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양생이다> 8회 원칙에 매인 '경금'의 공동체 밥상 입성기

기린
2021-04-19 02:51
572
  1.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새삼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 혼자서라도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일인가구인 나는 공동체 밥상에서 대부분의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다보니 채 소화시키지 못한 텍스트의 어려운 문장을 공동체의 밥상에서 소화시키는 때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선물 세미나에서 ‘선물’이 우리가 흔히 주고받는 선물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선물이 선물이지 도대체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러다 주방으로 들어오는 선물을 기록해두는 ‘선물의 노래’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쌀은 기본적으로 선물로 해결 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회원들은 산지 특산물을 주방 선물로 들고 왔다. 공동체에서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특식이라도 만들게 되면 그 재료는 대부분 선물로 충당되었다. 집에서 해결하기에 많은 양은 공동체 주방으로 흘러왔다. 그렇게 들어오는 선물들 덕분에 이 천 원으로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었고 주방 회계는 대부분 흑자로 마감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선물이 일 대 일로 교환되지 않고 밥상을 통해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 사이로 순환되는 곳, 그 순환으로 공동체의 안녕이 지속 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밥상을 지속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내가 주방의 매니저로 나서는데 한 몫을 했다.

 

2.곡진함에 대하여

 

 혼자라도 하겠다고 우겼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할 즈음, 주술밥상에서 매니저로 참여했던 다른 친구가 같이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 둘 이름에 ‘은’자가 있다고 옛날 가수인 은방울 자매로 하라는 농담이 현실이 되어 ‘은방울 키친’으로 명명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매일 아침 주방으로 출근하면서 몸이 공간과 익숙해지도록 길을 들였다. 전날 말려둔 그릇들을 정리하고 흩어져 있는 주방집기들의 자리를 정해 수납했다. 주방 등도 LED 등으로 바꾸었다. 한층 밝아진 주방에서 밥당번들이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 마디씩들 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밥당번을 하러 온 친구에게 냉장고에 박혀 있던 탄 밥이 드문드문 섞인 찬밥의 처치곤란을 하소연했다. 그 밥이 점심 밥상에 까만 점이 맛있게 박힌 주먹밥으로 재탄생했을 때 정말 기뻤다. 매니저의 고충을 귀담아 들어준 친구의 마음도 그렇고 공동체 밥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순환의 진면목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기』를 읽을 때 칠십 편의 열전에서 느낀 감흥을 살려 홈피에 매달 ‘밥상열전’을 썼다. 한 친구가 주방에서 쓰는 무쇠 압력솥이 너무 무겁다고 적당한 새 압력솥을 선물했다. 그 솥으로 당시 주역을 공부하던 이문서당 2분기 쫑특식에서 사십인 분의 밥을 해내었다. 그 날의 사십인 분의 비빔밥을 먹은 이문서당 동학들은 어려운 주역 공부의 시름을 위로받았다. 공동체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여름에 인문학 캠프를 열었다. 그 때 공동체 밥상에서 다섯 끼를 차려냈다. 닭볶음, 바지락스파게티, 도토리묵밥, 야채비빔밥, 닭가슴살너겟, 떡볶이 등등이었다. 밥당번으로 나선 친구들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활약으로 가능해진 밥상이었다. 김영민이 쓴 『동무론』에 공동체를 꾸려가는데 필요한 요소로 구성원들의 ‘곡진한 노동’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공동체 밥상에서 펼쳐지는 이런 순간이야말로 곡진한 노동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그 일들은 밥상열전을 통해 이야기가 되어 ‘별일 없이’ 공동체 밥상이 차려지는 안부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 안부가 늘 평안할 수는 없었다. 주방으로 들어오는 선물들은 여전히 풍성했지만, 달마다 조직하는 밥당번은 늘 구멍이 생겼다. 나는 점점 회원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어떤 타이밍에 밥당번표를 내밀 것인가. 어떤 세미나에 가서 단품을 생산하자 제안할 것인가.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슬슬 나를 피하고 있다는 기운마저 느껴질 때도 있었다. 월초에 있는 운영회의에서 다음 달의 밥당번표를 돌리면서 밥당번이 부족하다고 내내 하소연했다. 그러면 늘 있는 일이 아니냐는 심드렁한 반응부터 빠진 회원 명단을 작성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다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여기가 함께 공부하고 밥도 먹는 공동체라면 ‘당연히’ 공부도 하고 밥도 해야지! 이런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를 꾸려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3. 경금이 고수했던 원리원칙의 시간

