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오래 보아야 예쁘다

루틴
2023-11-30 21:48
271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받는 듯 은은한 광택이 돈다.

 

2. 정화의 생활명품

 

11월 25일 토요일자 경향신문에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칼럼이 하나 실렸다. 이 칼럼에서 다룬 <단순한 열망>에서는 상업적 미니멀리즘 트렌드의 한 갈래로 ‘이케아 미니멀리즘’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미니멀리즘은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처럼 여겨져 왔는데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이케아와는 언뜻 매치되지 않아 보였다. 이케아 미니멀리즘이란 한번 쓰고 버려도 상관없는 값싼 물건들을 사는 ‘가성비’ 좋은 소비를 일컫는 말이다. 물건의 의미를 상실한 채 언제든 대체가능한 물건을 소비하는 현상은 값싼 노동력과 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주변 물건과 좋은 관계 맺기에 대해서 사유한다.

 

 미니멀한 환상

 

임수는 물욕이 없고 대체로 가성비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편인데, 이러한 소비성향이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와 가까워 보여 나름 자부심을 느껴왔지만, 사실 물건과의 관계맺기를 포기해 버리는 이케아 미니멀리즘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물건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은 물건을 험하게 쓰는 태도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정화는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물건을 종종 사는 편이다. 양쪽 날이 분리되는 가위, 초경량 휴대용 독서대, 크기를 반으로 줄인 종이티슈, 발목을 조이지 않는 방한양말 등등. 임수가 생각하지도 못한 생활 속 불편한 점을 찾아내서 일상을 좀 더 윤택하게 하는 물건들이 많다. 보통 이런 생활물품을 소비하다보면 물건에 지배되는 경우가 많고 자본주의에 이끌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는 경우가 허다한데, 정화는 좀 달랐다. 자신의 생활에 꼭 맞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물건을 잘 찾는 안목이 있었다. 가히 정화의 ‘생활명품’들이었다(<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중)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선

 

정화의 생활명품은 쓰는 사람과 물건의 TPO(Time, Place, Occasion)가 적절하다. 쓰는 사람의 입장만이 아니라 그 물건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돕는다. 쓰고 난 뒤 정리는 물론이고, 망가져있으면 방치하지 않고 보수하고, 떠나보내야 할 때는 감사함을 표시한다. 새로운 물건으로 대체되어도 옛날 물건과의 추억을 종종 떠올리기도 한다. 정화는 값에 상관없이 자신의 삶 속에서 함께하는 물건들을 참 소중히 여긴다. 정화에게 물건은 한번 쓰고 버려도 상관없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정화와 함께하는 물건들은 자연스레 생활명품 반열에 오른다.

 

정화의 생활명품들

 

물건에게도 예를 다한다고 생각을 하니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보이던 정화의 태도가 물건과 소통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임수는 사람들을 부품처럼 취급하는 자본주의 실상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정작 물건은 함부로 쓴다. 인간중심적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임수는 오래된 물건이지만 엣지있게 잘 사용하고 싶은 로망이 있다. 어느 도시의 오래된 건물이나 물건에 빛이 날 때 왠지 모를 따뜻함을 느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귀찮아서 대충 쓰게 되거나 또는 안 쓰고 말지가 된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소비하는 즐거움마저 잃게 된다.

 

3. 전전긍긍이 아닌 건건함으로

 

물건에도 예를 다하는 정화의 비결은 뭘까? 유독 정화의 물건에서 광이 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느낌 있게 바꾸는 일은 단순히 감성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옆에서 차근히 지켜보니 감성을 넘어 성실함이 동반된다. 정화는 물건을 보좌하듯이 바삐 움직인다. 때가 되면 꺼내서 닦고, 사용할 때도 햇빛에 바래지 않게 위치를 조절하고, 혹시나 망가진 부분이 있으면 수리한다. 계절 물건은 방치하지 않고 깨끗하게 닦아서 먼지가 앉지 않게 잘 보관해둔다. 그러면 다음해에 그 물건이 같은 자리를 또 채운다.

 

크리스마스 장식품뿐 아니라 계절별 이불과 옷, 선풍기, 온열기, 자동차, 하루하루 사용한 물건들 모두 감사히 사용하고 제 위치에 정돈해놓는다. 한번은 브리타 정수기통 아래가 조금 깨져서 울퉁불퉁해졌었다. 정화는 싱크대 상판이 긁히지 않고 깨진 부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정수기통의 위치를 실리콘 받침대 위로 정한 후 임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의 말도 남긴다. 하지만 임수의 스케일에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정화와 임수는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어긋남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밑바닥이 거친 브리타 정수기통을 싱크대 상판에 함부로 두는 순간 정화의 잔소리가 날아온다. 한소리 들은 임수는 괜히 심통이 난다.  

