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해파랑길 24코스를 걷다보면(with 땡볕)

기린
2023-08-06 06:27
365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7월 30일 토요일 아침, 후포는 햇빛 쨍쨍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낮 최고 기온 32도에 체감 온도는 34도 라고 했다. 후포 한마음 광장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24코스를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아홉시, 온 몸으로 쏟아지는 햇빛의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십 분쯤 걸어 등기산 공원 초입에서 가지 말까 잠깐 망설였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린 모자에 팔토시까지 했더니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데다 발걸음도 무거웠다. 망설임을 떨쳐내기 위해 한 호흡 깊이 들이마시고 공원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서서 걷기를 시작했다.

 

 

 

내 기억의 바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로 총 750㎞에 이르는 길인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그중 울진 구간인 24코스는 후포항 한마음 광장에서 출발해서 기성터미널까지 18.2km 구간이다. 후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자 지금도 어머님이 고향집에 살고 계시고, 스무 살에 수도권으로 상경한 이후 명절이나 대부분의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2년 전 해파랑길에 대해 알게 된 후 고향에 내려올 때 마다 영덕 구간과 울진 구간을 찾아서 걷곤 했다.

 

 

 

  그 중에서 24코스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도에서는 직선으로 단조롭게 그어진 해안선으로 보이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바닷가 파도는 거셌고 바다 위로 융기한 삐죽 삐죽한 바위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기억의 바다는 위험하고 한 여름에도 깊은 수심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유난한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집 아버지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든가, 해수욕을 하러 갔다가 파도에 휩쓸려갔다는 누구 집 자식의 이야기도 가끔 들려오는 그런 곳이었다.

 

 

 

변한 것들

 

 

   내가 고향을 떠난 후 바다의 주변은 점점 변해갔다. 해안을 따라 도로가 개통되고 항구에 배가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바다 가운데 방파제가 건설되었다. 파도가 치면서 실어 나르는 모래들로 예전에는 없었던 모래사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는 해수욕장이 개장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해수욕장과 관련 부대시설이 들어서고 여름 한 철 피서객들이 제법 북적였다. 등대가 있던 등기산이 정비되어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최근에는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가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도 생겼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바다 주변을 메우고 깎고 뭔가 짓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후포항은 교통이 불편했던 1960년대까지 만선으로 돌아온 어선들이 부근에 팔고 남은 생선들이 많아 누구라도 가져가게 할 정도로 인심이 후했다고 한다. 거기서 후포(厚浦)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날로 어획량이 줄어 경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가 하면, 뱃일을 하겠다는 사람도 계속 줄어서 몇 년 사이 이주 노동자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고 한다. 24코스를 따라 거일-직산-구산-기성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옹기종기 형성된 마을에 집들이 많이 낡아 보였다. 빈집도 많았다. 도시 집중화와 맞물려 쇠락해가는 지방의 변화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은 것들

 

 

   24코스는 내내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다. 바다 옆으로 도로가 나면서 주변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동해의 푸른 빛 바다와 파도 소리, 갈매기들이 드나드는 터전은 그대로였다. 그늘 한 점 들지 않는 길을 걷자니 땀방울이 맺혔지만 주르륵 흘러내리기 전에 말랐다. 햇빛으로 뜨거워진 몸을 동해의 푸른 바람에 말려가며 걷는 맛이었다. 팔토시로 가린 손목을 경계로 해서 손등이 점점 구리빛으로 달구어졌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한결 같았을 태양과 바다와 내가 합체가 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사라질 나와 달리 늘 뜨겁게 빛나고 늘 푸르게 파도치며 살아가는 존재의 위엄이 흘러 넘쳤다.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24코스의 삼분의 일 지점 무렵에 위치해 있다. 고려 시대 왜구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로 세워진 것을, 조선 중기에 정자로 중건된 곳이라고 한다. 월송정 주변은 푸른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정자에 올라 보면 앞으로 흰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로 이어지는 풍광이 시야에 들어왔다. 월송정에서 내려오는데 다정히 손을 잡고 오르는 연인을 지나쳤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월송정은 울진에 있는 남고와 후포고 여학생들의 미팅장소였다. 미팅이 있던 일요일을 보낸 월요일 아침이면, 누구와 누가 사귀게 되었다는 소문이 교실에 퍼지곤 했다. 정자 주변 소나무 숲에서 한 쌍씩 짝을 지어 제법 숙덕거렸겠다. 졸업 때까지 나에게는 한 번도 기회가 없었던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반짝 떠올랐다.

