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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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생명권력과 신자유주의 통치성
(14)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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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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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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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 2026.01.15 | 12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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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비정상인들> 9,10,11강 발제 및 메모
(2)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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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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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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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 17:07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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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비정상인들> 7, 8강 후기
(1)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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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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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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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 2026.05.23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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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비정상인들> 7,8강 발제 및 메모
(8)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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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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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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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 | 2026.05.18 |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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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비정상인들> 5,6강 후기
(4)
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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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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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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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빈 | 2026.05.15 |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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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비정상인들> 5,6강 발제 및 메모
(8)
MOON*M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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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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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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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MAG | 2026.05.11 |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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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비정상인들> 3, 4강 후기
(1)
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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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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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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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식 | 2026.05.06 |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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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비정상인들> 3~4강 발제 및 메모
(9)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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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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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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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 | 2026.04.25 |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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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비정상인들> 1, 2강 후기
(3)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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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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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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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 | 2026.04.24 |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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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강학원] <비정상인들> 1~2강 발제 및 메모
(9)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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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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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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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 | 2026.04.19 |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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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강학원] <감시와 처벌> 4부후기
(4)
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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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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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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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은 | 2026.04.14 | 98 |


6강 (1975년 2월 12일) 발제문입니다!
“괴물에서 비정상으로 가는 과정의 원칙이나 근원을 정신공학 · 정신분석학 또는 신경병리학 같은 기술의 출현에서 찾아서도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괴물에서 비정상으로의 전이가 일어난 것이 바로 이 현상 혹은 이 기술들의 출현에서부터이기 때문이다.”
본문 136p에 보면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처음 읽었을 때 이 문장들을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괴물에서 비정상으로서의 전이’가 ‘이 기술들(정신공학, 분석학, 신경병리학)의 출현’에서 일어났다면, 거기서 전이의 원칙이나 근원을 찾는 게 당연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다만 여러 번 읽어보며 고민한 결과 대강 다음과 같은 느낌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정신공학 · 정신분석학, 신경병리학 같은 기술들의 출현은 괴물에서 비정상으로의 전이가 발생한 원인 혹은 배경 그 자체이므로 그러한 기술들의 ‘방법론을 통해서’(그러한 기술들의 관점을 통해서, 그러한 기술들을 도구로 삼아서) 괴물에서 비정상으로 가는 전이의 원칙이나 근원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저도 좀 헷갈리는 부분이라 혹 다르게 해석하신 분이 있으시면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푸코는 범죄정신의학의 주제가 괴물성에서 비정상으로 전이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 중심에는 이성의 영역으로도, 광기의 영역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이유 없는 범죄’가 있다. 이러한 범죄 앞에서 형법 장치는 “특이한 당혹감”을 드러내고, 정신의학은 그것을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포착한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내재적 힘으로서 ‘본능’ 개념이 형성되고, 비정상의 문제 역시 새롭게 재편된다.
이번 강의에서 흥미로운 점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정신의학이 독립된 전문 분야가 아니라 공중보건의 특수한 영역이었다는 점이다. 푸코에 따르면 이 시기 정신의학은 광기를 질병으로 코드화하는 동시에 위험한 존재를 규정하고 관리하는 장치로, 즉 “사회를 보호하는 공중 보건 권력”(147)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인간의 본능이 정신의학의 핵심 주제가 되면서, 그것이 생물학적, 진화론적 설명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본능은 동물적 본능인가? 인간의 음침한 본능은 동물적 본능의 반복인가? 인간의 비정상적인 본능은 태고적 인간의 옛 본능의 부활인가?”(162) 이때 인간과 동물은 구별되면서도, 동시에 어떤 기원적 본능을 공유한다는 가정을 통해 다시 연결된다. 정신의학이 생물학적, 진화론적 병리학과 결합하면서 인간 내부의 동물성은 위험한 본능, 비정상성의 징후로 규정되는 듯하다. 푸코는 이러한 지점에서 본능의 기술로서 정신의학이 우생학, 정신분석학과 맺는 연관성을 언급하기도 한다.(163) 이 부분에서 떠오른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적어보았다.
