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완이의 쿠바통신 8] 금의환향의 꿈 - 이민자 M의 이야기 -

관리자
2021-05-1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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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물건들을 유통시켜서 돈 만드는 방법을 알았고, 외화를 사고팔면서 재미를 보았다. 언제 어디서 싱싱한 채소와 구할 수 있는지 주부의 상식까지 섭렵했다.

 

그에게 없던 것은 방향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고등학생 때는 철이 없었고, 그 후로는 시간이 없었다. 그냥 살던 대로 살겠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아직도 젊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어디를 향해야할까?

 

M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찬찬히 고찰했다. 쿠바에서 자신이 처한 조건이 어떠한지 따져보았고, 인생에 있어서도 어느 시점에 서 있는 것인지 고민했다. 아마도 살면서 최초로 해본 진지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결론은 금세 나왔다. 떠나야 한다. 여기가 어디든 간에 어느 방향에도 돌파구는 없다. 돌파해야 할 대상은 무엇이었는가? 인생이 평생 더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시작점, 피델의 동네

 

M이 사는 동네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길거리에는 흙먼지가 날린다. 멀끔하게 단장된 집보다 보수공사가 끝나지 않은 집이 더 많다. 원래 쿠바에서 보수공사나 확장공사는 넉넉하게 십 년은 잡고 시작하는 작업이다. 일반인들은 돈 모으기도 어렵고 물품 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M의 동네가 특히 더 심란하다. 사람들은 이곳이 ‘복잡하다(complicado)’고 묘사한다. 가난을 뜻하는 쿠바식 표현이다. 쿠바에는 공식적으로 계급이 없기 때문에 하층계급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다. 부를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M은 현재 애인과 함께 엄마 집에서 얹혀산다. 두 여자는 M의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엄마는 동네에서 보기 드물게 우아한 여성으로 버스회사 사무소에서 성실하게 근무한다. 애인 역시 동네 출신 중에서 몇 안 되는 지성인이다. 일하기 싫어서 어영부영 대학에 들어갔다가 세금만 날리는 청년들과 달리, 그는 학부시절 내내 최고의 성적을 유지한 학생이었다. 전공은 건축가다. 지금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쿠바에서는 대졸자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복잡한’ 인생을 산다. 수많은 버스 상태를 관리하는 엄마는 정작 자차가 없고, 건축가 애인도 망가진 집을 고칠 돈이 없다. 얼마 전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집에 문제가 생겼다. 뒷마당에 가져다놓은 벤치와 테이블은 어디론가 날아갔고, 지붕이 뒤틀리면서 생긴 틈새로 빗물이 샌다.

 

엄마는 말한다. 자연재해는 매년 똑같이 쿠바를 찾아오지만 지금이 훨씬 더 심란하단다. 예전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피델은 국가 재난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군복을 입고 재난현장에 등장했다. 두 발로 직접 동네의 골목길을 탐색하면서 어느 집이 무너졌는지 체크했고, 당장 집을 보수해주라고 담당자에게 지시했다. 그러면 일은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관료주의 시스템이 층층시하처럼 쌓인 쿠바에서 최고지도자의 한 마디 말은 마법이다. 무너진 벽이 불쑥 일어서고, 날아간 지붕이 다시 자라난다.

 

 

 

이것이 동네 사람들이 피델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는 ‘복잡한’ 동네도 차별하지 않고 몸소 찾아오는 최고지도자였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피델의 연설은 대다수가 피부색이 어두운 동네 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독재가 쿠바의 경제를 망쳤다고 속상해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통치 속에서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 먹을 게 아예 없는 것보다는 한 줌의 배급용 콩이라도 있는 게 더 나은 것이다. 누구는 이를 두고 ‘쿠바 흑인들은 역사상 유례없는 신분상승을 누리는 자들’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제 피델은 세상에 없다. M은 자기 동네의 몰락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정작 자신은 피델의 모습을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꼭 그렇게 서사를 짜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만 앞뒤가 맞는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동네 형편과 피부색에 대한 은근한 차별, 조금씩 도입되는 시장경제와 벌어지는 빈부격차. 이 모든 것을 피델의 부재로 요약하면 손쉽게 불만을 쏟아낼 수 있다. 이제는 집 보수를 도와줄 자 아무도 없다. 각자도생의 시대다.

