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9 선물의 노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789주방지기
2026-10-0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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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밥당번표

 

한 달의 중반을 넘어서면 슬슬 밥당번표를 채울 때가 돌아온다. 한 사람이 세 번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친구 덕에 한 달에 두 번 밥당번 할 수 있는 날을 채운다. 문탁 살림회의날까지 거치고 나면 얼추 채워진다. 서너 자리가 비고 살림지기의 묘수가 발휘된다. 밥당번을 하려니 날이 없다는 친구에게는 되는 날짜를 체크하고 이리저리 바둑알을 옮겨두듯 당번들을 옮기며 날짜 조정을 거치면 다음 달의 밥당번 일정이 완성된다. 끝까지 빈 자리가 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 떡국 먹는 날이다. 때로 시간이 지나면 오다가다 혹은 다른 날과 바꾸면서 채워지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공동체 식구들 눈에 보이는 거다.

 

그걸 세 달쯤 하다 보면 보이지 않던 친구의 동선이 그려진다. 멀리서 공간으로 나오는 친구는 오는 날에 밥당번까지 할 수 있는 요일이 정해진다. 친구의 세미나가 없는 요일을 알 수 있고, 혹은 출근하는 일정을 기억하게 된다. 밥당번표와 휴대폰 달력을 번갈아 보며 한참 걸리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한 달을 꽉 채우고 있을 빡빡한 일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 달의 일정에 공동체의 밥당번이 포함되는 친구의 삶에 대해 보이지 않는 친밀감이 상승한다.

 

2.밥상

 

오전 열시 반에 열한시 사이 그날의 밥당번이 운화방으로 들어선다. 여름을 통과하는 계절이라 우선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연다. 냉장고를 열고 식재료를 보며 오늘의 메뉴를 정한다. 어제 남은 반찬과 밥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대로 둘 것인가, 오늘까지 먹을 수 있도록 내놓을 것인가. 전날 재료를 체크했다면 척척 손질부터 시작하겠지만, 계획이 없다면 잠시 가늠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밥을 먹을 인원을 체크하고 쌀을 씻고 불려둔 잡곡을 찾고, 생각한 대로 밥과 반찬과 국을 조리하다 보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흘러 있다. 열 두시반, 운화방의 밥 먹는 시간이다. 별일이 없다면 밥을 먹으러 들어오는 친구들을 맞이한다.

 

플레이팅에 신경을 쓰는 친구는 반찬에 따라 흔히 쓰지 않는 큰 접시를 찾아내 그릇의 70프로만 채우며 여백을 남긴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친구는 아무 그릇이나 담아내는 소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남김없이 아껴 쓰는 친구는 남은 음식을 재탄생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원하는 재료가 없는 만큼 잘하는 능력을 발휘하여 단일한 음식에 만족하는 친구도 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공간에서 밥상을 차리는 친구들이 드러내는 이런 개성을 즐기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두루미가 기린을 위해 만들어준 스파게티,  두루미~ 얼른 나아서 또 해줘~~>

 

3.한 줄 기록에 담긴 스토리_선물

 

운화방의 냉장고와 각자 집의 냉장고는 연결되어 있다. 집에서 남은 반찬 혹은 쓰이지 않는 재료를 가져오는 일상이 다반사다. 그래서 공동체의 밥상은 조금 더 풍성해진다. 물론 친구의 식성을 기억했다가 콕 집어서 재료를 준비해 와서 차려주는 정성도 겸비되어 있다. 그렇게 선물로 흐르는 밥상이라 다채로워진다. 선물의 목록에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흐른다.

 

7월 기린의 복숭아는 제주에서 올레길을 함께 걸었던 김은영님이 보내 준 선물이었다. 공동체 식구들이 나눠 먹었다고 했더니, 자기 손이 작아서 너무 적게 보냈다고 아쉬워했다. 도라지의 다시마, 양양과 경기 광주를 오가며 사는 그가 운화방을 챙겨주는 마음, 육수링으로 국물 내기로 전환한 근간에 다시마는 냉동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누룽지의 보리인절미는 요리에 진심인 그가 구수한 맛을 극찬하며 맛보이러 왔던 떡, 보리알이 씹히던 떡의 질감이 기억난다.

 

 

 

8월의 방학에 운화방의 식구들도 조촐했다. 라겸도 방학을 해서 성심당에 다니러 갔을까? 9월에 빵만 사기 위해 성심당으로 갔던 은호도 챙겨준 빵, 오픈런으로 줄서야 먹는 디저트를 앉아서 받아먹는 기쁨이 있었다. 제주 선흘 마을의 혜담재에서 택배로 날아온 제주 무화과, 혜담재 마당에서 제미나이와 함께 1년차 텃밭 농사 중인 문탁샘의 정성의 맛이었다.

 

 

 

9월은 방학도 끝나고 운화방으로 들어오는 선물도 풍년이었다. 가족을 만나러 간 현진이 사온 부산어묵, 자작의 솜씨로 어묵볶음으로 푸짐하게 맛보았다. 미국 여행에서 챙겨온 원영님의 원두는 더치사장님의 드립으로 향까지 즐기는 시간이었다. 요즘 파지사유에서 희희낙락 재미지다는 풍문이 들리던데 봉옥샘, 문탁에는 오지도 않으면서 잊지는 않고 참기름과 깨를 보내 주셨다. 얼굴 대신 고소함으로 무마하겠다는 속셈?

 

 

가져온 선물 기록은 한 줄이지만 그 스토리는 몇 줄을 채워도 모자라다. 운화방에서 월화수목금의 점심이 별일 없이 차려지는 데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모두 작동한다. 보이는 것에 더불어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려 보는 마음, 운화방의 점심이 더 맛있어지는 비결이다.

댓글 1
  • 2026-10-06 08:20

    기린님과 서해님,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3개월 동안 밥도 잘 먹고, 청추팀의 살림청도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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