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먼불빛의 웰컴 투 60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
*맘마 미아(Mamma mia)는 이탈리아어로 놀라움이나, 괴로움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세상에, 맙소사!", 직역하면 "우리 엄마"다.(엄마는 성모마리아를 의미)/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지난 2월 나는 딸의 결혼식을 치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결혼보다 더 낯설고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딸의 결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결혼에 ‘축하한다’는 말보다 ‘반댈세’라는 말을 먼저 던졌던 사람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너무나 불리했고, 그런 이유로 나도 이혼했으며, 좌우지간 남녀를 떠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결혼’에 근본적인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 ‘필수’였던 결혼이 요즘 세대에겐 ‘선택’이 되었다(억울하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3포, 5포 세대(삼포:연애, 결혼, 출산/오포:삼포+취업, 주택을 포기)’처럼 ‘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자발적 비혼과 동거족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누구나 다 똑같은 삶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다양하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이라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저항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 금기어로까지 등장할까. 여하튼 그래서 내 딸만은 좀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지만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혼 후 단출한 2인 가족이 늘 외로움과 결핍의 근원이었던 딸은 전형적인 가족주의 안에서 자신의 결핍감을 채우고자 했다. 내가 다르게 살지 못했는데 딸에게 다른 삶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결혼은 반대’라는 말과는 달리 나는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어야만 했다. “돈만 주고 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다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