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시한폭탄 품은 황토방에 누워서......

가마솥
2024-02-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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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인문약방 사람들과 평창집에 간 문탁쌤의 전화 속 목소리이다. 불이라고요? 침대에서 일어나며 시간을 보니, 밤 11 시 35분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하다.

"어디에 불이 났어요?"

"지붕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요".

외부는 붉은 벽돌, 내부는 흙벽돌 그리고 지붕은 기와인데, 어떻게 지붕에서 불이 났다고 하지? 문탁쌤이 잘못 알았거나 꿈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생중계되는 지붕 안쪽에서 나오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고 불이 난 연기로 보인다. 어? 진짜 불이 났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단 우리집 소화기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옆집들을 전화로 깨워서 동네 소화기들을 동원시켰다. 사실, 지붕에서 연기가 난다면 소화기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또 없나?  전기!!!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산불 감시원인 옆집 친구에게 전기 차단기부터 내리도록 부탁했다. 지붕의 화재를 잡기 위해서 소방수들은 지붕을 무식하게 걷어 낼텐데..... 온돌방은 포기하고 본채로 번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소방차가 7대나 왔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이라서 불이 산불 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바람이 불지 않고 있고, 불이 커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친 사람이 없다.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다음 날, TV에서 보던 그 모습이 우리 집 온돌방에서 펼쳐진다. 아침 일찍부터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흰 가운을 입고 화재 원인을 조사한다. 화재 감식반이 이렇게 아궁이 입구를 만든 것은 처음 보았다며 혀를 끌끌 찬다. 실화도 방화도 아닌, '구조적 문제'라고 결론을 낸다.

불은 아궁이 입구에서 발화하여 벽돌외벽과 황토내벽 사이의 기둥을 태우면서 지붕으로 올라 갔는데, 그 원인은 불을 넣는 아궁이에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조심스럽게 묻는 내게 그림을 그려 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원칙적으로 화구 입구는 'ㄷ‘자를 엎어 놓은 모양의 큰 돌을 놓고 그 위나 옆으로 기둥이 세워 지는데, 우리 집은 몇 센티 안되는 두께의 시멘트로 입구를 만들고, 그 위에 목재 바닥재를 깔고, 그것을 초석 삼아 기둥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하여, 아궁이 입구의 강한 불길에 스트레스를 받아 점점 약해진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면서 목재 바닥재에 불이 붙고, 이것이 기둥을 태운 것이란다.

 

 

 

 

 

 

 

 

 

                               (통상적인 아궁이 입구)                                                                                             

   (우리집 아궁이 위의 시커먼 목재 바닥재)

 

 

흙냄새의 향수를 쫒아서

 

     단독주꿈꾸는 사람들은 황토방, 그것도 찜질방 수준의 열기 가득한 온돌방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나이 들어 집을 지으면 더욱 그렇다. 저리고 쑤시는 삭신을 ‘오구구구’소리와 함께 풀어 주고 싶어서 일 것이다. 평창에 집을 지을 때, 고기동 집에서는 만들지 못했던 황토방을 설계 요구사항 1순택을 위로 올렸다.

문제는 시공이다. 재료인 황토 다루는 것, 온돌을 놓는 것은 최근에는 거의 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인터넷에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돌아 다닌다. 한결같이 매우 쉽게 집주인이 직접 시공한다. 무엇을 섞으면 황토가 갈라지지 않고(특허를 냈단다), 고래와 불길을 어떻게 내면 연기도 잘 빠지고, 방 전체가 뜨근 뜨끈해진다고 자랑한다. 온돌 놓는 것이 이렇게 쉽게 된다고? 온돌학교에 가서 한 일주일만 배우면 된다고?

 

<온돌의 구조와 원리>

온돌은 크게 불을 때는 ‘아궁이’, 불길이 들어가는 턱인 ‘부넘기’(불목), 뜨거운 공기가 지나가게 한 길인 ‘(구들)고래’, 구들 끝에 움푹 파인 ‘개자리’,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굴뚝’으로 이뤄져 있다. 개자리는 뜨거운 기운이 고래에 오래 머물도록 만들고 재를 골라내는 역할을 한다. 불목은 매우 좁고 움푹 파진 것이 특징이다. 좁은 곳을 지나면 불길의 속도가 더 빨라져 불이 멀리가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이것을 ‘베르누이 정리’라 불리는 원리로 설명한다.

