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 양생 6회> 동의보감에서 찾아 본 여름의 양생법

기린
2021-08-24 07:19
374

  올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자료에 의하면 37일간 폭염경보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트는 파지사유에서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러나 집에 오면 온 집안 기물들이 전부 열기를 뿜었다. 서향이라 오후 세시쯤부터 넘어가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풀가동해도 열이 식지 않았다. 저절로 냉커피를 찾게 되었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면 열기 때문에 뒤척이기 일쑤였다. 이런 여름엔 어떻게 일상을 지내는 것이 몸을 잘 보살피는 양생일까 궁금해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동의보감』을 펼쳤다.

 

 

 

네 계절 중 여름철이 가장 조섭하게 힘드네

묵은 추위 몸 안에 숨어 있어 배가 차네

보신할 탕약이 없어서는 안 될 것

싸늘하게 식은 음식 입에 대지 말지어다

심장 기운 왕성함과 신장 기운 쇠약함을 금해야 하지만

특히 정(精)과 기(氣)의 유설을 꺼려야 할 것

자는 곳은 삼가 문을 꼭꼭 문을 닫고

생각을 가라앉혀 마음을 평화로이 하라

얼음물과 찬 과실도 몸에 좋지 않아

가을철 반드시 학질을 일으킨다네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536쪽 「위생가(衛生歌)」

 

 위의 노래에서는 여름의 더위를 찬 기운으로 다스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몸 안이 차지면 오장육부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여름의 더위를 피하지 말고 땀을 내서 기운을 밖으로 보내는 것이 양생의 도라고 한다. 하지만 올 여름의 폭염은 여름의 양생의 도를 따르기에는 너무 심했다. 양산 없이 밖을 나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고, 잠깐만 나갔다와도 땀범벅이 되었다. 여름의 열기에 열린 땀구멍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에어컨 없는 실내를 상상할 수 없는 날씨였다.

 

 

 

 『동의보감』에서는 오장육부의 장기의 작용에 대해 음양오행과 짝지어 설명하고 있다. 여름의 화기(火氣)와 연결된 심장은 열을 담지한 혈을 전신으로 퍼뜨리면서 몸의 기본 대사를 책임지는데, 이런 심장을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불렀다. 심장에서 퍼뜨리는 혈액이 온 몸 구석구석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군주의 영향력에 비유한 것이다. 겨울의 수기(水氣)와 연결된 신장은 혈액, 눈물, 진액, 뇌, 골수, 오줌 등 물의 형태인 것들의 순환에 관여한다. 신장은 ‘작강지관(作强之官)’으로 불리는데, 태어날 때부터 간직한 정(精)을 저장하고 몸의 70프로를 차지하는 각종 물을 주관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장기라는 의미이다.

 

 심장의 화기는 온 몸의 맥을 따라 따뜻하게 흐르는 혈로써 신장의 수기와 지속적으로 교류를 해야 순환이 원활하다. 그런데 양기가 발산되는 여름은 심장의 화기도 밖으로 뻗으려고 더욱 왕성해질 수밖에 없다. 신장의 물을 끌어올려 그런 심장의 화기를 제어해야 한다. 그런데 신장의 물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될까? 심장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몸 안의 진액을 더욱 마르게 한 결과 병증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나의 경우 오래된 변비가 있어서 유산균도 먹고 섭생도 신경 쓰면서 그럭저럭 다스렸다. 이번 여름 변비가 다시 심해졌다. 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병증이 나타나는 까닭이 뭘까 싶어 책을 찾아보니 “화 기운이 너무 강해서 진액을 말리면 대변도 굳어서 변비가 된다.”(양생과 치유의 인문학 동의보감 331쪽)고 했다. 너무 더운 올 여름 땀도 많이 흘렸고 냉커피도 잦았으니 진액이 더 졸아 들었을 테다. 신장에 물이 부족하니 심장의 불을 끄러 올라 갈 여력도 없었던 셈이다.

 

  일단 저녁마다 마셨던 냉커피를 끊었다. 찬 음료로 잠깐의 열기는 식힐지 몰라도 몸 안에서는 카페인 성분으로 진액을 더 말리는 것 같아서였다. 마침 텃밭 꾸러미에서 채소들을 받아서 일삼아 쌈을 싸먹기도 했다. 그렇다고 단번에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일단 항문 주변의 통증이 차도가 있나 가늠하면서 계속 살펴보는 중이다.

 

  주중에는 에어컨 있는 실내에서 보냈지만 휴일 날 뜨끈뜨끈한 집안에서 지내는 일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어느 일요일, 햇빛이 더 강렬해지기 전에 배낭에 이것저것 챙겨 넣고 집을 나섰다. 주말마다 여러 둘레길을 쏘다니며 봐 두었던 약수터로 가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출발해 두 시간 정도 걸어서 상현동 광교산 자락에 있는 매봉 약수터에 도착했다. 여름 숲 그늘이 제대로 드리워져 있었다. 약수터 주변에 마련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한 여름이라 그런지 약수터에 오르는 등산객도 뜸했고, 적당히 서늘한 그늘 밑에서 때때로 골짜기로 불어오는 바람 줄기가 한결 시원했다. 챙겨간 간식을 먹고 책도 읽었다. 점점 잡생각이 가라앉으니 집중도 잘 되고 책장이 착착 넘어갔다. 정수리 위에 꽂히던 햇빛이 등 뒤로 넘어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서향으로 지어진 집에서 보내는 여름은 양생에  확실히 불리했다.

