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 2회] 두번째 화살에 맞지 않으려면

요요
2021-09-08 10:16
622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으려면

 

번뇌의 화살을 뽑아 집착 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슬픔을 뛰어 넘어 슬픔 없는 님으로 열반에 들 것입니다.

(『숫타니파타』 3품 8 『화살의 경』)

 

최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삶이 고해(苦海)라는 것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작년 가을, 긍정과 명랑의 아이콘이었던 어머니에게 갑자기 심각한 우울증이 왔다. 추운 겨울날 새벽 어머니는 자살충동을 느끼고 집을 나섰다. 천만 다행으로 길에 쓰러져 있던 어머니를 찾은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급히 어머니를 입원시켰다. 이번에는 치매가 진행 중이던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는 무조건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시도 때도 없이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며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아버지도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받아야했다.

 

퇴원한 날 어머니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낙상사고를 당해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몇 개월을 보내고 이제 겨우 한숨 돌리나 했는데 얼마 전 어머니의 직장과 질 사이에 누공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망설이고 주저하다 수술을 결정했는데 수술 후 어머니는 컨디션 난조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내 마음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탄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다가오는 일들에 대처하고 싶은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

 

내 부모님이 그렇듯이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생로병사의 사건들은 결국 닥쳐오고야 만다. 2500년 전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안락한 왕궁을 떠나 출가한 것도 늙고, 병들고, 죽는 사람들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그 마주침을 통해 그는 삶이란 괴로움이고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예리하게 직시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 수행자가 되었고 마침내 깨달은 자 붓다가 되어 고통이 종식되었음을 선언했다. 그가 성취한 괴로움의 종식이란 어떤 상태일까. 깨달은 자가 되면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일까? 이 문제를 주제로 붓다 자신이 제자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일반 사람들은 즐거운 느낌도 느끼고, 괴로운 느낌도 느끼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느낀다. 수행승들이여, 지혜로운 사람들도 역시 즐거운 느낌도 느끼고, 괴로운 느낌도 느끼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느낀다. 수행승들이여,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쌍윳따니까야』 36:6, 『화살의 경』)

 

붓다에 따르면 깨달은 자도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 느낌이란 무엇일까? 신경생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뇌』에서 느낌이란 우리 신경계의 자동적 항상성 조절 기제라고 설명한다. 그는 느낌을 좀 더 세분하여 정서와 느낌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정서는 신경계의 작용인 신체적 표상이고, 느낌은 신체적 표상(정서)에 대응하는 심적 표상이다. 즉 느낌은 특정한 신체상태에 대한 관념 혹은 지각이다.

 

우리는 붓다가 말하는 느낌을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정의하는 정서와 느낌을 통칭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그 기반은 외부와 접촉하면서 생겨나는 몸의 반응과 그것에 대한 심적 표상이다. 신체의 상태에 따라 우리는 즐거운 느낌을 갖거나 괴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몸에 열이 나면 괴로운 느낌을 갖게 되고, 열이 떨어지면 즐거운 느낌을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괴로운 느낌이 일어난다. 그러니 보통사람이든 붓다든 자기 신체 상태에 대한 지각으로서 느낌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비록 느낌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느낌이 일어날 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는 완전히 다르다.

 

일반 사람들은 괴로운 느낌에 접촉하면 슬퍼하고, 비탄하고, 비통해 하고, 가슴을 치며 울고, 착란에 빠진다. 그들은 두 가지 종류의 고통, 즉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느낀다.(…) 지혜로운 사람은 괴로운 느낌에 접촉하면 슬퍼하지 않고, 비탄하지 않고, 비통해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지 않고, 착란에 빠지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의 고통, 즉 신체적인 고통은 느끼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쌍윳따니까야』 36:6, 『화살의 경』)

 

보통 사람들은 괴로운 느낌에 접촉하면 신체적 고통에 더해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괴로운 느낌에 접촉하면 그것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멈춘다. 붓다는 괴로운 느낌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을 첫 번째 화살에, 신체적 고통에 덧붙여지는 정신적 고통을 두 번째 화살에 비유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첫 번째 화살만을 맞는 것에 비해 보통 사람들은 첫 번째 화살에 이어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는 것이다.