핵심은 불목과 고래의 깊이와 턱의 높이인데, 각 지방의 기후조건과 주택의 환경에 따라 그 깊이와 높이가 다르게 조정된다. 베르누이 정리를 제대로 작동케 하는 이 기술은 마을 온돌쟁이의 최고의 영업 비밀일 정도로 숙련된 경험을 요구하는 매우 고급 기술에 속한다.

 

( 온돌의 구조도)

 

 

별일 있겠어?

 

   평창집을 짓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온돌을 놓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것도 굄돌을 이리 저리 흩어놓아 불길이 이리 저리 돌아 들어가는 ‘허튼고래’ 방식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돈이 좀 들더라도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제안하였다. 온돌학교를 수료하였고, 자기 집에서 시험삼아 온돌방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한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물러섰다. 그럼 직접 시공하되, 만들다가 막히면 전문가를 부르라는 하나마나한 조건을 달았다. 별일 있겠어?

외부벽체는 고벽돌로 세우고 내부 벽체는 흙벽돌로 둘렀다. 앉은 키만큼의 높이로 편백나무를 둘러 마감하고, 벽체는 하얀 전통한지로 바닥은 콩댐을 한 한지장판으로 도배를 하였다. 편백나무향과 들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나온다. 그래. 바로 이 향기이다.

불을 넣었다. 굴뚝으로 연기가 쑥쑥 잘 빠진다. 그런데, 어라? 조금씩 방안으로 연기가 나온다. 처음엔 그렇단다. 몇 번 불을 피우면 괜찮아 진다고 한다. 그런가? 어쨌든 친구 녀석은 황토를 묽게 개어서 연기가 나오는 방 가장자리에 부어 넣는다. 아마 갈라진 황토 사이로 흘러 들어가 메꾸어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반신반의하였는데 그래도 온돌 시공경험이 있는 가 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 본 듯한 모습이니 말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황토방에 불을 넣는다. 아직도 연기가 나온다. 녀석은 불을 계속 피우면 참나무 연기로 그을음과 진액이 나와서 가늘게 벌어진 황토 사이를 메꾸게 되니, 조금만 참고 불을 피우라고 한다. 온돌방에 불을 피워 방을 덥히면 모든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키고 사용하였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났다. 두 해 째이다.

세 번째 해인 올해는 괜찮을까? 어김없이 연기가 나온다. 녀석은 이제 전화도 받지 않는다. 하! 참나! 이 정도밖에 안되는 자(者)였나? 그를 선택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난감하다.

 

 

 

시근담이 없어서 그래요.

 

      ‘평창 구들학교’ 교장을 찾아 갔다. 다짜고짜 우리집 사정이야기를 하고 해결책을 들었다. 그림을 그려 가면서 바로 답을 낸다. 벽체와 만나는 구들장의 경우, 연기가 새지 않으려면 벽체에 구들장을 바짝 붙이지 않고 5센치 정도 띄우고 그 사이에 마른 흙을 채워 넣는 ‘시근담’ 형식으로 구들을 놓아야 한단다. 이 집은 ‘허튼고래’ 방식이면서도 ‘시근담’이 없어서 벽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전기 콘센트 구멍으로도 연기가 폴폴 나올 것이란다. 어라? 이미 그렇게 나오고 있다. ‘옳거니! 전문가라서 다르긴 다르군.’ 더욱 신뢰가 간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다 뜯고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지 땜질식의 처방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뿔싸! 나도 딱 그 마음인데, 그 비용은 처음 만들 때보다 더 들게 뻔하다. 동네에서 함께 집을 지은 다른 사람들보다 평당 건축 비용이 훨씬 더 들어간 집인데, 또 돈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그에게 대안을 요구했다. 방바닥 가장자리를 뜯어내고 그곳에 황토를 충진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어 놓는다. 물론, 연기가 잡히지 않는 것은 책임지지 않기로 약속하고...... 그의 예상대로 연기가 줄긴 하였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온다.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혹시 방 밖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연기의 열에 견뎌야 하는...... 옳거니! 내열 폼이 있다. 연기가 새는 곳에 구멍을 뚫고 폼을 불어 넣어 충진하는 방법을 써보자. 대청마루와 불길이 지나가는 지하실을 오르내리며 온돌방으로 구멍을 내어 충진하였다. 야호!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냄새는 아주 조금 나기는 하지만, 확연히 연기는 보이지 않는다.

 

 

 

 

 

 

 

 

 

 

 

살살 달래서 사용하면......