 

 

 

 

걷다가 마주친 즐거움

 

 

  24코스의 삼분의 이 지점을 통과할 즈음에는 바다에서 떨어진 산중턱으로 길이 나 있었다. 산에 가려서 바람도 불지 않는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내 옆을 지나쳤다. 내내 쌩쌩 달리는 자동차만 나를 지나쳤는데, 이 땡볕에 마침 지나가는 차도 없는 경사진 도로를 함께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단 한 번 짧은 스침임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에 하마터면 소리칠 뻔 했다. 반가워요! 그 기분을 살려 저만치 멀어지는 뒤통수를 향해 빙그레 웃음을 날렸다.

 

 

 

 

   해안선을 따라 융기한 암석 주변에서 허리를 숙이고 뭔가를 잡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 따다가 말리려고 널어놓은 청각도 보였다. 몇 년 사이 동해안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오징어 서너 마리를 바다 바람에 널어놓은 건조대도 지났다. 그 풍경들을 지나가면서 파도와 모래만이 아니라 뭔가 잡을 수 있는 그래서 오랜 동안 우리를 먹여 살린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고향집 근처에 바다에서도 여름이면 백합을 캐서 삶고 부치고 구워서 먹곤 했다. 24코스의 종점 기성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마음은 이미 바다 속에 들어가 조개를 캐고 있었다. 3만보에 다섯 시간 내내 땡볕을 걷고 난 참이었는데도 바다로 들어갈 마음이라니, 바다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로 나를 부르는 곳이다. 

 

댓글 6
  • 2023-08-07 09:47

    바다 가고 싶다!!!

  • 2023-08-07 14:16

    오징어가 잡히긴 하나보네요. 줄지어 널려있는 모습이 정겹군요. ^^ 근데 뙤약볕 아래 5시간 걷기는 좀 걱정됩니다! 이제 몸도 생각해 가면서~

  • 2023-08-07 22:32

    잔잔한 남해바다만 보고 자란 저에게 동해바다는 처음 봤을 때 참 무섭게 느껴졌는데,
    기린의 바다에는 짭조롬한 이야기가 함께 있네요.

  • 2023-08-11 09:52

    7월 초 속초와 고성으로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고성의 송지호 주변에도 해파랑길이 있더라고요. 포레스트 기린샘께 몇번 들었던 길이어서 나름 친근했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길을 소개해주시며 같이 걷자 이야기를 건네실지 궁금하네요^^

  • 2023-08-12 07:25

    처음 나타난 지도를 보고 저 길을 다 걸었어?하고 놀랄뻔~ㅋㅋ
    바닷가 나란히 서있는 갈매기(맞죠?) 사진 너무 신기해서 다운받았어요.