 

임수도 정화가 잘 관리한 물건과 공간을 쓸 때는 기분이 참 좋다. 하지만 자신도 지켜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귀찮고 답답해진다. 그런 정화에게 "이런 거 다 지키고 살면 치매 걸린다"고 훈수를 둔 적도 있다. 집에서 조차 살얼음 걷듯 전전긍긍하는 모습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임수에게는 상기를 계속 시켜도 놓치는 것들이 정화에게는 몸속 어딘가에 자동키가 켜지듯이 스텝바이스텝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구삼효, 군자가 종일토록 그침 없이 힘쓰며 저녁이 되어도 두려운 듯이 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내 인생의 주역 1.중천건, 전전긍긍이 아니라 종일건건>

 

청소를 한번 할라 치면 임수는 물을 사방 군데 다 튀겨가며 그동안 미뤄놨던 청소란 청소를 다하고 지쳐서는 다른 일들은 뒷전이다. 반면 정화는 소리 없이 사부작 사부작 일을 한다. 임수입장에서는“청소 했었어?”이럴 정도로 소소하게 그리고 꾸준히 한다. 소소하다는 건 청소를 한 번에 끝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은 변기, 내일은 욕조 이렇게 나눠서 한다. 근데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니 정화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물건과 공간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서 윤이 나는 굉장히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초반에 많이 싸웠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한번 할 때 끝장을 보는 임수와 달리 조금씩 건건히 하는 정화, 사주를 공부한 뒤 임수는 변명을 해보기도 했다. 정화는 안정적인 기운을 타고났으니 주변 환경이 안정적이어서 건건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임수는 불안정한 기운을 타고났으니 물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한다고 말이다. 

 

정화는 좋아하는 걸 오래 즐기기 위해서 한 번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매사를 건건하게 수행한다. 그래야 내일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항상 꾸준하다. 그런 모습이 때로는 부럽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주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 그 태도는 비난과 싸움의 대상에서 벗어난다.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상대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와 달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볼 수도 있다. 임수가 하나부터 열까지 정화가 요구하는 말을 다 들을 수는 없어도 노력은 해볼 수 있다. 에너지를 한곳에만 잔뜩 쏟는 방식을 고쳐보기도 하고, 좀처럼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와도 다독여 볼 수 도 있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자주 비추며, 정말 하기 싫을 때는 양해를 구해보는 노력을 해본다. 그래도 싸우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4. 마치며

 

이번 연재가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편 마지막 글이다. 가까운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건 상대의 역할 같기도 하다. 처음부터 좋게 보이지 않는다. 나와 다르고 어색하고 이해가 안갈 때가 많다. 그래서 자주 싸운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나를 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믿음만 있다면 귀를 기울여보자. 그러다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다보니 티격태격했지만 4년의 세월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댓글 6
  • 2023-12-01 09:32

    아니 제 방한양말이 왜 저기에 있는 건가요? 매우 민망하네요^^;;
    제가 그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잊고 지냈던 마음을, 별것도 아닌 제 물건을 예쁘게 보아준 임수에게 고맙습니다.
    임수편 마지막 연재글 잘 읽었습니다. 일년동안 너무 고생많았어요^^

    • 2023-12-01 14:34

      글구 저 양말은 다리가 잘 붓는 당뇨질환자용 양말인데, 발목부분이 낙낙하고 재질이 도톰해서 저는 방한용 양말로 신고 있어요.
      크리스마스 산타 양말로도 활용 가능합니다.

  • 2023-12-01 13:08

    생활명품! 끌리는 용어예요^^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그간 연재하느라 임수 수고 많았어요!!

  • 2023-12-01 13:46

    다른 점이 많은 임수와 정화, 둘이 맨날 싸운다고 쓰면서도 두 사람이 서로를 살피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세심하군요!

