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 밀양통신 - 1회]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이후 밀양
밀양통신
2018-01-27 18:32
1582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이후 밀양
글 : 남어진 (밀양대책위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10월 20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백지화를 염원하며 마지막 108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절을 하는 동안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 생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공론화위 위원장이 권고안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19% 차이가 난다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2014년 6월 11일 행정대집행 이후 가장 많은 기자들이 온 기자회견이였다. 카메라 앞에서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탈핵 탈송전탑 세상으로 모두 함께 가자고 선언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땅을 치고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동래할머니는 “이거는 아니다.. 이거는 아니다.”라고만 말하셨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차에서 “전국 곳곳을 쌔 빠지게 돌아다니고, 대통령한테 편지 쓰고, 사람을 만나도 다 소용이 없다. 이제 우리한테는 희망이 없다.” 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12년 간 모든 것을 다 해보았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는 말로 들렸다. 침묵과 분노가 번갈아 차안을 덮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러게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백미러에 비치는 할매들의 얼굴에 피로가 보였다.
여수마을에서 고추농사 짓는 김영자 총무님 하우스에 가면 피복도 없는 전깃줄이 하늘을 덮고 있다. 너무 가까워 줄이 조금만 늘어나도 머리에 닿을 것만 같다. 총무님은 하우스에 갈 때마다 아삭이 고추를 검은 비닐 봉지에 한 가득 담아주신다. 차가 떠날 때까지 웃는 총무님의 모습과 그 뒤에 서 있는 송전탑은 매번 나에게 정체 모를 괴리감을 주었다.
공론화 기간 동안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언론 기고를 한 일이 있다. “이제는 농사꾼으로만 살아가고 싶다”라고 총무님은 말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송전선로 이용률이라도 지금의 25% 수준에서 멈춰 세우고 싶었다. 이미 38만 경찰들에게 짓밟혔고 한전에서 살포한 돈으로 마을이 풍비박산 났다. 전기 고문만은 당하고 싶지 않았다. 데모해서 남는 것이 무어냐고 비아냥거리는 찬성 주민들에게 ‘봐라.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싸워서 너희들이 살게 되었다.’ 라고 큰소리 치고 싶었다. 무엇보다 총무님이 하우스에서 계속 농사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언론이 숙의민주주의의 축제였다고 떠들었다. 한수원은 ‘건설 재개’라는 실익을 얻었고, 문재인 정부는 최초의 ‘탈핵 정부’라는 상징을 얻었으며, 지역 지자체는 수천억의 지원금을, 서생면 주민들은 그토록 염원하던 이주를 얻었다. 총무님 말씀을 빌리면 “농사꾼의 상식으로도 백지화는 마땅했는데” 우리는 왜 졌을까. 시민참여단 500명의 후기 중 가장 충격이였던 말은 “재개 쪽은 생업이 걸린 문제라 절박한데, 중단 쪽은 상대적으로 준비를 덜 한 것 같다”였다.
결국 밀양의 절박함은 공론장 속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합숙 토론 2박 3일 기간 동안 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건강 문제는 지역별 방사능 측정치와 피폭량의 기준 따위로 얼버무려졌고, 송전선로 문제에 대해서는 500명 중 단 한 명도 질문하지 않았다.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는 10분도 숙의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중립을 유지했고, 밀도 없는 민주주의는 기득권자들에게 좋은 놀이터였다. 송전탑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죽으라고 하면서 자신들을 안전하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신고리 5,6호기는 건설하면서 핵발전소는 줄여야하고, 원전 안전성은 강화해야 한다는 권고’는 잔인했다. 밀양은 ‘안전’을 잃었고 대한민국 사회는 ‘안전’이라는 허상을 얻었다.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상징으로 소멸당하지 않고 일상으로 존재하고 싶다
신고리 5,6호기에, 마을주민 사이에 시작된 소송까지 2017년도 많이 힘들었다. 제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 조금은 알겠다. 한국전력은 어떠한 사과와 책임도 지지 않고 그저 반대주민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체제의 전복으로 본다. 밀양에게 사과하는 순간, 청도에 사과해야 하고, 군산, 당진, 광주, 횡성에 사과해야 하고 중앙 집중식 대용량 초고압 송전방식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전은 계속해서 밀양을 흔들고 우리는 고통을 얻는다.
