 내렸는데 저 멀리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 엄청난 사람들의 색깔과 몸짓, 노래로 저곳이 우리의 목적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가슴이 벅찼고 발이 가벼워졌다. 우리 셋은 폴짝폴짝 뛰면서 신호등을 건너 무리에 들어갔다. 야하게 입었을까봐 나시 위에 마지막 자기검열로 걸친 겉옷을 스르륵 벗었다. 그들과 만난 순간부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리를 걸을 때 아시안이라 익숙히 받는 시선을 느낄 수 없었고, 옷과 화장이 너무 튈까봐 걱정하지 않았고, 더 꾸미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곳에서 나는 이방인과 외국인과 동양인 여자애가 아니었다. 그냥 나는 거기 있었다.

 퀴어의 상징인 무지개가 내 몸에 없다는 게 아쉬워지자마자, 한 사람이 무지개 스티커를 길거리에 서 있는 경찰에게 붙여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만 줄 수 있어? 물으니 그는 나에게 한 뭉치를 주었다. 곧장 가슴팍에, 왼쪽 뺨에, 매고 있는 가방에 붙이고 지해와 성은에게도 붙여주었다.

 

 

퍼레이드는 엄청나게 길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어디에 있었을까? 이러다간 진짜 세상이 바뀌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싸우지 않고, 책을 만들지 않고, 설득하지 않아도 이 흐름과 기세로 세상이 바뀌어버릴 수도 있다고. 물론 그것은 누군가들이 무수히 해왔고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모습이 특이하면 특이할수록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덥썩 안기고, 아무에게나 말을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어디까지가 우리, 퀴어와 앨라이(Alley, 지지자)들이며 어디서부터가 그들, 우연히 길에 있던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멈춰 이 행진을 구경하고 있었고 아무도 화나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는 고함을 지르거나 북을 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이 없었다. 최근 서울 퀴어퍼레이드 개최가 서울 시청으로부터 거부된 것과 매번 퀴퍼에 갈 때마다 입구에서 고성방가로 우리를 위협하는 혐오세력을 웃어넘겨야 했던 시간들이 생각났다. 네가 이곳에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도 너를 위협할 수 없어. 네가 남들과 다르게 때문에 차별받을 일은 없어. 이 간단하고 마땅한 말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다양성이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궁금해 왔다. 그건 혼란이나 공포가 아니었고, 부드럽고 편했으며 달고 벅찼다. 언젠가 이런 것에 유난하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걸으며 생각했다.

 

 

퍼레이드가 끝나는 기점에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팻말을 읽었다.

Equality is not like cake. If someone get’s it. you don't get less.

평등함은 다른 사람이 가지면 네가 적게 얻는 케이크 같은 것이 아니다.

Not same but equal.

똑같은 게 아니라 평등함.

Never apologize for who you are.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 절대 미안해하지 마.

Max-Planck-Gymnasium

막스 플란크 김나지움

 

 

김나지움은 독일에서 4학년부터 12학년이 다니는 중고등학교다. 내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속해있을 때 퀴어 퍼레이드에 학교 깃발을 들고 갔다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해졌을까 싶다. 내가 만난 어떤 어른들은 정말, 그저 차별주의자들에 가까웠다. 다른 건 모두 되는데 퀴어와 페미니즘, 장애, 동물권, 정신병 등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떠나온 시대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왜 어떤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나 가장 나중에 도착할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은 차별과 혐오가 그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뿐인 줄 안다. 하지만 침묵이나 중립 혹은 그들의 한마디도 신체적 폭력만큼이나 유해했다. 지나온 과거에 대해 날 선 질문들이 드는 반면에 지금은 그런 것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 이미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정말로 괴롭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내 옆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말해주고 싶다. Never apologize for who you are. 절대 사과하지 마. 네 존재에 대해서. 네가 너인 것에 대해서 절대 미안해하지 마.