 

 

대학과 잃어버린 친구들

 

M이 첫 번째로 찾은 돌파구는 대학이었다. 아버지가 드러눕기 전에 그는 잠깐 간호대를 다녔다. 간호대는 학생정원수가 지원자 수보다 더 많기 때문에 입학이 쉽다. M은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무책임한 이유로 간호대에 진학하지도 않았다. 사람의 몸을 공부하고 싶다는 나름의 원이 있었다. 한 학기 만에 휴학계를 내고 생계전선에 뛰어든 후로는 완전히 까먹고 살았던 마음이지만 말이다. 이제 그 휴학계를 철회할 때였다.

 

M이 대학에 돌아왔을 때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M 자신이었다. 동기보다 월등히 많은 나이는 차치하고라도 전보다 머리가 더 나빠진 것 같았다. 그는 해부학 수업을 들으면서 경악했다. 오 년 전에 자신이 어떻게 이토록 많은 용어들을 외울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가 나빠진 게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지력이 아닌 동기였다. 예전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학교에 왔지만, 지금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교문을 밟는다. M가 원했던 것은 어딘가에 적을 두는 것이었다. 대학은 가장 안전한 선택지였다. 한 번도 누리지 못한 대학생이라는 이름과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보상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인생이 저절로 풀릴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인생은 그의 욕망 가운데에서 가장 구체적인 쪽으로만 풀렸다. 첫 학기 동안 그는 무수한 파티에 참석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새내기답지 않은 M의 용감무쌍한(기말고사를 목전에 두고서 클럽에 가거나 바닷가로 놀러가는) 행보에 친구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M의 마음을 제대로 꿰뚫어 보는 사람은 없었다. M이 되찾은 ‘잃어버린 친구들’은 자기 인생 살기도 바빴다.

 

공부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친구들은 점점 어려워지는 수업내용을 따라잡기 위해 도서관에 갔고, M은 그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했다. 결과는 당연히 낙제였다. 재시험에 삼차시험까지 갔으나 M은 일 학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 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다시 일 년 유급이라니. M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휴학계를 다시 준비했다. 아무래도 대학은 돌파구가 아닌 모양이었다.

 

 

 

애인과 잃어버린 자신감

 

적을 둘 곳이 없으면 새 적을 만들면 된다. M의 다음 행보는 가정이었다. 애인과도 벌써 육 년 째 사귀는 중이었다. 가족관계가 느슨한 쿠바에서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애인은 대세에 편승하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아이를 낳아서 진로 계획에 초를 치는 대학원 동료들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M은 결혼을 계획해야 했다. 그는 시작부터 머뭇거렸다. 애인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애인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은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 같은 거리에서 자란 소꿉친구다. M이 골목길을 휘저으며 축구공을 쫓아다녔을 때 애인은 집에서 착실하게 공부하는 아이였다.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둘은 연인이 되었다. 애인은 M의 단순하지만 진솔한 인간성에, M은 애인의 성실함과 지성에 끌렸다. 졸업 후 둘의 길이 갈렸다. M은 일을 나갔고 애인은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둘은 함께 살면서 장애물들을 현명하게 극복해나갔다. M은 애인이 아버지 간호를 도와주는 것이 늘 미안했고, 애인은 자신의 공부를 뒷바라지 해주는 M이 고마웠다. 애인이 졸업한 날에 M은 동네잔치까지 벌였다.