 

 

정신적 고통의 뿌리, ··치 삼독

 

살아있는 한 첫 번째 화살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와 달리 두 번째 화살은 겪을 수도 있고 겪지 않을 수도 있는 정신적 고통이다. 두 번째 화살은 신체적인 느낌에 덧붙여지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과 생각들이다. 불교는 이와 같이 정신적 고통을 낳는 마음의 작용을 특별히 번뇌라고 부른다. 번뇌는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고, 생산적 역량을 감소시킨다. 두 번째 화살은 바로 그러한 번뇌들이다. 번뇌에 붙들려 버릴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두 번째 화살로 인한 괴로움을 겪게 된다.

 

일반 사람은 (…) 괴로운 느낌에 접촉되면 분노를 품게 된다. 그가 분노를 품게 될 때 분노의 잠재적 경향이 그에게 잠재된다. (…) 그가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찾을 때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경향이 그에게 잠재된다. 그는 그러한 느낌들의 발생과 소멸, 유혹과 위험, 그리고 여읨에 관하여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할 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지의 잠재적 경향이 그에게 잠재된다.(『쌍윳따니까야』 36:6, 『화살의 경』)

 

두 번째 화살은 탐욕, 분노 그리고 무지(어리석음)로 인한 괴로움이다. 이것을 탐(貪)·진(瞋)·치(癡) 삼독이라고 부른다.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일어날 때 보통 사람들은 그 느낌들에 대해 탐욕과 분노와 무지의 잠재적 경향, 즉 번뇌의 습기를 쌓아 나간다. 잠재적 경향은 습관과 패턴으로 반복된다.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분노를 품고, 분노를 키운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갈애를 느끼고, 갈망을 키운다. 느낌들은 무상하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느낌도 생겨나고 조건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진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게 일어난 무상한 느낌들을, 무상한 느낌들에 대한 습의 반복을 아무런 반성적 성찰 없이 곧바로 ‘나’라고, ‘나의 것’이라고 집착한다. 그럴 때 여지없이 우리는 스스로 불러들인 두 번째 화살에 맞는다.

 

부모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처럼 비통해 하고, 세상에 ‘나’보다 더 가여운 사람이 없다는 듯이 자기연민에 빠지고,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나’의 처지를 한탄하고, ‘나‘의 수고로움을 몰라주는 주변사람들을 원망했다. 갈팡질팡하는 ‘나’의 무능력을 탓하고 자책했다. 그러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두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두 번째 화살은 이렇게 우리를 정신적 고통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해있는 조건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살피지 못하게 한다. 한마디로 우리를 착란에 빠뜨려서 내 생각과 감정 외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는 사람이 되게 한다. 상상이나 망상에 가까운 부적합한 관념과 그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의 노예가 된다. 두 번째 화살의 비유는 그런 속박된 마음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두 번째 화살은 공부와 수행의 영역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으려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지혜와, 이미 번뇌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멈출 수 있는 수행이 필요하다. 수행과 지혜를 길러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죽은 나무토막 같은 존재가 되거나 감정이 메마른 냉정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물들을 명징하게 인식하고 온갖 생명체와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더 예민한 감각을 갖고 풍부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의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화살을 맞았지만 두 번째 화살로부터 자유로웠던 붓다를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다.

 

80세의 노쇠한 붓다는 금세공사 쭌다가 공양한 음식을 먹고 혈변이 섞인 설사증세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붓다 역시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라는 첫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강한 선정과 삼매의 힘으로 평정을 유지했다. 붓다는 쭌다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쭌다가 자신에게 공양한 일로 괴로워하거나 남들로부터 비난받을까 염려했다. 그는 쭌다를 위해 “열반 직전의 붓다에 대한 공양만큼 공덕이 큰 것은 없다”는 자비의 말을 남겼다.