 

      확실히 연기는 줄었다. 그렇지만, 전혀 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장작이 젖어 있거나 장작불을 좀 많이 넣거나 하면, 연기가 조금씩 보인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실험하였다. 봄, 가을에는 8개~10개 정도, 한 겨울에는 15개 정도이다. 방안 온돌로 기준을 삼으면, 아랫목이 미지근하게 온기가 올라오면 장작을 그만 넣으면 된다. 아직 뜨겁지 않다고 장작을 더 넣으면 이불이 탈 정도로 방바닥이 뜨거워진다. 하여, 불을 놓을 때면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수시로 아랫목과 아궁이를 찾아야 한다. 내가 있을 때면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온돌방을 이용한다면 조금은 걱정이 된다. 방안에 탄소 감식기를 두 개나 설치하였다.

아들 녀석이 미식축구 아이들과 함께 평창에 다녀왔다. 천재당 천연잔디 구장에서 전지 훈련을 하고, 계곡에서 물장구도 치고 잘 놀다 왔다고 한다. 온돌방에 불도 피워 보았단다. “한 여름인데 춥더냐?(왜 불을 넣었냐?) “춥지는 않았는데, 이 미친 놈들이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고 장작을 잔뜩 집어 넣었데요.” 엥? 머리털이 쭈뼛한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별일 없었냐?” “사실, 이불을 좀 태웠습니다.” “이불 태운 것 말고는 다른 일은 없었냐?” “예.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대청마루에서 연기 냄새가 좀 났습니다” 다행이다. 아마도 젖은 장작을 피웠을 것이니 연기가 좀 났을 것이다. 그렇게 두어 해를 지냈다. 이제는 적정량의 장작을 피우면 연기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이제 해결되었나? 깔끔하진 않지만 그동안의 처방으로 어떻게든 해결되었다고 믿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실 이 즈음에 온돌방 아궁이 근처의 기둥 밑둥은 이미 타서 떠 있는 상태라 연기가 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인리히 법칙

 

     1920년대에 미국 한 여행 보험 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라는 사람은 75,000여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 아주 흥미로운 법칙 하나를 발견했다. 재해 발생의 확률, 즉 1 : 29 : 300 법칙을 주장했다. 이 법칙은 산업재해 중에서도 큰 재해(1)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더 작은 사건이 300번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확률로 환산하면, 재해가 발생하지 않은 사고(No-Injury Accident)의 발생 확률은 90.9%, 경미한 재해(Minor Injury)의 발생 확률은 8.8%, 큰 재해(Major Injury)의 발생 확률은 0.3% 라는 것이다. 경영학에서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초기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경종을 줄 때에 종종 인용된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세상

 

     사람들이 온돌방에 들어가기 전에 화재가 나서 천만다행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불만 피우면 연기가 났었고, 시근담을 세워도, 내열 폼으로 미세 구멍을 메꾸어도 연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기둥에 불이 붙느냐 마느냐 정도의 장작더미 량이 연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까. 그 동안의 처방은 미봉책으로 헛 다리만 짚고 있었다. 언제나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을 화구 입안에 넣어 놓고, 그 위에서 등을 지지고 어깨를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오싹해 진다.

화재 현장에 있었던 인문약방 사람들은 나를 보면 그 일을 미안해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화재사고 전에 29가지, 아니 300여 가지의 원인을 만들거나 보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다. 그들이 이 정도의 사고로써 더 큰 사고 가능성을 싹 없애는, 말하자면 종기를 터트려 고름을 짜준 것이니 고마운 일이다.

 

     세상 일은 한 가지 원인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없다. 통상 어떤 사고가 나면 마지막 모습에서 혹은 마지막 원인 제공자만이 책임인양 모든 화살이 그곳에 퍼 부어진다.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의 고까운 행동, 그 마지막 모습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얼마 전 결승전에 못 올라간 축구 대표팀에게서 사람들은 어떤 선수? 혹은 감독?의 잘못을 찾는다. 마녀를 찾아 떼를 지어 떠돌아 다닌다. 세월호 사고는 선장 한 사람 때문으로, 이태원 사고는 그곳에 간 사람들 때문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건 사고는 다시 일어난다.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하며, 수많은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한다. 연기(緣起)이다. 부처님처럼 넓디 넓은 마음의 눈을 가질 수 있으면 모든 인(因)과 연(緣)을 꿰뚫어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딱 두 개의 눈을 가졌다. 내가 본 공간 그때 그 시간 속에서의 사물을, 사건을 제한된 시각으로 인식하곤 한다. 더욱이 욕망이 마음을 가리고 있으면 그 시야는 아주 좁아진다. 그 곳에서 나온 결론은 좁디 좁을 수밖에 없다. 우짠다......

