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 밀양통신 - 2회] 가뭄과 한파

밀양통신
2018-02-25 07:39
741

가뭄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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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 서울과 충청, 전라도는 폭설이 왔다고 하는데, 남부지방은 오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 전 온 비를 두고 한 할머니가 내가 울어도 이것보다는 많이 오겠다고 말했더니, 다른 할머니가 운문댐에 물이 한 바가지 남았다더라.” 라고 대꾸했다. 청도 운문댐과 밀양댐은 댐이 생긴 이후 가장 낮은 저수율을 기록 중이다. 밀양댐은 올해 127%의 저수율을 기록하고 있고 운문댐은 8.4%만 남아있다. 정말 한 바가지만 더 쓰면 물이 바닥날 지경이다.

  가뭄에 가장 먼저 삶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농부들이다. 동화전에서 농사짓는 빛나누나는 대파를 심었는데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물을 퍼다 조리개로 줬다고 한다. 안 그랬으면 대파가 말라죽을 뻔했다. 작년 여름, 어르신들께 땅이 딱딱해져서 양파가 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집 수도꼭지에는 물이 잘 나왔기 때문에 가물어서 큰일이에요라고 말은 했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실 물도, 씻을 물도, 밥을 지을 물도 나오지 않을 상황이 되었다. 물이 마르면 곡식이 마른다. 가뭄이 지속된다면 밀양 시내에 있는 나, 더 큰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번질 것이다.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처럼 이제는 기후변화도 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의 문제가 아니겠거니 생각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유능한 단군왕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살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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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뭄만 심한 것이 아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오랫동안 춥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의 찬 기운을 묶어두는 제트기류가 약해져 생긴 한파라고 한다. 서울 사람들은 밀양역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하다를 연발했지만 밀양 사는 사람 기준에는 밀양도 제법 추웠다. 위양마을 서종범 아저씨는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배터리를 갈아야 했고, 너른마당 화장실은 물이 얼어 볼 일을 보기 전 주방에서 물을 떠다 양변기에 채워 넣어야 했다. 약국에는 동상 연고를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살아생전 처음으로 핸드폰 요금보다 난방비를 많이 내보았다. 월급의 10분의1이 난방비로 빠지니 뼈가 빠진다. 할머니들은 이 날씨에 바깥에서 데모했으면 끔찍했을끼다라고 했다.

