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치러진 프랑스 바칼로레아 주제 중 하나는 "우리의 미래는 기술에 달려 있는가?"였습니다. 기술이라는 문제가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핫한지 바칼로레아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저마다의 답을 내어 놓으며 시끌시끌하다고 합니다.(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부럽습니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주최한 2025 경향포럼의 주제도 AI였습니다. 여기에는 외국의 석학들 몇사람과 함께 김재인 선생이 참여했더군요. 마침 육후이의 기술철학 책을 읽고 있기도 하고 언젠가 문탁에서 연 AI강좌를 통해 김재인 선생의 책도 읽고 강의를 들은 적도 있는지라 관심을 갖고 발표내용을 읽게 되더군요.
경향신문에서 이 포럼에 참석하는 외국석학들과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고 연재기사를 실었더라고요. 저는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 소장인 샹바오와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눈에 띄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샹바오는 중국 출신(베이징대) 인문학자입니다.
“내 일은 전통을 들여다보고 우리 자신의 기반을 만들고, 우리의 강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하든, 우리가 거기에 대응하거나 저항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바이러스를 대하는 중의학 또는 한의학과 같다. 바이러스는 분명 무섭다. 서양 의학은 바이러스를 겨냥해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아시아 의학은 ‘바이러스가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라’라고 말한다. 면역 체계를 키우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물론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위험이 우리 삶을 지배하거나 압도할 것이라는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이 대답은 육후이가 그리스적 사유의 코스모테크닉스 하에서 구축되어온 근대의 테크놀로지와는 다른 테크놀로지에 대한 철학의 전통을 중국 사유에서 발견하려는 시도와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라는 눈앞의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 역시 코스모테크닉스와 무관하지 않을 테니까요.(육후이의 책이 철학적 언어로 쓰여 있긴 하지만 바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우리가 이번에 읽은 부분은 1부 7장에서 10장입니다. 1부의 제목은 중국의 테크놀로지 사상을 찾아서입니다. 7장에서 10장은 중국사상사 측면에서는 <주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담론에서부터 위진남북조시대의 현학까지 도道-기器의 관계에 대한 사유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이와 대응하는 서양 철학으로 이오니아철학부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스토아학파에서의 퓌시스와 테크네에 대한 사유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사유에서 기술에 대한 최조의 담론은 <<주례>> <고공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공기>는 하늘의 때時와 땅의 기운氣, 재료의 아름다움美, 기술사의 기술術이 합쳐져야 적합한 생산물良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때, 기, 재료는 주어진 것으로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술은 좋은 생산물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술은 결정적 요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대 중국의 세계관을 육후이는 기적氣的 세계관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에는 고대 그리스철학에서 중시하는 '형상(idea, eidos)'에 대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적氣的 세계관에서는 형상의 구현이 아니라 기술과 우주질서(때와 기, 재료)와의 공명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고대 서양의 사유에서 기술이 운동인運動因으로서 존재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포이에시스, 알레테이아)이라면 고대 중국 사유에서 기술은 조화이자 공명, 도의 추구로 이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의 근원을 추구하자면 서양에서 철학의 핵심문제가 존재-물음과 기술-물음이었던 것과 달리 도가와 유가에서는 삶에 대한 물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철학을 공부할 때 우리는 도가와 유가는 어떻게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후이는 이와 달리 도가와 유가의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는 도가와 유가가 상보적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이것은 대립항으로 서양의 고대철학을 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스모테크놀로지라는 관점을 취한다 하더라도 도가와 유가를 상보적 관계로 볼 수 있을까? 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만, 육후이의 논리를 따라가려면 일단 이 문제는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육후이는 도가와 유가가 결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도가 우주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도를 자연철학으로 읽지 않고 테크놀로지 철학으로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중국철학에서의 도를 실현한다는 것은 도와 기의 합일을 최고기준으로 설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기 합일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장자>의 포정해우 고사가 등장합니다. 포정해우가 왜 양생주에 배속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포정이 소를 해체할 때 칼이라는 기술적 대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 핵심은 칼이 아니라 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정과 대화를 나눈 문혜왕은 이제 비로소 양생의 도를 알게 되었다고 답합니다. 포정에게서 구현된 도-기합일이야말로 삶의 물음에 답하는 최고의 코스모테크놀로지의 경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역시 <장자>의 기심機心을 들 수 있습니다. 노력을 줄여주고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계에 대해 장자는 비판합니다. 