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함께 살기, 베이스캠프-되기

무사
2023-05-31 12:39
441

 

함께 살기, 베이스캠프-되기

 

2023.5.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는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잠시 제주에 있다. 

 

여기는 제주다.

여기는 제주다.(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5월 들어 자기배려의 기술 글쓴이들로부터 연재 마감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외침이 들려왔다.(그리고 이는 결코 남일이 아니었다.) 글쓴이들의 탓만도 아니다. 솔직히 5월은 그럴만하지 않은가. 각종 법정(과 대체) 공휴일도 많고, '가정의 달'이라는 타이틀은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뭘 하거나 어디를 가야할 것만 같은 부담을 준다. 또 노동절(5월 1일)로 문을 열고 세계 금연의 날(5월 31일)로 문을 닫는 아이러니한 달이기도 하다. 진정 금연을 하려면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나 하는 잡(JOB)생각이 들게 만든다. 각종 민주화 관련 기억도 행사도 많은 '오월의 사회과학' 달이기도 하다. 이뿐이랴? 여름 초입을 앞두고 늦은 봄 나들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는 조급함도 들게 하니 어찌 바쁘지 않겠는가. 어찌 연재 마감을 맞출 수 있겠는가. 정없게 말이다!

 

 

수용성과 휘발성의 땅, 제주

지난 4월 글쓰기의 기쁨(0.01%)과 슬픔(99.99%)을 나누는 시간에 글감과 아이디어의 속성에 대한 간증이 터져나왔다. "샤워할 때만 반짝 생각났다가 곧바로 물에 쓸려 녹아버리니, 분명 아이디어는 수용성이다."(D씨), "샤워가 끝날 때까지 안녹게 붙잡고 있었는데, 메모하려고 거실로 급하게 나오는 도중 바람에 휘발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휘발성이다."(R씨) 모두 박장대소하며 격하게 동의했다. 지금은? 격하게 우울하다. 연재 마감 이틀을 남겨두고 부랴부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여차저차 나는 짐과 떨어져 입은 옷을 또또 입으며 친구들의 적선에 기대어 이틀을 견뎌야 했고, 배터리 아웃된 노트북은 연재 마감 이틀 전에야 충전잭과 상봉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곳 제주는 사면이 바다에 비도 자주 오고 바람도 많이 부니, 과히 수용성과 휘발성의 땅이라 할 수 있겠다.(죄다 녹고 훨훨 날아가버린다.)

 

 

 

나에게 제주는...

한때 제주에서 살아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2009년 제주로 이주한, 커뮤니티 비혼친구들 집에 묵은 직후였다. 그들은 제주에 홈스테이를 마련하고 커뮤니티 친구들에게 오픈했다. 에어비앤비의 초창기 버전쯤 되려나. 제주에 푹 빠져버린 나는 '퇴직 후 제주살이' 프로젝트를 위해 월급의 70% 이상을 저축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종 재테크 정보가 넘쳐나고 '파이어족'이라는 조어까지 생겼지만, 당시에는 그냥 무작정 아끼고 저축하는 게 다였다. 그래도 그렇게 만든 통장들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마련하는 쌈짓돈이 되었으니, 제주는 그야말로 정화와 임수의 가족-되기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리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청약을 넣고 저축을 열심히 하다보면 집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코비드 19가 촉발한 글로벌 양적 완화 정책은, 이런 바람을 순진하다고 비웃었다. 주춤했던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작은 아파트의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제주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퇴직을 몇년 앞둔 시점이었다. 20년 동안 월급의 70%를 저축했는데도 집을 살 수 없는 세상이라니.. 허망했다. 그 즈음 함께 공부하던 학인과 공동 주거 실험을 해보고자 의기투합했다. 운 좋게도 마음에 드는 집을 빨리 만났고,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합리적인 가격에 매수할 수 있었다.

 

 

돌봄은 물론 갈등 역시 필수템!

<비혼 1세대의 탄생>(2020) 홍재희 저자의 진단(1970년대에 출생하고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로 1990년대 이후 확산된, 사회적・개인적 삶의 새로운 지배 규칙으로 향유한 비혼여성들)대로라면 내 친구들 대부분은 '비혼 1세대'에 속한다. 친구들과 "제주에서 모여 살자. 아니 은평구 슬세권(파자마에 슬리퍼신고 한잔 나눌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살며 서로 돌보자"며 공동 주거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건물을 하나 사서 1층은 공용 공간으로 하고, 2~4층은 개별 주거 공간으로 만들자." 가진 것도 진척된 것도 별로 없고, 얘기를 나누던 친구 중 몇몇은 몇 해 전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물론 차이는 존재했다. 경제적 여건이 조금 낫거나 발빠른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자가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흡족하지 않은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고, 주거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좀 다른 형태의 주거 공간에 속해있던) 나보다 한참 앞서 치열하게 고민했고, 여러 방면으로 대안을 마련해왔다. 하우스를 쉐어하기도 하고, 같은 동네에 살면서 주거 공간은 달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부장제에 신물이 난, (상상력이 부족한) 결혼제도에 반대하는, 천편일률적인 주거정책에 반기를 든, 비혼친구들은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함께 살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함께 살기는 안전과 주거 여건 개선을 넘어 직업적(대부분 시민단체 활동가, 연구자, 프리랜서 등이었다.) 애환 나누기, 생활 노동 나누기, 돌봄 나누기,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의 애도로 여전히 실천되고 있다.

