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주 수요일(7/3)부터 2024 여름 세미나+강의 [포스트휴먼, 인간 너머를 생각하기] 세미나가 시작됩니다.
혹시.... 미리 책을 읽고 계신 분들이 있을까요? ^^
모집 공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첫 시간에는 서론과 1장 포스트-휴머니즘 자아 너머 생명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페이지 기준으로 74쪽까지입니다. 로지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설정들이 들어있는 부분이므로 꼼꼼하게 잘 읽어오셔야 이후 세미나나 강의에서 좀 수월하게 접근하실 수 있습니다. 해당 부분을 잘 읽고, 1-3개 사이의 질문을 구성하여 이 게시물에 댓글로 올려주셔요. 세미나는 올려주신 질문을 토대로 진행됩니다. 질문을 올려주실 때에는 꼭 해당 질문이 텍스트의 어느 부분에 근거하고 있는지 명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특정 부분은 없고, 전체적인 논의 전반을 두고 구성한 질문이라면 [전체]라고 명기해주시면 됩니다. 아래 예시를 참고해서 작성해 주셔요.
예시1) 9쪽 '자연-문화 연속체는 무엇인가?'
브라이도티는 서론에서 '사회구성주의'와 '자연-문화'연속체를 대조해서 설명한다. 그리고 점점 '사회구성주의'가 힘을 잃고 있으며, '자연-문화 연속체'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그러한 변동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기술 발달'을 꼽는다. 첫번째 '사회구성주의'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와 대조되는 '자연-문화 연속체'는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두번째 그러한 세계를 보는 방식의 변동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시2) 25쪽 '이 유럽 중심적 패러다임은 자아와 타자의 변증법을 그리고 동일성과 타장성의 이분법적 논리를 함축하는데, 각각이 보편적 휴머니즘의 원동력이며 문화의 논리다.'
1장 초반부에서 브라이도티는 '휴머니즘'이 유럽-백인-남성을 '보편화'한 논리라고 주장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시작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휴머니즘'에서 '휴먼'의 범주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확장되어온 개념이 아닌가? 이를 기원적인 수준에서만 평가하는 것은 부당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예시를 참고하여 범위 안에서 '질문'을 만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질문은 세미나 당일 정오까지 이 게시물 댓글 본문(첨부금지)으로 올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부디, 시간을 잘 지켜주세요.
그럼 세미나에서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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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맥-잡기 세미나] 커먼즈란 무엇인가 -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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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후기-벌써 마지막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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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4회차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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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단기집중 과학세미나> 나랑, 과학철학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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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맥-잡기 세미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 -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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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페미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들이 휴머니즘의 오만함에 대해 가하는 이러한 근본적인 비판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인간/휴먼'을 더 포괄적이고 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비판은 모든 사물의 척도이며 '인간/휴먼' 기준의 담지자인 '인간'의 휴머니즘적 전망이 암암리에 전달하는 사유의 이미지에 대해 중요하고 혁신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이렇게 휴머니즘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은 우리가 남성중심주의, 인종주의, 백인 우월성, 과학적 이성의 도그마와 그 외의 사회적 지지를 받는 지배적 가치 체제들을 다루는 도구와 용어를 발전시킴으로써 권력에 대한 분석을 진작시킨다.
- 여기에서 페미니즘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들의 휴머니즘 비판이 어떤 점에서 부정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서론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향후 계속해서 펼쳐질 듯합니다. 서론과 1장을 같이 읽다보니 1장을 독립적으로 읽기보다 서론에서 제기한 것들이 1장에서 어떻게 풀리는지에 주목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군요.^^
1. 데카르트의 코기토 주체, 칸트의 이상적 존재들의 공동체 혹은 사회학적 용어로 시민, 권리보유자, 사유재산소유자로서의 주체와 같은 근대적 인간개념으로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을 정의할 수도 없고, 또 이런 개념으로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실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브라이도티가 포스트휴먼을 말하는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 조건은 어떤 것일까요?