2017년 12월 29일, 밀양송전탑 반대주민+연대자 송년회를 열었다. 서로 위로하고 걱정 근심 털어내는 자리가 필요했다. 작은 강당에 4개면 주민들 50명과 연대자들이 모였다. 대책위에서 준비한 생활용품 경품추첨으로 배꼽을 잡았고, “잘 사는 날이 올거야~”를 때창하는 순간에는 바깥 걱정이 사라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강산이 변할 동안 송전탑은 완공 되었고 함께 하는 주민들도 많이 줄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웃는 표정이지 않을까. 어린이책 시민연대에서 온 이정화님이 말했다.
".....이 강당에 이렇게 모여 있으니 행복합니다. 행정대집행을 당하고 마무리집회 때 그 기분, 졌는데도 졌다는 생각이 안 들고 어머님, 아버님들하고 모여 있는 그 곳이 천국 같이 느껴진 그때의 기분과 같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재개로 다들 힘들었을 때도 촛불을 켜고 모여 있으니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건강하세요....“
신고리 5,6호기 재개 결정 이후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침울에 잠겼지만 다시 깨어나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평밭마을 한옥순 할머니께서 계삼쌤에게 전화가 왔다. 한국전력이 밀양에 보상금으로 뿌린 300억 중 일부가 횡령되어 검찰이 조사를 시작했고, 대책위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집행된 정황들을 모아 감사 청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어제 저녁 공중파 뉴스에 나간 모양이다. 할머니는 “찬성파 놈들이 이제 밀양도 시작되었다고 난리가 났길래, 이제 다 잡혀갈 것이라고 큰소리 쫌 쳤다. 잘했제 이국장.” 이라며 웃으셨다. 송전탑이 다 서고, 공론화에서 지고, 재판에서 유죄를 받는 상황에 우리의 웃음은 근거가 없어 보이겠지만 결국 밀양은 이 힘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작은 승리를 만들어내야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마을 공동체가 더는 파괴되지 않도록 한전의 협잡을 멈춰 세워야하고,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소수의 반대 주민들이 마을에서 핍박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제 2의 밀양이 반복되지 않는다.
이 싸움이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다하여도, 나는 밀양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꿈이 뭐냐라고 물으면 ‘현실에 치여 사느라 꿈 같은 건 없어요.’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꿈도 욕심도 많다. 마을목수가 되어 어르신들의 집을 고쳐드리는 일, 주민들과 함께 밀양을 에너지 전환 도시로 만드는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김지원
2018.03.20 |
조회
1148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차명식
2018.03.12 |
조회
861
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밀양통신
2018.02.25 |
조회
741
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밀양통신
2018.01.27 |
조회
1582
어진의 글이 드뎌 올라왔네요.
밀양 어르신들의 그동안의 투쟁이 어진이라는
찬란한 꽃도 피워냈군요.
다음 소식이 벌써 궁금^*
어진군, 어진씨, 어진아~~~
글이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혹은 1월, 2월, 3월, 4월....
밀양 어르신들의 농사소식, 이계삼샘의 근황, 그리고 니 연애꺼정...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밀양 소식을 언제나 기다리마.
"멀리 있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로써.
어진씨! 힘내시고~ 함께 정치합시다아~~~ ^ㅇ^
어진씨의 글이 좋은 것은, 관념적으로만 접근했던 나같은 사람의 글로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현장의 모습을 담담하게 적어내려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공연히 콧등이 시큰해졌다가 미소도 번졌다가 하네요...
어진씨의 바램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거예요, 반드시..
"역사책이나 논문에 에너지 정책을 바꾼 상징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꾸려나가는 마을로 존재하고 싶다"
이 문장을 쓸 수 있는 어진씨의 힘^^! 이 느껴져서 조아요^^
다음 글이 벌써 궁금^^~
밀양에서 정치가 사라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밀양에 정치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밀양은 밀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글....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