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용의 서경리뷰 1회] 『서경(書經)』을 소개합니다!

토용
2024-02-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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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근거로 삼고 있는 내용을 『서경』에서 가져온다. 『대학』은 수신과 치국의 도를 밝힌 책이자 사서의 하나로 유가의 핵심저작이다. 이 책의 세 강령 중 첫 번째 강령인 ‘명덕을 밝힌다(明明德)’를 설명할 때 인용한 문장도 모두 『서경』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서뿐만이 아니다. 『서경』은 제자백가의 많은 문헌에도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렇듯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책을 드디어 직접 읽게 되었다.

 

 

군왕의 언행을 기록하다.

 

『서경』은 진나라 통일 이전에는 주로 『서(書)』라 불렸고, 한나라 이후 『상서(尙書)』, 『서경』으로 불렸는데 공통된 글자는 ‘서’이다. ‘서’의 갑골문과 금문의 형태는 붓을 쥐고 있는 손이 어떤 그릇 위에 놓인 모양으로 본래 뜻은 ‘쓰다’이다. 『한서』 「예문지」에는 “옛날 군왕이 살던 시대에는 사관이 있어서 군왕이 움직이면 반드시 기록하였기 때문에 언행을 삼가고 법도를 밝힐 수 있었다. 좌사는 말을 기록하고 우사는 일을 기록하였으니, 일을 기록한 것이 ‘춘추’이고 말을 기록한 것이 ‘상서’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춘추’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고, ‘상서’는 그와 관련된 군주의 훈계나 맹세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사관이 있어서 군왕의 정치활동과 언행 등을 비롯해서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그러한 공식문서를 ‘서’라고 했다. 『서』가 하(夏)・은(殷)・주(周) 삼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자 주나라의 정치철학을 담은 통치서인 이유는 이렇게 기록된 문서에 바탕 했기 때문이다. 또 한나라의 공안국은 “상(尙)은 상(上)과 통하여 상고시대의 서(書)를 상서라 한다.”고 했는데, 상(尙)에는 오래되어 존숭할 만한 책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서주시대 청동기물이었다. 청동기의 크기와 형태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글자이지만 마치 그림인 듯 했다. 『서경』에는 서주 초기의 문형 형식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즉 내가 보았던 청동기물에 새겨져 있던 문장과 『서경』의 문장이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경』의 문장이 보통의 한문 문형과 달라서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묵자』 「귀의」편에 ‘주공 단은 아침에 서 100편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서경』보다 훨씬 편수가 많은데 주공이 읽은 것은 아마도 기록된 공식문서였을 것이다. 훗날 공자가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여 새롭게 편찬했다고 하는데 분서갱유 이전까지 사람들은 공자의 편집본을 읽었을까? 공자가 『시』,『서』,『예』,『악』으로 문인들을 교육했다는 기록으로 보면 『서경』은 공자스쿨의 기본 교과서였다. 공자는 어지러운 세상이 다시 요순과 주공의 정치로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며 제자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복생수경도 伏生授經圖

 

『서경』의 전승과정과 진위논란

 

현존 『서경』은 58편이다. 전설상의 성군인 요와 순의 사적을 기록한 「우서」 5편, 하나라에 대한 기록인 「하서」 4편, 상나라 기록인 「상서」 17편, 서주시대 기록인 「주서」 3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경』은 진시황의 분서로 인해 소실이 되었고, 이후 발견된 책을 둘러싼 전승과정도 매우 복잡하여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분분했다.

 

진시황 때의 분서와 협서율(서적을 사사로이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던 형법), 항우의 함양궁 방화로 대부분의 유가 문헌이 소실되었다. 한나라 혜제 때 협서율이 폐지되고, 문제와 경제 때 유가를 비롯한 여러 문헌들을 복원하게 된다. 민간에 전해져오던 전적들이 당시 한나라에서 썼던 문자인 예서로 써져 조정에 바쳐지는데 이를 금문경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한나라에서는 문헌의 정리와 주석에 힘을 쏟는 훈고학이 발달하게 된다.

 

『서경』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복원이 된다. 한 문제는 진(秦)나라 박사였던 복생이라는 사람이 『서경』에 능통하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런데 복생은 이미 아흔이 넘은 고령이라 고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에 문제는 옛 전례(典例)를 담당하던 관리 조조를 보내어 배우게 했다. 이렇게 해서 예서체로 기록된 28편의 『서경』이 복원된다. 이것이 바로 『금문상서(今文尙書)』인데, 이후 무제 때 「진서」편을 집어넣어 총 29편이 된다.

