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미나 시즌3 《지능의 기원》 2회차 후기 — 물고기와 쥐와 원숭이가 함께 사는 머릿속

두루미
2026-10-3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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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쥐와 원숭이가 함께 사는 머릿속

맥스 베넷은 순수 신경과학자가 아니라 AI, 특히 로봇 회사 CEO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관념적이고 학문적이기보다 현장의 생생한 질문을 담고 있다. AI를 만들다 보니 사람에게는 하찮은 일(설거지나 쇼핑 같은 것들)이 기계에는 너무 어렵더라는 것. 대체 왜 그럴까?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진화의 순서를 좇는다. 조종, 강화, 시뮬레이션, 정신화, 언어. 이번 시간은 시뮬레이션과 정신화(혁신 3과 4)를 읽었다. 매 장마다 AI 연구와 비교하며, 진화의 혁신이 어떻게 AI를 만든 다섯 번의 혁신으로 연결되었는지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쌓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에게 진화란 낡은 뇌를 헐고 새로 짓는 구조개혁이 아니라, 있던 것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올려 쌓는 과정이다. 지난 시간 다룬 좌우대칭동물의 옛 고리—감각이 들어오면 좋고 나쁨을 가라 즉각 반사작용으로 움직이는 고리—는 사라지지 않고 척추동물 뇌의 아래층으로 들어갔고, 그 위에 바닥핵이라는 새 고리가 얹혔다. 이번에 읽은 혁신 3과 4는 그 위에 다시 두 층이 차례로 올려지는 이야기다.

 

바닥핵 위에 aPFC를 얹다

 

투명한 벽 너머에 먹이를 놓으면 물고기는 벽에 계속 머리를 박는다. 벽 구석의 구멍으로 수없이 드나들었으면서도 그렇다. 그 길로 먹이를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 경로가 강화되지 않은 탓이다. 바닥핵만 가진 척추동물은 오직 '해본 것'에서만 배운다.

 

하지만 쥐는 다르다. 갈림길에서 멈칫하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그 몇 초 동안, 해마가 두 갈래 길을 머릿속에서 미리 걸어본다(시뮬레이션). 포유류는 새겉질을 얻으면서 해보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실행해보는 능력이 생겼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지어내고 맞춰보는 장치, 이것을 '생성 모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지각과 상상은 한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렇다고 바닥핵(기저핵)이 밀려나는 것은 아니다. 무과립이마엽앞겉질(aPFC)은 바닥핵에게 직접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바닥핵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며 '아, 물을 마시러 가는구나' 하고 의도를 배운다. 그다음 상상한 장면을 바닥핵 앞에 펼쳐놓고 표를 던지게 한다. 표는 바닥핵(아래층)이 던지고, 그 위층(aPFC)은 설득을 시도할 뿐이다.

 

설득이 늘 먹히는 것도 아니다. 레버를 100번 누른 쥐는 사료가 싫어지자 손을 뗐지만, 500번 누른 쥐는 사료가 역겨워진 뒤에도 미친 듯이 레버를 눌러댔다.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aPFC는 멈춰 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아래층이 알아서 일을 처리해버린다. 저자는 이것이 곧 '습관'이라고 말한다. 밤늦게 안 먹겠다고 몇 번을 다짐해도 지치고 짜증 난 밤이면 야식의 유혹에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 최근 고관절 통증으로 누워 지내며 엄청 먹어댔다. 아무튼 aPFC가 생겼다고 해서 바닥핵이 꼼꼼히 통제받는 것은 아니다.

 

aPFC 위에 gPFC가 쌓이다

 

영장류로 넘어가며 저자는 과일 사랑의 의미를 되짚는다. 영장류는 과일을 먹기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는데, 그 시간을 근육을 키우는 데 쓰기보다 머리를 굴리는 데 썼다고 한다. 누구와 편을 먹어야 할지, 저 녀석이 무엇을 알고 노리는지 읽어내야 무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 이론'이 싹텄다.

 

흥미로운 대목은 영장류에게 아예 새로운 세포가 생긴 게 아니라 새로운 '연결'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영장류는 포유류의 aPFC를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과립이마엽앞겉질(gPFC)을 얹었다. gPFC는 바깥 감각 신호가 아니라 주로 aPFC로부터 입력을 받는다. aPFC가 바닥핵을 지켜보며 의도를 배웠듯, gPFC는 aPFC를 지켜보며 '마음'을 배운다. 나를 먼저 그려보고, 그것을 발판 삼아 타인을 그리는 것이다.

층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너 왜 왼쪽으로 갔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한 겹씩 두꺼워진다.

 

  • 바닥핵: "그쪽 보상이 크니까."

  • aPFC: "왼쪽에 먹이가 있으니까."

  • gPFC: "내가 배고프고, 내가 알기로 왼쪽에 먹이가 있으니까."

아래층의 대답이 지워지는 게 아니라 위층의 대답이 그것을 감싸 앉는 방식이다.

