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1.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숲은 생각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내 안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말할 때 꽤 희망적이게 된다. 페미니스트와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정상성을 모방하며 종종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세계가 협소하게 느껴졌다. ‘숲은 생각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고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유일한 자기들selves이 아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는 자기self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기’는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기호작용을 하고 표상하는 모든 존재를 지칭한다. 비인간 존재도 ‘자기’로 명명되며, 숲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숲 속의 수많은 존재들은 살아있는 ‘자기’다. 그러면 이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도덕성이 존재하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이 지구 위를 걷기 전에는 도덕성도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우리와 이 행성을 공유하는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 자기들의 것을 무시한 채 이 세계의 오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는건 너무 부족하다....
1.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숲은 생각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내 안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말할 때 꽤 희망적이게 된다. 페미니스트와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정상성을 모방하며 종종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세계가 협소하게 느껴졌다. ‘숲은 생각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고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유일한 자기들selves이 아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는 자기self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기’는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기호작용을 하고 표상하는 모든 존재를 지칭한다. 비인간 존재도 ‘자기’로 명명되며, 숲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숲 속의 수많은 존재들은 살아있는 ‘자기’다. 그러면 이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도덕성이 존재하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이 지구 위를 걷기 전에는 도덕성도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우리와 이 행성을 공유하는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 자기들의 것을 무시한 채 이 세계의 오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는건 너무 부족하다....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33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26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나는 조금 독특한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장애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천재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그런 아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예민하고, 울음을 달고 사는, 그리고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돌 지나고부터는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저기 검사도 많이 받았다. 검사 결과는 지능 상위 1%, 사회성 하위 1%.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몇 년 동안 좋아하는 터라, 지금은 유니코드 문자표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생각난 듯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에스페란토라는 문자를 아세요? 인공어 중에 하난데요. 제이 위에 이런 삿갓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매일 이런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모든 게 괴상하게 그려놓은 꼬부랑 글씨 같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 사실 나도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보니, 학교든 학원이든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보편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왜 온종일 이상한 세계 여러 나라 문자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똥을 누는 것 같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아이 ‘되기’는 가능하기나 할까.         흰 눈 잉꼬 같은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결국엔 아이...
나는 조금 독특한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장애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천재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그런 아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예민하고, 울음을 달고 사는, 그리고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돌 지나고부터는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저기 검사도 많이 받았다. 검사 결과는 지능 상위 1%, 사회성 하위 1%.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몇 년 동안 좋아하는 터라, 지금은 유니코드 문자표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생각난 듯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에스페란토라는 문자를 아세요? 인공어 중에 하난데요. 제이 위에 이런 삿갓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매일 이런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모든 게 괴상하게 그려놓은 꼬부랑 글씨 같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 사실 나도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보니, 학교든 학원이든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보편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왜 온종일 이상한 세계 여러 나라 문자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똥을 누는 것 같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아이 ‘되기’는 가능하기나 할까.         흰 눈 잉꼬 같은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결국엔 아이...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26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띠우
2021.12.19 | 조회 393
봄날의 주역이야기
대장동 부동산개발비리사건으로 주역이 “떴다”. 의혹의 핵심에 있는 화천대유(火天大有)라는 자산관리회사의 이름 때문이다. 주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제는 화천대유가 주역의 괘이름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천대유는 수도권에 유일하게 남았다는 대장동 금싸라기땅을 개발하는 거대 기업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그리고 수백억원의 막대한 배당이익을 챙겼다.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 회사 이름값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것은, 화천대유괘가 주역 64괘 중에서도 아주 좋은 괘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허물이 없다, 길하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역 64괘 중 14번째인 화천대유(火天大有)는 주역 속에서도 대표적인 ‘부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火)을 상징하는 이괘(離卦☲)가 위에 있고, 아래에는 하늘(天)을 의미하는 건괘(乾卦☰)가 놓여있다. 하늘 위에 불이 놓여있는 형상(䷍), 하늘 위에 있는 불은 태양을 가리킨다. 태양은 만물을 자라게 하는 에너지원으로서, 자연의 온갖 생산물들이 결실을 맺게 한다. 이른 바 ‘등따시고 배부른 때’가 바로 화천대유의 시기이다. 그래서 대유(大有)라는 괘이름이 붙었다. ‘크게 있음’ 혹은 ‘크게 소유함’ 정도로 해석되는 화천대유괘는, 그래서 괘사도 토를 달지 않고 ‘크고 형통하다(元亨)’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효사들도 ‘허물이 없다’거나 ‘길하다’거나 ‘이롭지 않음이 없다’로 끝난다. 큰 경계의 목소리도 없고 헤쳐나가야 할 어려운 미션도 없다.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이런 것 아닐까.   초구는 해를 끼치지 않으니 신중하면 허물이 없다. 구이는 큰 수레로 실으니, 싣고 나아가는 바가 있어서 허물이 없다. 구삼은 공(公)이 천자에 제사지내듯 하니, 소인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구사는 지나치게 성대함을 쫒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육오는 진실한...
대장동 부동산개발비리사건으로 주역이 “떴다”. 의혹의 핵심에 있는 화천대유(火天大有)라는 자산관리회사의 이름 때문이다. 주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제는 화천대유가 주역의 괘이름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천대유는 수도권에 유일하게 남았다는 대장동 금싸라기땅을 개발하는 거대 기업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그리고 수백억원의 막대한 배당이익을 챙겼다.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 회사 이름값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것은, 화천대유괘가 주역 64괘 중에서도 아주 좋은 괘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허물이 없다, 길하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주역 64괘 중 14번째인 화천대유(火天大有)는 주역 속에서도 대표적인 ‘부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火)을 상징하는 이괘(離卦☲)가 위에 있고, 아래에는 하늘(天)을 의미하는 건괘(乾卦☰)가 놓여있다. 하늘 위에 불이 놓여있는 형상(䷍), 하늘 위에 있는 불은 태양을 가리킨다. 태양은 만물을 자라게 하는 에너지원으로서, 자연의 온갖 생산물들이 결실을 맺게 한다. 이른 바 ‘등따시고 배부른 때’가 바로 화천대유의 시기이다. 그래서 대유(大有)라는 괘이름이 붙었다. ‘크게 있음’ 혹은 ‘크게 소유함’ 정도로 해석되는 화천대유괘는, 그래서 괘사도 토를 달지 않고 ‘크고 형통하다(元亨)’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효사들도 ‘허물이 없다’거나 ‘길하다’거나 ‘이롭지 않음이 없다’로 끝난다. 큰 경계의 목소리도 없고 헤쳐나가야 할 어려운 미션도 없다.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이런 것 아닐까.   초구는 해를 끼치지 않으니 신중하면 허물이 없다. 구이는 큰 수레로 실으니, 싣고 나아가는 바가 있어서 허물이 없다. 구삼은 공(公)이 천자에 제사지내듯 하니, 소인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구사는 지나치게 성대함을 쫒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 육오는 진실한...
봄날
2021.12.13 | 조회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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