 

작년에 양생 프로젝트에서 사주명리를 공부했다. 사주 명리에 의하면 나의 일간은 ‘경금’이다. 경금은 “원리원칙적이고 구조화를 잘 시키고 정의감을 가지고 호전적으로 세상과 맞서려” 하는 기질을 지닌다고 한다. 공동체에 와서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원리원칙을 좋아하는 나의 기질이 더 기승을 부렸다. 고전의 문장은 사유로 벼리지기도 전에 원칙으로 읽히기 일쑤였다. 공동체 밥상을 보살피는 자리에서는 차질 없이 끼니마다 밥상이 차려지는 것도 나의 원칙이 되었다. 밥당번표가 한 곳도 빠짐없이 꽉 채워지는 것도 당연하게 포함되었다.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니 시도 때도 없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운명의 해석, 사주명리』에 의하면 경금은 원칙을 강하게 내세우다보니, 그것이 현실화되지는 않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더 세차게 내세우려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혼자서라도 밥상매니저를 하겠다고 우기는 나와 딱 겹쳐진다. 공동체의 안녕에 기여하고 싶은 정의감으로 공동체 밥상에 입성해서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원칙을 내세우는 경금의 활약, 고백하자면 내가 제일 힘들었다. 밥상을 못 차리는 사태가 일어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피곤했다. 어느 순간부터 밥상의 안녕보다 나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고 몸에 힘 좀 빼라는 친구의 충고라도 들으면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는 ‘그럼 니가 해보든지!’ 라고 응수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2020년 1월,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적인 모임을 금지하는 조치가 속속 실행되면서 공동체에서 함께 공부하고 밥을 먹는 일상이 사적인 모임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 와중에 코로나 상황은 빠른 속도로 심각해져서 세미나들이 줌으로 대체되고 공동체의 밥상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시쳇말로 헐~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색은 못했지만 표정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세웠던 원칙을 더 이상 고수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바이러스의 번성이 밥상을 닫게 할 수도 있는 경험은 지난 십 년 동안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막상 밥상 문을 닫아보니 나의 원칙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 원칙 때문에 내내 밥상을 차려졌다고 여겼던 내가 보였다. 사람과 선물이 순환되면서 지속되는 공동체의 안녕은 한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 우주의 기운이 때를 맞춰준 결과였을 뿐이다. 그것을 모르고 날뛰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나의 꼴이 참 한심했다.

 

 

4. 앎은 사후약방문이다

 

