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예술 4회]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2023-08-18 22:11
558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되니 자연스럽게 무리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그 무리를 살펴보면 그 사이에서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거나 배제시키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남자아이가 단발머리를 한 다른 남자아이에게 몇 주 동안 ”왜 남자애가 여자애같이 머리가 기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여자애같이’라는 말에 놀랐고, 질문을 받은 아이는 이런 상황이 지겨운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개입해 머리 모양에 남자와 여자가 무슨 상관이냐며 상황을 넘어갔지만 아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인지 그 친구에게 몇 주 동안 집요하게 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이런 모습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날것’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에게 흔히 기대하는 천진난만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서 비롯한 폭력적인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성인으로 자라며 사회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관계를 맺다보면 그 순진한 폭력성은 자연스럽게 겉치레같은 것으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숨겨지게 된다. 아직 그런 교묘함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결과적으로 힘이나 외모, 그 어떤 것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상황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그 수준이 어떻든 그런 행동은 폭력적이기에, 나는 이런 ‘날것’을 느낄 때마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3. 작고小 약함弱이 보여주는 것

 

  사회적 소수자(少數者)는 흔히 지배적이라고 여겨지는 사회적 기준과 가치에 충족되지 않아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평균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빈민이나 정상의 범위가 아니라 여겨지는 성소수자들처럼, ‘평균’ 이하의, 혹은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나있어 어떤 관계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고 권리를 쉽게 포기하게 되는 이들말이다. 소수자는 글자 그대로 ‘적은 인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대에는 작다小와 적다少가 모두 ‘작다’라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사회적 소수자가 사회적 약자(弱者)라 불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고(적고) 약한 것은 같은 계열의 의미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약할 약弱은 날개 우羽와 비슷해 가볍고 망가지기 쉬운 깃털을 본뜬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활(弓)의 활시위를 의미하는 한자다.* 활은 인류학적으로 볼 때 인간에게 원거리 공격을 가능하게 만든 아주 중요한 무기인데, 사냥이나 전쟁같이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활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활시위를 풀어놓고 보관했다고 한다. 활시위가 걸리지 않은 활은 그저 줄 달린 막대기라는 점에서 활의 주인공은 활대가 아니라 활시위弱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고대 중국에서 전해지는 여섯가지 예절(六藝)** 중에 활쏘기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왜 사람들이 활쏘기를 중요하게 여겼을까? 그것은 단순히 사냥이나 전투를 위해 무기를 잘 다루기보다 스스로를 단련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에게 활쏘기는 마음을 모으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수련이었다. 그들은 활쏘기를 위해 균형잡힌 신체와 훌륭한 활만큼 활을 쏘는 자세와 태도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활은 사냥감보다도 과녁을 향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 활쏘기의 자세와 태도란 부드러운 활시위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빛과 바람, 대상과의 거리, 나의 상태 등등,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주변을 파악하고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자세. 목표를 위해 활시위를 당기지만 목표만을 바라보지 않는 유연함 말이다.

 

 

 

 

 

  작을 소小와 적을 소少는 모두 작은 모래알갱이를 표현한 모습이다. 해변가의 모래는 처음부터 그 곳에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커다란 바위가 오랜 시간동안 침식과 풍화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다. 그리고 작은 모래 알갱이는 가라앉아 다시 퇴적되어 커다란 바위가 되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 하나의 알갱이는 바위의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몸을 커다란 바위로 생각해보자. 그럼 우리 몸의 머리카락, 눈, 코, 귀… 손톱과 무릎의 점, 발가락의 모양까지 모두 각자가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알갱이가 된다. 이 작은 알갱이들은 ‘고유한 모습’ 없이 천차만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눈동자 색이 다르거나, 동공이 크거나, 작거나, 혹은 보이지 않거나. 손가락이 두껍거나, 얇거나, 짧거나, 길거나, 없거나, 혹은 더 많거나. 

