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유소감의『장자철학』 (도와 소요론을 중심으로)   『장자철학』은 유소감의 박사논문이다. 그는 장자 철학이 노자에 기원하고 있으며, 장자에 이르러 도가 학파가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입장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소요유>의 절대 자유가 도(道)의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장자의 도에 대한 혼동이 장자 철학 전반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 천(天), 명(命) 등을 철학적인 범주로 분석하고, 이를 안명론(安命論), 소요론(逍遙論), 제물론(濟物論 )등 사상적(학설)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내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장자의 도 개념과 소요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둘 간의 관련성에 관해서이다. 먼저 지난 번 1234에서 다뤘던 장자의 해체 전략을 간략히 정리하고 여기서 내가 건진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보자.     장자의 해체 전략 저자 정용선은 『장자』의 <소요유>편이 해체 전략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대붕우화로 시작해 무하유지향으로 끝을 맺는 이 편은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거대 담론을 첫 머리에 배치한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 “시각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한 해체 전략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여기서 “대붕의 비상”은 시각을 달리하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장적 비유’이다. 따라서 해체 전략에 따르면, 비상이나 소요(유)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치를 초과하는 어떤 상태(경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초탈적 자유’이며, ‘매순간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만 있을 뿐 절대자나 절대...
유소감의『장자철학』 (도와 소요론을 중심으로)   『장자철학』은 유소감의 박사논문이다. 그는 장자 철학이 노자에 기원하고 있으며, 장자에 이르러 도가 학파가 큰 발전을 이루었다는 입장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소요유>의 절대 자유가 도(道)의 개념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구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르면 장자의 도에 대한 혼동이 장자 철학 전반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 천(天), 명(命) 등을 철학적인 범주로 분석하고, 이를 안명론(安命論), 소요론(逍遙論), 제물론(濟物論 )등 사상적(학설)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내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은 장자의 도 개념과 소요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 둘 간의 관련성에 관해서이다. 먼저 지난 번 1234에서 다뤘던 장자의 해체 전략을 간략히 정리하고 여기서 내가 건진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보자.     장자의 해체 전략 저자 정용선은 『장자』의 <소요유>편이 해체 전략의 오리엔테이션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대붕우화로 시작해 무하유지향으로 끝을 맺는 이 편은 비현실적이고 과장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거대 담론을 첫 머리에 배치한 이유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 “시각의 전환”을 도모하기 위한 해체 전략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여기서 “대붕의 비상”은 시각을 달리하여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장적 비유’이다. 따라서 해체 전략에 따르면, 비상이나 소요(유)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치를 초과하는 어떤 상태(경지)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초탈적 자유’이며, ‘매순간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만 있을 뿐 절대자나 절대...
여울아
2023.06.07 | 조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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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비엘락스미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Dementia Together)』   동은이 집에 와서 하빈이랑 잠시 놀아주었는데 낯선 사람인데도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잘 놀았다. 신기한 일이다. 하빈이가 궁금하고 그래서 관심이 많은 동은이. 동은이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하는 하빈이. 둘은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난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원제 : Dementia Together)』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결’이다.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인데, 패티 비엘락스미스는 ‘치매는 단절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치매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치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대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컨대 돌봄은 비치매인이 치매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은 상호적이다.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관계를 ‘치매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계를 일방적인 ‘수혜’ 또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여느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무시하기가 쉽다. 이 상호성에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중시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보살핌을 매개로 각자를 성장시킨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연결이 아니라 ‘상호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판단 아니고 상상력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엄마는 통장, 미국 삼촌이 보낸 달러우편환, 카드 같은 것을 어딘가에 잘 두고 못 찾을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을 찾긴 했지만 아직도...
피터 비엘락스미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Dementia Together)』   동은이 집에 와서 하빈이랑 잠시 놀아주었는데 낯선 사람인데도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잘 놀았다. 신기한 일이다. 하빈이가 궁금하고 그래서 관심이 많은 동은이. 동은이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하는 하빈이. 둘은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난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원제 : Dementia Together)』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결’이다.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인데, 패티 비엘락스미스는 ‘치매는 단절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치매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치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대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컨대 돌봄은 비치매인이 치매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은 상호적이다.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관계를 ‘치매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계를 일방적인 ‘수혜’ 또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여느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무시하기가 쉽다. 이 상호성에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중시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보살핌을 매개로 각자를 성장시킨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연결이 아니라 ‘상호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판단 아니고 상상력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엄마는 통장, 미국 삼촌이 보낸 달러우편환, 카드 같은 것을 어딘가에 잘 두고 못 찾을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을 찾긴 했지만 아직도...