 

유가의 전적들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분서를 피해 여기저기 숨겨두었던 책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서경』도 마찬가지였다. 『금문상서』를 만든 이후 공자의 옛 집에서 예전의 책이 발견된 것이다. 이것은 진나라 이전의 옛 글자인 과두문자로 써졌는데 『금문상서』보다 16편이 많은 45편이었고, 이중 28편은 복생의 것과 일치하였다. 이것이 바로 『고문상서(古文尙書)』이다. 공안국은 이 책을 당시 문자인 예서로 번역해서 읽고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이후 삼국시대를 거쳐 서진에 이르는 동안 『고문상서』가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동진의 매색이 어떤 책을 공안국이 주석을 달아놓은 『고문상서』라고 하면서 조정에 바친다. 이 책은 『공안국전상서(孔安國傳尙書)』라고도 하는데 『금문상서』 29편을 33편으로 늘리고 25편을 새로 넣어서 58편으로 만든 것이다.

 

당나라 공영달은 매색의 책을 저본으로 『상서정의(尙書正義)』를 지었는데, 이것이 『서경』에 대한 최초의 깊이 있는 주석서라고 할 수 있다. 『상서정의』는 당나라의 관찬서인 오경정의(五經正義) 체제에 따라 편찬이 된 것으로 경(經)에 주(注)를 쓰고 다시 주에 소(疏)를 다는 방식이다. 『상서정의』는 공안국 전, 공영달 소로 되어있다. 이후 송나라 때 주희의 제자 채침은 새롭게 주석을 모아 『서경집전(書經集傳)』을 편찬한다.

 

『서경』은 여러 판본 때문에 오랜 시간 위서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주희도 매색이 바친 『고문상서』의 진위를 의심했고, 청대 고증학자들 특히 염약거는 『고문상서소증』을 지어 매색의 『고문상서』가 위서임을 밝혔다. 이것은 청대 고증학의 최대 업적이라 평가받는데 이후 매색의 『고문상서』를 『위고문상서』 즉 가짜 『고문상서』라고 부른다.

 

그런데 『서경』이 복원되는 복잡한 과정과 그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는 데에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위고문상서』를 저본으로 한 『상서정의』는 국학의 기본서이자 필수적인 경학서였다. 『서경집전』은 오랜 시간 국정교과서였다. 이 두 책은 유가의 핵심 경전으로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아왔다. 채침은 『서경집전』 서문에서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大經大法)이 모두 『서경집전』에 수록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학자들은 『서경』을 통치의 바이블로 삼아 치국평천하의 실현을 꿈꾸었다. 그들은 통치자의 자질로 도덕적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러한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델을 『서경』에서 찾았다. 『위고문상서』를 읽고 자신들만의 정치철학을 개진해온 수많은 학자들의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서경』 다시 읽기

 

“나는 토용이 『서경』으로 포도밭 글쓰기를 했으면 좋겠어.” 살림회의 중에 너무나 인자한 얼굴표정과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로 요요샘이 말씀하신다. 그동안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더는 안 되겠다 생각하셨는지 책까지 콕 찍어 주신다. ‘아! 이 일을 어쩌나~’

 

한문강독세미나에서 『서경집전』을 읽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2019년 2월에 처음 읽기 시작하여 2021년 7월에 끝이 났다. 『서경』을 읽는 동안 코로나로 세 달 가량 쉬었었고, 이후 방역상황에 맞춰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읽었다. 다른 책도 어렵긴 마찬가지나 특히 『서경』은 난해하여 읽기에 까다로웠다. 이렇게 혼자서는 감히 읽을 수도 없는 책들을 세미나를 이끌어주신 예심샘과 요요샘 두 선생님 덕분에 읽을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만 싶었던 포도밭 글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두 선생님을 비롯해서 같이 공부한 세미나 동학들 때문이었다. 나 혼자 할 수 있던 공부가 아니었기에 함께 해 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글쓰기로 갚는 것도 공부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강독했던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을 꼽으라면 『서경』이다. 『서경』을 읽으면서 공자가 그렇게도 흠모하고 칭송하던 주공의 정치와 그의 입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천년에 걸쳐 유가의 정치를 지배해온 기본 사상은 『서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덕이 있는 군주, 이상적인 군주는 어떠해야 하는지 그러한 군주가 펼치는 정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시대와 왕조는 달라도 기본 전제는 『서경』의 이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고대의 정치사상이 현재와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 포도밭 글쓰기를 통해서 찾아보고 싶다.

