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musa
2023-10-31 21:02
392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2023.10.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2024 제주 일년살이

 

추석 연휴에 임수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조천 바닷가 부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가득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했다. 충분히 쉬면서 (읽어야할 책 말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설렁설렁 동네길을 걷고 동네 이모네집(옥이이모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짐은 단출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간단한 음식만으로 보름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한림 <달리책방>에 가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올 3월 문탁샘(<이반일리치 강의>)과 기린샘(<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의 북토크가 열렸었다. 쥔장분들(달리님, 어리님)은 명절 첫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화는 1박 2일 동안 종횡무진 이어졌다. 루틴 보살의 사주토크, 북토크 뒷이야기, 책이야기, 나무이야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었고, 맛집에서의 저녁 식사, 해장국, 느지리오름 아침 산책, 커피까지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무조리실>의 제주토박이 명절정찬도 감사한 식사였다. 이뿐이랴. 함덕 서우봉에서 바라본 슈퍼문, 붉은오름 정상에서 마주한 오름군 파노라마, 친구들이 소개해 준 사라봉, 별도봉의 산책길도 참 예뻤다. 바로 이 별도봉 산책길에서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특별전 전시 주제(이주하는 인간, Homo migratio)마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의 제주 여행은 '또 와야지'하는 막연한 제주앓이로 끝났었는데, 이번 여행은 '2024 제주 일년살이!!'라는 야심찬 계획으로 이어졌다.

매일 아침 숙소 앞 바닷가 산책을 했다. 임수가 많이 좋아했다.

 

우리의 소원은 토일~​

 

올 3월 2일로 기억한다. 백수가 된 지 1일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 산책을 다녀와서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각자 출근복(임수)과 일상복(정화)으로 갈아입었다. 그 순간 망연자실해하던 임수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 표정에는 아마도 '정화가 진짜 퇴직을 하긴 했구나. 나만 출근을 해야하는구나. 흑ㅜㅜ' 같은 심정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퇴직 이후 한동안은 표정관리를 했다. 내딴에는 임수가 부러워하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왜 아니겠는가? 나 역시 직장인이었을 때 소원은 통일, 아니 토일(토요일, 일요일)이었으니 말이다.

제주에서 1년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임수가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퇴직 후 둘이 함께 공부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략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꾸릴 당시만 해도 임수의 이른 퇴직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번내쓴'을 전제로 한다면 내가 그동안 저축한 돈은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부족하지도 않았다. 내친김에 은퇴 후 예상되는 한 달 생활비를 헤아려 보았다. 역시 지금 가진 자산만으로 우리 둘이 함께 생활하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정임합목 톡방 공지사항에도 내역을 올려놓았다. 분명 임수도 보았을텐데 이틀동안 이렇다할 언급이 없었다. 사흘이 지나고나서야 임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살짝 현타가 왔다고. 퇴직하고픈 마음이 앞서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객관적 수치로 정리된 표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고. 미안한 맘도 들었다고 했다. 정화가 직장생활하는 내내 아껴 모은 돈인데... 혼자 쓰면 좀 더 여유있게 쓸 수 있을텐데...라며.

 

 

2023 백수 오딧세이​

 

많은 것이 불투명했던 직장 신입 시절. 그래도 2023년에 꼭 퇴직하겠다는 결심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내가 쓰는 아이디나 메일 주소에 '2023'이 붙어있는 이유다. D-5000부터 디데이 카운트를 했던 것 같다. 신입 때는 월급의 50%를 저축하기도 힘에 부쳤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연봉이 오르면서부터는 월급의 70% 이상을 저축할 수 있었다. 백수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모았고 마침내 올해 퇴직할 수 있었다. 반면 임수는 대학원을 마친 후 직장생활을 한지 이제 9년. 임수 역시 누구보다 아끼며 저축했지만, 재직기간이 길지 않다보니 우리 둘의 저축액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몇년 전 집을 사느라 대부분 지출했고, 대출도 받았다. 그래도 우리 성실한 임수는 내년 8월이면 남아있는 대출금을 다 갚는다.

