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 양생 5회> 여음(餘音), 그리고 휴가같은 삶

문탁
2021-08-10 07:25
391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얼씨구나 하면서 산책을 더 많이 하고, 밀린 영화를 보고, 바쁘다고 챙기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나의 미션은 그 ‘하던 짓’도 멈추라는 것 같았다. 그러면 도대체 뭘 해야 하는 건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 난, 그놈의 ‘휴식’을 탐구해보기로 했다. 그냥 쉬면되는데 왜 쉬는 것도 탐구를 하냐고, 이 정도면 거의 휴식 무능력자 아니냐는 친구들의 비웃음을 뒤로 한 채^^

 

 

 

 

     우리나라에서 법적인 일요 휴무제도가 최초로 채택된 것은 갑오개혁 당시인 1895년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125년간은 노동자의 권리가 높아지는 만큼 휴일도 늘어난 세월이었다. 2005년엔 토욜 휴무제가 전면화 되었고 2018년에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법제화되었다. 그러나 그 휴일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과연 있었던가? 하여 지금 휴일은 너 나 없이 대동소이하게 넷플릭스를 보거나 늦잠을 자거나 야구를 직관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보낸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의 신체와 정신이 일시적으로 ‘재충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음날, 월요일의 노동을 위해 사용된다. 웨이트 트레이닝 세트 사이의 휴식이 운동선수의 근육의 기능을 더 높여준다는 식의 연구들 혹은 “노동자의 저녁 있는 삶은 기업 경쟁력의 원천”(손학규)이라는 발언들처럼, 근대 사회에서 휴식은 직무와 연관하여 직무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추구된다. 지금 휴식은, 일의 잔여개념으로, 노동의 보상으로써만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고대 로마에서는 일과 휴식의 개념이 지금과는 반대였던 것 같다. 휴식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인 ótĭum은 의무에서 벗어난 한가한 시간, 사색하고 책 읽는 여가를 뜻하는데 그 시간은 “개인이 자기 자신과 적절하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설정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자기기술”(푸코)이었다. 그리고 이 단어 ótĭum의 반대말이 negótĭum, 즉 임무 혹은 과업이다. 그러니까 일의 중단으로서 휴식이 있는 게 아니라 휴식의 중단으로서 업무가 존재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시민으로서 공적 업무, negótĭum을 수행해야 했지만, 그것은 ótĭum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만 적절히 수행될 수 있었다. ótĭum이 없는 negótĭum은 쉽게 권력남용으로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구된 것은 자기 구원, 자기 향유로서의 ótĭum이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어땠을까? <논어> 선진편을 보면 공자님이 제자들을 앉혀놓고 각자의 포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자로子路는 즉각 대답한다. 작은 나라를 하나 맡아 삼년 안에 강대국으로 만들겠다고. 염유冉有의 대답은 좀 더 소박하다. 자신이 정치를 하면 백성들을 물질적으로는 좀 풍요롭게 할 수 있겠지만 백성들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은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말이다. 공서화公西華의 대답은 더 조촐하다. 자신은 별로 유능하지 못하니 외교업무 중에서도 아주 작은 역할 정도를 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이 오가는 동안 조용히 비파를 타고 있던 증점曾點은 자기 차례가 오자 비파의 울림을 천천히 가라앉힌 후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늦은 봄에, 봄옷이 마련되면, 동료 대여섯 명,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후, 함께 노래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라고. 그러자 공자는 나지막이 탄식을 하며 자신은 증점과 함께 하겠노라고 대답을 한다.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이 이 장면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잦아드는 비파소리, 즉 ‘여음(餘音)’이다. 잦아들다 결국은 멈추게 되는 그 소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에피소드가 아니라 삶의 극적인 전환을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어떤 이론적 논증보다도 천천히 잦아드는 소리는 앞에서 표명한 포부들과 절연한다.” 공자와 거의 동년배인 나이 많은 제자 증점은 크든 작든 개인의 야심과 욕망이 투영된 삶에서 물과 바람,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삶으로 즉각 나아간다. 줄리앙은 이것을 “‘휴가’ 같은 삶”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공자도 그런 삶을 꿈꾸었다고. (프랑수아 줄리앙, 「침묵의 음악」, 『무미예찬』, 74)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눈에 번쩍 띄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 악뮤가 새 앨범 ‘넥스트 에피소드’를 발매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앨범은 아이유, 이선희, 자이언티, 잔나비, 크러쉬, 샘 김 등 어벤저스 급 가수들과 함께 협업하여 만든 컬래버레이션 앨범이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이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가 ‘초월자유’(Beyond Freedom)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은 악뮤가 만든 말이라는데 “힘이나 피로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내면의 자유...내가 밑바닥에 있어도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자유”(찬혁)라는 의미란다. 아니, 이렇게 기특한 녀석들이 있나... 난 당장 악뮤의 앨범을 주문했다.

