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아니 에르노와 글쓰기

먼불빛
2023-08-24 21:19
312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아니 에르노의 성장 배경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 삶의 배경에 깔린 <<계급 전향자>> 라는 사회적 위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녀의 부모는 프랑스 노르망디 이브토라는 하층민이 사는 지역에서 식료품점이자 카페를 운영하는 농민, 노동자 출신의 소상공인이다. 극성스러운 엄마 덕에 부르주아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에토스가 다른 두 세계를 폭력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부르주아 자녀들과 사립 학교에서는 카페 겸 식료품점, 부모, 이웃들 속에서 체현된 자신의 그 모든 문화, 언어, 행동이 쓸모 없는 것, 상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부르주아 세계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좋은 성적을 내지만, 이미 몸에 새겨진 자기 세계의 저급한 문화는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하고, 마침내 현대 문학 교수가 되고, 부르주아 중산층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하게 된다. 어느새 자신 또한 그러한 폭력적 구별법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한가운데 어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자기 계급을 무시하고 탈주한 데 대한 죄의식과, 한 편에 사회적 책임 또한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게 된다. 그녀는 22세 때 계급 탈주자로서 자신이 겪은 사회적 폭력성을 글로써 밝히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신의 종(種)을 위해 글로써 복수하겠다’고 다짐한 문장이 그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독창적인 글쓰기는 이러한 <<계급 전향자>> 로서의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며, 그녀의 전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억압된 기억이라는 말할 수 없는 것 속으로 빠져들고, 내 종족이 살아온 방식을 밝히겠다는 욕망이었으니까요. 내가 나의 기원에서 멀어졌던 이유, 그 내적이고 외적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쓰고자 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레모.11쪽)

 

그래서 그녀는 펜을 든다. 칼 같은 펜. 그렇게 쓰인 책이 『빈옷장』, 『얼어붙은 여자』, 『사건』, 『부끄러움』 등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현재와 맞닿는 문제이다. 왜 나는 이렇게 생겨 먹은 거지?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왜 나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들은 자신의 현재적 의미를 찾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개인적‧사회적 위치성에 대해 안다는 것은 자기를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자 언어를 갖게 한다. 나는 이 점을 아니 에르노를 통해 발견했다.

 

 

 

‘칼 같은 글쓰기’

 

 

 

<계급 전향자>가 되기까지의 놀라움, 충격, 증오, 원망과 분노, 저항까지 다양한 개인사적 변화를 잘 담은 작품은 아니 에르노의 초기작인 『빈옷장』 이다. 그 책의 문장들은 그래서 더 날 것처럼 느껴진다. 『빈옷장』에서 그녀는 일어난 일 그대로를, 당시의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감각 그대로를 살려 여과 없이 기록했다. 하층민으로서 느꼈던 수치심, 학교라는 지식의 세계에서 보여주었던 폭력적인 구별법에 의해 수치로 기억된 자신의 소녀 시절을 노르망디 사투리로 재현한다. 거기에는 단순히 수치심이 아니라, 부르주아 세계를 욕망하며 스스로 그 구별법에 편승해 가는 자기의 위선과 이중성 또한 그대로 드러낸다. 집요하게 칼로 파헤치듯. 내가 아니 에르노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 초기작에 더 매료된 점이다.

 

 

 

 

 

만약 나 역시, 언젠가는..... 이름이란, 내일, 내일모레, 바칼로레아를 통과하고, 하루 그리고 이틀, 한 달이 지나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럴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무리 학위를 쌓아 놓아도 절대 숨기고 싶은 것, 내 가족의 추함, 주정뱅이들의 바보 같은 웃음, 내가 얼마나 천박한 말투와 몸짓으로 채워진 멍청한 년이었는지를 감출 만큼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간격을 더 벌려야 한다. 카페 겸 식료품점을, 촌년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을, 풀리지 않는 곱슬머리를 가진 친구들을 완전히 떨쳐 버려야 한다.....대학에 들어가는 것,토요일에 기차에서 내리는 분주하고 쌀쌀맞은 여자애들처럼 대학생이 되는 것. .........................................그들이 아래층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나를 기다린다. 나는 이제 곧 그들을 두고 떠날 것이다.(『빈옷장』 189쪽)

 

나는 수치심과 올라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그저 가난한 여자애일 뿐이고, 이 모든 것은 에너지 낭비다. <<너는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네>>라고 그가 말한다. 꼼짝할 수 없게 됐다. 내 상황과 그, 나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것, 그 테이블 구석에서 일어나는 파괴가 나를 그에게 집착하게 만든다. 나는 잠자코 속아 넘어간다. 그의 부모님이 너무 똑똑하고, 그 사실을 불편해한다. ...........내게 불쾌감을 주는 이야기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의 방식, 그만하면 충분하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서민가정 출신이야>> 그는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수많은 쾌락을 즐긴다............................................모두 배워야 할 것들이다. 나는, 나는 아마도 문학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조차도 내 상황에서는 수상쩍다. .........나는 나 자신에게 증오만을 먹였다. 모든 것을 등지고 버텼다. 내 문화는 싸구려다. .........문학, 그것조차도 빈곤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상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전적인 방법,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가짜다. 내 진짜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꼭 내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일반적인 것을 말한 것인데 나는 자신의 무가치함을, 하찮음을 느낀다.(『빈옷장』 199-200쪽)

 