내 시야가 좁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면 어떨까? 이 생(生)에서 내가 세상의 수많은 연기를 모두 알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다만, 나의 오늘 이 행동이 1:29:300에서 300 아니, 3,000 가지 원인 중 하나를 끊어 낼 수도, 혹은 만들어 낼 수도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원인을 아는 것보다 내 양심의 작은 실천이 먼저일 수 있다. 문탁 사람들이 밀양으로, 팽목항으로, 이태원으로, 혜화역로 달려가고, 기후환경 깃발을 만든 이유일 게다.

 

몸을 움직여 따라 나서 보자.

 

 

 

 

 

                                                                                                                                 

 

 

 

 

(글) 신상열 혹은 가마솥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보면 웃을 수 있기를 바라고

 고장난 것을 고치거나 완전히 망가뜨리기를 좋아하며

 별것 없는데 때를 잘 만나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세대의 일원으로서

 은퇴 후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길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

댓글 5
  • 2024-02-19 10:23

    불났을 때 다들 놀라셨겠어요..!
    이 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시다니 너무 멋지셔요..!
    가마솥샘

  • 2024-02-19 11:00

    이 사건의 시발점인 마지막 원인제공자로서 저도 많이 반성합니다.
    그날 팀원들이 뜨껍게 지지길 원하고 인정받고자 했던 저의 욕망이 시야를 좁히고 귀를 막았습니다.
    그날의 사건을 마음속 깊이 새겨 욕망이 어떤식으로 뻗어 어떤 결과를 낼지 항상 주시하며 조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앞으로 쭉~~~
    가마솥님 가족분들과 인문약방 선생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남은 평생 은혜 갚으며 살겠습니다.
    꾸벅

  • 2024-02-19 13:07

    유구무언 동병상련 자꾸 사자성어만 떠오르네요! 날도 풀렸으니 어여 공사 마무리되길 정안수 떠놓고 빌어야겠어요....

  • 2024-02-19 14:30

    가마솥쌤 글을 읽으니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이와중에도(?) 글을 너무 잘쓰셔서 술술 읽어갔네요.. 😅

    까마득히 먼 옛날 같은데 불과 몇달 전이라니요..
    그날의 기억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저로써도 큰 가르침을 주었어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다 같이 일을 해결하려는 어른들의 (!!!) 해결방법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 갑자기 뜬금없게도 내가 누굴 싫어하고 누굴 좋아하고 말고의 일이 무어가 있냐는 큰 반성도 했습니다ㅎㅎ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 되길 바라고요. 이렇게 글 써주신 가마솥쌤 넘 감사합니다!!

