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나랑, 과학철학을 만나다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3회차 후기
장하석 <과학, 철학을 만나다> 7장~10장
사미르 오카샤 <과학철학> 4장 실재론과 반실재론
참석자: 재하, 두루미, 소피아, 민숙경, 번개, 나랑
1회 차만이 남은 2/5, 다섯 분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철학은 역시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무엇을 깊이 생각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따지고 묻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과학철학'이란 단어 자체가 저에겐 생경했고,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은 느낌 또한 들었습니다. 실험, 관측, 이론, 예측된 결과물, 이론으로 증명되는 현상 등에 철학적 판단이 왜 있어야 하는지, 이 모두가 무식의 소치임을 3회차 모임을 하고 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배우고 익혀야 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따지고 보면 과학 보다 철학이 먼저 인간의 사유 세계를 차지했을 겁니다. 철학에서 분가한 과학이 제대로 세상의 이치를 잘 설명하는지 그 과정에서 실수는 없는지, 어떤 방법으로 과학적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자 이제부터 과학철학 온라인 모임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1번째 질문
재하님: "저는 이런 것에 '상보적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 상보적 과학의 기초는 , 자연에 대한 모든 것을 탐구하려는 열망을 유지하면서도, 현재 전문적 과학자들은 어떤 특정한 방향과 방법으로 과학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344p
과학은 앞으로 나아가며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전진성을 띄는 듯하고, 계속 보안하고, 기존의 패러다임 내에서 (혹은 밖에서) 더 나은 이론을 제시하려 애쓴다. 그에 반에 과학사, 즉 역사적인 관점은 뒤를 돌아보는 행위이며, 철학적 사유도 비슷한 곁을 가지고 있 는 것 같다. 아마도 장하석 교수가 이야기 하는 진보적 정합주의는 이러한 두 방향을 동시에 생각하며 나아가는 나선형의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루미님: 왜 '상보적' 이란 단어를 썼을까요? 그것은 뒤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고 ( 그냥 앞으로만 직진하는 것이 아닌), 진리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 그래서 '상보적'이란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진보적 정합주의가 상보적과 같은 뜻은 아닐까 한다.
소피아님: 플로지스톤(Phlogiston)은 지금은 전자(electron)이고, '질량보존의 법칙'을 따르면 플로지스톤은 폐기된다. 그러나 역사적 발전이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아 현재로 가져오는 것이다.
여기서 말이 나온 김에 플로지스톤 이론을 잠깐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18세기 사람의 입장에서 플로지스톤을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상당히 실용적인 개념이었다는 것입니다. 물건이 타고 나면 확실히 성질이 변합니다. 매끈매끈하고 질겼던 종이다 타고 나면 푸석푸석한 회색빛의 잿더미로 변합니다. 사람들은 플로지스톤이 빠지고 나면 모든 물질의 매끈하고 반반한 성질이 없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로지스톤을 빼내면 녹이 슬고 푸석푸석하고 흙같이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산소와 수소 그리고 전자의 발견으로 플로지스톤 이론은 사라져갔습니다. 장하석 교수는 플로지스톤을 꼭 죽여야만 했을까라고 묻습니다. 산소 패러다임에 자리를 내어준 플로지스톤을 계속 놔뒀으면 화학 에너지의 개념으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19세기 영국의 오들링의 주장도 소개합니다.
또 다른 상보적 기능의 예로 저자 장하석이 들었던 것이 물인데요. 단순하게 H20 분자식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이 안됩니다. 분자 구조, 결합각, 극성, 반응성 등은 분자 수준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물은 100도에서 끓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어떻게 알까요? 그렇게 배웠으니 우리는 의심없이 그냥 외워 아는 것일까요? 물은 상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맥락에서는 물은 H2O이지만, 또 다른 맥락에서는 H2O 만으론 아무것도 설명이 안됩니다.