  2월에는 한반도에 전봇대가 세워진 이래 가장 전기를 많이 쓴 기록이 두 번이나 (25, 6) 갱신되었다. 여름과는 달리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 사용량이 급등했다(여름은 반대이다). 한파가 닥치자 난방기의 전기 사용이 커진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틈을 타 정부를 다시 공격했다(주간 조선 22일자 탈원전의 그늘 쪽방촌이 한파에 떨고 있다’). 쪽방촌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한파에 문재인 정부는 핵발전소는 10기나 멈춰 세워놓고 기업들한테는 공장 돌리지 말라고 지시나 한다고 말이다. 정부가 탈핵을 추진하면 전기요금이 오르고, 결국 취약 계층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는 에너지 전환을 막고 싶은지 정전 공포, 전기요금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수요 관리를 취약 계층의 삶을 흔드는 원인으로 삼는 것은 본질을 회피하는 연막이다.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것은 정치가 할 일이지 전기가 하는 일은 아니다. 가뭄 피해를 가장 먼저 입는 농부와 추운 겨울을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씁쓸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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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핵 운동 진영 내에서도 평소에 전기가 많이 남아돌기 때문에 수요 관리와 기저 부하의 전환으로 탈핵을 실현할 수 있다는 논리는 오랜 기간 쓰여 왔다.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탈핵을 설득할 때, 이러한 방법으로 조금 더 정의로운 에너지원의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수요 관리와 에너지 전환이 구조를 지탱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언정 삶을 전환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자꾸만 맴돈다. 지난 10년간 연간 전력 사용 총량은 40% 넘게 증가했다. 전력 사용량이 지금의 추세로 계속해서 증가하지 않더라도 현재 사용량이 유지된다면 모든 핵발전과 석탄발전이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바뀌어도 말짱 도루묵이다. 발전소는 밀집되고 송전탑은 빽빽이 국토를 채울 것이다. 영덕, 포항, 경주, 울산, 부산 바다까지 해상 풍력 발전소를 깔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핵발전소에 연결되어 있던 기존 송전선로를 이용하면 경제성이 좋다고 한다. 전기는 삶을 풍족하게 하는 존재에서 삶을 지배하는 존재로 변이되었다. 불빛, 핸드폰, 기차, 공장, 자동차까지 수많은 것들이 전기로 돌아간다.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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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전환이 절실하다. 매년 가을이 되면 성미산 학교 전교생이 밀양으로 농활을 온다. 벌써 5년 넘게 찾아와주고 있다. 덕분에 감이 동네를 물들이는 계절이 오면 마을에 활기가 돈다. 2016년 농활이었다. 각 동네 사랑방(컨테이너)을 모아 농활 숙소를 만들었던 터라 사용에 불편이 없는지 살피러 저녁 늦게 찾아갔다. 모든 불이 꺼져 있어 놀랐다. 친구들은 개인 손전등을 들고 다니며 생활했다. 밀양에서 생활하는 2주 동안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하겠다는 공동의 약속을 하고 내려온 것이었다. 각자 쓸 물의 총량이 있었고, 낮에 손전등을 충전해 밤에 사용했고, 감기 기운이 있는 친구들만 난방 기구를 사용했다. 나는 부끄러운 말들을 뱉었다. 추우니까 웬만하면 전기장판을 켜고 자라고 이야기했고, 어두워 다칠 수 있으니 외등은 켜놓으라고 했다. 소중한 약속에 쓸데없는 훈수를 두었다. 밀양송전탑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면서도 전기에 중독되어 그 광경이 불편해보였던 것이다. ‘공동의 약속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나는 매우 어리석었다. 친구들은 노래를 좋아했다. 목소리는 어둠을 타고 마을로 흘러 들어갔다

 

  전체 전력 사용량에서 산업이 사용하는 전기의 양은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전기를 모두 합쳐도 산업용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 집에서 아무리 전기를 펑펑 써도 총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 나 하나 아낀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가깝고 작은 곳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 ‘’ ‘마을’ ‘일터’ ‘도시가 변해야 산업이 변할 수 있다.에너지에 대한 작은 약속들을 옆 사람과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밀양 할매 할배들은 초고압 송전탑과 핵발전소를 연결하는 싸움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가뭄과 한파와의 싸움, ‘전기 중독과의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모든 사과를 다 받아내고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밀양에서도 삶을 전환할 수 있는 약속들을 함께 만들고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밀양을 찾는 사람들은 줄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 마음 한켠에는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라는 약속이 남아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믿는다. NM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청구인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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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는 공익감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검사가, 국가가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대책위가 직접 의혹을 정리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모으고 있다. 213, 창원도청 프레스룸에서 감사원 감사 청구 청구인 모집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와대에서 보낸 명절 선물을 개봉하지 못하겠다는 기사가 다음 탑에 올랐더니 온갖 비난들이 댓글로 달린다. 국가가 잘못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할 때, 할매 할배들은 선물을 열어?

댓글 7
  • 2018-02-25 19:43

    전기중독, 에너지에 대한 작은 약속들, 삶의 전환...

    최근에 일본 311 당시 후쿠시마에 파견되어 있던 한 기자가 쓴  '전기없이 우아하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기자는 5암페어로 전력회사와 계약을 하고 (순간 최고 전력 500와트로 제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과정을 책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기포트, 헤어드라이기, 전자렌지, 에어컨은 못씁니다.

    이것들 모두 순간 전력이 10암페어까지 치솟는 제품들입니다.