 

비혼친구들의 서로 돌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필요조건이 되어 간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에피소드처럼 홀로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될경우 이는 필시 비상상황! 비상연락망을 돌려 수소문하고 체크한다. 우울증, 고혈압 같은 대사증후군 등 건강 이슈가 있는 친구라면 더욱 긴장해야한다. 그러다가 별일이 없음을 확인하는 순간 안도는 질책('연락 좀 받아라')과 훈계('니가 의지가 박약해서 그런다')로 바뀌고 말실수는 말싸움으로 격화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 돌봄의 경계에 대한 고민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베이스캠프-되기

이번 제주여행에서는 9년째 제주에 살고 있는 비혼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들은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했고,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었다. 삶에 지쳐 제주에 잠시 쉬러 오는 친구들을 너른 품으로 반겨주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친구들이다. 시간을 내어 지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돌봄을 나눈다. 나이들어 만난 이들은 전보다 더 멋진 '에이징 솔로'가 되어 있었다.

임수와 함께 제주에 있던 일주일 동안, 짧게 나마 우리도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서울, 경기에 사는 비혼친구들이 우리를 거점삼아 제주에 다녀갔다. 함께 캠핑도 하고, 제주살이를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과 부동산 매물을 같이 둘러보기도 했다. 다섯명의 비혼여성들은 별다른 임무분장 없이도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질문과 체크 포인트(풍수, 방위, 누수, 결로와 곰팡이, 인테리어, 한라산이 보이냐?, 집만 나서면 사방이 그림이니 앞동뷰라도 괜찮다 등 저마다의 관전 포인트)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우르르 집을 보러온 40대 비혼여성들의 인해전술에 집주인과 중개사들은 당황했다. "누가 살 건가요? 신혼부부인가요?"라고 물어보는 중개사에게 "훗! 아뇨. 저희요!"라고 대답할 때의 통쾌함이란. 을의 위치에서 쭈뼛쭈뼛 눈치보며 전(월)셋집을 알아 보던 그동안의 설움을 잠시나마 씻어본,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문탁에 계신 비혼샘들이 제주로 5박 6일 여행 올 예정이다. 누군가에게 (그 누군가가 비혼여성들이라면 더더욱) 베이스캠프가 된다는 것은 참 흐뭇한 일이다.

 

 

 

정화와 임수는 이번 제주여행을 통해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를 떠날 용기와 상상력을 조금 얻었다. 생애 처음 자력 캠핑을 하면서 인간이 먹고 입고 잠자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도대체 이걸 뭐한다꼬 가져온거야?' 주거 공간(텐트다!)을 포함한 생존 필수용품(쌍화탕과 공진단 포함!)은 등산가방 2개에 패킹되었다. 언젠가 제주살이를 하는 동안 정임합목 양생하우스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낼 곳이 필요한 학인들에게 혹은 비혼여성들에게 혹은 청년들에게 개방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임수의 퇴직 시점이 아무래도 좀 더 당겨질 것 같다. 정화와 임수의 공동 주거 실험은 이렇게 오늘도 계속된다.

 

댓글 8
  • 2023-05-31 14:06

    언젠가 제주살이? 이런 상상력? ㅋㅋㅋ

  • 2023-05-31 14:23

    한장 제주도컷 넘 알차네요ㅋㅋ 쌍화탕과 공진당은 생존 필수용품! 알아갑니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개방을 기다리며, 언젠가 제주살이편도 기대하며, 이번 글도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 2023-05-31 14:59

    서로에게 베이스 캠프가 되어준다는 상상력이 좋습니다~~상상력이 현실이 되길~~!!
    인문약방표 쌍화탕과 공진단은 완전 필수템이였어요~~!!

  • 2023-05-31 15:06

    제주여행을 간 줄 알았는데, 답사였구나!! 유자녀 기혼여성이지만, 나도 그 베이스캠프에서 쉴 날이 있을 것 같네~

  • 2023-05-31 16:03

    퇴직여행이 아니셨군요.
    역시 무사님은 허튼 분이 아니세요ㅎㅎ
    비혼친구 플러스 비혼지향 기혼친구에게도 베이스캠브가 든든합니다!

  • 2023-05-31 20:42

    알차게 보내고 있군요!!! 정임합목의 앞으로의 실험 기대됩니다~~ 베이스 캠프도 여기저기 옮기면서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구요 ㅋ

  • 2023-06-02 11:06

    베이스캠프, 참 소중하군요!^^
    문탁 비혼들의 제주여행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기대됩니다.