 

   장애障礙는 문자 그대로 해석해본다면 ‘불편하다’, ‘걸리적거리다’라는 의미다. 물론 ‘장애가 있다’는 말은 사회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본질적으로는 연필을 쥘 때 손가락이 없는 것이 ‘걸리적거린다’, 걸을 때 다리 길이가 달라서 ‘불편하다’ 정도의 층위인 것이다. 불편하고 걸리적 거리는 것은 물리적인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수학을 못하거나, 그림을 못그리는 것도 장애의 영역에 포함된다. 우리에게는 모두 일정 정도의 장애가 되는 요소가 있고 그것이 곧 나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특징이 나와 뗄 수 없는 구성요소이자 핵심이 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피아노 연습을 성실히 한 사람이 연주회를 열 정도의 실력을 가지게 되거나, 다리를 잃었어도 의수로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의수는 그 사람의 핵심이 된다. 작은 알갱이가 갖고 있는 저마다의 특징은 결함이 될 수도, 핵심이 될 수도 있다. 활의 핵심이 단단한 활대가 아니라 달랑달랑 달려있는 얇고 부드러운 활시위인 것을 보면 ‘작음‘과 ’약함‘은 서로를 지탱하는 비슷한 계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 弱은 상형자가 아닌 지사자로 활의 활시위 부분을 표현한 기호같은 한자다.

** 육예六藝는 주나라의 예절서인 《주례(周禮)》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덕목으로 예절禮, 음악樂, 서예書, 수학數, 말타기御, 활쏘기射를 의미한다.

 

 

4. 크고大 강한 것强, 그 안에도…

 

  그렇다면 작고 약한 것과 반대된다고 여겨지는 크고 강한 것은 어떨까? 고대 사람들은 ‘강함强’도 활에서 찾아냈다. 일상에서 ‘강하다’라는 글자는 '强'가 많이 사용되지만 고대사람들이 생각하는 ‘강함’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형인 '強'로 알아보는 것이 더 좋다. 强은 벌릴 인引부터 시작되는데 引은 활弓을 쏘기 위해 시위丨를 꽉 쥐고 넓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고대 사람들은 보다 섬세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벌릴 인引으로부터 활시위 강하게 붙잡아 벌리고 있는 팔과 주먹을 의미하는 벌릴 홍弘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고대사람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곤충虫을 통해 ‘강함’의 의미를 극대화한다. 왜 곤충虫이었을까? 곤충이 가진 턱의 아구힘에서 그들의 힘을 느꼈던 것이라 생각한다. 개미는 자기 몸의 여섯배를 들어올릴 수 있고 사슴벌레는 사람의 살점을 뜯을 정도의 턱힘을 갖고 있다. 입을 크게 벌려 싸우고 자신의 몇배나 큰 먹이를 물어뜯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강하다’는 걸 강렬하게 느낀 것이 아닐까. 확실한 것은 고대 사람들이 ‘강하다’라는 것을 인간으로만 한정하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어떤 가치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활시위를 끌어당기고 있는 모습인 끌다, 당기다 인引

 

활시위를 벌리고 있는 팔을 더 강조해서 만들어진 벌릴 홍弘

 

 

  大는 뜻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한자다. 大는 다리와 팔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사람을 본뜬 글자로 단번에 머리와 팔,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 大는 팔 다리가 다 자란 성인을 지칭하는 글자였는데 서서히 큰 물건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큰 것’은 끝이 없다. 작은 사람과 큰 사람, 사람보다 큰 냉장고, 내가 서있는 건물… 코끼리, 기린, 공룡, 흰수염고래… 달, 지구, 목성, 태양, 은하, 우주…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당장 태양과 내 주먹을 나란히 비교해보면 내 눈에는 내 주먹이 더 크다! 물론 주먹이 태양보다 클 수는 없다. 단지 ‘크다’는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표현일 뿐이라는 거다. 결국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무엇을 더 ‘크다’고 여기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크다’거나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5. 새로운 가치?

 

    우리는 자신의 입지를 크게 키우고 강해지기 위해 작고 약한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외면하려 한다. 때로는 나아가 상대를 무시하거나, 짖밟음으로써 자신의 강함을 확인하려 든다. 아이들의 ‘날것’은 결국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것은 오히려 핵심이 되기도 하며, 자신의 크기는 그저 상대적일 뿐이다. 고대사람들은 오히려 ‘약함’을 배우려 했고 작은 곤충을 통해서 ‘강함’을 깨달았다. 이 수업은 양극에 해당하는 개념에 대해 익히며 아이들에게 크고 강함과 작고 약함의 다른 가치를 전해보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그저 ‘입바른 말’처럼 느껴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활시위를 당기는 유연한 마음가짐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거나 나를 구성하는 작은 조각들을 적으며 친구와 공통점을 발견해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작고 약한 것을 마냥 좋은 것이라고, 크고 강한 것도 별것 아니라고 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모두에게 그러한 요소가 있다는 것, 누구나 서로 다른 작은 알갱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한자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이런 기획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나도 아이들의 ‘날것’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왜 뚱뚱해요?”, “선생님은 왜 이렇게 엉덩이가 커요?”같은 질문을 면전에서 받을 때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당황한 표정을 숨겼다. 아이들의 행동은 어릴 적 원색적인 놀림으로부터 애써 태연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와,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일 수록 더 상처 입히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이 수업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들도 나와 별다른 것 없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모든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 깨달음을 끄집어 내기보다는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 사람들의 가치가 오늘날의 가치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 그 의미를 나와 연결짓고 싶었다. 