 

                                                                  <               약수터 벤치뒤로 넘어가던 한 여름 오후의 햇살>

 

 한여름의 더위로 빠져나가는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잠을 잘 때는 문까지 꼭꼭 닫아야 한다는 양생법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에어컨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참에 에어컨을 장만하라는 주변의 걱정이 귀담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 정도의 폭염은 어찌어찌 견딜 만한가 싶기도 하다. 그사이 입추가 지나고 처서도 지나면서 집안의 공기도 살만해졌다. 몸의 통증도 많이 호전되었다. 올 여름 폭염을 통과하면서 자연의 기운과 내 몸이 연결되어 있음을 톡톡히 느꼈다. 본격 가을이 다가오는 즈음 내 몸이 이 계절과는 또 어떻게 조응할지 궁금해진다.

 

댓글 5
  • 2021-08-24 13:14

    살다살다 이리 강렬한 여름은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앞으론 매년 기록을 갱신하겠지요.

    2001년 첫 애 낳던 해가 그렇게 가물었는데, 그 땐 연일 방송에서 이렇게 가다가는 앞으로 25년 안에 가뭄으로

    인해 지구가 어떻게 된다는 협박성 뉴스를 계속하고 있었어요. 애 낳고 병원에서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아이고 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지구 환경이 너무 걱정되었더랬습니다'  사실은 주변 환경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자식으로 하여금 주변을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환경정의 회원이 되었더랍니다 ㅋ)

    다행히 그 뉴스처럼 가뭄이 지속되진 않았지만, 요새 지구촌 저쪽에서 물이 부족하여 어쩌고 하는 뉴스를 접할 때면

    20년 전이 떠오릅니다. 

     

    그나저나, 올 여름 이리 더웠고 전염병까지 기승을 부리는 데  입추 ~ 처서까지 잘 넘어오셨어요..

    앞으로의 여름은 동의보감을 지혜를 얻어와서 또 한 해 넘겨보는 기술을 익힐 수 있지 않을까요... ^^

    물론 동의보감 시절과 지금은 너무도 다른지라,  저렇게 범생이 스탈의 문구들에 혹하게 되진 않네욤. 쩝.

    그래도 찬 음식 피해라, 배는 늘 따뜻하게 해라... 이 정도만 적당히 잘 버무리고 습을 만들어가면 더위로 인한

    건 쪼매 피해갈 수 있지 않을지... (아아 안마시는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죠..   ㅋㅋㅋ)

    그리고 땀 좀 흘리고 살 좀 뺐나 ? 하고 들여다보고... (땀을 잘 안흘리는 저는 땀 좀 뺐다는 분들 보면 부럽더라고요)

    내년엔 훠어씬 건강한 여름을 날 수 있을 거에요.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위를 견디는 기술 !!)  

    기린 🦒 응원합니다 !!!

  • 2021-08-24 13:35

    에어컨 구입!!!!

    • 2021-08-25 10:42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그 안에서 나온 동의보감...

      인디언샘 말씀처럼 사철내내 똑같은 환경이 되어버렸고,  우리의 면역력은 어디로 갔는지...

      자연의 순환을 찾아보자고 공부하는 동의보감인데,

      그냥 답이 에어컨이면 너무 하자누~~  기교가 아니라 기본이라며 !!

      • 2021-08-25 12:30

        에어컨이 기본인 시대요.....나는 애어컨 켜고 여름 났으니 기린도 그러기를...

  • 2021-08-25 09:57

    요즘은 여름도 겨울도 없어요

    에어컨에 난방기에 다 같은 조건을 만들어버리니까요

    사철 내내 같은 과일들이 마트에 쏟아져 나오니 제철 과일이 뭔지도 모르고

    꽃들도 온실에서 사철내내 피어나지요

    과일, 꽃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몸은 점점 더 면역력을 잃어가고 있지요

    코로나 팬데믹은 괜히 오는게 아니고 앞으로는 또 어떤 것들이 올지...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짱어탕’을 끓이듯이 마감하기     몇 번이나?   목공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마감과 관련한 것이다. 가구의 마감은 보통 칠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 나뭇결을 덮는 페인트칠을 할 때도 있고, 나무 본연의 색을 살려주기 위해 오일을 칠하기도 한다. 나뭇결이 보이면서도 좀 더 진한 색상이나 다른 톤의 색상을 표현하고 싶을 땐 스테인을 칠한다. 이처럼 칠은 물론 미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원목 가구의 경우엔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다. 칠을 하지 않은 목재를 흔히들 ‘백골’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잘 건조되어 허연 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백골 상태의 목재는 이물질을 바로 흡수해버린다. 칠을 하는 첫 번째 목적은 건조된 상태의 목재가 뭐든지 흡수하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식탁에 물 컵을 올려뒀을 때 컵 밑단의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면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 특히 겨울철 등산하다가 잘못 잡아 사고가 나기 십상인 바짝 마른 줄기처럼 나무는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칠은 이렇게 취약한 나무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단단해지도록 한다.   칠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가져 오는지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물성이 그렇듯 목재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데, 이 사이를 채우고 있던 수분들이 날아가며 목재가 변형을 겪는다. 수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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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2021.08.24 | 조회 513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류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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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1.08.20 | 조회 261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문탁
2021.08.10 | 조회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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