 

사람이 모인 곳이다 보니 붓다를 따르는 수행자 공동체에서도 갈등과 불화가 그치지 않았다. 아무리 붓다라 해도 공동체적 삶 속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언젠가 우안거 중에 꼬삼비의 수행자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이 화장실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대립되었다. 이로부터 그들은 두 패로 나누어져 사사건건 서로를 비난하고 저주했다. 분노에 사로잡힌 이들의 귀에는 화합하라는 붓다의 조언이 들리지도 않았다. 붓다는 자신의 견해에 완고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았다. 그는 꼬삼비를 떠나 홀로 숲으로 갔다. 붓다가 아니라 서로 내가 옳다며 다투는 수행자들에게 더 쉽게 감정이입이 되는 나는 이런 상황에서 숲에서 붓다가 누렸을 평정과 고요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첫 번째 화살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는 괴로움을 삶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파악한다. 첫 번째 화살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필연성의 영역에 속한다면 두 번째 화살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 피할 수도 있는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 두 번째 화살은 공부와 수행의 영역이다. 공부와 수행을 통해 우리는 첫 번째 화살의 필연성을 직시함으로써 두 번째 화살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붓다는 어떤 고통도 없는 삶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는 우리의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킴으로써 고통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두 번째 화살을 맞고 괴로워하고 있다 해도 다행인 것은 이 괴로움이 우리를 영원히 얽매는 족쇄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족쇄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풀 수 있는 족쇄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그 족쇄를 완전히 풀지 못한다 해도 그 괴로움이 탐·진·치로부터 비롯되는 정신적 고통인 번뇌라는 것을 알고 지혜를 키우는 공부와 수행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두 번째 화살을 뽑을 희망도 있지 않겠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괴로운 느낌을 느끼더라도 속박을 여읜 상태에서 그것을 느낀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더라도 속박을 여읜 상태에서 그것을 느낀다.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더라도 속박을 여읜 상태로 그것을 느낀다. 이들을 태어남, 늙음, 죽음에서 여읜 자, 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불쾌와 절망에서 여읜 자, 괴로움에서 여읜 자라고 한다.(『쌍윳따니까야』 36:6, 『화살의 경』)

 

댓글 11
  • 2021-09-08 11:02

    지난 해 올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이런 생각도 두 번째 화살이겠죠? 두 번째 화살 피하기 어렵네요.....

  • 2021-09-08 11:58

    저를 지나쳐 날아가는 화살도 가져다가 제 몸에 꽂아넣는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ㅠ

  • 2021-09-08 12:05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귀가 안들리시니 급하게 연락할 일이 아니면 전화를 잘 하지 않게 되니 한참 연락없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참다참다 전화를 하신 듯.ㅎㅎ 요 며칠 새 기침이 심하고 몸도 안 좋은데 꿈자리도 안좋다고, 자식 걱정에 전화하신 거였어요. 그런데 일단 아버지가 내 말도 잘 못들으시니까 당신이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하고...그러려면 왜 전화를 하셨나 싶을 정도로 우린 불통이었어요. 고함을 지르듯 해야 겨우 한 두 마디 알아들으시니 그냥 듣고 있지만 '기침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만 열댓번 하는 아버지와의 통화는 짜증이 났지요. 그러다 요요샘의 이 글이 생각났어요. '아,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저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만도 어디냐, 꿈자리가 나쁘다고 자식걱정을 하는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게 어디냐'하는 생각에 미치자, 오히려 행복한 느낌이 밀려오네요. 이 건에 대해서는 두번 째 화살을 피한 것 같습니다.ㅎㅎ

    • 2021-09-08 12:0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09-08 12:08

    傷!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onebyone.gif?action_id=68dae09acacd7acb36a918266dd2100!!

