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는 없다 -『세계 끝의 버섯』을 읽고

기린
2024-01-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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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은 자본주의를 연구한 책이다. 나에게 자본주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마르크스이다. 그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축적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가속화되고 결국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나 칭은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폐허가 된 숲과 그곳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 세계를 연구했다. 이 세계에는 성장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 비인간을 너머 얽혀있는 다종의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우선은 애나 칭을 따라 폐허가 된 숲으로 들어가 보자.

 

 

1.오염에서 창발로

 

20세기 초 오리건 주의 데슈츠강을 따라 철도가 건설되었다. 숲에서 벌목된 폰데로사 소나무는 철도에 실려 먼 곳까지 팔려나갔다. 1930년대에 이르렀을 때 오리건 주는 미국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1989년 무렵에는 대부분의 제재소가 문을 닫았고 벌목된 숲은 폐허가 되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1854년 일본은 미국과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방하며 무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을 좇아 국제무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호황을 맞았을 때, 일본 경제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때 일본의 기업들은 생산이 아니라 금융자본에 의해 성장했다. 일본의 무역회사는 “해외 공급사슬 파트너에게 대출이나 장비, 기술적 조언”(211쪽)을 해주고 그 지역의 생산품들을 전 세계로 수출했다. 현지에서 직접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비용이나, 생산국의 불안한 정치적 상황 등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생산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숲에서 합법이나 불법까지 포함해서 잘려나간 목재는 일본이 원하는 규격에 맞춰져 싼 값에 공급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사슬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싼값의 목재가 전 세계로 유통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격 경쟁에 밀린 오리건 주의 목재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방치된 숲은 점점 폐허가 되어 갔다.

 

폐허의 역사에 또다른 마주침은 숲을 교란시킨 인간들이었다. 인간의 개입은 숲을 변형시켰다. 변형은 한편으로는 폐허로 드러났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치를 창발했다. 바로 송이버섯이었다. 목재 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미국 산림청은 산불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목재부호들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 숲은 폰데로사 소나무들로 울창했는데 산불이 억제된 가운데 벌목꾼들이 대대적으로 활동한 결과 1980년 무렵이 되자 거의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산림청에서는 폰데로사 소나무를 되살리려 했지만, 이 종이 불의 도움을 받아야 번식한다는 것은 나중에 밝혀졌다. 한편으로는 벌목된 곳에서 빽빽하게 올라오는 잡목들을 솎아내어 산불을 방지하는 관리도 병행되었다. 이렇게 교란된 결과로 40년에서 50년을 넘긴 로지폴소나무 숲에서 송이버섯이 돋아났다. 목재산업의 쇠퇴와 국가 기관의 규제 등의 인간 개입과 소나무와 곰팡이가 서로 얽혀서 창발된 가치였다. 얽힘은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오염을 일으킨다. 이러한 오염이 결과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발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과 식물과 곰팡이가 생존을 위해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협력으로서의 오염으로 폐허가 된 숲은 새로운 생계활동이 펼쳐지는 장이 되었다.

 

 

 

2.자유에서 축적으로

 

이 생계활동에는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채집인과 버섯을 구매하는 구매인과 구매현장에서 버섯의 가격을 흥정하는 현장 중개인 등이 얽혀 있다. 그리고 이렇게 구매된 버섯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무역업자들도 있다. 이들이 공유하는 관심사의 하나로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의 의미는 다 다르다.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반공주의자들로 분류되어 난민 자격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은 미엔인과 몽인 채집인들은, 조그만 아파트를 벗어나 버섯을 채집하기 위해 헤매는 산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임금노동자로 사는 것을 거부하며 가족과 함께 숲 속에서 수확한 임산물을 거래하며 사는 자유를 누리는 백인도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마을 생활에서 느꼈던 자유의 기억을 산속에서 되찾은 미엔인 할머니도 있다. 이들은 모두 버섯 채집으로 얻는 돈을 노동의 대가로 여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자유를 실천하는 행위로서의 채집이었다. 그래서 “기업의 신규 인력 모집, 훈련, 또는 규율”(179쪽) 등의 절차 없이도 대량의 버섯이 채집 되었다.

 

한 편으로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자신들이 과거에 겪은 전쟁의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애나 칭은 오리건 주의 숲에서 만난 대부분의 채집인들이 자신들이 살아남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 했다고 했다. 어떤 백인 채집인은 참전용사의 경험이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을 숲에서 치유한다고 했다. 하지만 또다른 백인 채집인은 숲에서 만난 캄보디아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고도 했다. 캄보디아 난민들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안정적인 복지 정책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송이버섯 채집은 그들에게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되었다. 어린 시절 사냥을 익히며 성인이 된 몽인들은 버섯 채집에서 사냥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라오계 채집인의 경우 법망을 벗어나 불법을 저지르는 위험을 즐기는 행위에 포함되기도 했다. 송이버섯 숲에서 맞닥뜨리는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면서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신들의 삶을 지속하는 자유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는 “의미하는 바가 많고 다양한 방향으로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공유하는 관심사(178쪽)”가 되어, 폐허가 된 숲은 자유를 실천하는 활기를 띠는 곳으로 변형되기에 이르렀다.

