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행성#12] 아기의 시선으로

사이
2023-08-2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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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 생활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후 10일 된 아기에게 다양한 소리가 들렸다. 잘 때 ‘그르렁 그르렁’ 거리기도 하고, ‘으아아악악’ 손을 불끈 주고 힘을 주기도 하고, ‘딸꾹 딸꾹’ 딸꾹질을 하고, ‘붕~‘ 하고 방귀도 뀌었다. 아기들은 새근새근 숨 쉬면서 조용히 잘 것 같았는데 이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디 문제가 있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유튜브에 검색했다. ‘아기 그르렁’ ‘아기 딸꾹질’ ‘아기 용쓰기’ 등등. 이런 소리는 아기의 신체 기관이 발달이 안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아기가 손에 힘을 주면서 용쓰는 것은 응가나 방귀가 나올 때 어디를 힘을 줄지 몰라서 여기저기 혼자 힘을 주어 보는 것이었고, 아기가 딸국질하는 것도 횡격막이 아직 미성숙해서 모유나 분유를 먹고 트름하는 과정에서 수축하면서 딸꾹질한다. 이런 것들을 찾아 육아 공부를 할 수록 아기들의 소리는 ‘문제’가 아니라 작은 몸으로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어른의 시선으로 이 과정을 지켜보기보다는 빨리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다. 잘 때 숨소리가 거칠어서 콧속을 보니 코딱지가 있었다. 신생아 코딱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니 식염수를 넣어서 촉촉하게 만들어 주면 되고, 굳이 면봉으로 빼면 오히려 연약한 코점막이 더 손상이 간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바다가 숨을 쉴 때 답답해하는 것 같아 면봉이나 작은 집게로 코를 빼주었다. 그때 코가 쭉 길게 나오고 콧속이 뻥 시원하게 뚫리는 걸 보니 나와 남편의 마음도 시원해졌다. 그 이후 숨소리가 거칠지 않아도 바다의 코에 뭐가 있으면 자꾸 빼주고 싶었다. 목욕 후에 “바다 숨쉴때 답답할까봐 코구멍에 있는 거 빼주는 거야 잠깐 기다려봐.” 말하면서 머리를 잡고 코를 뺐다. 어느 순간 바다는 코에 뭐가 들어가는 것이 보이면 얼굴을 더욱 강하게 흔들었다. 점점 바다가 강하게 몸부림을 치니 과연 바다가 답답한 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소리가 거칠어 걱정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순간 나와 남편의 쾌감으로 변했다고 할까…? 어느 순간 바다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꾸 콧구멍만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린 후 이제는 코 빼주는 것을 멈추었다. (많이 나와 있을 때는 빼주는데, 그때 내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ㅎㅎㅎ)

아기가 답답한 건지 그걸 바라보는 내가 답답한 건지 잘 알아차리는 것이 육아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곽윤철 육아 선생님은 아기를 인격체로 대하면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터미타임을 할 때 아기의 배와 엉덩이를 잡고 천천히 돌리면 아기가 스스로 상체의 움직임을 조절할 힘이 있다고 한다. 막상 3주된 아기의 몸을 돌리려고 하니 너무 무서웠다. 어떤 날은 쿵 하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고 너무 놀라서 아기를 바로 안아 올렸는데 품 안에서 바다는 더욱 크게 뿌앵뿌앵 울었다. 과연 이 방법이 맞나 싶어서 그 이후에는 상체까지 잡아서 ‘안전하게’ 돌려주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도전해 보겠다면서 아기의 하체만 잡고 돌렸다. 이런 경우 팔이 배에 깔릴 때가 많은데 그때도 바로 도와주지 말고, “왼팔이 배에 깔려있지. 스스로 한 번 해볼까?”라며 상황을 아기에게 설명해 주라고 한다. 바다의 팔이 깔려 있을 때 나도 누워 바다와 눈빛을 교환했고, “왼팔이 배에 깔려있네. 바다가 혼자 뺄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어떤 날은 답답해 보여서 팔을 빼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낑낑거리는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가 배에 힘을 주고 상체를 확 들어서 팔을 쏙 뺐다. 헛! 내 눈은 동그래졌고 놀라움과 기쁨이 느껴졌다. 아기의 힘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시계를 보니 10분이 지나있었다. 물론 나의 체감은 30분이었지만. 기다려 주니 바다는 자신의 근육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런 성장 과정을 함께하는 건 놀랍기도 하지만 참으로 지루한 시간이기도 하다. 아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은 어떨까? 아기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육아의 지루하고 느린 시간을 섬세하게 통과할 수 있을까?