  • 2023-12-01 14:05

    그래서 우리 임수님이 어쩌다 정화님 이야기할 때면
    눈 속에 하트도 있고 별도 있고 양말도 있었군요. ^^

    사부작거리며 서로를 위해 마음 쓰는
    정임합목하우스 포에버~~~🙏

  • 2023-12-01 16:09

    루틴, 애쓰셨습니다~~ 차이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군요^^ 알흠답습니다그려~~~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무사
2023.12.31 | 조회 373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루틴
2023.11.30 | 조회 27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2023.10.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2024 제주 일년살이   추석 연휴에 임수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조천 바닷가 부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가득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했다. 충분히 쉬면서 (읽어야할 책 말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설렁설렁 동네길을 걷고 동네 이모네집(옥이이모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짐은 단출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간단한 음식만으로 보름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한림 <달리책방>에 가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올 3월 문탁샘(<이반일리치 강의>)과 기린샘(<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의 북토크가 열렸었다. 쥔장분들(달리님, 어리님)은 명절 첫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화는 1박 2일 동안 종횡무진 이어졌다. 루틴 보살의 사주토크, 북토크 뒷이야기, 책이야기, 나무이야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었고, 맛집에서의 저녁 식사, 해장국, 느지리오름 아침 산책, 커피까지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무조리실>의 제주토박이 명절정찬도 감사한 식사였다. 이뿐이랴. 함덕 서우봉에서 바라본 슈퍼문, 붉은오름 정상에서 마주한 오름군 파노라마, 친구들이 소개해 준 사라봉, 별도봉의 산책길도 참 예뻤다. 바로 이 별도봉 산책길에서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특별전 전시 주제(이주하는 인간, Homo migratio)마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의 제주...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2023.10.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2024 제주 일년살이   추석 연휴에 임수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조천 바닷가 부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가득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했다. 충분히 쉬면서 (읽어야할 책 말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설렁설렁 동네길을 걷고 동네 이모네집(옥이이모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짐은 단출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간단한 음식만으로 보름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한림 <달리책방>에 가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올 3월 문탁샘(<이반일리치 강의>)과 기린샘(<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의 북토크가 열렸었다. 쥔장분들(달리님, 어리님)은 명절 첫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화는 1박 2일 동안 종횡무진 이어졌다. 루틴 보살의 사주토크, 북토크 뒷이야기, 책이야기, 나무이야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었고, 맛집에서의 저녁 식사, 해장국, 느지리오름 아침 산책, 커피까지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무조리실>의 제주토박이 명절정찬도 감사한 식사였다. 이뿐이랴. 함덕 서우봉에서 바라본 슈퍼문, 붉은오름 정상에서 마주한 오름군 파노라마, 친구들이 소개해 준 사라봉, 별도봉의 산책길도 참 예뻤다. 바로 이 별도봉 산책길에서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특별전 전시 주제(이주하는 인간, Homo migratio)마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의 제주...
musa
2023.10.31 | 조회 39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반려식물들을 소개합니다       0. 인트로 :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임수 : 정화야.. 정화야.. 방울토마토가 이상해진 거 같아. 내가 사고 쳤나봐ㅠ 정화 : (자고 있다가) 어? 방울토마토가 왜? 임수 :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이리와봐 (방울토마토 앞에 모여) 정화 : 어..어.. 이거 좀 이상한데??     정임합목의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화가 밤샘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휴일 아침, 임수는 베란다에 심은 지 한 달 정도 된 방울토마토 모종의 곁순*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긴장도 했지만 어느새 과감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곁순치기와 사뭇 달라보였다. 순간 등짝이 오싹해졌고 큰 사고를 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정화를 깨워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식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정화도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감지했다. 곁순이 아닌 원줄기를 모두 잘라서 외목대 방울토마토를 만든 것이다. 식물분자생물학 학위는 초보 식집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관심이 지나쳐서 반려식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몰아넣기도 했고, 바쁠 때는 물주는 것조차 버거웠던 식집사 생활이 거의...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반려식물들을 소개합니다       0. 인트로 :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임수 : 정화야.. 정화야.. 방울토마토가 이상해진 거 같아. 내가 사고 쳤나봐ㅠ 정화 : (자고 있다가) 어? 방울토마토가 왜? 임수 :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이리와봐 (방울토마토 앞에 모여) 정화 : 어..어.. 이거 좀 이상한데??     정임합목의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화가 밤샘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휴일 아침, 임수는 베란다에 심은 지 한 달 정도 된 방울토마토 모종의 곁순*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긴장도 했지만 어느새 과감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곁순치기와 사뭇 달라보였다. 순간 등짝이 오싹해졌고 큰 사고를 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정화를 깨워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식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정화도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감지했다. 곁순이 아닌 원줄기를 모두 잘라서 외목대 방울토마토를 만든 것이다. 식물분자생물학 학위는 초보 식집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관심이 지나쳐서 반려식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몰아넣기도 했고, 바쁠 때는 물주는 것조차 버거웠던 식집사 생활이 거의...
루틴
2023.10.01 | 조회 395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무사
2023.08.31 | 조회 49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