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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과 청년
복수는 나의 것 1. 복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나는 무협지도 좋아하고 무협영화도 좋아한다. 매일 매일의 정직한 단련으로만 체득되는 내공의 힘, 그런 고수들이 합을 겨루는 강호무림(江湖武林), 그 실전의 세계가 좋았다. 그곳은 야바위나 설레발이 통하지 않는 투명하고 정직한 세계이고, 오직 고수들만이 맺고 유지할 수 있는 우정과 신의의 세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무협스토리가 ‘복수’를 주제로 삼아 전개된다는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뜻의 ‘군자복수십년불만(君子復讐 十年不晩)’이라는 말은 무협물의 단골 레토릭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의 유장한 기질도 아주 맘에 들었고, 원수를 찾아 헤매는 정처 없는 여정에도 매료되었고(보통 주인공은 이 과정에서 평생친구 하나쯤을 사귄다^^), 단도직입(單刀直入) 끝에 원수를 갚고 장렬히 죽음을 맞는 바로크적인 비장미에도 황홀해했다. 강호는, 적어도 나에게 무협의 세계는, 복수의 서사가 살아있는 곳이고 영웅의 죽음이 환기되는 곳이고 정의가 회복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복수극도 있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박찬욱의 영화 중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이전의 무협지적인 복수물과도 다르고, 이후의 사적복수를 다룬 영화들과도 다른 독특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자 공장노동자인 류. 그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의 장기이식을 위해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가지만 역으로 자신의 신장 하나와 전 재산인 1,000만원을 빼앗긴다. 그렇게 되자 주인공의 애인이며 미군축출과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동맹의 유일한 조직원인 영미가 ‘착한 유괴’를 제안한다....
복수는 나의 것 1. 복수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나는 무협지도 좋아하고 무협영화도 좋아한다. 매일 매일의 정직한 단련으로만 체득되는 내공의 힘, 그런 고수들이 합을 겨루는 강호무림(江湖武林), 그 실전의 세계가 좋았다. 그곳은 야바위나 설레발이 통하지 않는 투명하고 정직한 세계이고, 오직 고수들만이 맺고 유지할 수 있는 우정과 신의의 세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무협스토리가 ‘복수’를 주제로 삼아 전개된다는 것이다.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뜻의 ‘군자복수십년불만(君子復讐 十年不晩)’이라는 말은 무협물의 단골 레토릭인데,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의 유장한 기질도 아주 맘에 들었고, 원수를 찾아 헤매는 정처 없는 여정에도 매료되었고(보통 주인공은 이 과정에서 평생친구 하나쯤을 사귄다^^), 단도직입(單刀直入) 끝에 원수를 갚고 장렬히 죽음을 맞는 바로크적인 비장미에도 황홀해했다. 강호는, 적어도 나에게 무협의 세계는, 복수의 서사가 살아있는 곳이고 영웅의 죽음이 환기되는 곳이고 정의가 회복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복수극도 있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박찬욱의 영화 중 <복수는 나의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이전의 무협지적인 복수물과도 다르고, 이후의 사적복수를 다룬 영화들과도 다른 독특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자 공장노동자인 류. 그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의 장기이식을 위해 장기밀매업자를 찾아가지만 역으로 자신의 신장 하나와 전 재산인 1,000만원을 빼앗긴다. 그렇게 되자 주인공의 애인이며 미군축출과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동맹의 유일한 조직원인 영미가 ‘착한 유괴’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