 

퍼레이드 중

 

퍼레이드가 끝나고 오후 2시부터 밤 12시까지 뮌헨 시청 앞에 설치된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공연이 이어졌다. 무대 위에는 성별을 예측할 수 없거나 아니면 너무 예측할 수 있거나, 금기된 말들을 장난처럼 노래하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대체로 웃겼고, 맨 가슴을 흔들었고, 무대 위에서 서로 입을 맞췄고, 노래가 끝나면 엉덩이로 인사를 했다. 무대 한 켠에는 늘 열정적인 수화 통역사가 있었다. 종종 더우면 무리에서 나가 부스를 한바퀴 돌았다. 그 후에는 내 손에 무지개 팔찌와 깃발, 부채와 선캡, 비눗방울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음란 축제라고 부르는 곳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관광객이 365일 붐비는 뮌헨 시청 앞 무대 위의 저 가수가 젖꼭지를 드러내도 괜찮고, 괜찮아야만 하는 일이 나의 생존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는 밤 12시 이후에는 시청 안에서 뒷풀이 파티를 한다고 했다. 시청에서의 퀴어 파티라니 굉장히 구미가 당겼지만, 밤에는 우리 집에서도 파티가 있었기에 9시쯤 돌아갔다.

 

메인 스테이지 위 공연

가슴에 X자로 밴드만 붙이고 나왔는데 그마저도 공연 중에 뗐다.

 

퀴어 페스티벌에 왔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퀴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은 퀴어 정체성 만을 가진 이들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나여서 슬펐거나, 종종 싫었거나, 어떨 땐 내가 나인 걸 미안해 본 기억을 가진 몸들. 쫓겨났거나, 탈출했거나, 싸워봤거나, 그러다가 포기해봤거나, 결핍을 채워보려고 사랑을 갈구했거나, 상처가 커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거나 그런 역사를 가진 몸들이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프라이드가 필요해서, 프라이드를 외쳐야만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 공간에 오게된 이들은 각자의 상처를 발판삼아 서로를  존중한다. 궁극의 고난이 만들어내는 유머와 노래와 춤과 이야기는 차원이 다르게 아름다운 법이다. 이것이 어떤 미래가 될지 아무도 모르고 우리가 과거보다 정녕 낫기는 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겠지만, 나의 몸은 자꾸 그쪽으로 기운다. 

 

 

 

셰어 하우스 파티를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날 했다.

파티 테마는 Gay crop top이었고

현관문 앞에 입장 규칙이 써져 있다.

 

댓글 6
  • 2023-07-17 11:37

    특이할수록 나를 해치지 않을 거란 느낌!! 왠지 알 것 같네.

  • 2023-07-17 18:47

    사실 전 퀴어퍼레이드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썼는데.. 갑자기 옛날 기억이 불쑥 떠올랐어요.
    20년도 전에 토론토에서 퀴어퍼레이드를 참관한 적이 있군요. 그냥 화려하고 신나고 멋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우리나라에는 아직 퀴어퍼레이드가 없었던 때라 굳이 찾아가서 내심 그들의 자유를 부러워하며 구경꾼으로 보고 왔었군요.
    구경꾼이었으니.. 참여는 아닌 게 맞군요!ㅎ
    현민의 글을 읽으며 퀴어한 공간과 시간이 취약하고 상처입은 개인들을 치유하는 느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아요.
    내년에는 퀴퍼에 꼭 가서 그 느낌 저도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안심하고 나를 드러내도 되는 작은 해방구들을 우리 함께 여기저기에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2023-07-17 19:18

    저도 서울시청 앞에서 퀴퍼 구경만 한번 하고 직접 참여해본 적은 없는데 꼭 가고 싶네요
    무지개 스티커 뺨에 붙인 현민의 신나는 얼굴이 참 좋아요
    글은 항상 좋구요~^^

  • 2023-07-17 19:37

    저도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이번에 튀빙겐 퀴퍼에 처음 참석해봤어요. 한국 퀴퍼와 달리 평온하고 혐오세력 없는 퍼레이드가 낯설었던 것, 평온하게 그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와 해방감-에 공감돼요. 마지막 문단이 너무 와닿고요! 이렇게 현민님 글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7-18 07:47

    "각자의 상처를 발판삼아 서로를 존중한다" 좋아요~~^^

    • 2023-07-18 08:19

      찌찌뽕! 저도 이 문장이 콕! 독일의 문화가 부럽네요!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현민
2024.04.17 | 조회 203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5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28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현민
2023.11.21 | 조회 348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현민
2023.09.19 | 조회 38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