현상분석을 끝내고보니 '2024 제주 일년살이'의 꿈은 조금 멀어져 있었다. 열망에 취한 나머지 우리 둘다 현실감이 떨어져 있었나보다.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임수의 퇴직을 위해서는 세 가지 선결 과제가 있었다. 우선, 백수 두 마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고, 다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줄이는 것,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미안해하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둘다 물욕이 강하지 않다. 유행에 둔감하며, 편하고 부담없는 물건을 좋아하는 실용파다. 일년 전 이사오면서 인테리어도 최소한만했다. 떡하니 멀쩡하게 붙어있는 타일을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뜯어낼 수는 없었다. 썩지도 않을 폐기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중력에 못이겨 떨어질 때까지는 쓰기로 했다. 신기하게 각자 쓰던 전자제품도 냉장고 빼고는 겹치지 않아서 버리거나 교체하지 않고 합방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정화에게는 통돌이 세탁기가, 임수에게는 건조기가 있는 식이었다. 새 물건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다는 것, 돈을 벌어서 얻고 싶은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은 이른 퇴직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과 함수관계이니 욕망을 줄이면 필요한 돈의 양 역시 줄어들 것이다.

우리집엔 그 흔한 꽃병 하나가 없다. 잼병이다.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두번째와 세번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정임합목 공동퇴직을 위한 프로젝트. 이름하야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 무진장이란 문탁네트워크에서 실험 중인 비자본주의적 공동생활기금으로 자본주의체제를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를 흔들기 위해 2016년 11월(정식출범 2017년 4월) 문탁회원 24명이 각 50만원씩을 추렴하여 조직했다.(<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122-123)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꾸리고 살림을 합치면서 기존에 쓰던 전자제품을 자연스레 합방시킨 것처럼 자산을 넘어 마음까지 합방하는 퍼포먼스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있는만큼 내놓고 함께 쓰려면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놓는 마음도 쓰는 마음도 모두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해야 지속가능하다. 이역시 그간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증여와 순환의 정신이면서 정임합목이 함께 살며 터득한 돌봄의 기술이기도 하다.

내년 8월 임수가 대출을 다 갚는 시점으로부터 3년을 기산하기로 했다. 그 3년 동안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놓은 저축금으로 생활비를 쓰고, 임수의 월급은 최소한의 용돈과 공부비용을 제외하고는 저축을 하기로 했다. 목표금액을 모으는 것보다 막연한 불안함과 미안함을 없애기 위한 퍼포먼스의 의미가 더 강하다. 믿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임수야말로 '70% 저축'에 최적화된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왜냐고? 임수에게는 저축을 방해하는 이른바 '저축 5적'이 없으니까. 1) 식사 후 마시는 커피습관이 없다. 2)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아~ 입을 옷이 없어"라는 말은 사실 "아~ 신상이 없어"라는 말이라던데, 임수의 옷장에는 정말 입을 옷이 없다. 진짜 없다.ㅎㅎ(11월 9일 주워가게를 노려봐야겠다!!) 3) 점심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4) SNS를 별로 하지 않는다. 5) 무엇보다 저축의 목적(이른 퇴직!!)이 확고하다.

 

 

3년동안 우리는 함께 생활비 가계부를 쓰면서 소비패턴을 체크해나갈 것이고, 더불어 공부와 대화를 통해 마음의 상태도 살필 것이다. 그 과정이 녹록치는 않겠지만, "돈도 섞고 마음도 섞으면서 함께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131) 문탁 공동체 무진장의 앞선 발걸음에 기대며 가보기로 했다.

결국 '2024 제주 일년살이'의 꿈은 장렬히 전사했지만, 대신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을 낳았다. 실험을 마칠즈음이면, '2027 제주 일년살이' 혹은 다른 무엇으로 변용되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3년후쯤 정임합목 구성원은 전원 퇴직한다. 우리는 3년이라는 완충의 시간, 중간 지대를 건너며 잊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다. 돈은 욕망과 함수관계에 있다는 것, 불안함과 두려움의 대상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드문 변수이며, 보통은 욕망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 무엇보다 마음을 모으기로한 우리의 고민과 선택의 무게를 말이다.

