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2부는 장자의 제물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줄리앙 식의 해석을 읽다보면 내가 읽은 <장자>가 같은 책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누군가 "줄리앙, 특히 프랑스 학자들의 글들이 표현과잉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한 말이 동의가 되기는 한다. 챕터의 제목만큼은 아주 직관적이다.
지혜는 여러 관점의 세분화 속에서 사라진다
요컨대 줄리앙은 모든 것을 가능성에 두는 것이 '편파성'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은 총체성, 전체성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떤 학파의 사상은 편파적인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쨌든 판단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집착이고 '참'과 '거짓'을 가르는 분리이고,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을 잃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인간인 이상 우리는 판단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특히 언어는 판단의 도구이지 전체성을 말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그래서 현자는 '침묵'을 택한다. 침묵을 택함으로써 '출현' '상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토용샘은 음악이 어떻게 소리 없이 가능하냐고 계속 질문한다. 가마솥샘은 연주 중에 소리가 없는 순간은 그것도 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모든 소리를 낼 수 없다면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완벽하다는 주장에 나는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타자'도 아니고 '자기'도 아니다
인식의 두 측면, 즉 주체와 객체는 사실 고정된 것이 아니다. 줄리앙은 도추(道樞)의 개념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도추의 뜻풀이를 보면 '지도리' '경첩'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맞는 해석이 아니라는 점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오히려 회전문의 축, 수레바퀴의 축, 물레방아의 가운데 공이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위치 없는 위치'이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위치의 개념이 바로 도추에서 가능하다. 도추의 한 면은 '나'인 동시에 언제든지 '타자'도 될 수 있다. 줄리앙은 "중심축에서 보면 모든 측면은 평등하다. 심지어 중심축은, 정확하게 말해서 회전이 전체 속에서 완성될 때 더 이상 '측면'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고정되어 있지만 부동성 속에서 완벽하게 유동적인 위치를 갖지 않는 중심축이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관점의 세분화는 변화를 사유하는 순간 사라진다. 굳이 꿈이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사유 속에서 장자는 나비가 될 수도 있고, 나비가 장자가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의 그러함에 대해
줄리앙은 이 챕터에서 중국의 '그러함'과 서양의 '종교적 개념'을 대비시킨다. 서양의 신, 즉 절대적 존재에 대비해서 동양의 '자연히 그러함'은 과정에 의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총체를 가리킨다. 그러함에는 어떤 초월도 없다. 과정 속에 늘 내재할 뿐이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 줄리앙은 다시 음악을 말한다. 음악이 나오면 다시 헷갈린다.^^ 음악에는 세 가지 음악이 있다. 인간의 음악은 피리에서 나는 소리이고 땅의 음악은 바람이 만드는 소리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소리가 있다. 하늘의 음악은 '매번 자신에 따라 존재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며, 모든 것들이 그것들 자체로부터 출발하여 그렇게 얻어진다.' 하늘의 소리는 생산된 소리가 아니라 발화된 소리이다. 발화된 소리는 원인없이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소리이다. 자연적인 것은 명증성을 얻는다. 그러므로 현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스스로 그러함은 따라서 그 지각은 내부로부터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내재성은 늘 자신의 원칙을 벗어나며 '등장'한다. 요컨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늘 그런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입장 없음: 개방성
장자의 '식은 재'라는 개념을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줄리앙에 따르면 그것은 '나를 잊었다'는 이미지의 표현이다. 차분하고, 무미건조해 보이고, 초연한 느낌은 '개방성'으로 연결되는데, 개방성은 모든 제약적이고 고정된 성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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