 

숲에서 채집된 버섯은 오리건 주의 숲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형성된 시장에서 구매인과 현장 중개인에 의해 가격을 높이는 경쟁에 참여한다. 이 경쟁은 기존의 자본주의 형식과는 다른데 이 과정에서 자본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거래에서 오가는 많은 돈은 절대로 투자되지 않으며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팔린 송이버섯은 트럭에 실려 대규모 구매업자의 창고로 보내진다. 여기에서 송이버섯은 다시 분류되는데, 이때 분류자들은 버섯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노동자들이다. 이 순간에 버섯은 글로벌 공급사슬에 얽힌 상품으로 번역된다. 애나 칭은 이렇게 “자본주의적 통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가치를 써먹는 것”(120쪽)을 ‘구제’라고 불렀다. 그래서 “상품 생산 조건을 통제하지 않고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120쪽)이 곧 구제 축적이며, 이렇게 비자본주의적으로 형성된 가치가 수출업자의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가치로 창출되었다. 애나 칭은 오리건 주 숲에서 펼쳐진 이러한 생계 활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통치를 이용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현장”(247쪽)에 연결되어 불안정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3.폐허에서 잠재된 공유지로

 

1945년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되었을 때, 폐허가 된 그 풍경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 버섯은 곰팡이의 자실체다. 곰팡이는 바다 해류에도 살고 사람의 발톱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곰팡이는 토양에서 산다. 곰팡이는 소화액을 몸 밖으로 배출해 먹이를 영양분으로 분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생물종의 몸도 자라게 한다. 지구에서 가장 활동적인 나무 중 하나인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 특히 번성하는 종이다. 이들의 번성 또한 곰팡이의 영양분에 의지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이 교란한 오리건 주 숲에서 소나무와 땅 속의 곰팡이까지 얽히는 마주침으로 인해 폐허에서 새로운 생계 활동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얽힘은 어떤 목적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폐허에서 생존의 가능성을 연 협력이 되었다.

 

애나 칭은 오리건 주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송이버섯의 생태를 탐구했다. 중국 윈난성의 농민은 국가에서 숲을 관리할 수 있는 주도권을 얻은 이후, 버섯 수확철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통행을 허용했다.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거나 다른 임산물을 채집하느라 교란된 숲에서 송이버섯이 더 잘 자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숲을 보호하려는 국가와 했던 계약을 벗어난 행위다. 더 많은 소득을 위해 숲의 보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러한 행위가 가속화된다면 언젠가 숲은 폐허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사이에 지하에 잠복한 곰팡이 균근은 지상의 교란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송이버섯은 “인간에 의한 부분과 인간에 의하지 않은 부분이 섞여 있는 잠복해 있는 공유지의 가능성”(478쪽)이 활성화된 결과다. 하지만 이 시간은 폐허가 될 가능성 또한 잠복해 있다는 측면에서 송이버섯의 존재가 영원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송이버섯은 “인정받지 못하고, 규정하기 힘들며, 수명이 짧은 공유지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열매”(484쪽)다.

 

 

 

폐허가 된 숲에서 다양한 역사에 의해 뒤섞인 자유의 실천으로 채집된 송이버섯은, 일본으로 수출되어 일부 부유층들이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선물로 일생을 마감한다. 송이버섯의 이러한 생애가 지금의 세계 전체를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잠복해 있는 공유지를 발견해낼 수 있는 “알아차림의 기술”이 더더욱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다양하게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러면 폐허의 풍경이 가속화되어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이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떠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애나 칭은 기존의 자본주의 분석을 가능하게 했던 거대 담론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안팎을 넘나들며 만들어지는 상품으로 이윤을 축적하는 방식을 구제 축적으로 명명했다. 구제 축적은 다양한 방식이 얽혀있는 역동성으로 인해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차이가 대표성을 띠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더구나 차이로 인한 대립도 만만치 않아서, 구제 축적이 일어나는 주변자본주의로는 자본주의 전체를 전복시킬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인간 비인간을 아우르는 협력을 통해 공공의 가치가 다양하게 얽히는 공유지를 알아차리기 위한 노력이 지속된다면, 다른 방식의 삶도 창발 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내가 알고 있던 자본주의는 없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송이버섯’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 전에 애나 칭의 책을 탐독하기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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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2023). 문탁네트워크 공부방 회원, 인문약방 킨사이다 멤버. 오래 머무르고 많이 이동하는 일상을 실험합니다.             안녕, 돼지들       비 오는 날, 새벽이생추어리 마지막 돌봄을 다녀왔다. 나는 그날 돌봄이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러 갔다. 돌봄을 마치고 나서는 그 다음주에 다시 볼 것처럼 인사를 했다. 이후에 사정이 생겨 돌봄을 몇 주 쉬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새벽이생추어리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배웅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얼굴도 못 보고 새벽이와 잔디를 보내야 했다.   1년 넘게 매주 돼지를 만나다가,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돌봄을 가기 위해 깜깜한 새벽부터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옆구리를 쓰다듬어서 잔디가 짜증 낼 때 섭섭해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진땀을 흘리지 않아도 된다. 돼지의 응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덩굴잎을 채집하다가 가시에 긁히지 않아도 된다. 새벽이와 잔디의 사진을 수십 장씩 찍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일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다른 보듬이들의 일지를 읽고, 웃고 (울지) 않아도 된다. (흑흑)     술래잡기 중     다시, 떠나야 하는 삶들   새벽이생추어리는 재작년부터 이사를 준비했다. 땅 주인의 사정으로 원래의 장소에서 계속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이가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구조되어 2020년 새벽이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돼지를 만나러 갑니다> 1회에 적었다.   "새로 살 집을...
경덕
2024.01.30 | 조회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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