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길에서 태어난 일신교
기원전 559년 경의 중동에선 페르시아의 왕좌를 물려받은 이란의 키루스가 득세했다. 메디아, 리디아와 더불어 소아시아 이오니아 해안의 그리스 폴리스들을 정복했다. 기원전 539년에는 바빌로니아까지 공격하면서 피정복 민족들을 해방하기까지 했다. 그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지만, 자신의 믿음을 신민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유다의 예언자 ‘제2의 이사야’가 활동하기 시작한다. 키루스는 추방당한 모든 사람들을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했고, ‘제2의 이사야’는 키루스를 통해 흩어진 유대교 공동체가 다시 뭉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제2의 이사야’는 야훼를 중심으로 신화를 복권하기 시작한다. 다만 키루스의 영향이었는지 P가 우주론에서 세심하게 배제했던 폭력을 다시 등장시킨다. 신성한 전사 야훼가 바다의 용을 죽여 원시의 혼돈에서 질서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되살린 것이다. 나아가 이스라엘에 맞서는 나라들에게 무자비한 전언을 보낸다거나, 전사신 야훼의 힘을 강조하여 폭력성에 기반한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야훼의 종’이라고 불린 누군가의 예언이 존재했다. 그는 ‘제2의 이사야’와는 반대로 공동체가 비폭력과 ‘축의 시대 정신’으로 뭉치기를 바랐다. 이런 긴장은 이스라엘 내부에 계속 존재하게 된다.
일단 승리자는 ‘제2의 이사야’였다. 야훼의 힘을 통해 키루스가 일어섰고, 바빌로니아가 무너졌으니 이제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오면 그곳이 ‘광야’가 되고, 야훼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훼는 다른 신들을 절멸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유일한 하느님이 되었다. 이 교리는 종종 축의 시대에 유대가 이룬 위대한 승리로 여겨지지만, 교리가 표현된 방식에서는 축의 시대의 근본 원리로부터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 따르면 유대인 42,360명이 하인과 성전에서 노래하는 사람 2백 명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돌아간 무리는 규모가 작았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들에 대한 기록이 혼란스럽거나 대부분 없어져서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흉년과 경제불황이 있었던 것, 남아있던 원주민들과의 종교적 차이들을 극복하는 갈등의 과정은 유대인들의 복귀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하나로 모은 것은 야훼의 성전을 재건하고, 기존의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모두를 포용하고자 하는 태도였다. 당시에 쓰인 <역대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모든 민족을 배척하지 않고 성소 둘레에 단결시키는 걸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새출발이 이루어졌으며,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의 종처럼 온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리스 민주주의를 연 이성의 힘
유대인이 성전을 완공한 직후 아테네 사람들은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의 견제를 이겨내고 참주제를 폐지한 클레이스테네스는 재임 기간 동안 놀라운 민주적 개혁을 단행했다. 솔론의 ‘400인회’를 500명으로 늘려서 부활시켰으며, 그 구성원은 매년 중간 계급에서 선출했다. 여전히 9명의 집정관과 귀족들의 원로회는 남아 있었지만, 500인회와 민회는 그때까지 고안된 가장 평등한 정체였다.
중간 계급이 회의와 토론에 끼어들면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로고스를 바탕으로 각 계급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진리는 선택된 소수를 위한 신비한 계시가 아니었으며, 로고스를 기반으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토론을 통해 더 옳은 정치가 가능해진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평형과 조화에 대한 철학도 등장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최초로 상대주의를 이야기했으며, 안정되어 보이는 우주가 실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놓인 것이라는, 요컨대 변화와 안정은 동전의 양면이자 하나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더 깊이 성찰해야 자연의 지배원리인 로고스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자기 성찰’까지 나아갔다.
그런 철학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파르메니데스까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는 모두 허구이며, 하나의 단순하고 완전하며 영원한 ‘존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주는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다. 변하지 않고, 창조되지도 않는다. 불멸이다. 반면 우리가 변화나 탄생, 죽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파르메니데스는 순수한 이성에만 몰두하였다. 하지만 인간은 로고스로만 이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복잡한 잠재의식적 생활을 하는 감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을 놓친 파르메니데스는 결국 공허를 발견했고, 생각할 이유조차 존재하지 않는 암울한 철학을 완성시켰다.
한편 로고스의 대중화는 사건들의 세계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페르시아의 심기를 건드려 살라미스 해전을 겪게 된 테미스토클레스는 전력 차이와 경험 부족에도 불구하고 로고스 기반의 전술을 시민들에게 설득시켜 반전의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세등등해진 아테네는 그 뒤로 더욱 많은 전쟁에 참여했다.
문화적 영역에서의 로고스는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비롯된 비극 상연을 낳았다. 그들에게 비극은 관객이 거리를 두고 당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사유하게 하는 장치이자, 공동체의 명상이었다. 그리스인은 늘 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 신화들을 극화할 때, 과거의 확실성을 심문했으며, 전통적인 절대적 가치들을 까다롭게 비판했다. 나아가 축의 시대의 새로운 자의식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비극 작가들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본성, 그리스 문명의 가치, 삶의 의미 등 모든 것에 질문을 던졌고, 간단한 대답이나 단일한 관점을 만들지 않았다. 관객들은 관점의 충돌을 겪고, 비극과 갈등 상황을 직면하면서 자신을 ‘타자’에게 비춰보고, 자신과 전제가 분명히 다른 사람들도 공감의 범위 안에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모든 인간이 고난을 겪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카타르시스는 공감과 자비를 경험하는 데서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로고스의 지배가 종교의 종말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종교는 여전히 그리스인들 마음 속 더 깊고, 덜 합리적인 영역을 쥐고 흔들었다. 그들은 폴리스의 합리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진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름의 생명력을 지닌 신에게 영향을 받은 독기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스의 정신은 두 방향으로 이끌리며 긴장했다.
또한 그럼에도 그리스는 대외적으로는 원성을 샀다. 사실상 ‘아테네 제국’을 표방했던 ‘델로스 동맹’을 비롯하여 전쟁과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모순적인 지점과 이상과 현실의 간극마저 그들은 비극으로 녹여내며 사유했다. 특히 비극 작가의 거장 소포클레스의 작품은 갈수록 인간 조건의 한계와 운명의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다가오는 운명을 당당하게 맞이할 것을 <안티고네>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그것이 소포클레스가, 당대의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인간의 위대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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