“내 생각에 포스트휴먼 조건의 공통분모는 생명 물질이 생명력 있고 자기조직적이면서도 비자연적 구조로 되어 있다는 가정이다. 이 자연-문화 연속체는 포스트휴먼 이론에 대한 나의 입장이 공유하는 출발점이다.”(9쪽)
“나는 주어진 것과 구성된 것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에 의존하던 접근이 이제 자연-문화 상호작용을 비이분법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일원론적 철학과 관련되어 지지를 받는 듯하다.” (10쪽)
“나의 일원론적 되기/생성 철학은 물질이 체현된 인간(human embodiment)이라는 특정한 물질까지 포함해서 지능이 있고 자기조직적이라는 개념에 의존한다. 물질이 문화나 기술적 매개와 변증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물질관은 해방에 대한 다른 기획, 즉 비변증법적 인간 해방 정치를 생산한다.”(50쪽)
질문: 브라이도티는 생명도 아니고 물질도 아닌, 생명 물질이라는 개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생명 물질이 사용되는 맥락으로 보아 생명은 살아있고, 능동적인 것인 반면 물질은 죽어있고, 수동적인 것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생명 물질은 생명력있고, 자기조직적이고 비자연적 구조라는 말로 미루어볼 때 기 생명 물질이라는 낯선 표현 자체가 물질의 생명성을 강조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생명 물질과 비생명 물질이 나뉘는 걸까요? 아니면 모든 물질을 생명 물질로 보는 것일까요?(전자는 아닐 것 같고, 후자의 경우로 본다면 생명은 물질의 잠재성인 걸까요?) 브라이도티의 일원론 철학과 생명물질은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일까요?
2. 포스트휴먼 이론의 정치학과 윤리학이 서론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는데요. 브라이도티는 긍정의 정치학(affirmative politics, 73쪽)을 구성하는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주체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나는 포스트휴먼 이론을 계보학적 도구와 항해적 도구 둘 다로 사용하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포스트 휴먼 이론은 현재와 긍정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용어다. 환원적이기 않으면서 경험에 근거를 두는 방식으로 그리고 부정적이지 않으면서 비판적일 수 있는 방식으로 현재의 어떤 특징들을 설명하는 방법을 탐색하기에 유용하다.”(13쪽)
“나의 반휴머니즘 때문에 나는 사회주의적 변이들까지 포함하여 단일하게 통일된 휴머니즘의 주체에 반대하고, 그것을 체현과 섹슈얼리티, 정서와 감정이입과 욕망을 핵심적 특질로 하는 더 복잡하고 관계적인 주체로 대체한다.”(40쪽)
“이러한 물질관은 해방에 대한 다른 기획, 즉 비변증법적 인간 해방 정치를 생산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산물은 정치적 행위성이 부정적인 의미에서 비판적일 필요가 없으므로 그것의 주된 목표가 대항 주체성의 생산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이다. 주체성은 오히려 자기생성, 즉 자기 스타일의 형성의 과정이며, 이 과정은 지배규범 및 가치와의 복잡하고 연속적인 타협을 포함하고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설명책임의 영식들도 포함한다.”(51쪽)
“내가 옹호하는 포스트휴먼 주체성은 유물론적이고 생기론적이며, 체현되고 환경에 속해있으며, 내가 이 장에서 내내 강조해왔듯이 페미니즘의 ‘위치의 정치학’에 따라 어딘가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왜 주체의 문제를 이토록 강조하는가? 그것은 유물론적이며 관계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문화적’이며 자기조직적인 주체성 이론이 우리 시대의 복잡함과 모순에 적합한 비판 도구를 정교하게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창조성과 상상력, 욕망, 희망과 열망을 고려할 수 있으려면 주체에 대한 진지한 고나심이 필요하다.”(70쪽)
질문: 이 주체성은 비변증법적 인간해방정치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비변증법적 인간해방정치가 어떤 의미인지 검토해보고 싶군요. 또 이러한 해방정치의 주체는 유물론적이고 생기론적이며 체현되고 환경에 속해있고, 위치의 정치학에 따라 어딘가에 견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구성하는 개념들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특히 ‘체현되고 환경에 속해있다’는 말도 반복되는데(67쪽 참고) 여기서 체현(embodied)과 환경에 속해있다(embeded)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3. 1장부터 각장의 부제가 “00 너머 생명”입니다. 1장은 자아 너머 생명이군요. 데카르트적 자아, 혹은 칸트적 자아 너머 생명이라는 말로 읽힙니다. 여기서 자아는 자아/타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하는 자아로 이해하고, ‘생명’은 그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앞서 언급한 생명 물질의 생명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이 생명은 살아있는 유기체의 생명에 한정되는지 그 이상의 의미로 확장해서 이해해야 하는지도 궁금해지는군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이 움직임을 나는 인간-아님, 즉 조에zoe쪽으로 '생명'의 개념이 확장되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68쪽)에서는 인간-생명만이 아니라 비인간-생명으로의 확장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만...
질문을 올리려고 보니 제 질문을 요요샘께서 먼저 해주셨네요. 저도 저자가 계속 강조하고 있는 '포스트휴먼 주체성'이 궁금했습니다.
