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언어> 5회차 후기
여신의 언어 다섯 번째 후기
여러 일 때문에 느즈막히 적는 후기입니다. 오늘은 3장 죽음과 재탄생을 마무리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세미나 중에 기억이 남는 몇 가지 이야기들로 후기를 적어볼게요.
228쪽, 기원전 5천년기 초기 희생 의례가 거행된 융페른회흘레의 동굴에서 1~45살 사이의 여자 유골 36구와 2구의 남자 유골이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5천년 전의 희생제의라고 한다면 크게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지만 여성과 남성의 비례에 관해서는 눈길이 갔어요. 요요샘은 희생제의의 사례가 대부분 구석기에 있었다고 하는데 이 시기는 신석기여서 신석기에서도 희생제의의 사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남여가 함께 죽게 되는 이 행위에서 힌두교의 ‘샤티’가 떠오르셨다고 해요. 샤티는 ‘여성의 힘’, 즉 재생의 힘을 나타내는 인도 신화의 이야기인데 김부타스를 통해 알게된 올드 유럽의 모습을 보면 역사적으로 아리안족이 인도를 지배하면서 기존의 올드 유럽의 흔적이 ‘샤티’와 같은 모습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책 속에서 김부타스도 여신의 능력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잘 남아 있는게 인도라고 하기도 했죠.
다음은 become을 둘러싼 번역과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책 속에서 ‘도래’로 번역된 단어죠. 지난 시간에도 도래가 다루어지기는 했으나 중심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는데 뒤에서도 계속해서 여신과 관련된 ‘도래’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become’은 어떻게 번역되는 것이 적절할까요? ‘도래’는 너무 일신교적인 기독교적 시각이 배경이 되는 것 같고, ‘생성’은 그저 자연발생적인 현상을 보여주는 것 같고, ‘변형’은 여신이 가지고 있는 재생의 힘을 보여주기엔 좀 약한 것 같고... 번역의 어려움을 느끼는 이야기였어요. 부득이하게(?) 들뢰즈의 ‘되기’와 같은 단어이다보니 들뢰즈의 이야기도 간혹 나오긴 했었는데요, 재탄생과 관련된 여신의 ‘계속 이어져 가는’ 힘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생명의 탄생은 여신의 힘이 현현하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숭배가 서려있는 ‘도래’가 그 뉘앙스를 잘 살려준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ㅎㅎ
이번 분량에서도 다양한 상징과 동물들이 등장했습니다. 염소, 고슴도치, 물고기...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있었던 것은 ‘개구리’ 였던 듯 합니다. 김부타스는 개구리 자세를 하고 있는 다양한 기호들을 소개했는데요, 그 사례들을 보면 좀 의문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나왔던 ‘출산하는 자세’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거든요. 왜 하필 개구리 였을까? 김부타스 역시 이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252쪽에서 다른 부분과는 달리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빈번히 이 이미지가 출산의 자세라는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나는 사람 모양의 개구리가 재탄생의 상징들과 연결되 있기 때문에 이는 재탄생의 자세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탄생의 자세라니... 다시 읽어보니 출산의 자세와 뭐가 다른지 또 아리송해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저희가 살펴보는 ‘상징’은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상징’이라는 건 반드시 사실을 드러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상징’이 가지고 있는 그 ‘상징성’ 재탄생의 힘을 보여준다는 것이 상징에게는 사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개구리나 두꺼비가 가지고 있는 재탄생의 힘, 개구리의 상징성은 수에 기독교나 천주교의 벽 장식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호수샘이 찾아보신 그 충격적인 상징물 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3장의 마지막에 가서야 ‘재탄생’이 무엇인가 정확한 문장으로 설명이 됩니다 267쪽의 24-1 소와 ‘도래’의 상징은 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재탄생이란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즉각 변형되는 것을 의미한다.” 저는 왜인지 모르게 재탄생이라고 하면 누군가가 죽고 난 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완전 다르더라구요!! 수소는 시신으로부터 드러난 자궁의 모양과 유사하다는 점을 통해 여성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소의 뿔만 있는게 아니고 반드시 머리까지 함께 있어야 하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수소가 자궁과 닮아서 자궁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도, 자궁이 다양한 죽음과 탄생이 상징이 되었다는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문득 ‘자궁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자궁 그대로를 썼으면 됐을텐데 왜 꼭 수소여야 했을까?’