 

댓글 12
  • 2023-10-31 22:33

    와앙~~~무진장이 정임들에게 이렇게 영감과 실험을 주다니요~~완전감동동~😍

    • 2023-11-01 10:34

      무진장을 소개해주시고 통찰을 주신 나은영 작가님~ 스페셜 땡스^^
      <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 두번째 읽으니 글이 더 더 좋네요^^

  • 2023-11-01 08:04

    늘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퇴직하기위한 선결과제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있었어요. 퇴직은 하고싶은데 선의를 받아드릴 마음도 온전하지 않다는 점을 이번 일로 알게되었습니다~미안함을 넘어 이상한 자존심마져도 함께 풀어야하는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먹고산다는건 돈만이 아니고 마음도 함께 섞여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어요~!
    중간지대 퍼포먼스에 의미를 부여해준 정화에게도, 영감을 준 무진장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

  • 2023-11-01 09:24

    그대들, 진짜 힙하다!!
    완죤 리스펙^^

    글구 내가 뭐라도 보탤게. 임수옷장 채우기? 꽃병 나눠주기? 언젠가 제주일년살이에 보태기?(이건 사적 야심이 들어가있음..ㅋㅋ)

  • 2023-11-01 09:40

    와~ 멋집니다!
    그런데 비급하나 더 알려드려요.
    무진장 만이 아니라 연대기금, 길위기금, 문탁의 회계 거의 모든 곳에서 서로의 돈을 섞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오셔서 자세히 보시면 더 많은 영감을 얻으실 듯.^^
    그러니.. 간혹 공부방에도 왕림해 주시옵기를..ㅎㅎㅎ

  • 2023-11-01 09:51

    와~~~~~
    두분 넘 멋져요!!

  • 2023-11-01 10:41

    정임합이 목이 되어가네요! 진짜 멋져부러~~~~^^

  • 2023-11-01 11:04

    두 분 넘 멋지네요! 제주도 응원합니다(사심가득?)!!
    D-5000 이라니. . 대단하십니다!

  • 2023-11-01 13:47

    무진장에서 오히려 배우러 가야 될 거 같아요. 응원합니다^^

  • 2023-11-01 14:31

    그렇게 체계적으로다가 난잡해질 수 있는 두분의 우정이 너무 부럽네요~ 저도 응원 보냅니다^^

  • 2023-11-02 14:09

    진짜 대단하네요^^ 2027년 제주 일년 살이 화이팅!

