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언어> 마지막 후기^^
방학을 맞아 <여신의 언어>를 여섯번에 걸쳐 다 읽었습니다. 정말 어마무시하게 무거운 책이었어요. 아트지에 인쇄된 유물의 사진과 도판은 약 2,000여점이 들어 있답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호강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이 책을 통해서 친근감을 느끼게 된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문명권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구석기 시대(기원전 3만년~1만년)는 시대순으로 오리냐크 문화(쇼베동굴), 그라벳 문화(발렌도르프의 비너스), 솔튀트레 문화(알타미라 동굴), 막달레니앙 문화(라스코 동굴)로 분류되는데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오리냐크 문화의 대표유물인 쇼베동굴을 찍은 영화 <잊혀진 꿈의 동굴>을 찾아보기도 했는데요. 아마 지금 알고 있는 이 문화권의 이름은 금방 잊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석기 시대의 사회에 대해 김부타스가 유물과 유적을 통해 했던 이야기는 쉽게 잊힐 것 같지 않습니다.
특히 구석기 시대 유물 중에서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레스퓌그의 비너스, 로셀의 비너스와 같은 이름이 붙은 여인상들이 있습니다. 이 비너스들에 대해 김부타스는 말합니다. 그녀들은 그 시대의 여성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미의 여신도 아니고, 어떤 남신의 아내도 아니고, 다산과 풍요의 상징도 아니고, 모성을 강조하는 어머니 여신도 아니고, 다만 <위대한 여신>이라고. 이 위대한 여신의 다른 이름은 자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주를 창조하고, 생명을 주고, 죽음을 주고, 다시 재탄생의 생명력을 부여한 여신. 남자와 여자라는 성의 구별 이전의 여성성을 가진, 이 우주와 자연에 내재하는 힘의 구체적 상징으로서의 여신!

김부타스의 <여신의 언어>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부는 여신의 역할이나 성격을 네 가지로 구분한 것과 일치합니다. 생명력을 부여하고, 재생의 힘을 갖고, 죽음과 재탄생을 관장하고, 용솟음치는 생명력, 여신의 네 가지 속성 혹은 범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부타스는 이 네 범주에 여러 문양과 유물 등을 분류하고 배치함으로써 올드유럽 사회의 정신세계와 상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부타스는 구석기 문화를 이어받은 올드유럽의 신석기 문화까지는 남녀가 평등한 모계제 사회였다고 말합니다. 유물과 유적에서도 폭력과 전쟁, 여성차별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연에서 여성성을 발견하고 여신을 숭배하는 평화로운 사회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부타스의 가장 논쟁적인 가설 중 하나가 이 사회는 기원전 5000년경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문명이었던 쿠르간 문명에 의해 파괴되고 변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여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지하세계로 들어갔고, 아프로디테로, 성모 마리아로, 마녀들로 다시 나타납니다. 올드유럽의 신석기 문명을 파괴한 쿠르간 문명을 김부타스는 인도-유럽어의 기원이자 원인도-유럽문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김부타스의 주장은 올드유럽 문명은 인도-유럽문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도-유럽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유럽의 기원이 아니며 올드 유럽 이후에 출현했다는 것! 올드유럽문명이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곳이 바로 미케네 문명의 침략을 받기 전의 크레타-미노아 문명이라고 하죠.(여신순례를 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신의 언어>에서 올드유럽 문명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주로 기원전 5,000년 전후의 것들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몇몇 유적지에 대해서는 아주 친근한 감정을 갖게 되기도 했어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인류최초의 도시문명을 일군 차탈휘익 유적이나, 영국의 스톤헨지, 아일렌드의 뉴그레인지의 거석문명의 유적과 유물들, 그리고 크레타의 여신 문명의 유적들 말이에요. 저는 여행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는 편이고, 혹시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은 곳은 인도의 불교성지 순례 정도였는데.. ㅎㅎ <여신의 언어>를 읽으면서 책에 소개된 유적이나 유물을 직접 보면 좋겠다는 마음을 잠시 가져보았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여신'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던 터라 '여신의 언어'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나서야, 여신의 언어란 곧 국가가 없고 문자가 없던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상징체계를 말하는 것이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어요. 김부타스가 그려낸 <여신의 언어>에 대해서는 고고학 내부에서도 여러 반론과 비판이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와 국가, 계급과 지배, 여성차별과 같은 것들이 있기 이전의 시대에 대해 유물과 유적을 통해 지금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정신적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한 김부타스의 연구는 정말 멋진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문자없는 사회, 국가없는 사회의 삶에 대해 탐구하고 싶은 사람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멋진 책 한 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이 공부한 동은, 호수샘, 술리샘, 감사해요~ 다음 방학세미나에서는 또 다른 책으로 만나요.. 방학에는 동은이가 여는 인류학 번개 세미나, 앞으로도 계속되면 좋겠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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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차탈휘위크 여신상 사진이 멋져요. 신비로운 여정이었고 제 세계가 넓어진 기분이 듭니다. 요요샘과 동은샘이 좋아서 합류한 세미나였고(동은샘이 따로 불러서 막 그림이 많고 글밥은 적다고 꼬셔서 ㅋㅋ) 약간은 힘을 빼고 참여했는데 이렇게 마음에 쑥 들어오는 공부가 될 줄은 몰랐네요! 알고 보니 한동네 주민이셨던 술리샘도 알게 되어 기쁩니다. 모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