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566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후기-벌써 마지막이라고요?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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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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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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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 2026.02.18 | 76 |
| 565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질문들
(6)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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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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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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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2.10 | 95 |
| 564 |
<여신의 언어> 마지막 후기^^
(1)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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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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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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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 2026.02.10 | 92 |
| 563 |
<여신의 언어> 5회차 후기
(3)
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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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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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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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 2026.02.08 | 104 |
| 562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나랑, 과학철학을 만나다
(2)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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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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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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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 2026.02.08 | 128 |
| 561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3회차 질문들
(6)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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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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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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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2.03 | 118 |
| 560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혁명은 없다?
(2)
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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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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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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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 2026.02.02 | 119 |
| 559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2회차 질문들
(10)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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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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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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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1.27 | 163 |
| 558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1회차 후기 - 과학적 믿음
(4)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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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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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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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 | 2026.01.27 | 126 |
| 557 |
<여신의 언어> 4회차 후기
(6)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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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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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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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 2026.01.26 | 141 |
| 556 |
[2026년 1월 맥-잡기 세미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 메모
(13)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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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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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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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 2026.01.23 | 205 |
| 555 |
<여신의 언어> 3회차 후기
(4)
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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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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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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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리 | 2026.01.21 | 145 |

과학철학 215p
정신장애에 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수 있다.뇌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때 정신장애로 이어진다.그러므로 조현병이나 우울증같은 증세를 정시장애로 분류할때 가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러한 증세를 가진 환자에게서 뇌의 어떤 부분이 진화된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호소하는것이다.ᆢ
의학적모형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식으로 정신장애로 여겨지는 것이 널리 퍼져 있는 사회적 규범의 반영이 아니라 객관적인 생물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한다.
이러한 논변이 논란의 여지가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우리의 진화사에 관한 가정들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
위의 논변이 객관적 수치로 밝혀지고 있지 않은지? 진화사에 가정들에 의지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요?
ㆍ
과학철학 172) truth와 근사. 두 책을 통해 확정적이고 최종적인 답변은 과학에서조차 가능한 일이 아님을 살펴봤습니다. 장하석이 보여준 truth의 번역은 앞으로 제 책읽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과학철학에서는 저는 172쪽에 나오는 근사라는 단어를 뽑아봤습니다. 근사치에 불과하다는 한계 아래에서도 이를 마치 확정적인 양 다루는 일이 불필요하거나 틀린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쪼개고 자르는 일에 마냥 비판적인게 능사는 아닐 것이라것도... 역설적이게도 ...과학만능주의라는 멸칭의 사용에 조금은 신중해야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근사한 책 잘 읽었습니다.
(379~380p) 장하석의 책
"과학의 실천체계라는 말은 제가 지어낸 것인데 과학을 실행하는 어떤 특정한 행태를 가리킵니다.. 실천체계는 인식활동(epistemic activity)들로 구성됩니다..(이 실천체계 개념은 쿤의 패러다임 개념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차차 더 뚜렷이 드러날 것입니다.) "
장하석은 왜 실천체계가 인식활동로 구성된다고 했을까요? 장하석의 실천체계는 쿤의 패러다임에 견줄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인데, 이 둘간의 차이가 "인식활동으로 구성된다"는 말에 핵심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식활동이란 분석, 합성, 분류 등 일반적인 연구실에서의 활동수준으로 보여집니다. 결국 장하석에게 과학이란 활동 그 자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쿤의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실재론을 거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은 거대담론이나 이론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장하석의 과학은 앞서 타학과 실험실을 빌려 직접 100도의 끓는점을 연구한 것처럼 과학자들의 "일상적인 연구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실험 활동들이 무작위적이거나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화되고 조직화된 활동들이고, 이 때문에 결국 이론을 검증하고 이론적 모델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추구하는 이론은 다르더라도 이런 과학적 조직적 활동(연구)들은 서로 인정하고 포용하며(관용)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이 장하석의 주장(다원주의)대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1. 전통적인 실재론과 거리를 두기 위해 과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하는 대신 과학자들의 활동 그 자체가 과학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진리와 활동이 과연 같은 위상인가 의문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장하석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저와 같은 개인도 과학책을 읽고 과학세미나를 하면서도 "궁금하다. 왜 이럴까?" 자신도 모르게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납니다. 이런 욕구를 무시하고 활동으로만 설명한다면, 평생을 방구석에서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않으면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진리탐구에 매진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질문2. 장하석의 실천체계는 일상적인 실험실 활동들로 구성됩니다. 그렇다면 과학과 기술의 차이는 무얼까요? 과학자가 이론가라면 기술자는 그 이론을 현실의 필요에 맞게 적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장하석의 과학은 기술자들의 활동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과학이 보편성의 확보가 주안점이라면 기술은 특정 상황에 맞게 유연해야 합니다. 장하석은 이 둘 간의 경계를 허무는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이를 근거로 다원주의의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편성의 포기일까요? 아니면 다원주의의 전략일까?
<과학철학>, p.214
"선을 그어 이것이 인간의 눈이 작동해야 '마땅한' 방식이라고 말하려는 모든 시도는 틀림없이 가치 판단을 수반하지 않는가? 예컨대 시력이 덜 중요한 사회에서라면 그 선은 다른 어딘가에 그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견해에 따르면 정신장애와 신체장애는 둘 다 가치가 담긴 범주이다."
오카샤가 과학/의학을 다루며 보여주는 쟁점 중 하나는 '장애'라는 것의 정의가 생물-진화론적인 개념에 기반한 '차이'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이러한 '차이'라는 개념자체가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이에 대한 개념이 정상에 대한 임의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면 그러한 기준에서 가치판단이 온다는 점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듯 한데, 과연 이것이 가치에 대한 판단일까요, 아니면 그저 사회적인 임의성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또한 이와 같은 정상의 개념은 그 자체로 가치 판단일까요, 아니면 가치가 아닌 사실에 기반할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사회에 유입될 때 가치에 대한 판단을 불러오는 것일까요?
'과학만능주의', '물리학 제국주의', '과학 독재', '과학 숭배' 이 모든 말들이 맹목적 믿음에서 오는 비과학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리를 찾으려는 행위 자체를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진리라는 것이 단 하나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다원주의는 진리를 찾는 일이 아닌 것인지 아리송해집니다.
4회차 질문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