하는 너무나 근본적이고도 기본적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세미나에서는 잘 설명하지 못했지만 중국 고전이나 한자를 보다보면 명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다양한 연상작용을 통한 상징들이 너무나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음-양, 달-해, 여자-남자, 밤-낮, 동생-형님, 자식-부모 등등... 이런 대비되는 연상을 이어가다보면 사실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 전혀 다른 것을 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학자들은 유비적인 연상작용을 통해 <주역>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주역의 음양을 새롭게 배치해서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면서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진 것과는 상관 없이 말이에요...ㅋㅋ 주역의 철학적 역사를 보면 이런 주장은 금방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긴 했지만 저는 그들이 정말 자신들이 밝혀낸 주역의 원리대로 세상이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신의 언어>를 읽으면서 궁금했습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왜 자꾸만 다른 것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것일까? 하고 말이에요.
제 질문에 요요쌤과 호수쌤은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여신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만큼 ‘언어’자체가 중요했을 거라고 말이에요. 내용에 여신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상징의 체계로서 이해되는 세계가 있고, 자연에 드러나있는 대상에 그들의 세계관을, 철학을,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상징이 가진 언어적인 역할이라고 말이에요. 호수샘께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미화 하는’ 특성 자체가 기호나 상징화를 통해서 풀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특성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하셨어요. 그 당시의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로서, 존재 양식으로서 말이에요. 마침 저희가 작년 초에 함께 읽었던 브루노 라투르의 <존재 양식의 탐구>가 스쳐지나갔습니다 ㅋㅋ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밖에도 레펜스키비르의 물고기 상징 이야기도 있었는데 가능하다면 댓글로 풀어주세요 ㅎㅎ
마지막 시간입니다! 내일 만나용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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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숨돌려야 할 시간에, 아마도 숨도 다 못 돌리고! 자세히 남겨주신 후기 잘 읽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여신의 세계관'에 집중했지만 갈수록 '상징'이라는 것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동은샘이 자궁을 얘기하고 싶으면 "있는 그대로" 자궁을 그리지 왜 수소의 뿔에서 자궁을 보려 했을까 라는 질문은 제게 새삼 새롭게 다가왔어요. 어째서인지 제게는 그 두 가지 일이 너무 다른 일로 느껴졌거든요. 생명의 태어남을 이야기하고 되새기고 싶을 때 자궁을 그리는 일과 자궁을 닮은 다른 어떤 것을 그리는 일이요. 두 번째 일에서는 수소를 보면서 왜 하필 저렇게 생긴 것일까, 이것은 만물에 깃든 여신의 생명력....! 하는 감탄이 들어 있었겠죠. 그러한 연상 작용이, 말하자면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의미화 작업 같고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하는 심층에는 여신의 생명력을 확인하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있었겠죠. 김부타스는 이러한 '여신'의 존재를 밝히고 싶은 만큼이나, 올드 유럽의 선사인들이 주변에서 여신을 재차 발견하고 재차 되새기는 과정에서 사용한 '언어', 즉 상징이, 유물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인 현실로서 분명하게 주어져 있음을 밝히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그러한 상징을 새기고 만들고 보고 숭배하는 모든 행위가 올드 유럽인들의 수행이었겠다 싶네요. 이것은 라투르가 말한 종교적 존재자들이 생동하는 세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보게 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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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쪽 <여신의 자리와 역할>에서 두 군데 바로잡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동은샘이 알려주신 원문의 이미지를 보면 첫문단 셋째줄에 "각기 특질이 다를 뿐만 아니라"라는 부분은 단순히 'lunar'입니다. 이후의 내용에서 달의 세 가지 위상('나고 차고 이지러지는 세 가지 상들이')과 이어지는 부분이라 원문을 확인하니 이해하기가 더 쉬웠어요. 그리고 우리가 앞서 '비너스'라는 유물에 대한 작명법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눈에 띄어 확인했는데, 두번째 열의 첫번째 줄 이후는 원문에서는 '여신은 생명의 창조주이지, 비너스도 미녀도 아니었고 남신의 아내는 더더욱 아니었다'라고 되어 있네요. 다소 다르게 옮겨져 있어서 처음에 내용이 헷갈렸어요.