2번째 질문
두루미님: 쿤은 플로지스톤 이론을 끝까지 지킨 프리스틀리의 행동이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하면서도, 그럼으로써 과학자들의 공동체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과학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과학의 기존 행태를 대략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쿤 철학의 약점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51p)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과학혁명은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을까요? 과학자들의 공동체성을 이들의 과학활동이 사회활동의 일환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는 것을 지난 주 나랑님 질문을 통해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더 나아가 이 공동체에서 퇴출? 혹은 자의로 탈퇴하더라도 더 이상 과학자는 아니라는 것은 쿤이 생각하는 과학의 독특한 점이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자 장하석은 이 독특한 점이 정당화의 수단이 되어주기는 하지만 약점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장들에서 저자가 과학사에서 그가 찾아낸 수많은 아마추어 과학자들의 비교적 간단한 실험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과 연관지어서 쿤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소피아님; 지난주, 우리는 과학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으로 (기준을 정의하고 개념을 확립하는 등),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번개님 ; 모든 학문이 세분화되는 경향이 있듯이 과학 또한 물리화학, 유기화학, 무기화학 등등 한 특별한 분야의 전문가 외에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시민들이 하는 과학, 전문가만이 아는 지식분야도 있고 그들의 전문 지식이 사회를 이끌어가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일반 대중들도 지식에 목말라하는 본성이 있고, 그리고 바른 과학 지식을 쌓아가야 내 삶의 결정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도 끊임없이 과학 공부에 게으르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공유했습니다.
두루미님 ; '탈원전' 과 관련된 시사 혹은 주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탈원전'이 너무 어려우니 전문가만 해야 해 " 라는 의견도 있 을 수 있다. 핵발전소에 관련된 결정은 쉽지 않다. 가장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라도 시민적 공부는 중요하다.
소피아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 나 또한 구매하였었다. 화학전공인으로서 락스는 호흡에 닿는 것이 안 좋다고 생각해서 가습기를 안 썼다. 과학을 알고 있어야 한다. 똑똑한 사람이 알아서 할거야 는 아닌 시대이다.
두루미님; AI 시대에 과학공부를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미나에서 AI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대학교 학생들 시험에 AI가 답한 문구 그 대로 제출한 사건이 몇몇 발생했다. 과연 Essay 쓰는게 의미가 있을까? 과학은 분명히 AI가 도움이 된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취할 것인가'
재하님; 과학은 전문가가 맡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맡는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말을 따르되 대중들이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이 사회로 들어오는 시점에선 대중이 의견을 내야 한다.
나랑님; AI끼리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 AI 전문가의 우려를 들어보니, 공동체가 AI관련한 문제점과 예측되는 인간의 안녕뿐만 아니라 AI 기술의 사용권과 소유권을 가진 업체들에게 주어질 의무 사항 등을 공론화하여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재하님; 사회가 AI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소피아님; 연금술이 있었고 혁명이 일어났고 그 후 정상과학으로 주욱 가고 있다. 그 당시 젊은 과학자들이 기존 과학을 타파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3 번째 질문
민숙경; 프레넬의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에테르의 발상을 기반으로 했음을 고려하면, 그 이론을 어떻게 참에 가깝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이 해하기 힘들다. 프레넬 이론은 경험적으로 성공했지만 참에 가까운 것조차도 아니었다.
질문--> 그 이론이 참에 가깝다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나요? 반드시 실체가 존재해야만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참의 경계가 어딜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참이라서 효과가 있는 건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혹시 우연으로 효과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이 질문은 재밌기도 했고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 참이란 일어날 확률이 높은게 아닐까 "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재하님의 의견은 "어떤 것이 참인가 문제보다 우리의 판단이 있어야 참이 된 다". 소피아님은 " 데이터를 많이 가져오고 참에 가까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닐 수 있다"
4번째 질문
나랑/ 재하님의 질문; 관찰 가능한 것과 관찰 불가능한 영역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저자는 책에서 질문만 던지고 딱히 답은 하지 않고 있다. 재하님은, 반실재론자들 (관찰불가능한 것들을 상정하지 않는)이 과학철학에 필요하다.
소피아님, " 이 방법이 나에게 효과가 있든지 없든지, 확률은 50%이다. 절대적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굉장히 참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는 임의적으로 효과를 정할 수 있다. 어떻든지 정보를 얻으려 하는 모든 행위가 관찰이 아닐까? 따라서 관찰된 것과/ 관찰이 될 것만 있다. "
재하님; 관찰 불가능한 것들이 있냐 없냐는, 관찰 불가능한 것의 정의가 필요하다
소피아님; 대머리 vs 대머리가 아니다. 보험 적용을 위해 범위를 정할 것이다. 명확한 기준을 내주면 우리는 '과학적'이라 한다. '임의적이다'는 우리가 기준을 만든다.
재하님 ; 그거 상관없다. 경계 짓든 말든. 대머리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구지 경계성의 문제로만 접근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현미경을 보는 것, 현미경도 '안경'이 아닌가? '본다' 는 정의, 임의성이라면 우리는 논의하지 않겠다. 실재론과 반실재론 각각 잘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우월화 할 수 없다
번개님; 참이 있다--> 실재론, 그게 아니다---> 반실재론
재하님은 관측 가능한 것과 관측불가능 경계를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변용이다.