    (실은 비싸고 좋다는 전기포트를 구비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늘 커피 한 잔과 루이보스 차 한 잔을 가스로 (작은 냄비를 이용해서) 물을 끓여서 마셨습니다.

    생각보다 금방 물이 끓어서 좀 놀랐어요.

    중독은 내가 주고받는 수많은 임팩트들을 당연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진씨가 말하는 삶의 전환을 위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은

    이런 중독에서 벗어날 단초가 될 것 같네요.

  • 2018-02-25 21:25

    작은 힘이지만 보태겠습니다. 주위에도 알리겠습니다.

  • 2018-02-26 11:15

    "전기는 삶을 풍족하게 하는 존재에서 삶을 지배하는 존재로 변이되었다."

    생각이 많아지네요....

  • 2018-02-27 06:34

    낄낄, 웃으면서 읽은 문장 : 

    "우리는 유능한 단군왕검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살 순 없다." - 웬 단군왕검? ㅋㅋ..어진이 요즘 역사소설 읽고 있나?

    와우, 감탄했던 문장 :

    "사람들의 삶을 지키는 것은 정치가 할 일이지 전기가 하는 일은 아니다" - 멋지군, 어진이는.


    어진이를 글로 만나는 기쁨이 큽니다. 어진이는 괴롭겠지만^^


    • 2018-03-02 15:13

      ㅋㅋ.  기우제를 지내는 왕을 생각했더니 딱 단군왕검이 생각났어요.

  • 2018-02-27 10:22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 놓으려 며칠간 수행센터에 다녀왔는데 

    새로 지은 숙소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마음 속에 저절로 '왜?'라며 물음표가 떠오르더군요. 

    비데는 전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겠지요.

    언젠가 아는 분이 심근경색으로 마비가 왔는데 그 때 그러시더군요. 

    비데라는 물건이 있어서 화장실 이용이 정말 수월해졌다고.

    요즘은 어딜 가나 비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비데는 이젠 필수품이 되는 추세인가, 싶기도 합니다.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들이 하루하루 늘어나기만 한다면..

    삶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를 만들고 또 우리가 만들어 가는, 시대와 문명에 대한 성찰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어려운 질문에 우리는 마주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2018-02-28 23:41

    며칠전 영양에 다녀왔는데, 거긴 주민들의 삶을 파괴할 거대한 풍력발전소 단지 건설계획 때문에 투쟁하고 있더군요.

    에너지를 무엇으로 만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는 걸 이제 알아가게 해야겠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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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2018.03.20 | 조회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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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이후 밀양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백지화를 염원하며 마지막 108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절을 하는 동안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생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공론화위 위원장이 권고안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19% 차이가 난다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가장 많은 기자들이 온 기자회견이였다. 카메라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으로 모두 함께 가자고 선언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땅을 치고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동래할머니는 “이거는 아니다.. 이거는 아니다.”라고만 말하셨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차에서 “전국 곳곳을 쌔 빠지게 돌아다니고, 대통령한테 편지 쓰고, 사람을 만나도 다 소용이 없다. 이제 우리한테는 희망이 없다.” 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12년 간 모든 것을 다 해보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침묵과 분노가 번갈아 차안을 덮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러게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백미러에 비치는 할매들의...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이후 밀양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백지화를 염원하며 마지막 108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절을 하는 동안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생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공론화위 위원장이 권고안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19% 차이가 난다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가장 많은 기자들이 온 기자회견이였다. 카메라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으로 모두 함께 가자고 선언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땅을 치고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동래할머니는 “이거는 아니다.. 이거는 아니다.”라고만 말하셨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차에서 “전국 곳곳을 쌔 빠지게 돌아다니고, 대통령한테 편지 쓰고, 사람을 만나도 다 소용이 없다. 이제 우리한테는 희망이 없다.” 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12년 간 모든 것을 다 해보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침묵과 분노가 번갈아 차안을 덮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러게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백미러에 비치는 할매들의...
밀양통신
2018.01.27 | 조회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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