  • 2023-11-05 17:33

    그야말로 긴장감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이야기네요~
    읽으면서 응원도 하게 되고 기대도 하게 됩니다!
    멋져요~~~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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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23.12.31 | 조회 374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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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2023.11.30 | 조회 27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2023.10.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2024 제주 일년살이   추석 연휴에 임수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조천 바닷가 부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가득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했다. 충분히 쉬면서 (읽어야할 책 말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설렁설렁 동네길을 걷고 동네 이모네집(옥이이모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짐은 단출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간단한 음식만으로 보름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한림 <달리책방>에 가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올 3월 문탁샘(<이반일리치 강의>)과 기린샘(<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의 북토크가 열렸었다. 쥔장분들(달리님, 어리님)은 명절 첫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화는 1박 2일 동안 종횡무진 이어졌다. 루틴 보살의 사주토크, 북토크 뒷이야기, 책이야기, 나무이야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었고, 맛집에서의 저녁 식사, 해장국, 느지리오름 아침 산책, 커피까지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무조리실>의 제주토박이 명절정찬도 감사한 식사였다. 이뿐이랴. 함덕 서우봉에서 바라본 슈퍼문, 붉은오름 정상에서 마주한 오름군 파노라마, 친구들이 소개해 준 사라봉, 별도봉의 산책길도 참 예뻤다. 바로 이 별도봉 산책길에서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특별전 전시 주제(이주하는 인간, Homo migratio)마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의 제주...
  (정임합목형) 무진장 실험   2023.10.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2024 제주 일년살이   추석 연휴에 임수와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조천 바닷가 부근 한 곳에만 오래 머물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 가득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요가를 했다. 충분히 쉬면서 (읽어야할 책 말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설렁설렁 동네길을 걷고 동네 이모네집(옥이이모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짐은 단출했다. 캐리어 두 개와 간단한 음식만으로 보름을 사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한림 <달리책방>에 가보기도 했다. 이곳에서 올 3월 문탁샘(<이반일리치 강의>)과 기린샘(<나는 공동체로 출근한다>)의 북토크가 열렸었다. 쥔장분들(달리님, 어리님)은 명절 첫 손님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대화는 1박 2일 동안 종횡무진 이어졌다. 루틴 보살의 사주토크, 북토크 뒷이야기, 책이야기, 나무이야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었고, 맛집에서의 저녁 식사, 해장국, 느지리오름 아침 산책, 커피까지 더할나위 없는 시간이었다. 섬에서 명절을 보내는 이들을 위한 <무조리실>의 제주토박이 명절정찬도 감사한 식사였다. 이뿐이랴. 함덕 서우봉에서 바라본 슈퍼문, 붉은오름 정상에서 마주한 오름군 파노라마, 친구들이 소개해 준 사라봉, 별도봉의 산책길도 참 예뻤다. 바로 이 별도봉 산책길에서 작당모의가 시작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 국제특별전 전시 주제(이주하는 인간, Homo migratio)마저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그동안의 제주...
musa
2023.10.31 | 조회 392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반려식물들을 소개합니다       0. 인트로 :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임수 : 정화야.. 정화야.. 방울토마토가 이상해진 거 같아. 내가 사고 쳤나봐ㅠ 정화 : (자고 있다가) 어? 방울토마토가 왜? 임수 :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이리와봐 (방울토마토 앞에 모여) 정화 : 어..어.. 이거 좀 이상한데??     정임합목의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화가 밤샘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휴일 아침, 임수는 베란다에 심은 지 한 달 정도 된 방울토마토 모종의 곁순*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긴장도 했지만 어느새 과감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곁순치기와 사뭇 달라보였다. 순간 등짝이 오싹해졌고 큰 사고를 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정화를 깨워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식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정화도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감지했다. 곁순이 아닌 원줄기를 모두 잘라서 외목대 방울토마토를 만든 것이다. 식물분자생물학 학위는 초보 식집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관심이 지나쳐서 반려식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몰아넣기도 했고, 바쁠 때는 물주는 것조차 버거웠던 식집사 생활이 거의...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반려식물들을 소개합니다       0. 인트로 :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임수 : 정화야.. 정화야.. 방울토마토가 이상해진 거 같아. 내가 사고 쳤나봐ㅠ 정화 : (자고 있다가) 어? 방울토마토가 왜? 임수 :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이리와봐 (방울토마토 앞에 모여) 정화 : 어..어.. 이거 좀 이상한데??     정임합목의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화가 밤샘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휴일 아침, 임수는 베란다에 심은 지 한 달 정도 된 방울토마토 모종의 곁순*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긴장도 했지만 어느새 과감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곁순치기와 사뭇 달라보였다. 순간 등짝이 오싹해졌고 큰 사고를 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정화를 깨워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식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정화도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감지했다. 곁순이 아닌 원줄기를 모두 잘라서 외목대 방울토마토를 만든 것이다. 식물분자생물학 학위는 초보 식집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관심이 지나쳐서 반려식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몰아넣기도 했고, 바쁠 때는 물주는 것조차 버거웠던 식집사 생활이 거의...
루틴
2023.10.01 | 조회 395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무사
2023.08.31 | 조회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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