317쪽에서 왜 암양이 아니라 숫양이 여신의 신성한 동물이 되었는지 김부타스도 의아해 하네요. ㅎㅎ 본문에서는 뱀 똬리와 연결해서 꽤 자연스러워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ㅎ
321쪽. 두번째 열 "오래 지속되었던 이 시기에 인간은 창의력을 활짝 꽃피웠고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다. 전쟁은 없었다." 김부타스의 책을 보면 과연 갈등이나 분쟁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아요. 추천사를 쓴 김종일은 쿠르간 문화가 도달하기 이전에도 폭력과 남성성의 강조와 관련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 쓰긴 하는데(XXii)'' 궁금하기는 합니다. 다만 선사시대에 폭력성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이 마치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경계하고 싶지만요.
“자연의 리듬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김부타스의 마지막 구절을 오래도록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 읽고나니 어딘가 후련해져요. 김부타스는 316쪽에서 여신이 초월자가 아니라 내재자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모두 깃들어 있는 힘이며 단일한 모습이 아닌 다층적이면서도 전혀 다른 성질의 분열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대상이라고 해요. 절대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은 통합된 위대한 존재로서의 여신의 이미지가 마지막 시간이 되어서야 설득이 완료가 된 것 같습니다. ㅋㅋㅋ 그런데 숭배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자연은 그저 필요한 임무만을 한다.”는 317쪽의 문장이 무심한 자연 자체에 여신을 투영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이런 문양들이 왜 마지막 ‘에너지와 흐름’에 있는 것인지 좀 궁금했습니다. 가장 복잡하고 모든 것이 종합된 기호들이어서 그런 걸까요? 손과 발, 그리고 선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선돌과 혈석의 차이점이라든가, 그림 486의 해설을 함께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죽음’에 대한 문제, 우리의 유한성에 대해 고민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보다도 더 죽음에 대해 고민을 해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일어났어요. ㅋㅋㅋ 죽음과 부활이 아니라 죽음과 재탄생의 관점이 핵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한적인 생을 무한한 연결로 인식하고자 했던 그들의 사유의 깊이가 어떠했을까 더 이해하게 되었어요.
제가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에 대해 말한 것은..
신석기 시대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들은 희생의례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어서 좀 놀랐어요. 왜냐하면 김부타스가 올드유럽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모계제 사회라고 가정했는데, 사람을 희생물로 올리는 희생의례가 있었다는 것은 제가 생각한 평화로운 모계제사회와는 충돌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식인 풍습에 대해서도 그 사회의 문화와 맥락을 떠나서 야만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신을 희생물로 삼은 희생제에 대해서도 오늘날의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을 유보하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읽은 페이지에서 신석기 시대의 여러 동굴발굴사례들을 통해 신석기 시대에도 동굴이 중요한 성소나 의례의 장소였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요. 동굴은 주로 구석기 시대(가령 라스코 동굴, 쇼베동굴, 알타미라 동굴 등)와 연관지어 생각했는데, 그 또한 나의 선입견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답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샥티(Śakti)는 보통 성력性力이라고도 번역되는 말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성적인 힘이란 김부타스의 말로 번역하면 생명에너지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힌두교에서 가장 중요한 세 신이 시바, 비슈누, 브라만인데, 이들 신에게는 배우자 여신이 있어요. 이들 배우자 여신들을 신앙하는 것을 샥티즘이라고 하기도 해요. 이번에 <여신의 언어>를 읽으면서 샥티즘 역시 (올드유럽의 여신신앙은 아니지만) 인도 원주민의 신석기 문화(인더스 문명)가 인도-유럽적인 힌두교 신앙에 자취를 남긴 오래된 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어요.(인도밀교와 관련이 깊은 티벳불교에서도 남녀합체존을 볼 수 있고요.) 역시 신화든 뭐든 과거의 것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어 어떤 식으로든 그 얽힘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샥티신앙과 동굴은 관계가 없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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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5장에 갈고리와 도끼가 나오는데요.