  • 2023-06-04 09:10

    어찌 저리 무사님은 계획이 다 있으셨구나...나도 '여기는 제주다' 같은 글을 써보고 싶네요 ㅎㅎ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세계 끝의 가족 2023.12.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어릴 적 집에 오신 손님들(대부분 친지들)은 내 작은 손에 용돈을 쥐어주시곤 했다. 적게는 만원에서 많게는 3만원. 퍼런 지폐는 어린 내가 봤을 때도 꽤나 듬직해 보였다. 그 용돈은 넉넉치 않은 살림을 사느라 늘 고단해보였던 해피님의 고민거리를 아주 조금이지만 덜어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100원, 200원 정도는 남는 이벤트였다. 취학 전 아동 시절이었다. ​ 그 때 배웠다. 어른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용돈은 적당히 공손하게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그 용돈은 단지 '용돈'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과한 거절은 '선물 경제'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퇴색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나름 증여와 순환의 정신을 잠시 엿본게 아닐까? 체면을 상하지 않게 선물하는 예절, 받는 사람의 태도 등 '돈과 관계의 철학'을 조금 익힌 셈인지도 모르겠다. ​ ​ 고릿적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연재의 발단과도 조금은 연결되기 때문이다.  ​ 작년 가을. 우리는 그동안 각자 모은 돈에 대출금을 좀 보태 집을 사고 이사를 했다. 문탁에서 공부하다 만난 동학 둘이 '쫌 다른' 가족으로 살아보겠다는 포부를 밝힌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모셔 조촐하나마 집들이를 계획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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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2023.12.31 | 조회 374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1. 오래된 장식품   우리 집 책장은 책으로 가득 차있지만 항상 한켠에는 여유 공간이 있다.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소품들, 엽서들을 전시한다.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작은 트리, 루돌프인형, 희미한 조명들까지 그 공간을 채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임을 알 수 있다. 정화의 감성으로 한껏 포근해진 공간을 임수는 감사히 즐긴다.   정화는 어릴 적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의 따뜻한 빛이 좋았다고 한다. 모태신앙의 영향인데 개종의 과정 중에 있는 지금도 정화는 자신만의 리츄얼로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꺼내서 책장의 한켠을 꾸민다. 그 장식품 안에는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물건들이 있다. 모두 빛에 바래지도 않았고 깔끔하다. 정화가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된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책장 한켠을 채운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친구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물론 큰집으로 이사 오면서 새로운 가구들도 많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오래된 물건들이 많다. 임수도 물욕이 많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걸 잘 사질 않으니 오래된 물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정화와 임수의 물건상태는 사뭇 다르다. 정화의 물건들은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제 역할을 다한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며 심지어 사랑을...
루틴
2023.11.30 | 조회 271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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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a
2023.10.31 | 조회 392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반려식물들을 소개합니다       0. 인트로 :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임수 : 정화야.. 정화야.. 방울토마토가 이상해진 거 같아. 내가 사고 쳤나봐ㅠ 정화 : (자고 있다가) 어? 방울토마토가 왜? 임수 :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이리와봐 (방울토마토 앞에 모여) 정화 : 어..어.. 이거 좀 이상한데??     정임합목의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화가 밤샘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휴일 아침, 임수는 베란다에 심은 지 한 달 정도 된 방울토마토 모종의 곁순*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긴장도 했지만 어느새 과감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곁순치기와 사뭇 달라보였다. 순간 등짝이 오싹해졌고 큰 사고를 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정화를 깨워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식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정화도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감지했다. 곁순이 아닌 원줄기를 모두 잘라서 외목대 방울토마토를 만든 것이다. 식물분자생물학 학위는 초보 식집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관심이 지나쳐서 반려식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몰아넣기도 했고, 바쁠 때는 물주는 것조차 버거웠던 식집사 생활이 거의...
            임수(壬) 루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대학원에서 10년을 세포만 쳐다보며 지냈다. 졸업 후 방황하다가 문탁에서 정화(丁) 무사와 사주명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나 역시 궁금하다.     정임합목 양생하우스 반려식물들을 소개합니다       0. 인트로 :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임수 : 정화야.. 정화야.. 방울토마토가 이상해진 거 같아. 내가 사고 쳤나봐ㅠ 정화 : (자고 있다가) 어? 방울토마토가 왜? 임수 : (핸드폰을 들이밀며) 이렇게 잘라주면 된다고 했는데~ 이상하다. 이리와봐 (방울토마토 앞에 모여) 정화 : 어..어.. 이거 좀 이상한데??     정임합목의 ‘방울토마토 가위질 대환장 파티’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화가 밤샘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휴일 아침, 임수는 베란다에 심은 지 한 달 정도 된 방울토마토 모종의 곁순*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긴장도 했지만 어느새 과감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터넷에서 봤던 곁순치기와 사뭇 달라보였다. 순간 등짝이 오싹해졌고 큰 사고를 쳤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바로 정화를 깨워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식물과 그리 친하지 않은 정화도 이상하다는 걸 한 번에 감지했다. 곁순이 아닌 원줄기를 모두 잘라서 외목대 방울토마토를 만든 것이다. 식물분자생물학 학위는 초보 식집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용지물이었다.   관심이 지나쳐서 반려식물들을 무지개 다리로 몰아넣기도 했고, 바쁠 때는 물주는 것조차 버거웠던 식집사 생활이 거의...
루틴
2023.10.01 | 조회 395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무사
2023.08.31 | 조회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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