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것이 아닌) 뭔가 다른 방식으로 행복해질 자유”는 불행할 자유이다. 불행할 자유는 “행복이 의무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불행은 권리가 된다.”(349)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 우리의 좋은 삶을 영위하는 조건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행복의 잘못은 그것이 분명 텅 비어있는 행복의 기호에 몸담을 수 없는 사람들의 비참을 국지화하고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그 행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에 감화되어야 한다....행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그저 무관심을 거부하고, 우리 자신이 변용된다 하더라도, 기꺼이 불행에 근접해 있겠다는 의욕만 있으면 된다.” 이것만으로 무엇이 될까? 하지만 이것만으로라고 말하기에 이것만도 매우 혁명적이다. 불행할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선택할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불행할 자유는 행복을 인간행동의 합의된 종착점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행동의 목적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해줄 새로운 정치적 존재론의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다.”
‘틀리다’가 아니다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 불행할 자유는 ‘다름’을 인식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불행의 아카이브’라고 말한다. “그 아카이브들은 다수의 행복과 한 사람의 불행을 대치시키는 그런 개인주의에 저항한다. 우리는 불행이 집단적인 것, 공유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행복에 도전하는 일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기획이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354)
“행복대상들의 다양성은 행복을 선택의 장으로, 자유의 환영으로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365)
자자의 주장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능동성과 가치를 나타내는 기호로 인정받고 긍정돼 온 행복이 마취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어떤 것에 의해 변용될 수 있는 역량이나 의지의 상실로 재해석 될 수 있다.”(373)
한편 행복은 온전히 목적론이고 행운과 무관한 것으로 될 때 역시 정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우리는 행복을 배우고 훈련하여 성취할 것으로 여기게 된다.....마지막 부분을 정리하지 못하고 일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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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 읽고 나니 <장자>로 마무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왜 긍정으로의 전회를 행복으로의 전회와 같은 지평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는가? 내 이유는 단순하다. 긍정으로의 전회가 똑같이 긍정적 느낌들 - 단순히 "좋은 느낌들"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 을 잠재성과 되기의 장소로 보기 때문이다" 385쪽
영화나 문학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게 들뢰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
가마솥샘 후기에도 언급했지만, 특히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소영샘의 <통역사>가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행복보다는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동성이 윤리적 역량(우리는 타인들에 의해 변용되는 데, 즉 그들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396쪽
"우리가 나쁜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변용되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이는 우리가 원하거나 원치 않는 모든 느낌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윤리적 자원으로 성취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긍정의 윤리가 특정한 형태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 - 그리고 그 관심을 유지하는 것 - 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89쪽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긍정으로의 전회"에 대해서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들뢰즈의 말을 언급한 "좋은 마주침의 사례를 좋은 마주침에 대한 요청으로 전환시킨다." 385쪽 는 어떤 면에서는 해러웨이가 이야기하는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퍼뜨려야 한다는 말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행복이 위기의 방어책이라면 위기가 닥칠 때 "이 길이 무슨 길이야"라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부분(391쪽)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고전 공부에 포인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전에서 말하는 윤리라는 것이 마리 경經의 위치에 있어서 고정 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것이 경經의 자리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나름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모두 <논어>를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해석은 각자의 시대의 문제와 연결하여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단 이 책에서 보면 지선至善이 어떤 상태에 도달한다고 할 때, 이 선善이 행복은 아닌 듯 싶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흡족한 상태를 생각한다면 행복과 어떤 거리를 두면 좋을까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고 결국 "질문"만이 남는 것 같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푸코의 <비정상인들>을 읽는데 문득 그런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삶이 정상이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나 현재 중동 지역을 비정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연발생의 정치학이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가능성, 어쩌면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만약 가능성을 여는 것이 불행을 야기한다면, 우연발생의 정치학은 불행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연발생의 정치학은 발생하는 일을 포용하는 동시에, 대안적 방식으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세계를 지향한다. 우연발생을 만드는 것은 곧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401쪽
아, 이걸 <대학>과 어떻게 연결해서 읽어야 할까요^^
저자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이라는 책 제목처럼, 행복이 주는 약속 혹은 희망 등이 불러오는 불합리함 또는 반대급부(이루지 못하거나 더 큰 욕망이 주는 불행함)를 분석한다. 특히, 행복이 공동체내에서 차별을 은폐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사용된 역사를 밝힌다. 민주주의의 다수결로 남아있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우선하는 공리주의, 피식민지들의 복지 혹은 안녕을 제공한다는 식민주의, 미개한 문화를 문명화해준다는 인종차별주의, 남성위주의 가족 중심과 이성애 중심의 젠더 이데올로기 등의 사례를 통해서 그 속에서 ‘행복’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왜 그럴까? 행복이 정서를 어떻게 구분하고 응집시키는지 분석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낸다. 행복이 기쁨을 유발하는 대상과 가까워지고 싶게 하는 지향성을 형성하고 좋지 않은 정서를 만들어 내는 대상과 멀어지게 한다면, 사회는 바로 이런 행복의 속성을 이용해서 정치적 지배기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행복을 추구하지 않아야 하나? 행복의 속성이 그러하니 사회적 차별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한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 거친 나의 의심에 저자의 불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답이 될 듯하다.
“나는 단지 불행을 극복해야 할 느낌 이상의 것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불행은 행복의 약속이 지닌 한계에 대한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만약 불의가 정말로 줄행을 가져온다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불행은 우리의 종착점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 대상들의 전달을 통해 만들어진 생활-세계 밖에서의 경험은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우리가 행복의 대상을 졸졸 따라다니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복과 더불어 더 멀리 갈 수 있다(390)”
이 책에서 ‘어떻게 하면 나의 행복을?’ 찾아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행복의 함정에 대해서 많이 배운 책이었습니다. 결국, 언어로 표현되는 우리의 관념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가 봅니다.
"말은 끈적거린다"는 저자의 표현이 아주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일상에서 우리가 익숙해있던 행동, 희망, 미래 등에서 말하는 행복의 개념들이 묻어서 섞이는 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그 행복이 그 행복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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