    해파랑길 걸어보고 싶어요. 저도 반가워요 소리치는 마음 갖고 싶어요 ㅎㅎ
    언제 같이 걷는 기회를 주세요^^

  • 2023-08-15 08:57

    기린샘은 지금도 귀엽지만 중고딩시절엔 더 귀여웠을것 같지 말입니다.ㅎㅎ

    귀여움 플러스....
    땡볕을 걷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패기와 호기가 넘치는군요. ㅎㅎ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그동안 피하던 주5일 일을 단기로 하게 되어서 고단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강정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강정에 처음 왔을 때를 빼먹을 수가 없다. 작년 4월, 3개월짜리 강정살이 프로그램인 피스파인더를 위해 강정에 왔다. 매일은 꽉 찬 스케쥴로 소화해내느라 당시에는 너무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간들 중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은 그 순간들을 나누고자 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무말이나 가져다썼다)         1. 2022.6.12 pm 3:45   우리는 새방밧이라는 공간에 살았다. 2층짜리 컨데이너 하우스이고, 화장실, 주방, 사무실, 방이 다 다른 컨테이너에 있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화장실가기 참기 챌린지였다. 이런 공간에서 열명 정도가 함께 생활을 했다. 매일 저녁에는 당번을 정해서 밥을 같이 먹었지만, 주말은 자유였기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밖으로 많이 나갔다. 평일에는 바빠서 가지 못한 맛집이나 관광지를 가기도 했고, 육지에서 온 친구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주말의 새방밧은 조용했다. 주말에는 거의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 비도 조금 왔던 것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우중충했고, 몸은 새방밧 사무실 소파에 가라앉아있었다. 조용한 새방밧을 만끽하기에 사무실 소파만한 곳이 없었다. 한 친구는 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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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2023.08.26 | 조회 380
먼불빛의 웰컴 투 60
      내가 아니 에르노의 책과 만난 건 작년 2022년이었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모든 책이 다시 주목받았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사회학적 글쓰기 방식은 독특했다. 자신의 경험을 부끄러울 정도로 고스란히 글로서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결국 그 사회의 젠더 문제, 계급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쳐 고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솔직하게. 정면으로. 나는 그녀의 이름도 생경했고, 글도 낯설었고, 문장도, 읽는 것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뜻밖에도 아니 에르노와 닮기도 한, 다르기도 한 내가 보였다.     요즘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게시하고, 함께 공감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자기 이야기를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늘 부정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그것이 내밀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분명한 목적과 자기 사명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쓸 수 있는 용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의 글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사회적 해석과 만나 더 많은 보편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결국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에르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너무나 관습화된 몸, 인식, 타인에 대한 의식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거나, 적당히 타협하는 글을 만들게 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용기를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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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불빛
2023.08.24 | 조회 311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난잡함이 지나쳐 찢어진 가랑이를 수습하느라 하반기에는 몸을 사리고 있다.         난잡한 돼지'들'     돌봄, 중단   지난 한 달 동안 돼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돌봄 1주년을 앞두고 나는 무모 님에게 7월 돌봄을 쉬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7월에 많은 일이 몰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올 초에 나는 문탁네트워크 안팎으로 여러 세미나를 신청했고 소개에도 적었다시피 '난잡한 공부'를 '체질'로 선언하며 호기롭게 한 해를 시작했다. 몇몇 샘들의 응원, 격려, 경악, 걱정이 이어졌고, 문탁샘은 "경덕...2023은 빡세게 공부하는 해? 주역에 불교로 기본기를 다지고 양생프로젝트 당대철학으로 문제의식을 벼리고...아주 좋네, 좋아!!! (그런데 너, 연말에 가랑이 찢어지겠다. 크하하핫)" 라고 댓글을 남기셨다. 그런데 상반기를 결산하는 세미나 발표를 준비하면서 나는 연말이 되기도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피가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던가..?) 어떻게든 잘 수습하기 위해 발표가 몰린 7월에는 돌봄을 쉬고 일을 조정하면서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그럭저럭 상반기 공부를 마무리했다. (찢어진 나의 가랑이는 서서히 아물고 있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 번씩 밴드에 올라오는 일지로 돼지들의 안부를 확인했다. 새벽이생추어리의 인간, 비인간 동물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더위가 극심할 때는 대형 얼음을 주문해서 진흙탕 옆에 두거나 조각 얼음을 간식으로 주기도 했다. "새벽, 잔디에게 큰 얼음을 배달받아서 줬어요. 새벽이는 좋아하는데 잔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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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8.22 | 조회 399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두부와 나단       아래의 쓰여진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며, 화자를 나나라는 인물로 칭한다.     두부   두부는 나나가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유일한 한국 사람이다. 과거에 어디 하나 엮인 데 없이 말이다. 작년 겨울, 두부는 한국에 가는 동안 방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집이 없던 나나는 우연히 두부의 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더 길게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기임대는 무산되었지만, 나나는 두부를 놓칠 수가 없었다. 한번 만났지만, 이 맑은 얼굴의 여자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새해를 핑계 삼아 떡국을 먹자고 두부를 집으로 초대하며 인연은 이어지게 되었다.   두부를 볼 때마다 그에겐 어딘가 단단한 마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고생하여 결국엔 이뤄 본 사람. 착하지만 아무에게도 질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느낌. 두부는 독일에서 고생만 했는지 나나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한다며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 두부에게는 애인이 있다. 나나보다도 어린 두부가 10살 연상의 사람을 만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의아했다. 머리 속에서 빠르게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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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3.08.18 | 조회 514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밀양에 작은 목공소를 차렸다.   지난 5년 간은 창고 하나 없이 여기저기 얹혀 살며 가구도 만들고 집도 지었다. 연장은 뿔뿔히 흩어져 매일 늦은 밤마다 다음 날 쓸 연장을 챙기러 돌아다녀야 했고, 사용 가능한 자재가 남았을 때에도 챙겨 둘 수 없었다. 현장에 짐을 둔다는 대가로 이런저런 눈탱이를 맞는 일도 잦았다. 임금을 떼이거나, 아주 잡스러운 심부름을 시켜도 마스크 속에서만 보이는 욕을 하며 버텨야만 했다. 쫒겨나면 갈 곳이 없으니까. 눈에도 사람의 감정이 드러난다지만, 몇 년간은 마스크가 참 고마웠다.   돈을 버는 건지 스트레스를 버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던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를 얻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해방이 온다고 생각했다. ​ 작은 창고는 싱크 공장을 하던 곳이었다. 비록 비 오는 날에는 풍향에 따라서 바닥으로 물이 제법 스며들었고, 몇 명의 세입자가 뚫었을지 모르는 벽 곳곳의 연통 구멍 안으로는 냉기가 빨려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공간이다. 목수 일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 문제가 별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지난 세월 끊임없이 머리 속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했던 일이 시작되었다. 내 몸에 가장 알맞게 구성된 공간,...
문탁
2023.08.10 | 조회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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