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33회]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 <도니 다코>(2001)

청량리
2024-03-20 08:55
284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도니가 벌이는 혹은 도니에게 벌어지는 ‘부분’의 사건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영화 ‘전체’를 보여주진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춘기 소년’이 영화의 주인공인 동시에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자체가 ‘사춘기’와 같은 그런 영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각 장의 동질성을 모자이크와 같은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되고, 전체적 배치의 체계로 파악해야만 한다. 우리의 지각에 처음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오는 것은 전체이지 병치된 요소들이 아니다.

- 『사유 속의 영화』 중 「영화의 새로운 심리학(1945), 메를로 퐁티」(이하 같은 책) p.163

 

‘대면’수업시간에 ‘비대면’방식의 시청각 비디오만 준비하는 역발상의 ‘파머’선생. 그날도 자칭 사랑전도사 ‘짐 커닝햄(패트릭 스웨이지)’의 강연이 이어졌다. 비디오테잎이 끝나고 파머 선생은 복습차원에서 커닝햄의 강연내용이 담긴 메모를 학생들에게 돌아가며 읽기를 요구하자 결국 도니는 소리친다.

“모든 감정을 두려움(fear)과 사랑(love), 그렇게 간단하게 이분법으로 나눌 순 없다고요! 인간 감정 전체를 봐야죠! 이런 젠장, XXXXXX!!!!” 도니는 파머선생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고 교장실로 불려간다.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모나 선생에게 심한 욕을 하고, 장난삼아 (아빠)총을 갖고 노는 도니는 소위말해 ‘부적응아’, ‘문제아’다.

 

 

학교에서도, 집안에서도 늘 겉도는 도니

 

오래 전 같은 반에 ‘도니’ 같은 부류의 친구가 있었다. 눈빛이 날카롭고 싸움도 곧잘 했었고 당연히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보였다. 종종 ‘땡땡이’치고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그 녀석과 함께 놀 때면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곤 했었다. 그의 몇몇 태도를 안 좋게 보는 선생과 주변 아이들은 그를 탐탁지 않아했다.

 

이따금 그 녀석과 옆자리에 앉아 수업시간에 이어폰을 나눠 끼고 몰래 음악을 듣곤 했고, 소풍 때 밥을 안 싸온 그 녀석과 멀찍이 떨어져 김밥을 나눠 먹기도 했다. 별거 없었다. 그 녀석은 사회부적응이나 트러블메이커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마주하는 세계 속에서 단지 살아갈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니도 ‘실제 그렇다’기보다는, 몇몇 '사건'들을 통해 그를 ‘그렇다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팩트’가 되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프랭크의 저음에 밤에 어디론가 이끌려 나갔다 온 다음 날, 어김없이 ‘사건’은 터졌다. 그리고 마치 예견된 것처럼 어떤 ‘인연’으로 연결됐다. 프랭크에게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밤사이 도니는 학교의 수도배관을 망가뜨린다. 임시 휴교된 다음 날, 그는 우연히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레첸(지나 말론)’을 만난다. 도니는 자신과 세계의 관계 속에서, 그레첸은 자신과 부모의 관계 속에서 외로워한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도니가 프랭크에게 묻는다.  도대체 눈은 왜 그렇게 된거야? 

 

그러나 그럴 때마다 프랭크는 자꾸만 얼마 남지 않은 종말에 대해 경고한다. 그레첸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깊어질수록 도니는 더 이상 프랭크에게 끌려 다니고 싶지 않다. 28일 후 세계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레첸은 전혀 모른 채 나 혼자만 알고 있다.

"모든 존재는 혼자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로베타 스패로우’ 할머니가 도니에게 했던 말). 아니라고 믿고 싶긴 한데, 근거를 못 찾겠어요. 그렇다고 제 인생을 그걸 찾는데 써버리고 싶진 않아요. 전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도니는 심리상담사가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혼자 죽는 게 두렵다”며 눈물을 흘린다.

 

마침 과학 선생님으로부터 ‘시간여행’에 대한 책 한 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로베타 스패로우’ 할머니가 바로 그 책의 저자였다. 미국판 ‘고교얄개’를 찍는가 싶더니 감독은 갑자기 SF장르에도 욕심을 낸다. 프랭크의 분장과 어설픈 효과만 보더라도 저예산 영화인데, 시간을 다루기에는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도니 다코>는 웜홀, 평행우주, 시간이동 등을 효율적으로 담아낸다.

 

시공간에 관한 놀라운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의 후반부를 놀라울 정도로 짧게 쓴다면 이러하다. 쿠퍼(매튜 매커히니)는 ‘웜홀(우주의 시공간을 연결하는 통로)’을 통해 우주를 헤맸지만 결국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는 데 실패한다. 지구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블랙홀’의 특이점을 통과하면서 5차원의 세계와 마주하게 되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의 딸이 머무는 서재에 도착한다. 그리고 책과 시계초침을 통해 딸에게 중력방정식을 풀 힌트를 전달해 준다.