9쪽 '생명 물질'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브라이도티는 '자연- 문화 연속체(9)', '자연- 문화 상호작용(10)'라고 다르게 표현하면서, '물질(인간 포함)은 문화나 기술적 매개와 변증법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51)'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여 저도 '생명'을 어디까지로 봐야하는 것인지, 즉 인간과 인간- 아닌 주체(타자)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 궁금합니다. 브라이도티가 인간과 '인간-아닌 대지의 타자들'이라고 표현(65)하거나, '생명 물질에 대한 개입이 인간과 다른 종들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통일시키고 있다(56)'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 유기체까지만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1장의 제목이 "포스트 -휴머니즘 : 자아 너머 생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용에서 '주체'를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68쪽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과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움직임 사이에는 필요한 연결고리가 있다.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이 움직임을 나는 인간-아님, 즉 조에쪽으로 생명의 개념이 확장되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이는 혼종성, 유목주의, 디아스포라의 크레올화 과정을 변위시켜 그것들을 인간과 인간-아닌 주체들의 공동체와 연계성과 주체성을 주장하는 근거를 재설정하는 수단으로 바꾸는 급진적 포스트휴머니즘으로 귀결한다."
위의 내용으로 보면 제목의 '자아'는 인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체와는 관련이 없을까요?
45쪽 “진보적 정치 신조로서의 (근대)휴머니즘은 서로 맞물린 두 개의 다른 개념, 즉 평등을 위한 인간의 해방과 합리적 통치를 통한 세속주의에 연결되어 있다… 휴머니즘은 기독교 구원 교리를 보편적인 인간 해방의 기획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진보 개념은 기독교의 섭리에 대한 믿음의 세속적 판본이다…”
1장 3절 소제목이 ‘탈세속적 선회’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세속주의와 세속성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탈세속적 선회는 또 무엇을 말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70p. 결론 부분에서 첫번째 휴머니즘의 쇠락을 인정하는 새로운 주체이론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주체성의 견고한 토대를 발전시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떄문에 페미니즘의 위치 정치학이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그에게 주체성이란 유물론적이며 관계적이며 자연-문화적이고 자기조직적 주체성입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포스트휴먼 시대의 전망으로, "현재에 가치 있는 주체"를 말합니다. 앞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이 탈세속성에서 세속으로의 "귀환"(51p)이 아니라고 했는데, 주체로의 귀환이 아니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1.
"무슬림, 유대교 전통에서의 페미니즘 신학은 비판적 저항과 창조적 대안을 동시에 수행하는 잘 수립된 공동체들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제의와 의식에 대한 요청이 마녀들의 운동을 부흥시키고 있는데, 현재 가장 좋은 사례는 스타호크이며 특히 인식론자 이자벨 스텐저스의 재주장이 있다." (46)
일반적으로 종교적 전통, 그중에서도 특히 무슬림 전통은 여성의 권익과는 거리가 먼 영역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무슬림 전통에서의 페미니즘 신학'은 단어들의 결합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저자는 '억압당하는 무슬림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달리 보고 있는 것인가? 공적 지위에 출마할 수 없고 함부로 신체를 드러낼 수 없는 등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전통 내에서의 별도의 메커니즘을 갖는 페미니즘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일까?
2.
"우선 나는 지금이 휴머니즘적 과거를 향수에 젖어 갈망할 때가 아니라 새로운 주체성의 형식들을 미래지향적으로 실험할 때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로 우리 시대의 기술이 규범적으로 중립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기술들은 휴머니즘적 행위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다. 셋째로....." (62)
위의 내용은 저자가 포스트휴먼 사유의 두번째 가닥, '과학과 기술 연구의 분석적 포스트휴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 중 '기술들은 휴머니즘적 행위성을 내재하고 있지 않다'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영역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술 중 하나는 인공지능 기술일텐데, 작금의 인공지능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남긴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휴머니즘적 행위성이 어떠한 형태로는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3.
"특히 나는 이 상황을 하버마스의 사회민주주의적 열망보다 더 밀고 나가서, 유럽의 '소수자-되기' 혹은 유목민-되기라는 포스트휴먼 기획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것은 다수의 이분법적 함정을 우회하는 방법이다. (...) 유럽의 유목민-되기는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 ,제국주의적 구유럽의 나쁜 습관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의 웅장하고 공격적인 보편주의에 반대하며 그것을 상황적이고 설명책임을 지는 관점으로 대체한다." (72)
이 부분에서 저자가 포착하는 '유럽'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떠한 맥락(혹은 맥락'들')에서의 유럽인가? 혹은 어떠한 맥락에서의 유럽이어야 하는가?
