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Probably Approximately Correct - 기계학습을 다시 묻다” Leslie Valiant 2013 作, 이광근 2021 譯   도대체 컴퓨터는 어떻게 작동하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때 제일 난감한 경우가 내가 짠 프로그램이 ‘Looping 도는 경우이다(끝나지 않음)’. 운영자에게 killed된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면, 논리적으로 이상이 없는데(반드시 이상이 있다!), 루핑이라는 것이다. 루핑됨을 미리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 도대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되길래 그러는지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S/W는 언어와 논리로 만들어 진다. 결과물을 내고 싶은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먼저 언어(문장)로써 그것들을 구분하는 특징들을 적는다. 그런 뒤에 그 특징들을 입력값으로 하여 논리적인 추론을 만들어 프로그래밍한다. 그런데, 그 구분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소위 특징 설계(Feature Design)문제이다. 2000년대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구글은 6.65%의 에러율로 고양이를 식별하였고(인간은 5.51% 에러), 2019년 MS사는 152개 층 구조로 천만건의 유투브를 학습시킨 결과 에러율을 3.56% 로 낮추었다. 그들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방법을 적용하였다고 말한다. 기계·학습? 먼저 기계적이란 어떤 것인가?   계산 가능함: 기계적 계산이란 무엇인가?     생명체들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걸까? 튜링이 1936년에 논문(*)을 내기 전까지는 인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의조차 하지 못하였다. 1928년 수학자인 David Hilbert는 수학명제를 입력으로 받아서 참과 거짓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소위, ‘수리명제 자동생성 문제’를 낸다. 튜링은 그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손쉬운 구체적인...
“Probably Approximately Correct - 기계학습을 다시 묻다” Leslie Valiant 2013 作, 이광근 2021 譯   도대체 컴퓨터는 어떻게 작동하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때 제일 난감한 경우가 내가 짠 프로그램이 ‘Looping 도는 경우이다(끝나지 않음)’. 운영자에게 killed된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면, 논리적으로 이상이 없는데(반드시 이상이 있다!), 루핑이라는 것이다. 루핑됨을 미리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다. 도대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되길래 그러는지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S/W는 언어와 논리로 만들어 진다. 결과물을 내고 싶은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먼저 언어(문장)로써 그것들을 구분하는 특징들을 적는다. 그런 뒤에 그 특징들을 입력값으로 하여 논리적인 추론을 만들어 프로그래밍한다. 그런데, 그 구분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의외로 쉽지 않다. 소위 특징 설계(Feature Design)문제이다. 2000년대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4년 구글은 6.65%의 에러율로 고양이를 식별하였고(인간은 5.51% 에러), 2019년 MS사는 152개 층 구조로 천만건의 유투브를 학습시킨 결과 에러율을 3.56% 로 낮추었다. 그들은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방법을 적용하였다고 말한다. 기계·학습? 먼저 기계적이란 어떤 것인가?   계산 가능함: 기계적 계산이란 무엇인가?     생명체들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걸까? 튜링이 1936년에 논문(*)을 내기 전까지는 인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의조차 하지 못하였다. 1928년 수학자인 David Hilbert는 수학명제를 입력으로 받아서 참과 거짓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소위, ‘수리명제 자동생성 문제’를 낸다. 튜링은 그것은 ‘불가능하다’라는 결론을 손쉬운 구체적인...