 

 의문의 할머니로 등장하는 로베타 스패로우가 쓴 '시간여행의 철학' (서점에서 볼 순 없을 걸?)

 

저예산 영화 <도니다코>에서는 훨씬 가성비 높은 방법으로 시공간을 이동한다. 로켓을 타고 우주 ‘밖으로’ 날아가는 대신, 마음 ‘안에서’ ‘웜홀’ 같은 구멍이 울렁울렁 뻗어 나온다. 도니는 이 ‘웜홀’을 통해 평행우주의 또 다른 세계를 오가며 ‘붕괴’된 세계를 구하려 한다.

도니는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자동차 사고로 그레첸이 죽게 되자, 죄책감에 흥분한 나머지 자동차를 운전한 사람을 총으로 쏜다. 그런데 손에 들려있는 일그러진 토끼가면으로 보고 그가 프랭크임을 깨닫는다. 쿠퍼가 자신의 딸 머피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듯, 자신이 죽였던 프랭크가 밤마다 나타나 ‘28일’ 후 세계의 ‘종말’에 대해 알려줬던 것이다.

 

영화는 제작비 관계로 <인터스텔라>의 시각효과를 주진 못 했으나, 비눗방울 터널 같은 통로를 통해 도니는 28일 전 자신의 침대로 되돌아온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의 힌트로 중력방정식을 푼 머피가 ‘유레카’를 외치듯, 도니도 마침내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평행우주)에 대한 퍼즐조각을 맞추고는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음을, 그렇게 구해야만 함을 깨닫는다.

 

내가 지각할 때 내가 세계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내 앞에서 조직된다.

- 같은 책, p.169

 

이윽고 영화의 맨 처음 자신을 빗겨갔던 비행기 엔진이 이번에는 도니의 침대 위로 떨어지며 마무리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사건을 도니의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그레첸과 프랭크, 파머선생 등의 ‘삶’을 다시 보여주며 우리의 ‘죽음’은 결국 다시 삶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 무언가의 죽음은 끝이나 제로가 아니라는 이야기, 부분의 합으로는 전체를 알지 못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하지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판단'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도니'와 <도니 다코>의 이야기.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되면, 받아들이게 되면 '판단'하지 않는다.

 

왼쪽이 제이크 질렌할, 오른쪽이 감독 리처드 켈리, 가운데는 도니의 여자친구 역의 지나 말론이다.

 

이건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영화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결말이 열려 있다기 보다는 애초부터 결론에 관심이 없는 영화다. 그러니 <도니다코>를 보고나면 청춘로맨스, SF, 범죄스릴러 등 어떤 장르에도 넣기가 어렵다.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했고, 국내에서도 개봉 2주 만에 극장에서 내려간다. 그러나 이후 ‘비디오시장’에서 재평가되고(이런 영화들이 은근 많다) 지금은 매니아들 사이에서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한 마디만 더 덧붙여본다. 긴긴밤 안주거리로 곱씹을만한 영화이야기를 찾는다거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책상 위가 사춘기 아이들의 정신상태처럼 혼란스럽다거나, 팬심에 내용불문 제이크 질렌할의 리즈시절이 궁금한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당신의 긴-밤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고, 내 책상만 혼란스운 게 아니니 동질감의 위안을 얻을 것이고, 앳된 제이크 질렌할을 보는 기쁨은 굳이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댓글 1
  • 2024-03-26 09:10

    와, 이 sf 봐야겠어요.
    마이너한 sf 좋을 것 같군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사람   다르덴 형제의 <아들(Le Fils/2002>     아들 살해범을 만났다   주인공 올리비에의 아들은 5년 전에 살해당했다. 그 후 올리비에는 아내와 헤어졌고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지금은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아이들에게 목수 일을 가르친다. 아들을 잃은 그가 왜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의 갱생을 돕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올리비에의 뒷모습으로 시작되는데, 그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프란시스가 재활센터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가 동요한다는 것은 근접 촬영하는 카메라로 인해 전달된다. 초점은 어긋나고 사각의 프레임 안의 이미지는 흔들린다. 우리에게도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살해당했는데 그 살인범을 지금 만났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하겠는가.     보통 관객들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카메라 시점을 따라 감독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너무 가까이, 너무 흔들리는 시점을 보여주기에 ‘영화 보기’에 있어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카메라가 비추는 이미지 외에 어떤 설명도 따라붙지 않는다. 또 영화음악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사물이 내는 소리나 인물들의 대사와 호흡으로 오롯이 채워 넣는다. 시간이 흘러가도 올리비에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띠우
2024.04.28 | 조회 1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16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21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조회 28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띠우
2024.02.19 | 조회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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