인간 안의 ‘동물적인 것’을 탐지하고 관리하려는 시선은 어떤 권력의 형태를 구성하는가? 또한 그 과정에서 동물은 인간 내부의 비정상성을 표상하는 형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가? 그러한 권력 장치는 동물과 동물에 가까운 존재로 규정된 존재들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낙인, 혐오, 격리, 추방, 방치, 살해와 같은 '배제의 기술'과, 교정, 교화, 치료, 재활, 보호, 안락사와 같은 '포섭의 기술'은 규율 권력 속에서 어떻게 결합하고 또 함께 작동하는가?
“이 나쁜 감정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좋았던 가족 관계에 구멍을 내는 병리학적 침입의 예로 부각된다.”(182)
→ ‘나쁜 것’을 허용하지 않는 “관계의 병리학화”가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관계에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엄청 거친 연결이라 이게 맞나 싶지만, 개인적으로 자신의 비위 나쁨을 ‘윤리적 감수성’이라 여기는 태도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더 자주 목격되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는데, 윤리에 대한 일종의 ‘정상성’을 설정한다는 점(물론 기준은 자의적이지만), 그래서 ‘그렇지 않은 것’을 배척함으로써 자신의 상대적 우월성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유사하게 느껴진다.
“광인은 자발성과 비자발성 사이의 경계‧작용‧층위가 교란된 사람이다.”(189)
→ 자발성과 비자발성에 경계가 있다는 발상 그 자체가 되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1 (질문)
"그러니까 정신의학은 교정 기술이기도 하지만 가정의 내재적 사법의 복원 기술이기도 하다."(178)
이때 말하는 가족은 근대가족, 즉 핵가족을 의미하는 걸까요?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푸코가 언급하는 단위는 국가나 사회였는데, 가족이라는 더 작은 단위가 나와서 약간 이질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책에서는 정신분석학을 더 중심에 두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감시나 규율이 더 촘촘히 들어갈 수 있는 건 인간을 아우르는 단위도 더 면밀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2 (메모)
"그러나 1838년의 법이 발효된 이래 정신의학자에게 제기된 문제는 '이 사람이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가?'라는 것이었다."
정신의학은 행정부와 손을 잡고 사회 질서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권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법적 효력도 가지게 되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게 아닐까요. 이 지점이 약간 꼴뵈기가 싫었습니다. 질서를 정의함으로써 그에 걸맞지 않은, 그러니까 반사회적인 인간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는 애초에 없던 사회질서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인간은 극소수가 되겠죠. 그러면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은 본인을 의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비정상인가?' 하는 생각을 달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상인이 되는 법 밖에 없도록, 그래서 정상에 맞춰서 살 수 있도록 만들겠지요..
5강 발제입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ㅜㅜ
가족내 관계는 그러므로 그들의 긍정적인 성격을 광기에 주는 대신, 그들의 틈새 때문에 병리학적 요소가 된다. (182)
가족은 구성원을 보호하고 사회화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에 있어서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의 틈새가 생기고 그 틈새 때문에 병리학적 요소로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이 정의되어야 이러한 틈새가 나타날 것인데 이 정상적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면 흥미로운 논의가 나올 것 같습니다.
감시와 처벌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던 푸리에가 고안한 팔랑스테르는 기존의 혈연중심의 가족의 개념을 해체한 공유공동체를 위한 공간을 제시했었고 현재에도 가족의 개념이 점점 1인가구로 변하고 있듯이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정상의 기준이 바뀌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에 따라 공간도 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공간을 보면서 그때 당시의 비정상성에 대해서 역으로 추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거실의 유무, 복도의 배치, 공유 주방, 커뮤니티 시설의 존재유무와 같은 구체적인 장치들을 통해서요. 그리고 이러한 공간과 가족의 개념이 변증법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비정상이라는 것이 나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취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