  • 2024-02-24 10:59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고사 지내고 그 방에서 자고 싶군요!!ㅎㅎㅎ
    고생하셨고, 감사합니다!!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400
일상명상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다시 돌아온 ‘명상의 시간’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대략 1980년대 초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우신국민학교는 당시 한 교실에 60명 이상의 학생들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오전형 콩나물도 있고 오후형 콩나물도 있던 시절. 몇 교시였을까?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교실에는 "끼이이이이~ 끼~이이이~" 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곡명은 '타이슨의 명상곡' 또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 이어 "명상의 시간~"이라는 우아한 멘트가 전교에 울려 퍼지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명상의 시간'을 왜 갖는 건지 어떻게 명상하는 건지 아무도 알려준 적 없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명상의 시간’은 학교 전체가 잠시 고요해지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끼이이이~이~"하던 그 바이올린 연주곡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극기훈련, 수학여행, 임원 수련회 등에도 종종 따라다녔다. ‘명상의 시간’은 손 안 대고 아이들을 차분하게 만들기 위한 학교 측의 전략이었을까? 공식적인 침묵의 시간 같았던 ‘명상의 시간’에 이따금 소리 내어 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어쩌면 누군가에겐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의문 가득했던 '명상 시간' 아니 추억 속의 '명상의 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명상의 시간’이 세월을 훌쩍 지나 어느 날 내게 다시 돌아왔다.             십 분을 견디기 힘들었다.   명상 방석 위에 앉아 반가부좌를 한다. 방석이 좋긴 하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명상을 하는 경우엔 이불을 접어 엉덩이에 받치고...
도라지
2024.03.10 | 조회 361
기린의 걷다보면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경강선을 타고 여주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세 번 째로 여강길을 걷게 되었는데,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여강은 여주지역에서 부르는 남한강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남한강이 흐르는 길을 따라 여주 지역을 이은 여강길은 현재 총 11개의 코스가 있다. 1코스인 옛나루터길은 물길을 따라가며 옛 나루터를 통과하는 18키로 정도 되는 길이다.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혼자 걸었는데,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외진 곳도 있어서 같이 걸을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여주 터미널까지 걸어와서 점심을 해결하고 영월루로 향해서 길을 나섰다.     영월루에 올라서 보면 아래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 건너 편으로 천년고찰 신륵사도 보였다. 여강길 4코스를 걸을 때는 신륵사에서 출발했다. 대부분의 사찰이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는데, 신륵사는 강줄기와 너른 모랫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절 이름의 유래로 고려시대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니 천년이 넘은 시간의 두께가 느껴졌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의 수피에 푸른 이끼가 뒤덮여 있었다. 평일(월요일) 오후 한가롭게 경내를 거니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친구가 그걸 보다가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운전해서 오면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신륵사까지 말이야. 근데 고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 대놓고 시간을 보냈다니까.   자식 셋을 연이어 키워내느라 고단하던 어느 날의 순간, 집을 벗어나 바람 쐬러 나올 여유도 없었던 시절이었단다. 아름다운 풍광에 깃든 여유가 좁은 차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던 옹색한 순간을 환기시켰던...
기린
2024.03.05 | 조회 394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얼마 전에 구청에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몇 년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그때도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는 어느 고깃집에 들이닥쳤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방방 뛰었다. 몇몇은 의자 위로 올라갔고 몇몇은 그릇이 잔뜩 깔린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몇몇은 칸막이를 들고 돼지를 출구로 몰았다. 멧돼지는 식당을 한바퀴 돌고 잠깐 버티다가 큰 저항 없이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영상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 하나. "웃긴 게 식당 아수라장 된 이유 자세히 보면 멧돼지는 하나도 안 건드렸는데 손님들이 다 때려부셔서 아수라장 됨."   당시에 나는 돼지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돼지의 '출몰'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안전안내문자에 등장한 동물이, 행정전산망에 포착된 멧돼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안전', '출몰', '유의' 등의 말들 하나 하나가 도드라져 보였다. 카페에서 문자를 보고 있는 '나' 또한 낯설었다. 돼지는 어쩌다 '출몰'하는 자리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 '안전'에 유의하는 자리에 있을까. 돼지의 출몰이 왜 더이상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을까.         바이러스와 식물     코로나 시국에 세계를 달리 감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하던 나는 이렇게 썼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통증은 상당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목이 아프고 발열 증상은 몸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통증 뒤에는 순간적인 쾌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 그것은 단순히 내 몸을 수호하는 면역 세포와 내 몸을 침범한 바이러스 간의...
경덕
2024.03.02 | 조회 429
아스퍼거는 귀여워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아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된 건 토요일. 39주 차인 만삭의 임산부가 절물휴양림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그 당시 젤 좋아했던 양념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휴양림 주차장에 주차하는 순간 딱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오늘 나온다!’ 뭔가 세상 처음 느껴보는 진통인데도 오늘인 거 같다는 느낌이 빡 드는 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에 전화해 진통 정도를 이야기하자, “그 정도로 아파서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하면 병원에 들르란다. 나랑 남편은 그 길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아기를 낳으면 한동안은 차가운 것은 못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빠삐코를 사서 입에 물었다. 그리고 세차를 하고 미리 사둔 카 시트를 설치했다. 몇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 탓에 출산하는 날 해야 할 것들이 메뉴얼화 되어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들어가선 간단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통 밑에 있는 거름망까지 탈탈 털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조리원에 들고 갈 짐을 싸고 있는데 진통이 왔다 갔다 한다. 어느 정도면 병원에 가야 할까. 왠지 병원에 너무 일찍 가면 혼날 것 같았다. 그래도 편한 집이 낫겠지 싶어서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 진통의 간격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제 가자!” 비장한 마음으로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처음에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오랫동안 산파일을 하신 조산사가 계셨다. 내 주변의 몇몇 지인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무통 주사도, 회음부...
모로
2024.02.25 | 조회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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