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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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젠다 사장칼럼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