 

그러나 시간의 무게도 M이 한 번 ‘잃어버린 자신감’을 보상해주지는 않았다. 애인의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자기 인생만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떨쳐지지 않았다. 애인의 잘못이 아니었으나, 애인 앞에 서면 박탈감이 깊어졌다. 차라리 결혼을 해버리면 낫지 않을까? 텅 빈 인생을 채울 거리를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 애인은 바보가 아니다. 청혼의 동기가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금세 알아챌 것이다.

 

 

외국과 잃어버린 미래

 

머리를 굴리던 M은 마침내 묘수를 찾았다. 자존심도 회복하고 애인도 설득시키고 인생도 ‘리셋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다. 외국에 가는 것이다. 자신이 이민자가 되고 애인이 자신의 ‘합법적 아내’가 되면 그때는 쿠바를 탈출할 수 있는 여권을 선물할 수 있다.

 

외국에서 영원히 살 요량은 아니었다. 돈을 충분히 벌고 외국 공기도 실컷 마신 후에는 둘이 손잡고 그리운 쿠바로 돌아올 것이다. 땅을 살 것이다. 건축 자재도 구매할 것이다. 그러면 애인도 이 동네에서 원하는 집을 마음껏 설계하리라. M은 자신의 미래를 그 집에 걸고 싶었다.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애인에게 M 자신이 새로운 세상이 되고 싶었다.

 

M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장소로는 파나마가 간택되었다. 쿠바인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락하는 몇 안 되는 나라였다. 러시아도 고려했지만 냉혹한 겨울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파나마에서는 취업 비자를 내주는 사업장을 찾을 것이다. 초반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해야겠지만, 현지물정에 눈이 트이면 더 좋은 취업 조건을 찾을 수 있을 테다. M은 걱정하지 않았다. 쿠바에서도 살아남고 있는데 세상 어디라고 못 갈까?

 

무모한 발상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놀라지도 않았다. 그간 M은 외국에 대해 일관된 집념을 보여주었다. 외국 뉴스를 접하면 표정관리를 할 틈도 없이 부러운 마음이 새어나왔다. 아프리카 대륙만 제외하면 세상 모든 곳이 이 동네보다 더 나아보였다. 외국이란 내 집, 내 차, 음식으로 가득 찬 마켓이 있는 장소였다. 속물적인가? 하지만 집과 차를 갖지 않은 가장이 자존감을 가질 수는 없다. 음식을 구하지 못하는 가장도 쓸모가 없다. M은 그렇게 믿었다. 게다가 이것들은 역사가 쿠바에 조금 더 호의적이었더라면 쿠바 사람들 역시 향유할 수 있었던 ‘잃어버린 미래’다. 피델이 더 오래 살았더라면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M은 돈을 모으고 또 빌렸다.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표를 사야 했다. 부리나케 결혼식도 올렸다. 결혼식 날 M의 얼굴은 단 한 점의 근심 없이 행복으로 환하게 빛났다. 출국 날이 코앞이었다. 이제 아내가 된 애인은 고생길을 앞둔 M이 안쓰러워 울었고 송별파티를 성대하게 열어주었다. M은 근엄한 가장의 얼굴로 아내를 달랬다. 뿌듯함이 뱃속부터 올라왔다.

 

그는 무사히 파나마에 도착했다. 첫 번째로 한 일은 자본주의 풍경 사진을 잔뜩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부터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중국 우한에서 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라시아 대륙과 대서양을 가로질러 남아메리카를 덮치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고용시장은 얼어붙었고 실업률이 치솟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려도 병원조차 갈 수 없었다. 이곳은 의료가 무상인 쿠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M은 하릴없이 쿠바로 돌아왔다. 잠깐 외국바람을 쐬고 초콜릿 선물을 산 것 외에는 남은 게 없었다. 아내는 어색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한 달 만에 돌아온 집에는 냉각된 관계만 남았다.