    버뜨 나는.... ㅠㅠ

  • 2021-09-08 12:55

    첫번째 화살을 맞으면 마치 자동문이 열리는 것처럼 우리는 두번째 화살을 가슴에 박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이건 두번째 화살이니까 괴로워할 필요없어 하고 생각할 때,우리는 이미 그 화살을 끌어안아버리고 있죠

    저는 그 첫번째 화살을 온전히 맞아버리는 능력 또는 힘에 두번째 화살을 피할수 있는 열쇠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능력은 요요샘 글에도 있듯이 수행,성찰, 공부..이런 것들이겠죠~

    요요샘~오랜만에 ..너무 잘 읽었습니다!

     

  • 2021-09-08 13:09

    첫번째 화살의 필연성을 알게되면 피할수 있는 두번째 화살

    관점과 태도의 변화로 자유로울 수 있다

    그건 다른 누가 하는게 아니라 바로 내가 하는 것이다

    두번째 화살이라도 피해가보자 고 생각은 하나...



     

  • 2021-09-08 19:44

    공부와 수행을 통해 우리는 첫 번째 화살의 필연성을 직시함으로써 두 번째 화살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_라는 요요샘의 글이 허둥되는 저에게 와서 두들겨 주셨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요^^

  • 2021-09-09 20:36

    샘^^ 잘 읽었습니다^^ 

  • 2021-09-09 22:09

    저도 잘 읽었습니다

    총알에 화살에 정신없는하루입니다

  • 2021-09-30 13:18

    어찌 이리 글을 맛깔나게 잘쓰시는지..감동 ㅠㅠ

봄날의 주역이야기
** 주역공부 4년차. 여전히 해석도 어렵고 뜻을 알아내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나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추동하는 주역은 매력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그 감동을 함께 나누려 용기내어 글을 쓴다. 봄날이 픽(pick)한 주역의 말들!   頤, 貞吉 觀頤 自求口實(이 정길 관이 자구구실) 이(頤)는 곧게 하면 길하니, 길러주며 스스로 음식[口實]을 구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初九 舍爾靈龜 觀我朶頤 凶(초구 사이영귀 관아타이 흉) 초구는 너의 신령스러운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늘어뜨리니, 흉하다 六二 顚頤 拂經 于丘頤 征 凶(육이 전이 불경 우구이 정 흉) 육이는 거꾸로 길러주기를 구하니 바른 도리에 위배되고, 언덕에서 길러주기를 구하여 가면 흉하리라 六三 拂頤貞 凶 十年勿用 无攸利(육삼 불이정 흉 십년물용 무유리) 육삼은 기르는 곧은 도에 위배되기 때문에 흉하여 십년이 되어도 쓰지 못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六四 顚頤 吉 虎視耽耽 其欲逐逐 无咎(육사 전이 길 호시탐탐 기욕축축 무구) 육사는 거꾸로 길러주기를 구하나 길하니, 호시탐탐하여 하고자함을 좇고 좇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六五 拂經 居貞 吉 不可涉大川(육오  불경 거정 길 불가섭대천) 육오는 바른 도리에 위배되나 곧음에 거하면 길하지만, 큰 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 上九 由頤 厲 吉 利涉大川(상구 유이 려 길 이섭대천) 상구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길러지므로 위태롭게 여기면 길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호랑이의 눈으로 엑스텐을 쏘다 무관중이라는 전대미문의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운동경기 외의 모든 접촉은 금지되었고, 관중의 뜨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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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1.09.27 | 조회 689
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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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6 | 조회 580
논어 카메오 열전
관중은 인한 사람입니까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인하지 못한 것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논어』「헌문」17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정치가로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자이다. 우리에게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시절,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던 관중은 후에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는 말로 그와의 두터운 우정을 보여주었다. 포숙아는 제나라의 공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규를 지지하던 관중과 달리 소백을 모시고 있었다. 후에 소백이 제 환공의 자리에 오르자 포숙아는 관중을 추천하여 그를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에 관중은 제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만들고, 제나라를 제후국 중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였다. 제 환공은 관중을 높여 중부(仲父)라 불렀다고 한다.     공자는 칭찬에 인색하다. 『논어』에 누가 인(仁)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인한지 모르겠다.(不知其仁也)”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로가 관중은 인하지 못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물을 때 공자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如其仁)”라고 대답한 것은 대단한 칭찬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관중과 제 환공이 쇠약해진 주(周)나라를 대신해, 제후들을 규합하여 주 왕실을 받들게 하고, 북쪽의 융족이 침략했을 때 그를 막아냄으로써 중원의 문화를 지킨 것을 높게 평가했다. 춘추전국시대를...