육후이는 기심을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machine heart으로 읽기보다는 계산적 정신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제안합니다. 기심이란 기계의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도道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마음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가에서 기器는 예禮 혹은 예기禮器로 등장합니다. 에 혹은 예기야말로 도를 현실세계에서 구체화하는 개념이자 장치입니다. 우주와 자연만물에 내재하는 도를 인간의 삶에서 구현하는 것은 예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도가와 유가가 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기의 측면에서는 다릅니다. 유가에서 기는 도라는 목적을 위해 예라는 형식을 갖춥니다. 일종의 조직화된 질서인 셈이지요. 그러나 도가의 기는 형식이나 도구적 역할과는 무관합니다. 앞선 장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도가에서의 도는 내적 정신의 자유 안에 머무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지요. 그런점에서 도가의 도는 포정해우에서 보듯이 기술의 완성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기심에서 보듯이 기술에 대한 저항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서양 사유에서 테크네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합니다. 자연이 은폐하려는 것을 탈은폐하려는 것이니 당연합니다. 서양사유의 역사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리는 드러내는 것이라는 이해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을 기술적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그리스적 형이상학의 의미라고 보았습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테크네가 사유의 기원을 구성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물음은 고립된 존재를 열기 위한 존재-물음이었던 것에 반해 플라톤 이후 존재-물음은 존재자에 대한 물음으로 바뀝니다. 이로부터 서양 형이상학이 정초되고 존재-물음에 대한 쇠락의 역사, 망각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존재신학의 역사'라고 하고, 짐머만은 '생산주의적 형이상학'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토아학파의 코스모테크닉스입니다. 하이데거가 스토아를 대충 건너뛴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육후이는 스토아학파의 코스모테크닉스와 도교적 코스모테크닉스를 비교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아의 자연과 섭리에 대한 주장,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것을 읽으면서 헬레니즘 철학이 도교와 비슷하다고 느끼기때문에 육후이는 이것을 해명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사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이 둘 사이에도 심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스토아의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성, 이성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완벽하게 이성적인 자연을 전제합니다. 또 스토아학파가 말하는 삶의 기술ars의 기술이란 바로 테크네를 뜻합니다. 스토아 학파에게 미덕은 테크네인 것이지요. 다시말해 미덕은 행복을 생산하는 기술(테크네)로 간주됩니다. 스토아와 도가 모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이라는 언표는 동일하지만, 앞의 <장자>에 나온 '양생'이나 '기심'과 비교해 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에 이르는 접근법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유지위안이라는 중국출신 철학자가 정리한 우주론, 신격화, 행복, 합리성 네 가지 측면에서 스토아와 도가의 차이를 참고하세요.^^)
중국의 테크놀로지 사상을 찾아가는 여정이 험난합니다. 그 험난함의 대부분은 육후이가 중국사유를 계속해서 서양 형이상학의 사유와 대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미나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중국 고전을 공부한 분들이어서 유가나 도가 이야기는 술술 넘어갑니다. 책에서 육후이가 말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중국의 철학과 대결하는 서양철학이 등장하면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서양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대안적 사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서양철학의 언어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이 책을 읽는 시도 자체가 그러한 어려움을 피하지 않으려는 노력인 것 같습니다.
저는 육후기의 동서양 대결구도가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우리가 쉽게 '어, 이건 동양의 도가와 비슷한 것 같아 '라는 식으로 말하는 인상평을 넘어서 사유의 역사와 맥락 속에서 깊게 따지고 계속헤서 레퍼런스를 붙여가는 학자적 접근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을 비교할 때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지, 하나의 모델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어렵지만 즐겁습니다.ㅎ 문탁에서 동양고전 공부하는 친구들이 다 함께 모여서 공부하는 자리에 끼여 귀동냥 하는 것도 너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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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좀 읽을 만한데... 라고 생각했다가, 급 후회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텍스트 함께 읽어 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요요샘이 서양철학의 맥락을 짚어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주 1부 끝까지 읽습니다.
11~13 토용, 14~16.2 자작나무, 17 진달래, 18~18.2 봄날, 19 원영
이게 맞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어렵긴 한데 흥미로운 책은 맞는 것 같습니다.
기술철학도 재밌네요. 器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는 것도 있고요.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 참 흥미있으면서도 참 어렵습니다. 우선은 어떤 맥락에서 논의되는지....조금씩 가고자 합니다.
올립니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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