(터미타임할 때 스스로 팔을 빼는 바다!)

 

바다 +82일차

저번주에는 이웃 겨울샘이 집에 놀러오셔서 바다를 만났습니다.

이제는 주먹을 입에 넣네요.

터미타임으로 목의 힘을 열심히 기르고 있습니다~

이제 머리가 커져서 토끼 머리띠도 할 수 있네요.

맘마 먹고 엄마 품에서 푹 쉬고 있는 바다에요~

처음 외출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카페에 갔는데 바다가 엄청 울었네요 ㅜ

 

 

 

댓글 10
  • 2023-08-24 22:27

    와~~ 바다다!! 사진으로 눈 맞춤하는거 같아요. 표정도 다양 ^^겨울샘도 반가워요!! ^^ 가끔 이렇게 보는 저희는 놀랍기 그지없는데.... 도와줄 수 있는데 기다려주는거 .. 바다님은 자기 몸을 배워가고 엄마는 관계에 정수를 배우고 익혀가는건가요~~ 멀리서 보는 저는 그냥 신기 방기 흐뭇~

  • 2023-08-27 10:17

    모르는 말, 터미타임이 뭘까?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사이님을 통해 요즘 육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너무 옛날 사람 같나요?)ㅎㅎㅎ
    아이의 시간과 엄마의 시간이 다르다는 발견도 흥미롭습니다.
    첫 외출을 하게 된 바다의 성장에 박수를! 우는 바다를 달래느라 땀을 뻘뻘 흘렸을 사이님께도 위로와 응원을!!

  • 2023-08-27 14:40

    요즘 육아는 검색으로 하는군요 ㅋㅋ
    바다의 작은 움직임, 소리, 코딱지까지 살피는 사이님 예뻐요 ㅋㅋㅋ

  • 2023-08-27 20:24

    100일 안 된 아기를 안아보는 건 내 아이 이후 처음이니까 30년만이었네요!ㅎ
    바다랑 눈마주치고 오물오물거리는 작은 입에서 옹알이하는 거 듣고...팔에 폭 안긴(살짝 묵직한?ㅋ) 바다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어요!!!

  • 2023-08-28 08:46

    바다를 보고 있자니
    감탄과 미소과 감동이예요.
    사이님의 엄마 미소도 떠올려지고 한편으론 지루하고 느린 시간도 느껴져요.
    얼릉 사이님도 바다도 보고 싶어요~

  • 2023-08-28 10:46

    '터미 타임' 찾아 본 일인 추가.ㅎㅎㅎㅎㅎ

    이제 목도 힘껏 잘 쳐들고, 이쁜 짓도 하고..
    바다,,기특하다.

    겨울샘도 여기서 만나니 더 반갑습니다.

  • 2023-08-28 14:08

    ㅎㅎ 사이님 모습도 살짝 나오고 겨울쌤도 등장하시네요~
    신기합니다~ 아기 키우는데 이렇게 여유있을 수 있다는게^^
    스스로 성장하는 바다를 또박또박 알아봐주는 사이님~ 멋집니다!

  • 2023-08-28 18:14

    ㅋㅋㅋㅋ
    사이님과 바다의 이야기를 읽으니
    첫 아이 때 종종거리며 병원을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날은 우리 아이 배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병원을 찾고
    또 어느날은 피부가 너무 까매서
    그리고 가장 많은 이유는 너무 울어서였어요.
    이유도 알 수 없이 울어 대는 아이를 어찌할 수 없어서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 갔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 2023-08-28 19:32

    지켜보는게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ㅋ

  • 2023-08-30 09:11

    우는 표정이 지대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