 

 

도착점, 나의 동네

 

스물네 살에 돌파구를 찾기로 결심했을 때, M은 이 마음이 방향 탐색이 아닌 원점회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낡은 삶을 떠나고 싶어 했던 적이 없었다. 결핍에 대한 분노는 깊어질지언정 삶에 대한 상상력은 동네 어귀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익숙한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보았다. 그리고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빈 구멍을 채우고자 했다. 그러면 삶이 완성되리라. 문제의 본질은 M이 고향에 대한 애정과 고향 속에서 형성되어온 자기 자신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M이 꿀 수 있었던 최상의 꿈은 ‘금의환향’이었다.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공간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 집, 차, 음식을 소유하는 삶이었던 것이다. 그는 피델의 동네에서 마이애미의 이민자처럼 살고자 했다. 이것이 형용모순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팬데믹이 오지 않았더라도 이민자 M은 쿠바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파나마든, 러시아든, 어디를 가든 그의 마음은 쿠바의 작은 동네 안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학 공부의 길이 막힌 것, 아내와의 관계가 냉각된 것 역시 여기에 원인이 있다.

 

결국 돌파구가 없었던 것은 M의 마음이었다. 그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들을 잃어버린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질문이다. 질문을 열쇠로서 쥘 때에만 열리는 길이다. 그는 오늘날 혼돈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수많은 세계청년 중 한 명일뿐이다.

댓글 3
  • 2021-05-19 12:25

    처음 질문을 받아보는 글이네요... 나의 모습과도 겹치는 M

  • 2021-05-24 10:51

    이곳이나 저곳이나 청년들에게 유난히 갑갑한 시대, 답답한 세상이군요!