 공동체 밥상이 차려지지 않는 내내 옛 일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공동체 밥상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집안에서도 살림을 하던 터라 자신만의 레시피가 두둑한 이들이 꽤 있었다. 다 아는 맛도 그들이 만들면 풍미가 깊었고, 새로운 맛은 오감을 자극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밥당번은 두 사람이 함께 했는데, 세미나를 함께 하는 동학일 수도 있고 주방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다. 그 시간은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느낀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뒷담화로 양념을 하는 시간, 이 공부 공동체에 대해 서로서로 알게 된 정보를 나누면서 밥을 익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밥당번을 몇 번쯤 거치면서 주방의 집기가 눈에 익고 익숙하게 앞치마를 두르다보면 공동체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 붙었다. 나 역시 이런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점점 세미나를 하러 오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은방울 키친의 매니저로 활동하는 동안 세 명의 매니저와 함께 일했다. 첫 번 짝은 주술밥상에서도 활동했던 친구로 공동체 밥상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여러 조목들을 전수해 주었다. 당시 그 친구의 여러 사정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나 혼자 밥상을 꾸려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내줘서 참 고마웠다. 결국 그 친구는 취직을 하게 되면서 매니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다음은 세미나를 같이 해본 적은 없는 친구와 함께 일했다. 그러다보니 밥상 운영 회의보다 서로를 탐색하는 대화시간이 더 길어지곤 했다. 그래도 음식 잘 하는 그 친구 덕분에 식재료 장보기 등이 훨씬 수월해졌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오래 함께 하지는 못했다.  다른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함께한 짝은 서당 교사를 할 때 학부모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텃밭 가꾸기에 일가견이 있던 친구라 텃밭활동을 함께 한 이력도 있었다. 우리 둘은 죽이 척척 맞아서(그 친구가 나에게 맞춰 줬을 수도 ㅋ) 텃밭에서 바지런히 키운 열무로 김치를 담궈서 밥상에 내는 뿌듯함도 누렸다. 요리 솜씨까지 특출 나서 공동체에 소문난 밥상의 주인공이었다. 그녀들에게는 집에서는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고 공동체에 나와서는 공동체의 밥상까지 챙겨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고단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밥상을 받은 친구들이 보이는 무한한 감동을 보며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서 노고의 기쁨도 느끼는, 그래서 계속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일이기도 했다.

 

 

 코로나는 여전히 맹렬하고 열 명,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 그 사이 공동체도 더 작은 규모로 나뉘어졌다. 공동체 밥상인 은방울 키친도 문을 닫았고 나의 공동체 밥상 매니저 활동도 종료되었다. 그리고 파지사유에 ‘공식당’을 열었다. 파지사유에서 활동하는 상근자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하고 소수의 인원들이 뚝뚝 떨어져 앉아서 점심 한 끼를 해결한다. 그동안 공동체 밥상에서 익은 버릇 때문에 묵묵히 밥만 먹지는 않지만, 예전처럼 공동체의 온갖 안부가 뒤섞이는 동네 우물가 같은 수다의 공간은 사라졌다. 그제야 우리가 지나 온 시간들이 실감되었다. 달마다 행사를 기획하고 해마다 인문학 축제를 하면서 거리낌 없이 함께 모여서 웃고 떠들었던 시간, 사람이 뒤섞이고 온갖 음식이 흘러 다녔던 분위기, 그 때가 참 좋은 삶의 순간이었다는 것을. 앎은 지나고 나서야 온다고 했던가. 사후약방문격이다. 어느 날이었다. 사십인 분도 거뜬히 해내는 뻑적지근한 점심과 달리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운영회원 대 여섯이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주술밥상 매니저 일을 인계하면서 나와 언성까지 높였던 친구가 밥당번을 했다. 다들 언제 이렇게 솜씨가 좋아졌냐 신기해했다.

 

친구: 나의 음식 솜씨는 주술밥상 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제 집 식구들도 인정해. 공동체 밥상이야말로 노력 대비 만족도 높은 가성비 짱인 곳이야~

 

맞다. 밥상의 안녕 때문에 제풀에 지쳤다가도 그 한 끼를 먹고 나면 마음도 한껏 느긋해져서 다시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무쇠 같다는 경금이 연마되기에 이만한 가성비를 낼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나에게 공동체 밥상은 그런 곳이었다.

 

댓글 5
  • 2021-04-19 09:42

    그 정겨운 지옥에서. 

    열정은 뜨거움이 아니라 꾸준함이라는 걸 알게 해주셨습니다.