두루미님;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니까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제가 이번 단기집중 과학 세미나 중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이 배웠던 부분은 실재론과 반실재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미르 오카샤에 의하면 과학적 실재론의 기본 발상은 간단합니다. 실재론자는 과학의 목표가 세계를 참되게 묘사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 목표가 흔히 달성된다고 여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좋은 과학 이론은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을 참되게 묘사하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나온 질문이 ''참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었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저는 한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입니다. 과학의 목표 또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럼 진실은 어떻게 정의하는가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배운 것은 진실과 참은 지성이 정한 또는 사회가 정한 '임의성'입니다.
이번 과학세미나에서 배운 또 다른 깨달음은 입자물리학이 말하는 아원자 세계를 제가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이해하고 있지 않은데도 그들의 이론을 믿고 있었던 저의 발견이었습니다. 실재론은 물리적 세계가 인간의 사고 및 지각과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실재론은 세계에 관한 사실들이 '저기 밖에서' 우리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상식적 견해와 잘 들어맞습니다. 인간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저자 사미르의 표현은 시적이기까지 합니다. 보이지 않았던 '중력'과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인간이 발견한 것이겠죠. 그저 '저기 밖에서' 존재하는, 그러나 관측불가능한 것까지 포함시키는 실재론의 설명이 저는 좋았습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566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후기-벌써 마지막이라고요?
소피
|
2026.02.18
|
조회 76
|
소피 | 2026.02.18 | 76 |
| 565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질문들
(6)
재하
|
2026.02.10
|
조회 95
|
재하 | 2026.02.10 | 95 |
| 564 |
<여신의 언어> 마지막 후기^^
(1)
요요
|
2026.02.10
|
조회 92
|
요요 | 2026.02.10 | 92 |
| 563 |
<여신의 언어> 5회차 후기
(3)
동은
|
2026.02.08
|
조회 105
|
동은 | 2026.02.08 | 105 |
| 562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나랑, 과학철학을 만나다
(2)
나랑
|
2026.02.08
|
조회 129
|
나랑 | 2026.02.08 | 129 |
| 561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3회차 질문들
(6)
재하
|
2026.02.03
|
조회 118
|
재하 | 2026.02.03 | 118 |
| 560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혁명은 없다?
(2)
두루미
|
2026.02.02
|
조회 119
|
두루미 | 2026.02.02 | 119 |
| 559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2회차 질문들
(10)
재하
|
2026.01.27
|
조회 163
|
재하 | 2026.01.27 | 163 |
| 558 |
<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1회차 후기 - 과학적 믿음
(4)
재하
|
2026.01.27
|
조회 126
|
재하 | 2026.01.27 | 126 |
| 557 |
<여신의 언어> 4회차 후기
(6)
호수
|
2026.01.26
|
조회 141
|
호수 | 2026.01.26 | 141 |
| 556 |
[2026년 1월 맥-잡기 세미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 메모
(13)
웹진
|
2026.01.23
|
조회 205
|
웹진 | 2026.01.23 | 205 |
| 555 |
<여신의 언어> 3회차 후기
(4)
술리
|
2026.01.21
|
조회 145
|
술리 | 2026.01.21 | 145 |

ㅎㅎ 나랑님이 이번 기회에 철학을 만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후기를 읽으니 각자의 목소리가 재생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미르가 과학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에 제한해서 설명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과학적 반실재론자도 일상에서는 실재론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나는 어떤 입장에 서있을까? 내내 궁금했는데, 아직 해답이... 이성적으로는 과학적 반실재론(반프라센의 구성적 경험주의)이 매력적입니다. 전자든 쿼크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든 말든 지금 우리의 경험을 전자이론이든 쿼크이론이든 설명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지난 시간 장하석 교수가 소개했던 4가지 실험과 이론도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하나의 이론이 완벽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구요. 하지만 일상에서 저는 과학적 실재론자에 가깝습니다. 가령 오늘 아침 종합비타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먹으면 뭔가 종합적으로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ㅎㅎ
과학세미나를 하면서 저도 제가 그동안 습관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의 기반들을 살펴보게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밖에 있는 나와 독립된 실제 세계'에 대해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고, 과학적으로도 그것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직관과 경험이 말해주는 바가 대부분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철학적인 반실재론 (이상주의 등)이나 과학적 반실재론 모두 일상생활에서는 쓰이지 않지만, 엄밀하게 들어갈 때 생각해보기 좋은 주제들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