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호기롭게 무모한 도전을   공동체로 출근하는 일상에서도 일주일에 이틀 오후와 토요일에는 학원 일을 계속했다. 당시 학원 일로 백이십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걸로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니 차츰 몸이 힘들어졌다. 학이당에서 하는 공부의 양은 점점 늘어나는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학원이 인천에 있어서 일주일에 이틀을 120키로씩 운전 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학원 일을 그만둘 핑계는 점점 늘어났지만 공동체 안에서 먹고 살만한 일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도 난 일단 학원 일을 접고 문탁 안에서 백만 원을 벌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은 나의 선언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실험이 공동체에 주는 활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선언을 하게 된 데는 매달 이십만 원 정도의 임대비용으로 국민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거 상황도 한 몫을 했다. 2년마다 오르는 집세를 감당해야하는 형편이었다면 아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문탁네트워크 홈피 대문에 달려있던 ‘자본주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난 삶’ 같은 문구도 내 마음을 들썩였다.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삶이 고달픈 것은 다 그 탓이라고 핑계만 대다가 뭔가 ‘도전’해 볼만한 거리가 생긴 설렘이었달까.   당시 마을 경제 세미나를 했던 친구들이 마을 작업장을 만들었다. 화장품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반찬을 생산하는 찬방도 있었다. 세미나를 통해 익힌 것들을 실제로 실천해보자는 활기찬 분위기에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자누리 화장품에 일꾼을 신청했다. 더치커피 사업단을 꾸렸던...
 1. 호기롭게 무모한 도전을   공동체로 출근하는 일상에서도 일주일에 이틀 오후와 토요일에는 학원 일을 계속했다. 당시 학원 일로 백이십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걸로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니 차츰 몸이 힘들어졌다. 학이당에서 하는 공부의 양은 점점 늘어나는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학원이 인천에 있어서 일주일에 이틀을 120키로씩 운전 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학원 일을 그만둘 핑계는 점점 늘어났지만 공동체 안에서 먹고 살만한 일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도 난 일단 학원 일을 접고 문탁 안에서 백만 원을 벌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은 나의 선언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실험이 공동체에 주는 활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선언을 하게 된 데는 매달 이십만 원 정도의 임대비용으로 국민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거 상황도 한 몫을 했다. 2년마다 오르는 집세를 감당해야하는 형편이었다면 아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문탁네트워크 홈피 대문에 달려있던 ‘자본주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난 삶’ 같은 문구도 내 마음을 들썩였다.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삶이 고달픈 것은 다 그 탓이라고 핑계만 대다가 뭔가 ‘도전’해 볼만한 거리가 생긴 설렘이었달까.   당시 마을 경제 세미나를 했던 친구들이 마을 작업장을 만들었다. 화장품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반찬을 생산하는 찬방도 있었다. 세미나를 통해 익힌 것들을 실제로 실천해보자는 활기찬 분위기에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자누리 화장품에 일꾼을 신청했다. 더치커피 사업단을 꾸렸던...
기린
2020.09.12 | 조회 371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기린
2020.06.24 | 조회 637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기린
2020.05.13 | 조회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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