    늦었지만, 존경을~^^

     

    사족. 사진 1>

    은주와 제가 날아댕기며 차린 레전드 밥상! 이문서당 쫑파티 밥상입니다.  흐르는 아니 튕기는 땀으로 간을 맞춘 밥상. 저 사진 박제해주세요!ㅎ

  • 2021-04-19 09:46

    사진1처럼 밥먹어본게 언제인지 ㅠ

    그래도 밥상은 늘 차려지고 우리는 또 거기에 있을것이야 ㅎ

    기린샘의 꾸준함도 경금의 힘이니 너무구박은 마시고요 ㅋ

    기린샘과 함께한 짝님들 멋있습니다~~♡

  • 2021-04-19 10:24

    문탁 밥 먹고 큰 꼬맹이들 사진 보니 반갑다!!!밥심이 촥오~

  • 2021-04-20 23:23

    기린은 문탁의 빡센 곳들만 골라 다니는 듯

    그 빡센 곳들을 모두 돌면 득도할 것이야

    너무 도가 높아지면 같이 못노는데.....

    그만 돌게 할 수도 없고

     

  • 2021-04-27 14:03

    와....그때가 2017년..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집니다.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만 남은 밥상.

    그리워요 ^^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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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6.11 | 조회 568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올 초 파지사유가 문탁네트워크로부터 독립했다. 이곳에는 기존의 작업장 이외에 새로 일리치약국과 에코마켓이 들어서기로 되어 있었다. 공간을 어떻게 리모델링을 할 것이며 파지사유의 새로운 이름은 또 뭐라고 할 것인가? 구성원 사이에 토론, 협의, 다툼, 지지부진이 계속 되었다. 어떤 경우는 생각이 달랐고 또 어떤 경우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라 어느덧 공간 분할이 확정되었고 이름도 두 개로 압축되었다. <양생n에코실험실 파지사유> 혹은 <에코n양생실험실 파지사유>! 격론 끝에 후자로 결정되었다. 이유는? 양생이란 말이 너무 낯설다는 것이다. 양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시멘트 양생을 먼저 떠올린다나?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 청년에게 물어봤다. ‘양생’이라는 단어 아니? 뭐가 떠올라? 돌아오는 대답은, “후학양생이요?” 헐, ‘양생’이 낯선 단어가 맞구나. 조용히 정정해줬다. “음, 후학은 양생(養生)하는 게 아니고 양성(養成)하는 거야”       양생(養生)! 기를 양(養)에 날 생(生)! 직역하면 생명을 기르는 행위. 원출전은 장자(莊子)다. 이야기인즉슨 이런데, 한 백정이 그의 임금을 위해 소를 잡고 있었는데 살 한 점, 뼈 한 조각 건드리지 않고 리드미컬하게 칼질하며 소를 해체하는 모습이 가히 신출귀몰, 천의무봉의 경지였다. 임금이 감탄하며 말하기를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그 백정은 정색을 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이어서 자신이 처음에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지만 십구 년이 지난 지금엔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神) 본다고, 그러면 소의 자연스러운 결(天理)에 따라 칼도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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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1.06.08 | 조회 452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얼마 전에 길드다 청년들과 일민미술관 전시에 다녀왔다. 사정인즉 이렇다.      일민미술관이 <운명상담소 : Fortune Tell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길드다의 친구인 티슈오피스(청년 디자인 스타트업)에 이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임형 모바일 전시 어플리케이션 ‘Fortune Telling Center’를 맡겼고, 티슈오피스는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주제를 주역으로 잡았고, 그 게임에 들어갈 텍스트 (주역 괘 해설)를 길드다에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드다는 이 전시에 아주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이런 신박한 청년들(길드다)”을 신기하게 본 일민미술관 측에서 새로 기획하는 온라인 전시 웹페이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무조건 한다” 였다. 운명에 대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뭐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전시를 먼저 보자. 하여, 평생에 걸쳐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을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반쯤은 의무방어전으로.          내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서였다. 고미숙샘 덕분에 우연히 사주명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처음으로 나의 신체적 운명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왜 비위가 약한지 (난 편식이 심하고 그래서 늘 주변에서 놀림을 받는다^^) 왜 계속 넘어지고 발이 삐끗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쓰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투비 오지라퍼구나. 그러니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프지.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남 탓, 세상 탓을 할 것인가? 사주명리를 공부한...