대단한 과제! 웃기는 소리, 모두 꾸며낸 것이며 사람들에게 허풍 떨기 위한 것, 사다리로 이용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발표와 작문은 하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절대 다시 쓸 일은 없다. 모두가 단지 성공의 추억일 뿐이다.(『빈옷장』 206쪽)

 

 

정희진은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출판 교양인/2020.2.8)라는 책에서 ‘자기 연민과 나르시시즘은 최악의 인성이자 글쓰기 태도’라고 말하며, 글 쓰는 누구라도 ‘그 덫에 걸리기 쉽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콕 집어 덧붙인다. ‘예술에서 권력자는 상처받은 사람, 피해자이기 때문’이라고. 이 말은 참 뼈아픈 말이다. 여성들이 자기 서사를 고백하면서 당연히 밟을 수 있는 함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에 내게는 아니 에르노의 글이 달라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에르노의 글이 자기 고백적 여성 서사와 다른 점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단순하지 않은 한 세계의 복잡성, 혼종성이 자신의 몸을 통해 드러나게 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장하거나 독자를 위해 타협한 글이 아니며, 자기가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검열이 없다. 낯설게 쓰기, 그래서 읽기 다소 불편하고 때로 이해 불가한 문장들이 있지만, 오히려 그런 낯섦이 그녀가 겪은 곤경을 더 극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정희진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같은 책, 247쪽). 자신이 겪은 계급과 젠더의 문제를 평생 전 작품을 통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파헤치는 그녀의 글쓰기 자세는 경이롭다. 그러나 두렵기도 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 것이라면 피하고 싶기도 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자신을 끝까지 탐구하고 싶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해석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런 질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따라붙는다. 그것을 더 많이 드러내고 밝혀내는 더 많은 여성들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그 많은 질문에 답하는 일은 결국 여성의 정치적 글쓰기라는 지점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의 지극히 사적 개인사는 결코 사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아니 에르노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  아니 에르노의 말처럼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하기. 에두르거나, 포장이 아닌 자신이 가진 밑바닥 진실이 파헤쳐질 때까지 솔직한 용기로 자기의 글을 쓸 때만이 이야기의 보편성,  혹은 질문에 대한 새로운 응답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만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그래요. 그것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르게 살게 하며, 또한 행복하게 해주죠. 문학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진정한 장소』. 135쪽)

댓글 2
  • 2023-08-27 22:20

    경험에 대한 해석과 생각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과 자기연민과 나르시시즘은 그리 먼 이야기일까? 질문해보며. 일단 써보려 합니다~ 먼불빛님의 글도 기다려봅니다^^

  • 2023-08-28 11:08

    디디에 에리봉과 부르디외, 그리고 아니에르노를 같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대체 그게 언제일까요?^^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조은
2023.08.26 | 조회 380
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먼불빛
2023.08.24 | 조회 31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난잡한 돼지'들'     돌봄, 중단   지난 한 달 동안 돼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돌봄 1주년을 앞두고 나는 무모 님에게 7월 돌봄을 쉬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7월에 많은 일이 몰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초에 나는 문탁네트워크 안팎으로 여러 세미나를 신청했고 소개에도 적었다시피 '난잡한 공부'를 '체질'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한 해를 시작했다. 몇몇 샘들의 응원, 격려, 경악, 걱정이 이어졌고, 문탁샘은 "경덕...2023은 빡세게 공부하는 해? 주역에 불교로 기본기를 다지고 양생프로젝트 당대철학으로 문제의식을 벼리고...아주 좋네, 좋아!!! (그런데 너, 연말에 가랑이 찢어지겠다. 크하하핫)" 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그런데 상반기를 결산하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던가..?) 어떻게든 잘 수습하기 위해 발표가 몰린 7월에는 돌봄을 쉬고 일을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상반기 공부를 마무리했다. (찢어진 나의 가랑이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 번씩 밴드에 올라오는 일지로 돼지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더위가 극심할 때는 대형 얼음을 주문해서 진흙탕 옆에 두거나 조각 얼음을 간식으로 주기도 했다. "새벽, 잔디에게 큰 얼음을 배달받아서 줬어요. 새벽이는 좋아하는데 잔디는...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난잡한 돼지'들'     돌봄, 중단   지난 한 달 동안 돼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돌봄 1주년을 앞두고 나는 무모 님에게 7월 돌봄을 쉬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7월에 많은 일이 몰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초에 나는 문탁네트워크 안팎으로 여러 세미나를 신청했고 소개에도 적었다시피 '난잡한 공부'를 '체질'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한 해를 시작했다. 몇몇 샘들의 응원, 격려, 경악, 걱정이 이어졌고, 문탁샘은 "경덕...2023은 빡세게 공부하는 해? 주역에 불교로 기본기를 다지고 양생프로젝트 당대철학으로 문제의식을 벼리고...아주 좋네, 좋아!!! (그런데 너, 연말에 가랑이 찢어지겠다. 크하하핫)" 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그런데 상반기를 결산하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던가..?) 어떻게든 잘 수습하기 위해 발표가 몰린 7월에는 돌봄을 쉬고 일을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상반기 공부를 마무리했다. (찢어진 나의 가랑이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 번씩 밴드에 올라오는 일지로 돼지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더위가 극심할 때는 대형 얼음을 주문해서 진흙탕 옆에 두거나 조각 얼음을 간식으로 주기도 했다. "새벽, 잔디에게 큰 얼음을 배달받아서 줬어요. 새벽이는 좋아하는데 잔디는...
경덕
2023.08.22 | 조회 399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현민
2023.08.18 | 조회 514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문탁
2023.08.10 | 조회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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