  • 2021-05-25 08:51

    질문과 길을 잃었다는 문장이 눈에 콕 박히네요....좋은 글 읽었습니다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관리자
2021.06.11 | 조회 568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올 초 파지사유가 문탁네트워크로부터 독립했다. 이곳에는 기존의 작업장 이외에 새로 일리치약국과 에코마켓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다. 공간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할 것이며 파지사유의 새로운 이름은 또 뭐라고 할 것인가? 구성원 사이에 토론, 협의, 다툼, 지지부진이 계속 되었다. 어떤 경우는 생각이 달랐고 또 어떤 경우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라 어느덧 공간 분할이 확정되었고 이름도 두 개로 압축되었다. <양생n에코실험실 파지사유> 혹은 <에코n양생실험실 파지사유>! 격론 끝에 후자로 결정되었다. 이유는? 양생이란 말이 너무 낯설다는 것이다. 양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시멘트 양생을 먼저 떠올린다나?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 청년에게 물어봤다. ‘양생’이라는 단어 아니? 뭐가 떠올라? 돌아오는 대답은, “후학양생이요?” 헐, ‘양생’이 낯선 단어가 맞구나. 조용히 정정해줬다. “음, 후학은 양생(養生)하는 게 아니고 양성(養成)하는 거야”       양생(養生)! 기를 양(養)에 날 생(生)! 직역하면 생명을 기르는 행위. 원출전은 장자(莊子)다. 이야기인즉슨 이런데, 한 백정이 그의 임금을 위해 소를 잡고 있었는데 살 한 점, 뼈 한 조각 건드리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칼질하며 소를 해체하는 모습이 가히 신출귀몰,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임금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 백정은 정색을 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이어서 자신이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지만 십구 년이 지난 지금엔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神) 본다고, 그러면 소의 자연스러운 결(天理)에 따라 칼도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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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1.06.08 | 조회 452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얼마 전에 길드다 청년들과 일민미술관 전시에 다녀왔다. 사정인즉 이렇다.      일민미술관이 <운명상담소 : Fortune Tell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길드다의 친구인 티슈오피스(청년 디자인 스타트업)에 이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임형 모바일 전시 어플리케이션 ‘Fortune Telling Center’를 맡겼고, 티슈오피스는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주제를 주역으로 잡았고, 그 게임에 들어갈 텍스트 (주역 괘 해설)를 길드다에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드다는 이 전시에 아주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이런 신박한 청년들(길드다)”을 신기하게 본 일민미술관 측에서 새로 기획하는 온라인 전시 웹페이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무조건 한다” 였다. 운명에 대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뭐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전시를 먼저 보자. 하여, 평생에 걸쳐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을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반쯤은 의무방어전으로.          내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서였다. 고미숙샘 덕분에 우연히 사주명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처음으로 나의 신체적 운명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왜 비위가 약한지 (난 편식이 심하고 그래서 늘 주변에서 놀림을 받는다^^) 왜 계속 넘어지고 발이 삐끗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쓰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투비 오지라퍼구나. 그러니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프지.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남 탓, 세상 탓을 할 것인가? 사주명리를 공부한...
    얼마 전에 길드다 청년들과 일민미술관 전시에 다녀왔다. 사정인즉 이렇다.      일민미술관이 <운명상담소 : Fortune Tell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길드다의 친구인 티슈오피스(청년 디자인 스타트업)에 이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임형 모바일 전시 어플리케이션 ‘Fortune Telling Center’를 맡겼고, 티슈오피스는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주제를 주역으로 잡았고, 그 게임에 들어갈 텍스트 (주역 괘 해설)를 길드다에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드다는 이 전시에 아주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이런 신박한 청년들(길드다)”을 신기하게 본 일민미술관 측에서 새로 기획하는 온라인 전시 웹페이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무조건 한다” 였다. 운명에 대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뭐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전시를 먼저 보자. 하여, 평생에 걸쳐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을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반쯤은 의무방어전으로.          내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서였다. 고미숙샘 덕분에 우연히 사주명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처음으로 나의 신체적 운명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왜 비위가 약한지 (난 편식이 심하고 그래서 늘 주변에서 놀림을 받는다^^) 왜 계속 넘어지고 발이 삐끗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쓰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투비 오지라퍼구나. 그러니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프지.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남 탓, 세상 탓을 할 것인가? 사주명리를 공부한...
문탁
2021.05.20 | 조회 185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관리자
2021.05.19 | 조회 403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파지사유 공사일지: 공간은 무엇으로 공간이 될까요?     “잡동사니에 대한 강조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란 바로 이런 것, 즉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해주는 잡동사니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얽히고설킨 질서는 여러모로 대단히 경이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은 상호 의존하는 여러 용도들의 생생한 집합체, 이런 자유와 이런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안타까운 공간   공간 디자인을 시작한 뒤로, 나는 어떤 공간이든 한 번씩 더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식당이든 카페든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나는 그곳을 ‘공간’으로써 본다. 친구의 집은 한편으로 그냥 친구의 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점에선 ‘잘 계획된 공간’, 어떤 점에선 ‘디자인되지 못한 공간’이다. 후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는지,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 분석한다.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것을 지양해야할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눈을 가지고 보면, 많은―어쩌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공간들이 잘 계획되어있지 못하다. 거의 모든 공간들이 ‘되는대로’ 만들어져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들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일상과 관계없이 만들어져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춘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맞추어 산다. 상업 공간 역시 크게 다르지...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파지사유 공사일지: 공간은 무엇으로 공간이 될까요?     “잡동사니에 대한 강조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란 바로 이런 것, 즉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해주는 잡동사니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얽히고설킨 질서는 여러모로 대단히 경이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은 상호 의존하는 여러 용도들의 생생한 집합체, 이런 자유와 이런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안타까운 공간   공간 디자인을 시작한 뒤로, 나는 어떤 공간이든 한 번씩 더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식당이든 카페든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나는 그곳을 ‘공간’으로써 본다. 친구의 집은 한편으로 그냥 친구의 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점에선 ‘잘 계획된 공간’, 어떤 점에선 ‘디자인되지 못한 공간’이다. 후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는지,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 분석한다.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것을 지양해야할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눈을 가지고 보면, 많은―어쩌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공간들이 잘 계획되어있지 못하다. 거의 모든 공간들이 ‘되는대로’ 만들어져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들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일상과 관계없이 만들어져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춘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맞추어 산다. 상업 공간 역시 크게 다르지...
지원
2021.04.25 | 조회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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