 

  한자를 알아갈수록 ‘새로운 가치의 발견!’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이라면 몰라도. 그러니 나는 우리가 나와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계속 유연하고, 약하고, 작고 적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자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 더 길어올릴 수 있을까? 수만자가 넘는 한자의 바다가 광활하고 아득하면서도 아련하게 빛나보인다. 

 

 

 

 

 

댓글 6
  • 2023-08-20 08:22

    한자 의미를 하나하나 그 근원부터 차분히 풀어가는 생각의 전개방식이 놀랍습니다. 사유가 더욱 깊이 끈기있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 2023-08-21 07:18

    이번에도 재밌음^^

  • 2023-08-21 11:00

    동은이 화이팅!!
    글 재밌어요~~^^

  • 2023-08-22 12:59

    누구나 서로 다른 작은 알갱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동은샘을 통해 한자가 품은 의미에 잠시 다가가 볼수 있어서 참 좋네요.

  • 2023-08-22 15:07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그 속을 유영하며 작은 알갱이들을 보여주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이번에도 재밌읍니다~

  • 2023-08-23 07:11

    재밌어요~~
    한자공부를 비껴간 1인으로서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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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타락시아를 향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고   쾌락에 대한 오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라고 했다. 쾌락이라니... 아마도 사람들은 쾌락이 고상한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향락, 방탕함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의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도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피쿠로스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 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실제 에피쿠로스 당대에도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티몬은 에피쿠로스에 대해 “자연철학자 중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자, 사모스에서 온 문법학교 교사,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라고 평했다. 에피쿠로스에 적대적이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디오티모스는 에피쿠로스가 50통의 음란한 서신을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에픽테토스는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도에 떠난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토했고,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철학 토론과 비밀 회합을 자신도 지긋지긋해했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이유 중 매춘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의미를 알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댄 이유는 아마도 에피쿠로스학파가 ‘정원’을 꾸려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비주의는 때로 황당한 소문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많은...
아타락시아를 향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고   쾌락에 대한 오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라고 했다. 쾌락이라니... 아마도 사람들은 쾌락이 고상한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향락, 방탕함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의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도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피쿠로스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 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실제 에피쿠로스 당대에도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티몬은 에피쿠로스에 대해 “자연철학자 중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자, 사모스에서 온 문법학교 교사,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라고 평했다. 에피쿠로스에 적대적이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디오티모스는 에피쿠로스가 50통의 음란한 서신을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에픽테토스는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도에 떠난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토했고,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철학 토론과 비밀 회합을 자신도 지긋지긋해했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이유 중 매춘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의미를 알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댄 이유는 아마도 에피쿠로스학파가 ‘정원’을 꾸려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비주의는 때로 황당한 소문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많은...
토용
2023.08.28 | 조회 147
한문이예술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한자의 바다에서 작고小 약한 것弱을 길어올리기   동은     1. 수많은 한자들 중에서     오늘날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2천자에서 5천자 정도 된다. 3천자 정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이미 30개 남짓 되는 한글이나 알파벳에 비하면 과하게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자가 사용된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문자만 해도 5만자(!)가 넘고, 같은 뜻을 가졌지만 형태가 다른 한자들까지 더하면 8만자(!!)가 넘는다고 한다. 이쯤되면 한자를 만든 사람도 무슨 한자가 있는지 절대 모를 수준이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갑골문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고 하니 한자의 갯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한자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어떻게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는 한자는 한 시즌에 겨우 10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10자도 많은 편이다. 하루에 하나씩 외워도 10년을 외워야 할 수준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수업을 해도 괜찮은지 가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자의 갯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한자의 바다!       2.  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있다보면 ‘날것’이 드러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한문이 예술>에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자주 보며 가까워진 친구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니거나,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 <한문이 예술>에 오게...
동은
2023.08.18 | 조회 558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기린
2023.08.17 | 조회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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