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 세미나 강의 포스트휴먼] 마지막주 후기!

정군
2024-08-0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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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세미나 강의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신유물론, 포스트휴먼 담론에 대한 공부는 아직 안 끝났죠. 하.... '공부'의 어려운 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른 일들, 예를들면 청소나 설거지 같은 일들은 하면 할수록 할 일이 줄어드는데 비해서 '공부'는 하면 할수록 해야할 게 늘어난다고 할까요? ㅋㅋㅋ 그렇게 이번에도 공부할 거리들이 잔뜩 늘어나고 말았습니다. 어제 저녁엔 무려 소설까지 목록에 추가되었고요.

 

지난 주 강의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론)'에 대한 개괄적 설명이었다면, 이번주는 좀 더 세부사항들을 살펴보는 양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주체성', '조에-생명', 담론적인 영향 관계, 구체적인 실천 가능성 등이 주요 주제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여느 철학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브라이도티에게 있어서 이 주제들은 사실 모두 연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주체성을 확보해야 하는지, 그 주체성은 어떤 이론적 맥락을 통해 구축되는지, 그러한 주체성이 어떤 계보 아래 있는 것인지 그로부터 어떤 실천이 가능한지 등이 물어지고 있는 것이고요.

 

이번 강의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사실 그렇게 연관된 물음들이 향하는 방향, 이를테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을 향해 나아가는 브라이도티의 태도였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같은 브라이도티의 선생들도 실천적 수준까지 사고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현행적인 우리들과는 시간적 거리가 있다보니 '이론'의 공간 안에 묶여있는 느낌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에 반해 브라이도티는 동시대 철학자로서 당대의 문제들에 응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사유하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또 어떤 맥락에서 보면 그 점이 브라이도티가 사로잡힌 함정이기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제 질의응답 시간 말미에 제가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브라이도티의 논의들이 의지하고 있는 존재론적 맥락이 분명 있음에도 그 점이 정교한 구조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인상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유목적 주체>나 <변신> 같은 저작을 좀 더 읽어봐야 알 수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런 점에서 공부해야할 게 또 한 가득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브라이도티가 의지하고 있는 존재론적 맥락이라는 게 스피노자 이래로 또는 그보다 멀리 헤라클레이토스와 아낙시만드로스까지 올라가는, 들뢰즈가 계보화한 '일원론'의 전통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브라이도티 뿐 아니라 '신유물론' 담론 일반이 의지하고 있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계보에 속한 사유자들이 어떤 이유에서 '일원론'을 주장하는지 살펴보려면 이원론자들, 형상주의자들의 담론도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대 이와 같은 담론의 세계는 삐져나온 끝 하나를 잡으면 줄줄이 알사탕처럼 나머지 모든 것이 끌려나오는 세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두가지 선택지가 있을텐데... 담론 그 자체에만 집중해서 공부하거나, 계보학적 탐색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끊임없이 매달려보는 겁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느 쪽에 달라붙던 간에 그것으로부터 다른 무언가를 새롭게 생산하는 일일 겁니다. 브라이도티처럼요.

저는 사실 브라이도티 텍스트만 읽었을 때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었는데요... 왜냐하면 논의를 전개하는 방식이 좀 벙벙하다고 느꼈으니까요. 강의까지 듣고, <포스트휴먼>이 놓여 있는 맥락과 브라이도티의 의도를 알고나니 조금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브라이도티에게서 포기하지 않고 문제에 매달리는 어떤 의지 같은 걸 느꼈달까요? ㅎㅎㅎ

 

강의 중에 이경란샘께서 '포스트휴먼 주체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학작품들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주로 옥타비아 버틀러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 옥타비아 버틀러 작품들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 꽤 있다는 사실에 약간 뜨악하면서도 너무 즐겁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인즉 아직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남았다는 이야기니까요. 특히 <킨> 같은 작품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보통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소설, 특히나 이른바 '장르소설'을 읽기엔 여름밤보다 좋은 계절은 없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 계절이 가기 전에 읽어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ㅎㅎㅎ 그리고 강의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포스트휴먼 주체성'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작품들이 저도 몇가지 있었는데요. 이를테면 단톡방에도 공유해드렸던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나, 황폐화된 지구에서 인간 복제로 종적 생명을 유지해가는 인류의 이야기를 다룬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절판입니다 ㅠㅠ)나, 시스템에서 분리된 인공지능 주체가 전제적인 인공지능 주체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다룬 엔 레키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 같은 작품들이 그것입니다. 전부 SF소설이고 전부 여성작가들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어쩌면 '포스트휴먼 주체'의 모델의 원형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외에도 코니 윌리스의 몇몇 작품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들도 생각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철학 따위 잊어버리고 주구장창(한 한달쯤?) 장르소설만 읽고 싶어집니다만... 철학, 역사 같은 본격 인문학 공부를 고통스럽게 해야 소설 읽기가 더 씐나는 것이겠죠? ㅋㅋㅋ

 

우야당간 5주에 걸쳐, 이 덥고 습한 날에 공부하시느라 고생들 하셨고요. 다음에 또 다른 공부 안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댓글 4
  • 2024-08-01 14:31

    우연히 신청한 강의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나고 갑니다.
    읽는 내내 어렵고 뒤죽박죽 정리가 안되었던
    브라이도티의 책 <포스트휴먼>
    이경란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어느정도 가닥은 잡은거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직 철학 공부는 엄두가 안나서 추천 SF 소설을 읽으며 포스트휴먼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강의전 올려주신 세미나 질문들이 읽은 책 내용 되돌아보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기와 공유해 주신 귀한 자료들, 좋은 강의 마련해준 문탁 네트워크에도 고마운 마음 전하며.....
    더운 여름 모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2024-08-02 01:10

    세미나를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경란샘의 강의로나마 브라이도티를 만날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제 강의에서는 우리’를 어떻게 구성할지,
    그 ‘우리’는 어떻게 회합하고 관계할지에 관한
    브라이도티의 논의들이 무척 와닿았어요.
    동시에 읽었던 잉골드의 선들의 조응과도 연결되는것
    같아서 더 흥미로왔네요.
    강의를 듣는 동안 변신과 치유 능력을 가진 존재, 아냥우가 나오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야생종>이 떠올랐는데,
    마침 경란샘이 소개해주신 버틀러의 릴리스 3부작도 넘넘 읽고 싶고 정군샘이 알려주신 앤레키의 3부작도 궁금…
    브라이도티의 ‘변신’ 도 너무 보고 싶은데 ㅠ
    아~ 이 들뜬 감정도 다음주면 사그라 들겠죠? ㅋㅋ

    • 2024-08-02 08:42

      sf덕질 세미나에 들어오시오^^
      글구 나도 <킨>보다 <블러드 차일드>가 좋았다오. 처음에 진짜 깜놀했다는^^ (물론 킨 덕후이기도 하오)

  • 2024-08-02 11:43

    저도 책을 읽을 때는 좀 답답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사라졌습니다.
    감사합니다.~
    SF소설들...꼭 읽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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