가마솥
2023.08.29 | 조회 13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후기 스토아학파 에픽테토스Epiktetos의 《강의Discourses》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스토아학파 그중에서도 에픽테토스의 글을 읽고 꽂힌 부분은 가령 이런 구절이다.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는 것은 그 사안 자체가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예를 들어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크라테스에게도 역시 그렇게 여겨졌을 것이지만, 죽음에 관한 믿음, 즉 두렵다는 것, 바로 이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방해를 받거나 심란하거나 슬픔을 당할 때에도 결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나 자신을, 즉 나 자신의 판단을 탓해야만 한다.(<앵케이리디온Encheiridion>, 제5장)   *헬라스어로 ‘획득된’이라는 의미인 에픽테토스(AD.55?~135?)는 노예 출신으로 한쪽 다리가 불구였다고 한다. 후기 스토아학파의 대표 주자인 그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강의/담화록》(4권)과 《앵케이리디온(핸드북)》(52개의 짧은 장)은 제자인 아리아누스Arrianus가 그의 강의를 들으며 필기한 것을 출판한 것이다. 여기서 인용한 책은 《에픽테토스 강의 1.2/ 3.4/ 엥케이리디온》(김재홍 옮김, 그린비, 2023)이다.     에픽테토스의 《강의》는 대개 대화의 형식을 띠는데, 제자의 질문에 에픽테토스가 답을 한다. 제자의 질문은 가족, 직업, 가난, 명성에서 병이나 죽음에 관한 질문에까지 다양하다. 잘 짜여진 대화록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형식으로 이뤄진 강의에서, 결국 에픽테토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내게 달려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가 였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 내가 갱년기를 보내면서 내...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후기 스토아학파 에픽테토스Epiktetos의 《강의Discourses》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스토아학파 그중에서도 에픽테토스의 글을 읽고 꽂힌 부분은 가령 이런 구절이다.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는 것은 그 사안 자체가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예를 들어 죽음은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소크라테스에게도 역시 그렇게 여겨졌을 것이지만, 죽음에 관한 믿음, 즉 두렵다는 것, 바로 이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방해를 받거나 심란하거나 슬픔을 당할 때에도 결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나 자신을, 즉 나 자신의 판단을 탓해야만 한다.(<앵케이리디온Encheiridion>, 제5장)   *헬라스어로 ‘획득된’이라는 의미인 에픽테토스(AD.55?~135?)는 노예 출신으로 한쪽 다리가 불구였다고 한다. 후기 스토아학파의 대표 주자인 그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강의/담화록》(4권)과 《앵케이리디온(핸드북)》(52개의 짧은 장)은 제자인 아리아누스Arrianus가 그의 강의를 들으며 필기한 것을 출판한 것이다. 여기서 인용한 책은 《에픽테토스 강의 1.2/ 3.4/ 엥케이리디온》(김재홍 옮김, 그린비, 2023)이다.     에픽테토스의 《강의》는 대개 대화의 형식을 띠는데, 제자의 질문에 에픽테토스가 답을 한다. 제자의 질문은 가족, 직업, 가난, 명성에서 병이나 죽음에 관한 질문에까지 다양하다. 잘 짜여진 대화록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형식으로 이뤄진 강의에서, 결국 에픽테토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내게 달려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가 였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 내가 갱년기를 보내면서 내...
자작나무
2023.08.28 | 조회 20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타락시아를 향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고   쾌락에 대한 오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라고 했다. 쾌락이라니... 아마도 사람들은 쾌락이 고상한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향락, 방탕함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의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도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피쿠로스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 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실제 에피쿠로스 당대에도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티몬은 에피쿠로스에 대해 “자연철학자 중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자, 사모스에서 온 문법학교 교사,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라고 평했다. 에피쿠로스에 적대적이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디오티모스는 에피쿠로스가 50통의 음란한 서신을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에픽테토스는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도에 떠난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토했고,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철학 토론과 비밀 회합을 자신도 지긋지긋해했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이유 중 매춘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의미를 알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댄 이유는 아마도 에피쿠로스학파가 ‘정원’을 꾸려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비주의는 때로 황당한 소문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많은...
아타락시아를 향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고   쾌락에 대한 오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라고 했다. 쾌락이라니... 아마도 사람들은 쾌락이 고상한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향락, 방탕함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의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도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피쿠로스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 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실제 에피쿠로스 당대에도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티몬은 에피쿠로스에 대해 “자연철학자 중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자, 사모스에서 온 문법학교 교사,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라고 평했다. 에피쿠로스에 적대적이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디오티모스는 에피쿠로스가 50통의 음란한 서신을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에픽테토스는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도에 떠난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토했고,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철학 토론과 비밀 회합을 자신도 지긋지긋해했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이유 중 매춘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의미를 알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댄 이유는 아마도 에피쿠로스학파가 ‘정원’을 꾸려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비주의는 때로 황당한 소문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많은...
토용
2023.08.28 | 조회 147
한문이예술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동은
2023.08.18 | 조회 558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기린
2023.08.17 | 조회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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