인디언
2023.06.02 | 조회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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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속 인간의 행복한 삶     뜬금없는 행복 얼마 전 문탁 점심에 연잎밥과 장아찌를 비롯한 여러 반찬들, 디저트로 사과정과, 오디정과가 차려졌다. 동은이가 주방에 들어와 차려진 상을 보더니 “행복해!”라고 외쳤다. 순간 ‘별게 다 행복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꽤 무거운데, 동은이에게는 한없이 경쾌하고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라는게 신기했다. 동은이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연이어 나와 좀 의아했다. 윤리학 책에 갑자기 웬 행복론?   행복은 보통 처한 현실에 비추어 결여된 것이 충족되었을 때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병이 들었을 때는 건강을 행복이라 여기고, 가난한데 로또라도 맞으면 최상의 행복을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예를 얻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뭔가 얻기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 느끼는 최고조의 감정 상태가 행복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소확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행복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만족, 기쁨과 같은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뭐가됐든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단순히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에서 최종적인 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를 묻는다. 인간에게 좋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 속에서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좋음이다. 좋음에는 그 자체로 좋은 것과 좋음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좋은 것이...
공동체 속 인간의 행복한 삶     뜬금없는 행복 얼마 전 문탁 점심에 연잎밥과 장아찌를 비롯한 여러 반찬들, 디저트로 사과정과, 오디정과가 차려졌다. 동은이가 주방에 들어와 차려진 상을 보더니 “행복해!”라고 외쳤다. 순간 ‘별게 다 행복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꽤 무거운데, 동은이에게는 한없이 경쾌하고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라는게 신기했다. 동은이의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은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연이어 나와 좀 의아했다. 윤리학 책에 갑자기 웬 행복론?   행복은 보통 처한 현실에 비추어 결여된 것이 충족되었을 때 특별하게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병이 들었을 때는 건강을 행복이라 여기고, 가난한데 로또라도 맞으면 최상의 행복을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예를 얻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뭔가 얻기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 느끼는 최고조의 감정 상태가 행복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소확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행복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만족, 기쁨과 같은 감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뭐가됐든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단순히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에서 최종적인 목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를 묻는다. 인간에게 좋음은 무엇인가?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 속에서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좋음이다. 좋음에는 그 자체로 좋은 것과 좋음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좋은 것이...
토용
2023.06.01 | 조회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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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 정군 노동이 사라진다, 그리고 소비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갑작스러운 고금리, 통화량 긴축을 견디지 못한 은행들의 연쇄 파산일 것이다. 그 뿐인가? 이른바 ‘영끌족’들은 매수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영혼을 지불 중이다. 생물학적 전염병의 유행이 일시적으로 멈춤과 동시에 사회적 전염병으로서 빈곤은 쉼 없이 감염자 수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세계가 얼어붙을수록 이른바 선진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이 와중에 지구를 덮친 때 이른 더위와 태풍은 이 세계의 끝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예감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갑자기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마치 사람들의 ‘돈 걱정’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기관인 듯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돈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 체제의 ‘위기’는 워낙 만성적이어서 오늘날 닥쳐온 것과 같은,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 같은 위기가 와도 걱정은 되지만 생생하게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체감이 그런 것과 실제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 위기는 이전에 자본주의가 겪었던 몇몇 위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선진국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로 케인즈주의가 박살났을 때, 자본은 선진국의 산업을 기술, 금융,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고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공간적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했다1). 기술, 금융, 서비스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나의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90년대, 2000년대 내내 우리 집이 왜 그렇게나 힘들었던...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 - 정군 노동이 사라진다, 그리고 소비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갑작스러운 고금리, 통화량 긴축을 견디지 못한 은행들의 연쇄 파산일 것이다. 그 뿐인가? 이른바 ‘영끌족’들은 매수한 자산 가격 하락으로 영혼을 지불 중이다. 생물학적 전염병의 유행이 일시적으로 멈춤과 동시에 사회적 전염병으로서 빈곤은 쉼 없이 감염자 수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이렇게 세계가 얼어붙을수록 이른바 선진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이 와중에 지구를 덮친 때 이른 더위와 태풍은 이 세계의 끝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예감케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갑자기 나빠진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마치 사람들의 ‘돈 걱정’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기관인 듯하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돈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 체제의 ‘위기’는 워낙 만성적이어서 오늘날 닥쳐온 것과 같은,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 같은 위기가 와도 걱정은 되지만 생생하게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체감이 그런 것과 실제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 위기는 이전에 자본주의가 겪었던 몇몇 위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테면, 선진국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로 케인즈주의가 박살났을 때, 자본은 선진국의 산업을 기술, 금융, 서비스 중심으로 재편하고 임금이 싼 개발도상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공간적 대응으로 위기를 돌파했다1). 기술, 금융, 서비스와 아무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나의 부모님을 생각해 보면 90년대, 2000년대 내내 우리 집이 왜 그렇게나 힘들었던...
정군
2023.05.30 | 조회 35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띠우
2023.05.28 | 조회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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