 

이 새 층이 시간 축으로 향하면 비로소 '식료품 장보기'가 가능해진다. 쥐는 미로는 잘 찾지만 장은 못 본다. 대추를 많이 고르면 몇 시간 뒤에야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조건화했을 때, 다람쥐원숭이(영장류)는 금세 대추를 적게 고르는 법을 익혔지만 쥐는 끝까지 건포도를 많이 골랐다. 당장 목마르지도 않은데 왜 맛있는 걸 포기하느냐는 식이다. aPFC까지만 있는 쥐는 다른 길을 걷는 자신은 그려도, 다른 마음 상태를 가진 자신, 즉 몇 시간 뒤 목이 탈 자신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한다. 그 그림에 표를 던져줄 바닥핵이 지금 당장은 목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gPFC는 남의 마음을 그리던 솜씨로 '내일의 내 마음'을 그린다. 생각해 보면 내일의 나란,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다.

 

맨 위에서 맺고, 맨 아래에서 지킨다

 

그렇게 보면 야식과 장보기는 같은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 이야기다. 내일의 나를 헤아리는 것은 꼭대기 층의 일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실제 몸의 움직임으로 옮기려면 aPFC가 바닥핵과 편도체를 끊임없이 구슬려야 하고,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작업이다. 지치고 피곤해지면 이 고리가 쉽게 무너진다. 배고픈 채로 장을 보러 가면 일주일 치 식재료를 부풀려 사 오게 되는 것도, 피곤한 밤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게 되는 것도 다 그 틈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낭송하겠다는 약속은 오늘 밤의 내가 내일 아침의 나에게 건네는 약속이다. 즉, 약속은 맨 위층에서 맺고 지키는 건 맨 아래층 몸이 해낸다. 알면서도 되풀이해 무너지는 것이 꼭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는, 우리 뇌가 맨 아래층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집이기 때문 아닐까.

 

저자는 이 그림을 AI에 비유하며, "AI는 거꾸로 지은 집"과 같다고 말한다. ChatGPT처럼 '언어'라는 꼭대기 층부터 무작정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체스와 바둑으로 인간을 이기는 위대한 AI가 하찮은 설거지 하나를 못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 이전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는 이질감이 여기에서 온다. AI를 만들다 보니 역설적으로 인간의 뇌가 보이고, 뇌를 들여다보니 AI에게 빠진 구멍이 명확히 보이는 셈이다.

 

그런데 이 층쌓기 모델, 정말 맞는 걸까?

 

후기를 쓰며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는 '어류'라는 단일 범주를 해체하며 특정 물고기는 다른 어류보다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지능의 기원》 저자 역시 물웅덩이를 기어 나온 물고기에게서 네발짐승과 인간의 기원을 찾고, 물고기 뇌만 알아도 인간 뇌의 절반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다섯 번의 혁신'을 인간을 향해 올라가는 직선적 위계로만 해석한다면, 밀러가 부숴놓은 진화의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여러 차례 '층이 쌓인다'는 것이 위층이 아래층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는 역으로 "아래층 없이는 위층이 결코 설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층 위에 위층이 얹혔다'는 프레임 자체가 이미 꼭대기(인간)에서 내려다본 결과론적 시선 아닐까 하는 찜찜함이 남는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현재의 결과를 손에 쥔 채 과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결과로 이어지는 지점들만 골라 층으로 편하게 쌓아 올린다. 그러니 모든 층이 마치 다음 층을 위해 완벽히 준비된 부품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선충의 도파민은 시간차 학습을 위한 재료였고, 온혈성은 빠른 뇌 활동을 위한 조건이었으며, 영장류의 정치는 마음 이론을 위한 무대였다는 식의 해석이다.

 

하지만 진화는 다음 층을 미리 예측하고 아래층을 깔지 않는다. 그때그때 우연히 살아남은 환경 적응의 결과가 다음 단계의 재료로 활용되었을 뿐이며, 재료가 되지 못한 수많은 생명과 특성들은 이 서사에 끼지도 못한 채 사라졌다. 결과를 다 알고 나서 원인을 꿰어 맞추는 방식은 다분히 승자가 쓴 역사와 닮아 있다.

 

증거의 명확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저자는 "물고기나 파충류가 이런 일을 한다는 연구는 아직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이는 능력이 없다는 증거라기보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새나 문어는 뇌 구조가 우리와 완전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계획하고, 꿈꾸고, 과거를 기억한다. 바닥핵 - aPFC - gPFC로 이어지는 이 포유류식 층구조를 거치지 않고도 우리 뇌와 유사한 고차원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런 사례들을 단 몇 줄로 짚고 넘어가는 것은, '층으로 깔끔하게 쌓이는 서사'가 우리의 계보만을 추적할 때 발생하는 착시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과거 뇌를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인간의 뇌로 삼등분했던 '삼위일체 뇌(Triune Brain)' 이론이 그토록 매끄럽고 명쾌해서 대중적으로 퍼졌다가 끝내 수정을 면치 못했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그럼에도 이 프레임이 결과론적 유용성을 지닌다는 점을 인지하고 읽는다면, '층쌓기'는 절대적 정답이라기보다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 되어주지 않을까. "머릿속에 물고기와 쥐와 원숭이가 함께 산다"는 말 역시, 우리가 이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모두 내안에 품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다음 회차는 마지막 혁신인 '언어'다. 저자는 또 한 층을 얹을 텐데, 그 최고층이 아래층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지 궁금해진다. 다음 시간 나들이 겸 남한산성 자락을 걸으며 가을 풍경과 맑은 공기를 마시다 보면, 머릿속 층들을 잇는 또 다른 다채로운 해법이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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