나선, 달의 주기, 뱀뙤라가 생명의 에너지와 관계가 있는 상징이라는 것에 비해 갈고리와 도끼는 좀 어렵게 느껴집니다.
갈고리에 대해 김부타스는 나선을 단순화한 문양이라고 말합니다. 나선의 일부를 특화해서 강조한 것이어서 갈고리는 나선과 분리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이런 것이 김부타스의 독창적 해석이 아닐까 싶네요. (헝가리 티서에서 발굴된 남신상의 지팡이 역시 제왕의 힘이 아니라 생명을 자극하고, 재탁생의 힘을 나타낸다는 해석도 덧붙여지고 있습니다.290쪽)
도끼가 제례에서 매우 중요했다는 것의 근거는 여러 신성한 유적지에서 도끼가 발굴되기 때문입니다.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는 작은 돌도끼가 많이 발굴되고, 금속(동)으로 만든 도끼, 점토로 만든 도끼(이건 구웠겠지요?), 호박도끼도 발견된다고 합니다. 김부타스는 도끼를 파괴와 살상의 무기가 아니라, 생명력을 자극하는 신성한 유물로 봅니다.
"올드유럽의 상징체계에서 도끼는 에너지의 상징이다. 이는 인도-유럽문화 종교에서 천둥의 신들이 보여주는 성적인 힘을 나타내는 매개물이 아니다."(290쪽) 신성한 상징이 무기나 남성의 성적힘을 과시하는 상징물이 되어가는 변천의 과정을 읽어내는 김부타스의 시선이 흥미롭습니다.
2. 26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붓과 빗이었습니다.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붓과 빗 문양이 생명 에너지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차탈휘익 성소에서의 독수리 날개가 빗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혹시 빗모양은 새의 날개와 관련이 있을까요?)
3. 27장 여신의 손과 발
구석기 동굴에서도 신석기 유물에서도 손모양이 자주 나타납니다.
김부타스는 손이 여신의 힘과의 접촉을 나타내거나, 여신의 힘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여러 동굴에서 보이는 손에 대해 일종의 싸인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 역시 매우 근대인스러운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손이 교육적인 목적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보기도 한다는군요.(사냥할 때 일종의 신호체계를 배우는 것?)
4. 28장 선돌과 원은 선돌유적들을 춤과 관련시키는군요. 이런 해석은 원의 형태로 춤을 추는 의례와 연결시키려고 한 것 같아요.
선돌=여신이라는 김부타스의 해석은 많은 반론에 직면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ㅎ
그런데 알고보면 스톤헨지만이 아니라 서유럽 해안가에는 스톤헨지와 같은 거석유적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거석은 천문관측을 위한 것이었다, 공동체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치유의 장소였다, 남근숭배다, 공통된 해양문화의 흔적이다 등등 여러 의견이 있군요.
선돌에서 남근이 아닌 여신을 읽어내는 김부타스에게 저는 거의 설득되어 가고 있습니다.^^
5. 김부타스는 올드유럽 여신신앙이 갖는 보편성을 유물들을 통해 증명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의문. 올드유럽의 여신신앙은 모두 같은 뿌리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이것을 올드유럽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쿠르간이 올드유럽을 변형시켰듯이 올드유럽의 문명 또한 올드유럽 이외의 지역의 문명과의 교섭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