아.....질문 세 개가 아니고 한 개에서 세 개였네요....
"나는 해체를 존중한다. 하지만 해체의 언어학적 참조틀이 갖는 한계는 다소 못마땅하다."(45쪽)
"포스트휴먼 주체는 해체주의적도 아니다. 언어학적 틀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70쪽)
1) 브라이도티가 거리를 두는 언어학적 틀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2) 브라이도티는 비변증법적인 연속성과 자기생성적 주체성(51쪽), 상황적이고 설명책임을 지는 관점을 강조하며 포스트휴먼 비판이론의 임무가 각양각색의 주체 포지션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지도를 그리는 것(72쪽)이라고 씁니다. 브라이도티의 비변증법적 지도 그리기, 설명 책임은 포스트휴먼 조건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전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변증법적 사유 방식과 브라이도티의 "설명 책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브라이도티가 시도하는 비변증법적 글쓰기 스타일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50~51p.
1장이라 그런지 구체적 대안보다는 고전적, 근대적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속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탈세속적 선회' 파트는 특히 감을 잡기 힘들었는데요, 저자가 말하는 합리적 행위성과 정치적 주체성이 어떻게 영성이나 종교적 경건함과 연결될 수 있는지 더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50쪽 마지막 문단~51쪽으로 이어지는 일원론적 되기/생성이 어떻게 대안이 되는지도 잘 감이 안잡힙니다.
또한 이 세속성과 영성에 대해서는 거의 기독교를 중심으로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게 약간 불편한데, 휴머니즘의 대안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휴머니즘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적 영성에서 벗어나 다른 종류의 영성을 끌어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를테면 고대 인디언들의 주술적 종교라거나... 동양의 유교라거나...
p.33-34.
“휴머니즘적 페미니즘은 새로운 유물론을, 즉 체현되고 환경에 속한(embodied and embedded) 것으로서의 유물론을 도입했다. 이 이론적 혁신의 주춧돌은 “위치의 정치학”을 실천하면서 발전된 상황인식론(situated epistemlogy)이었고, 이 인식론은 1990년대 동안 페미니스트입장이론(standpoint feminist theory)과 이후 논의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페미니즘을 융합시켰다. 휴머니즘적 페미니즘의 이론적 전제는 새롭고 더 정확한 권력분석을 위한 전제를 발화하는 유물론적 체현 개념이다. 이러한 권력분석은 남성중심적 보편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지만, 실천적이고 평등을 중시하는 휴머니즘에는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브라이도티는 자신의 이론적 지향을 ‘휴머니즘적 페미니즘’이라 명명하며 이를 신유물론적 관점이라 칭한다. 그런데 이때 신유물론의 특징은 ‘체현되고 환경에 속한 것’(유물론적 체현 개념)이며, 이의 기반이 되는 것을 ‘위치의 정치학’+‘상황인식론’+페미니스트 입장론+포스트모더니즘적 페미니즘‘의 융합으로 얘기하고 있다. 1) 이것이 각각 무엇을 얘기하는지 세세하게는 아니더라도 개괄적이나마 정리를 한번 하고 넘어가고 싶네요.
2)브라이도티는 왜 이러한 새로운 페미니즘을 이론화하고자 했는가? 그가 말했듯 “새롭고 더 정확한 권력분석”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실제 예를 들어 그의 휴머니즘적 페미니즘이 그러한지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1.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이성/남성/서구/인간/과학’을 대변하는 자유주의 휴머니즘을 비판하며, ‘주체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어떻게 기존의 철학적 주체와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21쪽 서문의 마지막 단락의 문제의식을 요점화해 보자면, 저자는 주체성의 문제가 이 책의 중심을 차지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강도와 창조성의 수준을 틀짓는 인간적인 자원과 한계로 인한 좌절감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주체형식의 도식들을 통해 ‘되기-생성’과정에서 우리가 실제로 누구인지와 무엇인지에 대해 창조적으로 생각하도록 자극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주체의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주체성’이 관계 맺는 방법의 문제와 연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 포스트 휴먼 이론은 현재와 긍정적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용어다.(13쪽)”라고 말했듯이, 자유주의 휴머니즘을 해체하는 것과 긍정의 정치학이 연결되는 것은 인간 주체의 범주 바깥으로 배제된 타자들에 대한 재성찰로, 구체적으로 지금까지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했거나 혹은 새롭게 출현할 주체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상상하는 문제로 주체성은 정의되기 보다는 만들어지는 개념으로 사유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질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