    얼마 전에 길드다 청년들과 일민미술관 전시에 다녀왔다. 사정인즉 이렇다.      일민미술관이 <운명상담소 : Fortune Tell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길드다의 친구인 티슈오피스(청년 디자인 스타트업)에 이를 온라인으로 구현하는 게임형 모바일 전시 어플리케이션 ‘Fortune Telling Center’를 맡겼고, 티슈오피스는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하면서 주제를 주역으로 잡았고, 그 게임에 들어갈 텍스트 (주역 괘 해설)를 길드다에 요청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길드다는 이 전시에 아주 부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또 어쩌다보니 “이런 신박한 청년들(길드다)”을 신기하게 본 일민미술관 측에서 새로 기획하는 온라인 전시 웹페이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무조건 한다” 였다. 운명에 대해 어떤 글을 쓸 것인가는 뭐 차차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일단 전시를 먼저 보자. 하여, 평생에 걸쳐 몇 번 가본 적이 없는 미술관을 이번에 가게 된 것이다. 반쯤은 의무방어전으로.          내가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시절을 한참 지나서였다. 고미숙샘 덕분에 우연히 사주명리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유용했다. 처음으로 나의 신체적 운명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내가 왜 비위가 약한지 (난 편식이 심하고 그래서 늘 주변에서 놀림을 받는다^^) 왜 계속 넘어지고 발이 삐끗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에너지를 쓰는 패턴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본투비 오지라퍼구나. 그러니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프지. 그렇다면 계속 이렇게 살면서 끊임없이 남 탓, 세상 탓을 할 것인가? 사주명리를 공부한...
문탁
2021.05.20 | 조회 186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관리자
2021.05.19 | 조회 403
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파지사유 공사일지: 공간은 무엇으로 공간이 될까요?     “잡동사니에 대한 강조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란 바로 이런 것, 즉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해주는 잡동사니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얽히고설킨 질서는 여러모로 대단히 경이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은 상호 의존하는 여러 용도들의 생생한 집합체, 이런 자유와 이런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안타까운 공간   공간 디자인을 시작한 뒤로, 나는 어떤 공간이든 한 번씩 더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식당이든 카페든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나는 그곳을 ‘공간’으로써 본다. 친구의 집은 한편으로 그냥 친구의 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점에선 ‘잘 계획된 공간’, 어떤 점에선 ‘디자인되지 못한 공간’이다. 후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는지,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 분석한다.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것을 지양해야할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눈을 가지고 보면, 많은―어쩌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공간들이 잘 계획되어있지 못하다. 거의 모든 공간들이 ‘되는대로’ 만들어져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들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일상과 관계없이 만들어져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춘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맞추어 산다. 상업 공간 역시 크게 다르지...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파지사유 공사일지: 공간은 무엇으로 공간이 될까요?     “잡동사니에 대한 강조가 가장 중요하다. 도시란 바로 이런 것, 즉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해주는 잡동사니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얽히고설킨 질서는 여러모로 대단히 경이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은 상호 의존하는 여러 용도들의 생생한 집합체, 이런 자유와 이런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제인 제이콥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안타까운 공간   공간 디자인을 시작한 뒤로, 나는 어떤 공간이든 한 번씩 더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식당이든 카페든 사적인 공간이든 공적인 공간이든, 나는 그곳을 ‘공간’으로써 본다. 친구의 집은 한편으로 그냥 친구의 집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점에선 ‘잘 계획된 공간’, 어떤 점에선 ‘디자인되지 못한 공간’이다. 후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나는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는지,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 분석한다.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떤 것을 지양해야할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눈을 가지고 보면, 많은―어쩌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공간들이 잘 계획되어있지 못하다. 거의 모든 공간들이 ‘되는대로’ 만들어져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들은 우리의 생활, 우리의 일상과 관계없이 만들어져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춘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맞추어 산다. 상업 공간 역시 크게 다르지...
지원
2021.04.25 | 조회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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