 

『춘추』가 사건의 기록이라면 『서경』은 그 사건 속에서 길어 올린 교훈의 말이다. 그렇다고 훈계와 교훈만 있는 고리타분한 책은 아니다.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글재주가 없어 『서경』의 에피소드들을 얼마나 재미있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용기내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댓글 12
  • 2024-02-29 15:21

    토용님의 '서경' 글쓰기! 궁금해집니다~

  • 2024-02-29 15:39

    서경에 대한 논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해 주셨네요^^
    앞으로 나올 서경의 이야기들도 궁금합니다.~

  • 2024-02-29 15:40

    토용샘이 가장 재밌었다는 서경, 을 직접 읽지는 못 해도 포도밭에서 맛 볼 수 있군요~응원합니다!

  • 2024-02-29 15:48

    저도 원문은 못읽어도 여기서 열씸히 읽겠습니다. 앗싸~!!

  • 2024-02-29 18:43

    토용선생^^ 화이팅!!! 입니다
    서경 제대로 못읽었는데 글이라도 잘 읽어볼께요~~^^

  • 2024-02-29 20:17

    시작이군요~ 앞으로 손꼽으며 기다리게 될듯^^

  • 2024-02-29 22:36

    토용선생, 따따봉~~

  • 2024-03-01 07:53

    벌써 재밌어요^^♥

  • 2024-03-01 08:16

    우와
    1.
    " 내가 보았던 청동기물에 새겨져 있던 문장과 『서경』의 문장이 비슷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경』의 문장이 보통의 한문 문형과 달라서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잉, 청동기물에 새겨져 있던 문장을 박물관에서 다 읽고 다닌다는거죠? 앞으로 여행은 요요님과 가시면 될듯해요. ㅋㅋㅋ
    2.
    저도 "너무나 인자한 얼굴표정과 예의 그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면, 사람들이 제가 글 쓰라고 하는거, 고쳐오라고 하는 거, 다 잘 들어줄까유? ㅋㅋㅋㅋ

    샘이 글 써서 넘 좋아요

  • 2024-03-01 08:48

    훈계와 교훈을 넘어 재미로의 전진~~~토용님이 재독해할 서경 읽기, 조아요~~~

  • 2024-03-01 11:31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읽으면 정리가 진짜 많이 될것 같습니다

  • 2024-03-12 10:14

    토용샘이 쓰시는 서경 ᆢ 기대돼요^^

토용의 서경리뷰
신화가 역사가 되다   정치는 실종되고 ‘심판’만 있었던 총선이 끝났다. 공약이 뭐였는지도 모르겠다. 민생은 아랑곳없이 저들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선거를 언제까지 봐야할지.... 의식주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살 만한 세상, 보통 사람들이 소박하게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 각자 살 만한 세상에 대한 감각은 다르겠지만, 동양고전 특히 유가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면 살 만한 세상의 전형으로 ‘요순의 시대’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요와 순은 유가에서 가장 존경받아온 성왕이다. 요와 순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라 불렸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통치자가 누구인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통치자도 자신들을 특별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연에 따라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나라는 원만하게 잘 운영되며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에 만족하며 살았다. 유가는 이러한 요순의 정치를 이상적인 정치로 생각했다.   이렇게 대단한 통치자 요와 순은 어느 시대 임금이었나? 안타깝게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전설에 존재하는 임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와 순은 중국고대사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고대신화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신화 속의 요는 반인반수의 모습이라든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어딘가에 살았을 원시 부족의 후덕한 부족장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서경』과 『사기』에서는 요와 순을 역사상 실존한 군주로 기록한다. 『서경』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와 순의 언행을 기록한 「우서(虞書)」, 하(夏)‧상(商)‧주(周)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하서」, 「상서」, 「주서」가 그것이다. 「우서」의 처음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요와 순이 가진 덕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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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2024.04.27 | 조회 3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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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2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59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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