 

 

 

     요즘 나의 최고의 휴식은 악뮤의 신곡들을 듣는 일이다. 앨범과 함께 딸려온 공식 포스터를 벽에 붙여놓고 수현의 작은 브로마이드를 책상 위에 세워놓고 악뮤의 CD를 크게 틀어놓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린다. “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 눈 딱 감고 낙하- 하-”(낙하), “천장 없는 내 집을 누비며/ 나무와 꽃이 내 친구 중 전부라면”(전쟁터)..,,

     그러면서 바란다. 언젠가 악뮤의 노래조차 잦아들기를. 언젠가 소리가 침묵으로 돌아가는 여음(餘音), 내면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언젠가 공자도 꿈꾸었다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는” ‘휴가 같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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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쑤

이 글을 먼저 읽은 인문약방 친구들로부터, 휴식 일반을 탐구(인식)하지 말고 "너의 휴식"을 발명하라는 지청구를 들었다. 앞으로는 요렇게^^

 

한뼘 양생 – 호모 오티우무스 되기

1차 – 여음(餘音), 그리고 휴가같은 삶

2차 – 잠을 처방합니다

3차 – 문즈가든(Moon’s garden) : 식물하는 마음

4차 – 21세기,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吏隱 혹은 市隱!)

5차 – 피로사회와 산책

댓글 6
  • 2021-08-10 09:49

    문탁 서당개로 살고 있는 저로서는 여름!! 듣도 보도 못한 두 글자를 알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해요^^ 앞으로 여기저기 잘 써먹겠습니당~

    • 2021-08-10 12:52

      ‘여름’일까요? ‘여음’일까요?ㅎㅎ

      그것이 무엇이든 이 여름에, 이 휴가에 저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 2021-08-10 13:01

        아...오타가...

  • 2021-08-11 18:08

    악뮤의 새 앨범 곡들.

    요즘 제 플레이리스트에서 재생중인데^^;

    포스터를 벽에 붙여두셨다는 글에 오~잉? 하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_____^

  • 2021-08-11 23:23

    쉬는 것도 연구하는 문탁샘 ㅋㅋㅋ

    나도 악뮤 사서 들어볼까봐요 ㅎ

    요즘 너무 지쳐서 ㅠㅠㅠ

  • 2021-09-02 11:49

    악뮤 앨범 바로 샀다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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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짱어탕’을 끓이듯이 마감하기     몇 번이나?   목공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마감과 관련한 것이다. 가구의 마감은 보통 칠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 나뭇결을 덮는 페인트칠을 할 때도 있고, 나무 본연의 색을 살려주기 위해 오일을 칠하기도 한다. 나뭇결이 보이면서도 좀 더 진한 색상이나 다른 톤의 색상을 표현하고 싶을 땐 스테인을 칠한다. 이처럼 칠은 물론 미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원목 가구의 경우엔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다. 칠을 하지 않은 목재를 흔히들 ‘백골’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잘 건조되어 허연 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백골 상태의 목재는 이물질을 바로 흡수해버린다. 칠을 하는 첫 번째 목적은 건조된 상태의 목재가 뭐든지 흡수하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식탁에 물 컵을 올려뒀을 때 컵 밑단의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면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 특히 겨울철 등산하다가 잘못 잡아 사고가 나기 십상인 바짝 마른 줄기처럼 나무는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칠은 이렇게 취약한 나무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단단해지도록 한다.   칠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가져 오는지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물성이 그렇듯 목재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데, 이 사이를 채우고 있던 수분들이 날아가며 목재가 변형을 겪는다. 수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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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1.08.20 | 조회 261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문탁
2021.08.10 | 조회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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