관중은 인한 사람입니까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인하지 못한 것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논어』「헌문」17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정치가로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자이다. 우리에게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시절,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던 관중은 후에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는 말로 그와의 두터운 우정을 보여주었다. 포숙아는 제나라의 공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규를 지지하던 관중과 달리 소백을 모시고 있었다. 후에 소백이 제 환공의 자리에 오르자 포숙아는 관중을 추천하여 그를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에 관중은 제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만들고, 제나라를 제후국 중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였다. 제 환공은 관중을 높여 중부(仲父)라 불렀다고 한다.     공자는 칭찬에 인색하다. 『논어』에 누가 인(仁)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인한지 모르겠다.(不知其仁也)”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로가 관중은 인하지 못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물을 때 공자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如其仁)”라고 대답한 것은 대단한 칭찬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관중과 제 환공이 쇠약해진 주(周)나라를 대신해, 제후들을 규합하여 주 왕실을 받들게 하고, 북쪽의 융족이 침략했을 때 그를 막아냄으로써 중원의 문화를 지킨 것을 높게 평가했다. 춘추전국시대를...
진달래
2021.09.22 | 조회 372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전태일 힙합 음악제>. 전태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힙합 음악제로,  재작년의 1회에서는 1차 온라인 예선 때 탈락했었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의 10주기를 추모하며 그분의 말씀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를 주제로 한 올해에는 온라인, 실연심사, 본선을 뚫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집에 올 때마다 보이는 트로피 덕에 아주 헤벌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래퍼들의 현실     우승도 좋지만, 나에겐 여러 동료 래퍼들을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총 12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본선 진출자들이니만큼 실력은 모두 출중했고 19세부터 3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으며 음악 스타일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 음악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이건 아마추어 래퍼들이 처한 현실의 조건이다. 주 6일 알바를 뛰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작업하거나, 쌀국수집 매니저로 있으면서 매일 9시에 퇴근하고 새벽까지 작업하는 일상. 아니면 빚을 져가며 앨범을 만들고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안정한 직업이고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돈 많은 래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언젠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트렌디 래퍼’, ‘언더 래퍼’, 그리고 ‘아마추어 래퍼’   음악제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을 쓰게 했는데 그 소개 문구에 ‘반년 뒤에 성공’이라고 적어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 포부만큼이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탈색한 머리, 팔 쪽에 살짝...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전태일 힙합 음악제>. 전태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힙합 음악제로,  재작년의 1회에서는 1차 온라인 예선 때 탈락했었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의 10주기를 추모하며 그분의 말씀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를 주제로 한 올해에는 온라인, 실연심사, 본선을 뚫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집에 올 때마다 보이는 트로피 덕에 아주 헤벌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래퍼들의 현실     우승도 좋지만, 나에겐 여러 동료 래퍼들을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총 12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본선 진출자들이니만큼 실력은 모두 출중했고 19세부터 3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으며 음악 스타일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 음악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이건 아마추어 래퍼들이 처한 현실의 조건이다. 주 6일 알바를 뛰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작업하거나, 쌀국수집 매니저로 있으면서 매일 9시에 퇴근하고 새벽까지 작업하는 일상. 아니면 빚을 져가며 앨범을 만들고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안정한 직업이고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돈 많은 래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언젠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트렌디 래퍼’, ‘언더 래퍼’, 그리고 ‘아마추어 래퍼’   음악제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을 쓰게 했는데 그 소개 문구에 ‘반년 뒤에 성공’이라고 적어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 포부만큼이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탈색한 머리, 팔 쪽에 살짝...
관리자
2021.09.22 | 조회 371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
문탁
2021.09.20 |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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